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39)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39화(39/177)
* * *
며칠 후.
델로시프 대공저.
니케아르샤는 피곤에 찌든 얼굴로 서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자신은 그저 앨리스의 환상적인 마사지를 즐기고 있었을 뿐이다.
클레아스와 미카린도 최근에는 몸을 엄청나게 사리고 있어서, 딱 좋았지.
그런데….
“역시. 공녀님한테는 이 색이 잘 어울릴 줄 알았어요.”
“응응, 이 디자인도 잘 어울릴 거 같았죠.”
“자아, 그럼 다음 드레스 입어볼까요?”
“입어볼 게 아—주 많아요. 어서 움직이세요.”
갑자기 아이프릴과 벨린다가 쳐들어왔다.
“방문 요청도 안 넣었으면서 어떻게 들어온 거야!”
“전에 아가씨의 친구니 이제 자유롭게 출입하게 두라고…….”
내가 왜 그랬을까.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불륜 지옥과 다른, 패션 지옥이.
“전부터 생각했는데 코디가 안티예요! 얼굴과 비율로 어떻게든 커버하고 있지만, 다른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릴 거라고요! 이 벨린다가 하나하나 다 바꿔드릴게요.”
“아이프릴도 열심히 도울게요! 의상은 제 전공이 아니지만 미적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거든요!”
거기에 내 동의는 없었다.
내 의지도 없었다.
‘도와줘, 앨리스!’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본 앨리스는….
“하아아아앙! 아가씨의 패션쇼라니 업계 포상?! 완벽해! 최고야! 사랑스러워!”
“…….”
“벨린다 님, 힘드시죠? 커피? 차? 칵테일? 뭐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아이프릴 님, 어깨 주물러드릴까요? 아니면 팔? 다리? 전부?”
“…….”
벨린다와 아이프릴의 훌륭한 졸개가 되어 있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오늘 일정은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 파티에 가는 것뿐이었다.
‘리즐 후작 영애의 파티.’
며칠 전, 리즐 영애에게서 초대장이 왔다.
의외였다.
리즐 후작가와는 아키탄 거래 때문에 조금 껄끄러웠으니까.
‘하지만 상계에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법.’
거래가 이득이라면 할아버지의 원수와도 손을 잡는 게 이 바닥의 법칙이다.
리즐 후작가는 성공한 상단을 소유하고 있으니 ‘로사래빗 상단’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클레아스를 조지는 데에 도움이 돼.’
리즐가는 신문에 기사를 싣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해서 상단 홍보에 이용하는 것이다.
[리즐 영애, 오후의 티타임에 초고가 팔찌 차……올여름 리즐 상단의 주력 상품?]‘레널드가 지금 클레아스에겐 최악의 상대일 거라 했지.’
클레아스는 하루빨리 사건이 덮이길 바란다.
그러니 온갖 일을 기사로 만드는 리즐 가문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을 터였다.
실제로 레널드의 말이 맞았다.
‘엄청나게 만나자고 연락해 오다가, 리즐 영애의 파티에 간다니까 편지가 끊겼어.’
그건 진짜 좋다.
하지만 이 준비는…….
난 피곤한 표정으로 아이프릴과 벨린다에게 끌려다녔다.
“자, 이제 신발 차례예요. 여기 쿠션에 발 올려놓으세요.”
“어서요. 신발 다음에는 머리 장식이에요.”
왠지 두 사람의 엄청난 박력에 밀려서 저항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진짜 따져야겠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
“계약서에 적혀 있어요. 이거 해야 한다고.”
“계약서에 쓰여 있어요. 이거 하라고.”
이런 노동을 적어놨다고?
무슨 이득이 있어서?
설마 입어본 것들 다 강매하려고 하나?
“…드레스값은 얼만데.”
“공짜라고 적혀 있어요. 계약서에.”
“이 구두는….”
“계약서요. 공짜.”
“이 부채….”
“계약서!”
“…….”
아니, 노예 계약이잖아?
“됐어. 계약서는 파기—.”
“일방 파기 못 한다고 적혀 있어요. 계약서에.”
“그래도 이건—”
“받은 게 있어서 돌려줄 뿐이에요.”
“…….”
“기브 앤 테이크!”
벨린다와 아이프릴이 똑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오늘 참석하는 사람들 명단이야. 리즐 후작가와는 사이좋은 편이 아니라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 여기 이 사람들은 괜찮아. 중립적이거든. 자, 외우자.”
—셀레나가 강의를 했다.
“너는 또 왜 그러는데.”
“계약서.”
“…….”
레널드 이 자식.
나를 무슨 계약서에 싸인 시킨 거야?!
악녀인데 노예주♥가 되어버렸다
* * *
리즐 후작가의 정원.
