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38)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38화(38/177)
레널드는 뭘 잘못 들은 사람처럼 귀를 후볐다.
“분위기 진지했는데 갑자기 반전이라 당황했겠지만, 사실이야.”
“……<흥신소>이기만 했어도 분위기가 계속 진지했을 텐데.”
음, 나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레널드 파비안>님으로부터 ♡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이 그러는데, 너 방금 도파민이 넘쳤대.”
나는 픽 웃었다.
흥신소보단 금지된 사랑이 좋구나.
* * *
열흘 후.
나는 오늘도 아침부터 찾아온 레널드에게 붙들려 서류를 봐야 했다.
“—어젯밤 오르센 후작의 행보는 그렇습니다.”
“……이 보고서의 길이는 뭐야?”
“분 단위로 후작의 행보를 적어보았습니다. 화장실을 여섯 번이나 간 것으로 보아 스트레스성 설사병인 것으로—.”
“그거까지 알고 싶진 않았어.”
레널드는 의욕이 넘쳤다.
회귀 전 이야기를 해줄 때, 엄청나게 몰입하더라니.
이제는 나보다 더 복수에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가.’
– 이름: 레널드 파비안
– 성별: 남성
– 나이: 25
– 직장: 델로시프 대공저, 로사래빗 상단
…
– 재능: 상재(B급), 정보력(C급)/ 외교, 화술, 설득, 매혹, 판단력, 계산력
‘정보력이 올랐어.’
C급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B급이 천재 수준이니, C급은 매우 우수한 인재인 것이다.
그럼 대체 A급은 얼마나 대단한 거지.
최근에 <흥신소> 능력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사람들의 정보를 많이 확인했다.
‘하지만 현 등급이 A급은 한 명도 없었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천재 가수도 B급이었으니까.
“그래서 종합해 본 결과, 클레아스는 오늘 중으로 풀려날 듯합니다.”
“생각보다 늦네. ‘혐의없음’으로 결론 난 지 사흘이나 됐잖아.”
오르센 후작이 재산의 절반을 갖다 바쳤으니, 더 빨리 풀려날 줄 알았다.
무엇보다 황제가 당일에 바로 풀어주고 싶어 했고.
그때였다.
“아가씨!”
앨리스의 목소리였다.
입실을 허가하니, 후다닥 들어온 그녀가 말했다.
“오르센 후작저에서 온 소식입니다. 클레아스 님께서 오늘 3시에 옥사를 나오신답니다!”
“그래?”
역시 정보력 C급인 레널드의 생각이 옳았나 보다.
“네? 기쁘지 않으세요? 오르센 후작이 함께 마중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전하셨는데요.”
“어어, 기뻐. 근데 마중은 됐다고 전해.”
시중 B급의 앨리스는 내 반응이 의아한 모양이었지만, 두 번 묻지 않았다.
“답신은 정중하게 할까요, 매력적이게 할까요.”
이건 앨리스의 언어로 ‘싹싹하게 말할까, 싸가지 없게 말할까’ 라는 뜻이었다.
“그 중간 정도면 되겠어.”
“네. 바로 답신하겠습니다.”
앨리스가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방을 나섰다.
“오르센 후작이 직접 연락해 온 걸 보니 마음이 급한가 봅니다.”
“이번 일로 재산의 절반을 날리고, 사업에서 발을 뺀 자들도 여럿이니까.”
“예, 델로시프의 힘이 간절하겠지요.”
레널드가 싸늘하게 웃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당분간 클레아스 부자가 애타게 둬야겠어. 초조해져야 언제 미끼를 던져도 잘 물 거야.”
난 클레아스를 계속 약혼자로 옆에 둘 것이다.
그래야 황제와의 거래 증거를 내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현명하십니다. 아, 그리고 이건 어떻게 할까요?”
레널드가 품 안에서 작은 돌을 꺼냈다.
아켈로스 대공가에서 보내온 영상석이었다.
대공에게 후원해달라는 미카린의 모습이 담긴 그 영상석 말이다.
“브라운이 아주 선명하게 작업해 주었네.”
“블루윈이 했다더군요. 원래 미카린을 싫어한답니다. 불륜충을 혐오해서.”
“미카린이 생각보다 바람피는 걸 많이 들키고 살았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난 생긋 웃었다.
“클레아스에게 출소 선물로 보내줘.”
“좋—은 생각이십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 * *
오르센 저택.
클레아스는 짜증 어린 얼굴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의 부관이 물을 건넸다.
“후작 부인께서 식사를 준비하시고 기다리십니다.”
“됐으니까 지난 일부터 설명해. 강제 각성 사업에서 이탈한 가문이 몇이나 돼.”
“……일곱입니다.”
“뭐?!”
클레아스가 살벌하게 소리쳤다.
“너나 아버진 뭘 하고 있었어! 17 가문 중에 7 가문이나 빠져나갈 때까지 손 놓고 있던 거야?!”
“물론 노력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세간의 평가가 너무나 하락한지라…….”
