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37)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37화(37/177)
언제 그런 이상한 제목이 붙은 거지.
‘그런 제목이 붙는 계획이라면 절대로 안 한다고 했을 텐데.’
나는 하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륜파이브에게 하라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건 원한의 힘이었다.
무엇보다 부모님 아들과의 대화는 최소한이어야 하는 게 사회의 룰인데.
이 계획이 시작된 건 오늘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 난 레널드에게 어제 사건을 공유해주었다.
물론 대공에게 회귀했다는 말을 한 건 빼고.
“아, 그리고 오라버니들이 오르센 후작에게 무슨 얘기를 들은 것 같아.”
“하면 여쭤보시지요.”
“그건 안 돼. 난 두 사람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그 즉시 델로시프령으로 내려가겠다’는 각서를 썼어.”
“예?”
“……내가 불륜파이, 아니, 친구에게 황실의 극비 정보를 알려주는 사고를 쳤거든.”
레널드는 매우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럴 만했다. 나도 그때를 생각하면 날 쥐어박고 싶으니까.
물론 이유가 있긴 했다.
당시 불륜파이브 중 하나인 라파엘의 가문이 멸문 위기였다.
그냥 뒀다간 라파엘이 죽을 것 같아서 알려준 거다.
‘그거 때문에 델로시프에 막심한 손해가 있었지.’
레널드는 어색하게 웃었다.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이제는 공자님들께 신뢰를 회복하셨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막상 얘기를 꺼냈는데, 안 괜찮으면 영지로 내려가게 되는 거야. 위험 없이 얘기를 들을 ‘확실한 방법’이 필요해.”
“……흐음, 그럼 이렇게 해보시지요.”
레널드의 계획은 이러했다.
상담을 핑계로 ‘정보’를 유도하기.
그게 바로 이 작전이었다.
“하지만 내가 상담이 필요하다고 하면 도리어 의심할 수도 있어.”
“사랑하는 약혼자가 사실 개쓰레…… 범법자였다는 게 밝혀진 상황이잖습니까. 상담이 필요한 상황이니 먹힐 겁니다.”
레널드가 자신만만하게 웃었을 때였다.
문밖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하나는 아카인의 목소리였다.
레널드는 바로 지금이라는 표정으로 눈을 부라렸다.
‘잠깐의 어색함만 참으면 공짜로 정보가 굴러들어 온다.’
나는 단단히 결심하며 기합을 다졌다.
그리고.
“묻지 마. 아무리 부관이라도 할 수 없는 얘기가 있는 거니까.”
—라고 말하며 방을 나섰다.
레널드가 그런 나를 설득하려는 사람처럼 따라 나왔다.
“하지만 자지도, 먹지도 못할 만큼 깊은 고민이 아닙니까~!”
‘다시 <흥신소>를 써볼까.’
레널드의 재능에 연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대화하며 복도를 지나던 제르노와 아카인이 멈칫, 나를 쳐다봤다.
그러자 레널드가 다시 열연했다.
“아가씨께서 저 말고 누구에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미카린 님께서도 안 계시고, 약혼자이신 클레아스 님께서 그리 되셨는데요!”
“…….”
“아가씨~!”
“…….”
“아가씨~?”
그다음 대사는 ‘내겐 오라버니들이 있어~!’였다.
기억은 하고 있지만…….
‘진짜 못 하겠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덥석!
제르노와 아카인의 옷깃을 각각 잡았다.
두 사람이 날 쳐다봤다.
“……뭐 하는 거야?”
“…….”
아카인은 눈이 커다래져서 물었고, 제르노는 내 손을 빤히 쳐다봤다.
“상…… 담 하라고 했잖아. 오라버니들이 해줘.”
행여 연기를 들킬까 봐 고개를 푹 숙였다.
“약한 얘기 남한텐 하기 싫어.”
레널드가 써준 대본엔 ‘(속상한 듯 고개를 리드미컬하게 돌리며)’ 라는 지문이 쓰여 있었지만, 차마 그건 못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과했어.’
지금이라도 취소라고 하고 냅다 튀어야 하나?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 뭐, 크험!”
아카인은 벌게져서 연신 헛기침했다.
“내가 한 말이 있으니까, 크흠, 들어줄 수도 있지.”
아주 어색한 말투였다.
누가 보면 저쪽이 연기하는 줄 알 거다.
제르노는 옷깃을 잡은 내 손을 쳐다보다가, 내 시선을 느끼고 휙! 고개를 돌렸다.
아카인이 말했다.
“복도에서 할 얘긴 아닐 테니까, 그, 뭐, 서재로 들어가든가.”
나는 두 사람의 옷깃을 잡았던 손을 떼고서 말했다.
“그럼 일이 끝나면 불러줘.”
“어, 그래. 형은 일해야지.”
그러며 아카인은 자기는 일이 없다는 듯 재빨리 내 옆에 섰다.
“오라버니는 일 없어?”
“일은 원래 장남이 하는 거야. 우린 가자.”
아카인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날 재촉했다.