이곳은 오늘 파티를 위해 사치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리즐 상단의 재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장식들.
사람들은 그 대단한 자금력에 혀를 내두르며 리즐 영애에게 달라붙었다.
“오늘 파티에 델로시프 공녀가 온다면서요?”
“각성자 발현에 실패하고 가문에서도 버림받을 줄 알았는데……. 용케도 버티고 있네요.”
“그래 봤자입니다. 약혼자도 그 지경이 되었잖아요.”
리즐 영애에게 찰싹 붙어 있던 영식이 간신배처럼 쌜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키탄 거래나 성소 붕괴 저지 건은 전부 대공가의 힘이라고요. 공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뭡니까?”
그 말에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리즐 영애가 입을 열었다.
“다들 그만하세요. 공녀가 가문의 힘을 등에 업고 칭송받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리즐 영애…….”
“다만 제 파티는 공정한 분위기였으면 해요.”
리즐 영애가 당당히 선언했다.
“오늘 공녀는 뒷배경 없이 자신의 능력으로만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거예요.”
“과연 리즐 영애!”
“정말 멋지십니다. 오늘 의상도 정말 위엄 넘치고…….”
정말 비싸 보이는 원단에, 비싸 보이는 공법에, 비싸 보이는 장식을 단 옷이었다.
리즐 상단의 자금력과 위용을 보여주는 옷.
사람들이 감탄하며 칭찬했다.
“저는 이런 원단은 처음 봐요. 햇빛에 따라 색이 변하네요.”
“이 장식은 어떻고요?”
“너무 아름다우세요, 리즐 영애.”
그때였다.
갑자기 정원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델로시프 공녀가 왔나 봐요?”
“조용히 들어올 것이지. 하여간 소란만 피우고…….”
그리고 파릇한 정원수 사이로 니케아르샤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
“……!!”
일시에 침묵이 찾아왔다.
“와…….”
누군가의 나지막한 감탄.
그게 시작이었다.
“와! 공녀님, 오늘 너무 아름다우세요!”
“야외 파티와 너무 잘 어울리는 차림이에요! 공녀님의 센스란……!”
“혹시 이 드레스는 어느 디자이너 작품이에요? 카탈로그에서 본 적 없는데.”
순식간에 사람들이 니케아르샤 곁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영애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니케아르샤는 당황했다.
‘벨린다, 아이프릴… 능력 좋다더니 이 정도일 줄이야……!’
두 사람이 괜히 각자의 분야에서 트렌드를 선도하는 게 아니었다.
등장과 동시에 파티의 분위기를 휘어잡은 니케아르샤를 보며 리즐 영애 주변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쯧, 공녀의 지나치게 화려한 외모는 딱히 새로울 게 없는데, 왜들 저러는지.”
“맞아요. 아무 능력도 없는데 저렇게 화려해 봤자 우스울 뿐이죠.”
“사람이 능력이 있어야지.”
“리즐 영애처럼 말입니다.”
그 말에 리즐 영애가 부채를 살랑거리며 말했다.
“어머나, 갑자기 저를 이리 띄워주시니 부끄럽네요.”
“갑자기라뇨! 이번에 권능자를 각성시키셨다면서요!”
“가짜 사기꾼과 달리 진짜 각성자! 나 같으면 진짜 앞에서 저렇게 나대지 못할 텐데……
.”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 아니겠어요?”
들으라는 듯 커다랗게 외치는 목소리에 니케아르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리즐 영애가 주변 사람들을 말렸다.
“여러분도 참. 그만하세요. 공녀가 당황하겠어요.”
리즐 영애는 니케아르샤에게로 다가가 우아한 태도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공녀?”
“…
…?”
니케아르샤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얘 누구지.’ 하는 눈으로.
리즐 영애는 바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
‘서, 설마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거야?!’
그럴 리 없다.
인사도 여러 번 나눴고, 대화도 몇 번 했고, 심지어 자신은 이 파티의 주최자였다.
그래, 자신이 눈빛을 착각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들어버렸다.
니케아르샤의 옆에 있던 셀레나가 “리즐! 리즐 후작 영애…!” 하고 속삭이는 것을.
문제는 워낙 우랑찬 속삭임이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어버렸다는 거지만.
휘이이이이잉—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아! 반가워요, 리즐 후작 영애.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니케아르샤만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 * *
꾸우욱!
셀레나가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억울했다.
난 <흥신소>로 이름을 확인하려 했는데.
자연스럽게 아는 척할 수 있었던 것을 셀레나가 선수 쳐서 알려줬다.
아주 우렁찬 귓속말로.
‘다 들렸겠다!’
나는 리즐 영애를 향해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별 효과 없는 것 같지만.
‘누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어.’
리즐 영애는 지금 나한테 당장이라도 ‘퉤퉤퉤’ 할 것 같은 얼굴인데.