“젠장—!”
클레아스가 물잔을 내던졌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니케아르샤는 왜 마중 나오지 않았지? 아버지가 직접 연락했지만 태도가 미적지근했다던데.”
“대공자들의 탓이 아니겠습니까. 옆에서 압박한 것이겠지요.”
“빌어먹을. 되는 게 없군.”
이게 다 아켈로스와 율리시즈 녀석 때문이었다.
나오기만 하면 둘 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맹세했건만.
당분간 몸을 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부관이 이를 가는 클레아스에게 말했다.
“저, 그런데 아켈로스의 뒤를 캐며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보안을 담당하는 결계사를 매수해서 얻은 것인데—.”
그때였다.
벽시계의 종이 열세 번 울렸다.
책장과 이어진 비밀 통로에서 문을 열어달란 신호가 온 것이다.
부관이 클레아스의 눈짓을 받고 책장의 버튼을 눌렀다.
“클레아스……!”
통로에서 달려 나와 클레아스에게 안긴 사람은 미카린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참을 수가 없었어요.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미카린이 오열하며 클레아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당신이 잘못되면 함께 가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요. 대공을 죽이고 싶어서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 몰라요……!”
“……진정하고 앉아.”
“언니는요? 언니가 도와준 거예요? 응?”
“마중조차 나오지 않았더군.”
“어쩜…….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너무해, 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는데.”
미카린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클레아스의 뺨을 감쌌다.
“야윈 것 봐. 얼마나 힘들었던 거예요…….”
“얘기는 나중에 해. 보고부터 먼저 들어야겠어.”
클레아스는 미카린을 품에 안은 채로 부관을 쳐다봤다.
“뭘 얻었다고?”
“그…… 영상석입니다만.”
“내용은?”
“…….”
“내용이 뭐냐니까.”
부관은 곤란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품에서 영상석을 꺼냈다.
클레아스가 영상석을 조작하자 허공에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보인 것은.
[저 밀크티 좋아해요. 얼그레이 밀크티.]대공을 향해 생글생글 웃는 미카린이었다.
“……!”
미카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게 뭐야! 이게 어떻게 클레아스의 손에……!’
순식간에 클레아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대공을 죽이고 싶은 사람의 표정이 해맑기도 하군.”
“이, 이건요. 이건 어떻게 된 거냐면요…….”
다행히 다른 얘기를 하는 장면은 없었다.
‘그게 더 꺼림칙해! 왜 여기까지만 잘라서 유출한 건지 알 수가 없잖아!’
이렇게 되면 거짓말을 쉽게 할 수도 없었다.
다른 장면이 담긴 영상석이 나오면 클레아스와의 관계는 끝이니까!
“이, 이건, 저기, 무슨 일이냐면, 그러니까…….”
“날 위해 죽겠다는 말을 전부 믿는 건 아니었어. 하지만 생각보다 더 가볍군, 너란 여자는.”
클레아스가 미카린을 싸늘하게 떼어냈다.
그리고 방을 나서려던 찰나.
미카린이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뭐?”
“이중 스파이가 되려고 했다구요.”
“그걸 믿으라고? 어느 멍청이가 그따위 말을 믿겠어?”
“모, 못 믿겠으면 우리 가문의 인장으로 서약서를 써도 좋아요!”
문을 열려던 클레아스의 손이 멈칫했다.
미카린은 마른침을 삼키며 다가왔다.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내가 당신 사업의 주모자가 된다는 각서요.”
“…….”
“난 남작가지만, 델로시프 대공가의 방계잖아요. 본가를 빼앗으려 했다는 핑계면 먹히지 않겠어요?”
“…….”
“그 사업, 난 대충 알잖아요. 밝혀지면 극형이란 것도 알아요. 그걸 대신할 만큼……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클레아스가 힐끗 미카린을 쳐다봤다.
그리고 곧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전부 신뢰하진 않아. 서약서는 정말로 받겠어.”
“물론이죠…….”
“서약서를 쓰면 돌아가 있어. 내가 찾을 때까지 나타나지 말고.”
“……그럴게요.”
그렇게 말한 클레아스는 방을 빠져나갔다.
방에 남은 미카린이 스르륵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대체 뭐냐구!’
이렇게 되면 신뢰를 회복할 때까지 클레아스는 생활비를 주지 않을 거다.
그럼 고리대금이 그동안 얼마까지 부풀지 알 수 없었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야…….’
클레아스가 자신을 그냥 두는 건 서약하겠다는 약속 때문이다.
그렇게 버림패로 쓰이기만 한 채로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으으…….”
왜 자꾸 일이 이렇게 되는 거냔 말야!
애초에 니케아르샤가 평소처럼 제게 다 퍼주었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
‘언니는 왜 자꾸 나를 괴롭혀요?’
미카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호화로운 방 안.
한 중년의 남성이 화려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제국의 ‘2대 상단’ 중 하나인 ‘리즐 상단’의 주인.