제르노가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아니, 오늘은 차남이 회의에 들어가야겠다.”
“뭐? 회의 같은 중요한 일을 도맡는 게 장남의 역할이야!”
“중요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도 장남의 역할이지. 회의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니 네가 들어가라.”
장남과 차남…… 아니, 제르노와 아카인이 서로를 맹렬하게 노려보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담 작전이 먹히네?’
얼떨떨해 하는데 레널드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 * *
난 제르노와 아카인을 데리고 바로 옆에 있던 서재로 들어갔다.
냉큼 내 맞은편에 앉은 아카인이 물었다.
“그래서? 상담할 게 뭔데?”
“그건…….”
“투자? 보좌단? 사업? 아니면 사교계에 관한 일인가?”
“…….”
왜 이렇게 흥미진진해하는 거지.
사람 부담스럽게.
나는 떨떠름해지려는 표정을 애써 가다듬었다.
“클레아스에 관한 거야.”
잔뜩 말려 올라가 있던 아카인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수직 강하했다.
“그 자식은 왜 또.”
상담 내용이 클레아스라는 게 아주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마음에 안 든다.
다음 대사는 더더욱.
‘왜냐면 다음 대사가…….’
“클레아스와…… 결혼을, 빨리…… 할까 봐.”
—이거였으니까.
말하다가 토할 뻔했지만, 꾹 참았다.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래야 이런 반응이 나올 테니까.
예상대로 아카인이 숨넘어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제 그 난리가 났는데 결혼이란 얘기가 왜 나와!”
“그 난리가 났으니까 더욱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게 무슨 헛소리야.”
“가정을 가지면 클레아스도 책임감을 가질 거야. 그렇게 변하면 더는 델로시프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 테고.”
나는 최대한 반짝이는 눈을 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회귀 전에 시대를 강타한 연극 ‘쓰.재.불(쓰레기는 재활용이 불가능했다)’의 여주인공 흉내였다.
호사가 앙케이트에서 <내 딸이면 가장 속 터지는 여주인공 1위>를 차지한 표정이었다.
덕분에 아카인은 정말로 속 터지는 표정을 지었다.
“그 새X가 변할 새X겠냐!”
아카인이 꽥 소리쳤고, 제르노의 눈썹도 꿈틀했다.
옳지, 더 흥분해라. 더.
나는 더욱 자극하기 위해 순진한 체했다.
“클레아스의 사업이 어느 정도 범법 행위를 하고 있단 건 알지. 예비 권능자에게 약을 먹일 정도인걸.”
“그래! 너도 알잖아!”
“하지만 어차피 황제가 덮어줄 텐데, 뭐.”
“뭐?!”
“그리고 클레아스도 이번 일로 쓴맛을 봤으니, 더는 위험한 짓을 안 하겠지.”
아카인이 눈을 꽉 감았다.
‘쓰.재.불(쓰레기는 재활용이 불가능했다)’을 보다가 혈압으로 쓰러지던 귀부인이 딱 저런 표정이었는데.
그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앞으로 터져 나올 고함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안 하긴 뭘 안 해!! <권능자 강제 각성> 사업은 이름부터가 불법인데—!!!”
우렁찬 고함에 서재가 떠나갈 것 같았다.
‘권능자 강제 각성이라고?’
드디어 알아냈다.
하지만 계획이 성공했다는 생각보다 먼저 소름이 쫙 끼쳤다.
‘생각보다 더 위험한 사업이었잖아.’
각성자를 거치지 않는 권능 각성.
그건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예전엔 국가 단위로 강제 각성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끔찍한 결과만을 낳았다.
실험에 참여한 권능자들은 모두 괴물처럼 변해서 죽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인권을 위해 국제적으로 금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황제가 밀어줄 만도 하네.’
국제적 금기라 황제의 손으론 할 수 없는 일.
그걸 대신해 주고 있는 거다.
잘만 되면 황제는 앉아서 권능자 대군을 얻을 수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머릿속에 전구가 확 켜지는 기분이었다.
‘이거 그럼 황제의 약점도 되는 거잖아?’
오르센과 황제가 계약했다는 증거만 잡는다면……!
‘대박 터지는 거잖아.’
나는 얼른 입을 가렸다.
웃음이 터질 뻔해서.
하지만 아카인은 다르게 해석한 모양이었다.
“충격이기도 하겠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강제 각성 같은 건 생각도 못 할 테니까.”
“…….”
“그러니까 결혼 같은 얘기는 다신 꺼내지 마라. ……칫, 이렇게 말한다고 네가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니지만.”
“…….”
“그래도 난 끝까지 반대—.”
“응. 그럼 결혼 생각 접을게.”
“어?”
거의 전쟁을 각오하고 있었는지, 아카인이 벙찐 얼굴을 했다.
인상을 쓰고 있던 제르노까지 멈칫할 정도였다.
하지만 난 그런 것보다도 지금 터진 대박을 계산하느라 바빴다.
‘황위가 흔들릴 약점이 그냥 막 굴러들어 왔잖아. 클레아스가 이렇게나 도움이 되다니!’
