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42)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42화(42/177)
니케아르샤가 루크반에게 헌신적인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요즘은 확실히 좀 이상했다.
‘아켈로스 대공이랑 마탑주하고는 대체 언제부터 알게 된 거야?’
자신이 모르는 니케아르샤의 인간 관계가 있다니.
심지어 지난번 파티에서는—
‘클레아스를 돕지 않았어. 걔가 무슨 일이지?’
평소였다면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을 텐데.
워낙 클레아스가 큰 사고를 쳐서 그런 건가.
루크반이 미간을 찌푸리자,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던 일행이 히죽 웃었다.
“왜? 패가 잘 안 풀리나 봐? 그럼 죽든가.”
“개소리.”
루크반은 ‘콜’을 외치고 테이블 위에 패를 내려놓았다.
일행이 눈을 홉떴다.
“뭐야?! 집중도 안 하던 놈이 뭐 이런 패를 들고 있어?!”
“그게 너와 나의 차이지. 그나저나 율리시즈 녀석은?”
“글쎄? 또 니케아르샤한테 가지 않았겠어?”
그 말에 루크반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간다. 광산 거래권은 내가 가져간다.”
“너 혼자 다 따고 가냐!”
일행이 뒤에서 뭐라고 했지만, 루크반은 빠르게 게임 클럽을 빠져나왔다.
‘율리시즈 놈도, 클레아스 놈도 니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
분명 예전에는 은근하게 니케아르샤를 무시했다.
그런데 얼마 전엔 둘이 니케아르샤를 놓고 다퉜다.
심지어 율리시즈는 클레아스에게 그런 거대한 엿을 먹이기까지 했다.
‘그게 니케가 발현 실패한 게 아니라는 정보를 알아서였나? 니케에게 잘 보이려고?’
그게 아니면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개자식들. 그런 정보가 있으면 나한테도 알려줄 것이지.’
루크반은 걸음을 돌려 델로시프 대공저로 가려다 멈칫했다.
‘어머니……?’
건너편 골목에서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루크반의 모친, 로르아 공작 부인이 종종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푹 눌러쓴 로브.
불안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몸짓.
행여나 누가 볼 새라 재빨리 푹 숙이는 고개까지.
‘어머니가 또……!’
루크반은 이를 악물고 어머니를 따라갔다.
그러나 차마 아는 체는 하지 못했다.
더 다가가지도, 더 멀어지지도 못한 채, 루크반은 어머니의 주변을 맴돌았다.
도무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엄마가 불륜 중일 땐.’
루크반이 망설이는 사이, 로르아 공작 부인은 더 깊숙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루크반은 그 골목 안에 들어서려다 멈칫했다.
이게 벌써 네 번째.
항상 여기서 멈춘다.
‘이대로 따라가? 따라가서 그 새끼를 흠씬 두들겨 패고 달걀까지 깨버려?’
그러다 알려지면.
‘……엄마랑 아빠 이혼하려나.’
루크반은 한참 그 어둑한 골목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는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돌렸다.
* * *
“그래서 제게 오신 거예요?”
미카린이 눈꼬리를 축 내린 채 루크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잘 오셨어요. 어떡해. 손 차가운 것 좀 봐.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요.”
미카린이 손을 살포시 잡더니 제 입가로 가져갔다.
호오, 호—
따스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스며들었다.
긴장으로 울렁거렸던 속이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한다.
“와, 많이 따뜻해졌다!”
미카린은 기쁜 표정으로 소리쳤다.
‘루크반이 와서 다행이야.’
최근엔 클레아스가 전혀 찾아오지 않아서, 고리대금업자가 예민해졌다.
“대귀족들과 끈끈한 연이 있다고 해서, 지금까지 이자를 못 내도 봐줬던 거요. 그런데 연은커녕, 아무도 텔시 양을 찾아오지 않잖소.”
‘하지만 오늘 루크반이 와준 걸 알면, 도움이 되겠지.’
모처럼 루크반이 도움이 되어주는구나.
미카린이 에헤헤 웃었다.
루크반은 그런 그녀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카린과 이토록 가까워질 줄은 몰랐는데…….’
니케아르샤의 사촌.
원래 미카린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루크반이 미카린의 손에 이마를 기댔다.
“루크반 님…….”
“그날 마주친 사람이 미카린, 너라서 다행이야. 진심으로.”
그날.
루크반은 어머니의 방에서 믿기지 않는 사진을 발견했다.
웬 뺀질뺀질한 젊은 남자와 손을 맞잡은 채 소녀처럼 웃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
“……?!”
그 후로는 기억이 흐릿했다.
확실한 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거다.
루크반은 그 사진을 움켜쥔 채 미친놈처럼 어머니의 뒤를 쫓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루크반 님?”
미카린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거리였다.
인파가 많았고, 어머니의 뒷모습은 사람들 사이로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는데, 미카린이 붙잡았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너무…….”
“이거 놔!”
“꺅!”
어머니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급한 마음에 루크반은 거칠게 미카린을 뿌리쳤다.
문제는 움켜쥐고 있던 사진까지 놓쳤다는 거다.
“……!”
뒤로 엉덩방아를 찧은 미카린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팔랑팔랑—
그녀의 눈앞으로 사진이 한가롭게 나부끼며 떨어졌다.