그냥 ‘퉤퉤퉤’가 아니라 ‘카악~ 퉤!’ 할 것 같다.
셀레나한테 너무 많은 귀족들을 주입당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헷갈렸다.
‘거기다 리즐 영애는 서류에 있던 사진이랑 좀 다르단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파티의 주최자인 리즐 영애의 얼굴은 외웠는데.
그때였다.
“하…! 억지로 모르는 척 애쓰는 모습이 더 초라해 보이는군요.”
충격에 얼어붙은 리즐 영애를 대신해, 옆에 있던 영식이 간신배처럼 씰룩 웃으며 말했다.
“실패한 공녀님과 달리, 리즐 영애는 훌륭히 발현을 마치고, 벌써 권능자를 각성시켰습니다. 배알이 꼴려서 모르는 척하는 거, 다 압니다!”
‘권능자를 각성시켰다고?’
리즐 영애는 나와 동갑.
슬슬 발현을 시작할 나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빠른 편이다.
리즐 영애도 꽤 좋은 자질을 타고난 모양이다.
‘그런데 왜 회귀 전엔 아무런 활약도 못 했지?’
기억을 되짚어봐도, 리즐 영애가 각성자로서 두각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거야 알아보면 되겠지.’
<흥신소>를 사용하자 곧 리즐 영애의 신상명세가 떠올랐다.
– 이름: 누첼리아 리즐
…
– 능력: – / 허풍, 기억력
‘……능력이 텅 비어 있는데?’
정확히는 ‘허풍, 기억력’은 있지만, 주요 능력은 텅 비어 있다.
각성자라면 어떤 식으로든 표시될 텐데…….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잠재력이 보였다.
– 잠재력: 각성(F급)
‘……뭐야. 아직 각성자로 발현하지도 못한 것 같은데?’
나는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리즐 영애가 권능자를 각성시켰다고요?”
그러자 추종자 무리가 왁왁 소리를 질렀다.
“어머머? 무슨 말이 그래요? 리즐 영애가 그럼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예요?”
“하긴 믿기 싫으시겠죠.”
“누구와 달리 리즐 영애는 사기꾼이 아니라 진짜라구요!”
추종자들이 한껏 빈정거렸다.
이전엔 이만큼 대놓고 비웃지는 못했는데, 오늘은 보란 듯이 날 조롱했다.
각성자인 리즐 영애에게 잘 보이고 싶겠지.
게다가 클레아스 일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약혼자가 엄청난 사고를 쳤으니 아무리 개망나니라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펍에 갔던 일로, 약쟁이라는 말도 돌고 있었고.
그러던 중에 리즐 영애가 우아하게 손을 들어 제 추종자들을 저지했다.
“대공녀의 마음은 이해해요. 아무래도 직접 보여드리는 게 좋겠군요.”
“…….”
“제가 각성시킨 권능자를.”
그 말에 파티장 곳곳에서 기대감에 찬 탄성이 흘러나왔다.
리즐 영애는 생긋 웃고는 소리 높여 자신의 권능자를 불렀다.
“안톤.”
그러자 나무 사이로 쳐진 휘장 너머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세상에, 꽃이……?”
“우와, 너무 아름다워요!”
정원의 꽃이 일시에 활짝 피어났다.
꿈 같은 광경에 사람들이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가운데 선 리즐 영애가 손을 내밀었다.
“어서 와, 나의 권능자.”
“……저의 각성자를 뵙습니다.”
안톤이 리즐 영애의 손에 키스했다.
계절과 상관없이 만발한 꽃.
그 사이로 나누는 인사가 꼭 오페라 속 한 장면 같았다.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분이 리즐 영애께서 각성시킨 권능자님이세요?”
“네, 맞아요. 앞으로 함께 성장해 나갈, 저의 권능자 안톤이에요.”
“어쩜. 너무 멋져요……!”
파티에 참석한 귀족 중에는 권능자들도 있었다.
그 대다수가 아직 권능을 각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리즐 영애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뜨거워졌다.
‘권능자는 진정한 자신을 일깨워 줄 각성자를 원하니까.’
눈앞에서 이런 광경을 보았으니 리즐 영애에게 홀리지 않을 수 없겠지.
‘……일단, 저 권능자를 조사하는 게 좋겠어.’
그 역시 리즐 영애처럼 가짜일 수 있다.
시선을 돌려 안톤을 바라보는데—
‘……!’
곧바로 안톤과 눈이 마주쳤다.
비 온 뒤의 호수 같은 청회색 눈동자.
꾹 다물린 모양 좋은 입술.
어쩐지 기묘한 직감이 들었다.
‘저 남자…… 진짜 권능자야.’
왜일까.
아직 신상명세서를 보기도 전인데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