이젠 정말로 그놈이 감옥을 나오든 말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빨리 나와서 황제와 착착 거래하면 좋겠다.
그렇게 클레아스의 곁에서 황제와의 거래 증거만 잡으면—.
‘미카린이 아무리 역대급 각성자가 되어도 맞설 수 있어.’
황제가 내 무기가 되니까!
“결혼 생각을 접겠다고? 네가? 왜?”
“오라버니들이 반대라면서.”
“어?”
“날 생각해서 반대하는 거잖아. 그러면 들을 건데?”
대충 대답했다.
빨리 레널드와 이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눌 생각밖에 없어서.
그런데 아카인과 제르노의 반응이 이상했다.
“……지금까지 대화가 안 되었던 건 전부…….”
아카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이 벌겠다.
“……내 탓이었구나.”
“어?”
“넌 무조건 우리 말을 안 들을 거라고 지레짐작했어. 넌 언제나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
“우린 이렇게 쉽게 대화할 수 있었던 거야…….”
왜 분위기가 이렇게 됐지?
두 사람의 눈빛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저기, 상담 고마워. 이제 난 돌아갈게.”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슥, 일어났다.
그렇게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멍청아!”
“……?!”
아카인이 날 확 끌어안았다.
왜 이래! 무슨 짓이야!
‘이제 다른 방법으로 날 공격하는 건가?!’
포옹 공격은 너무하잖아. 이건 정말 선을 넘는 공격이다.
‘……칠까?’
주먹을 쥘까 고민하는데 아카인이 날 떼내고 얼굴을 바라봤다.
“대화하자. 지금까지 못 한 만큼 많이.”
“난 오늘로 충분한데……?”
“고작 이런 작은 대화로 마음을 풀어주냐, 이 바보야.”
진짜인데.
그보다 좀 놔줬으면 좋겠다.
나는 “하여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카인을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봤다.
* * *
난 매우 피곤한 표정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이나 더 잡혀 있었네.’
아카인이 다른 얘기를 하자며 씩 웃더니, 정말로 다른 얘기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제르노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제르노마저 오히려 따뜻한 눈빛으로 날 공격했으니까.
그렇게 피곤에 젖어 방으로 돌아온 내겐 다른 공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레널드가 해맑은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던 거다.
“……클레아스의 목적을 알아냈어.”
“역시 ‘불안한 대공녀는 대공자님들의 조언이 필요해♡’ 작전이 통했군요!”
“…….”
제목은 정말로 별로지만, 확실히 먹혔다.
레널드의 사람 보는 통찰력은 정말 뛰어났다.
이래서 상재 B급인가.
‘거기다 충성심도 뛰어나지.’
나는 조금도 구김 없이 웃는 레널드를 빤히 쳐다봤다.
목적을 알아낸 것보다도, 내가 가족과 대화한 것을 기뻐하는 걸로 보였다.
“레널드, 넌 왜 그렇게 내게 충성하지? 엠마에게서 도와준 일이 그렇게 도움이 되었나?”
“도움도 되었지만 그보다 기뻤지요.”
레널드의 표정이 부드러웠다.
“속은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않는 점,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돕는 선량함. 아가씨의 그런 점들을 알게 된 것 말입니다.”
“넌 날 오해하고 있어.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
“아가씨께서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든, 제게는 좋은 분이십니다.”
“…….”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분을 주인으로 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아가씨는 제게 그런 희귀한 행운을 주신 분이십니다.”
나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회귀한 내 삶에 레널드 파비안이 나타난 것.
‘레널드가 아니었다면 난 지금까지 누구도 신뢰하지 못했을 거야.’
계속해서 내 사람이 되겠다고 다가오고, 꾸준히 충성을 보였다.
저 성실함이 내게 믿음을 돌려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걸 왜 말해, 이 멍청아!”
내게 타인을 믿는 법을 알려준 남자가 있어서.
그러니까…….
‘말할 수 있어.’
“내 목적은 불륜충을 조지는 거야.”
“음? 아주 멋진 목적이시군요.”
“더 정확히 말하면 불륜파이브를 조지는 것.”
“불륜파…… 예?”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레널드, 난 회귀했어. 그리고 두 번째 삶에서 특별한 능력을 발현해 냈지.”
“예?”
“회귀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있지만, 능력까지 아는 건 너뿐이야.”
“…….”
“이게 무슨 뜻이냐면, 넌 지금 내가 이 세계에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란 거야.”
“아가씨…….”
레널드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난 빙그레 웃었다.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믿어줄래?”
날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정하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또 한 번 맹세하겠습니다. 목숨을 바쳐 충성할 것을.”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등에 이마를 맞댄 그가 말했다.
“나의 주인.”
창을 타고 바람이 불었다.
뉘엿한 볕이 마치 휘장처럼 우리 두 사람을 드리웠다.
레널드 파비안.
재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남자가 진정한 나의 부관이 된 순간이었다.
나는 엄숙히 입을 열었다.
“내 능력의 이름은 <금지된 사랑의 흥신소>.”
“예, 금……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