리즐 후작.
델로시프 영지의 베스 댐이 무너질 뻔했을 때, ‘아키탄’을 팔지 않은 장본인이다.
“흠… 표제는 일단 마음에 드는데.”
그는 심각한 얼굴로 가십지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표지엔 특집 기사라며 커다란 표제가 적혀 있었다.
[망나니 니케아르샤, 또 일쳤다?]리즐 후작은 서둘러 가십지를 펼쳤다
그런데 내용이…….
파악!
리즐 후작이 거칠게 가십지를 집어던졌다.
“장난해? 온통 니케아르샤한테 좋은 기사잖아! 하여간 요즘 기자들 낚시질은……!”
리즐 후작은 인상을 구긴 채 다른 잡지를 펼쳤다.
[니케아르샤 델로시프의 사생활 논란?!]이런 자극적인 특집 기사가 적힌 잡지였다.
그곳엔…….
[난봉꾼 율리시즈, 이번 사랑은 클레아스의 약혼자?!] [사랑이냐, 우정이냐! 니케아르샤를 사이에 두고 갈라진 두 남자] [율리시즈 루스도어, 친구 고발의 뒤엔 니케아르샤 델로시프의 조언이?] [사랑이냐, 정의냐. 니케아르샤 델로시프, 약혼자의 출소에도 마중 가지 않은 이유는?]“미친! 이딴 것도 기사라고……!”
퍼억!
리즐 후작이 또 잡지를 던졌다.
“이딴 소설이 왜 기사로 나오는 거야! [두 남자를 사로잡은 니케아르샤의 매력?!] 아무리 가십지라지만 이런 개 같은……!”
그때, 명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빠도 참. 니케아르샤와 율리시즈, 클레아스가 최근 이슈 메이커잖아요.”
리즐 후작의 딸, 누첼리아 리즐이었다.
“셋을 합쳐서 기사로 내면 얼마나 잘 팔리겠어요? 돈이 되니까 저러는 거죠. 어차피 99%는 사실이 아닐 텐데 신경 끄세요.”
딸의 말에 리즐 후작은 푹 한숨을 쉬며 소파에 기댔다.
신경을 끄려고 해도 꺼지지 않아서 문제였다.
“하…. 니케아르샤 때문에 우리 상단이 입은 피해만 생각하면 내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그가 ‘아키탄’ 거래를 계속 미룬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 황비와의 거래.
2. 아키탄의 가격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다.
3. 콧대 높은 델로시프 소공작이 제게 절절매는 걸 보고 싶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지.’
황비는 델로시프 대공가에 빚을 지우고 싶어 했다.
리즐 후작이 아키탄 거래를 지연하면, 황비가 중재해서 은혜를 베푼다는 계획이었다.
‘그 대가로 리즐 상단에 특혜를 약속했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아키탄을 판매할 수 있는 상단은 단 두 곳.
리즐 상단과 페리웰 상단뿐.
페리웰 상단은 이번 일에 관여하길 꺼렸다.
그러니 리즐 후작은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될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개망나니 니케아르샤가 튀어나와서 훼방 놓다니!’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황태후가 나섰다.
황비는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황태후의 비호를 받은 페리웰 상단은 빠르게 아키탄을 팔아넘겼다.
“젠장! 아키탄 값과 황비가 약속한 특혜! 거기에 재수 없는 델로시프 소공작의 무릎 값까지!”
심지어는 아키탄의 손해를 메꾸기 위한 신사업도 니케아르샤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니케아르샤의 소식에 밀렸다.
“전부 다 내 손에 쥘 수 있었는데 니케아르샤 때문에 망했어! 이 손해를 갚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린단 말이야!”
리즐 후작이 씩씩거렸다.
딸, 누첼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개망나니가 갑자기 변한 게 이상하긴 해요. 최근엔 ‘막장의 지배자’ 소리를 듣잖아요.”
“막장, 즉 거래의 마지막 장—대미를 지배했다는 건 상계에선 최고의 칭찬이거늘!”
“그 사기꾼 가짜 각성자가 ‘막장의 지배자’ 소리를 듣다니 말도 안 돼요.”
“우리 리즐 상단도 ‘막장의 지배자’ 소리는 170년 전에나 들었는데……!”
리즐 후작이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누첼리아가 코웃음 쳤다.
“흥, ‘막장의 지배자’면 뭐해요. 니케아르샤가 상단을 차릴 것도 아니고. 어차피 태어날 때부터 쓸모라곤 각성자가 되는 것뿐이었잖아요.”
“그래, 완전히 실패했지만.”
“그러니까— 니케아르샤를 망신 주고 싶으면 그걸 이용하면 되죠.”
아무리 공을 세워봤자 니케아르샤가 실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리즐 후작이 “오오!” 하고 딸을 끌어안았다.
“내 사랑스러운 딸! 너는 그 실패자와 다르지!”
“우후후, 각성자 딸이 효도 좀 할게요.”
누첼리아가 생글생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