루크반이 재빨리 땅에 떨어진 사진을 주웠다.
“…봤어?”
“아니요!”
대답이 지나치게 빠르다.
루크반의 눈이 가늘어졌다.
“봤구나.”
“아니에요! 안 봤어요! 못 봤어요!”
“다 봐 놓고 왜 못 본 척—”
“루크반 님이 상처받을 거라면, 저는 안 본 거예요! 안 본 게 맞아요.”
“뭐?”
“루크반 님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는 못 본 거예요. 아냐! 루크반 님이랑 마주친 적도 없어요!”
그렇게 필사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어쩐지 우스워서.
“하…….”
상황도 잊고 웃었다.
미카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방금 웃었죠!”
“아니야.”
“웃었어요. 이—렇게 입꼬리를 올리고, 잘생긴… 아앗! 방금 그건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미카린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동동거렸다.
왠지 그 모습을 보니 맥이 탁 풀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실이 팽팽 당겨져서 이성이 끊어질 것 같았는데.
“……괜찮으세요?”
미카린이 가만가만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슬픈지 울상이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안 괜찮아.”
그런 대답이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네까짓 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렇게 말했을 텐데.
“……하나도 안 괜찮아.”
미카린의 입매가 더 아래로 내려갔다.
조그마한 코가 새빨개졌다.
웃긴 얼굴이었다.
웃긴 여자애였다.
왜 지가 우는지.
“저야말로 그날 루크반 님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루크반 님이 혼자 슬퍼하지 않게, 제가 옆에 있을 수 있어서.”
미카린이 에헤헤 웃었다.
꼭 햇살 같았다.
루크반의 상황을 알면서도 색안경 끼지 않는 데다가 입도 무겁다.
미카린은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잖아요. 루크반 님이 얼마나 힘들지 조금이나마 알아요.”
“…….”
“그 남자가 나빠요. 왜 가정 있는 사람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툴툴거리는 얼굴을 보다 루크반은 생각했다.
‘……차라리 미카린이 역대급 각성자였으면 편했을 텐데.’
자연히 니케아르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미카린, 넌 사촌이니 니케에 대해 잘 알지.”
“언니랑은 친자매 같은 사이니까요.”
“걔 대체 무슨 생각이야?”
“네?”
미카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속으로 픽 웃었다.
‘어차피 언니가 진짜 각성자인지 아닌지 궁금한 거겠지.’
루크반이 니케아르샤에게 신경 쓰는 이유는 오직 그것뿐일 테니.
그런데…….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잖아. 별 이상한 놈들을 만나고 다니질 않나, ”
“……네?”
“나랑 안 만난 지 오래됐는데 우리 집에 찾아오지도 않고. 예전 같았으면 바로 달려왔을걸? 무슨 일 있냐면서.”
“…….”
“왜 그러는지 알아?”
미카린은 굳었던 입매를 애써 끌어올렸다.
‘다들 왜 이제 와서 니케아르샤한테 난리야.’
은근슬쩍 깔보고, 무시하고, 얕잡아 봤으면서.
니케아르샤가 그토록 헌신할 땐 거들떠보지도 않던 주제에—!
‘짜증 나, 짜증 나, 짜증 나!’
하지만 이 순간에도 미카린의 표정은 착실하게 가련했고, 목소리는 성실하게 처량했다.
“아… 그게 사실은…….”
“사실은?”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미카린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루크반이 그녀의 턱을 쥐고 “미카린.” 재촉했다.
“……루크반 님을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루크반 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으니까요.”
“…….”
“더 이상 언니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뭐?”
“……미, 미안해요. 언니의 말만 듣고 루크반 님을 오해해서. 화내지 마셔요…….”
미카린이 무서운 듯 애처로운 얼굴로 루크반을 바라보았다.
“니케아르샤가 나를…….”
으득.
루크반이 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미카린은 픽 웃었다.
* * *
델로시프 대공저.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과 초대장 속에서 앨리스가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정리를 해도 해도 자꾸 계속 쌓이네요!”
“흥! 이제야 아가씨의 진가를 알아보다니……!”
“선대 대신관님의 말씀처럼 아가씨께서 최강의 각성자가 되시겠죠?”
하녀들이 꺄륵꺄르륵 웃었다.
‘전혀 아닌데.’
어차피 난 죽을 때까지 각성자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진짜 역대급 각성자는 따로 있고.
“지금 몇 시야?”
“곧 두 시예요. 아, 레널드 님이 오시겠네요.”
정확히 두 시.
노크 소리와 함께 레널드가 들어왔다.
“좋은 오후입니다, 공녀님. 상단 출자 계획서와 예산안입니다.”
응응, 그런 건 상재 B급한테 다 맡길래.
나는 레널드가 건네는 서류를 대강 옆으로 치우고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혹시 구했어?”
“아아, ‘그것’ 말씀이십니까?”
“응.”
“……죄송합니다. 소재는 파악했습니다만 계속 소유자가 바뀌고 있어서 아직…….”
레널드가 분한 듯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큭, 공녀님의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다니. 부족함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뭘 그렇게 자책해. 괜찮아.”
“아닙니다. 이렇게 부족한 제가 공녀님을 보좌해도 되는 것인지…….”
넌 지금 상재 B급이야. 절대 부족하지 않아……!
시중 B급인 앨리스가 얼마나 무서운 스토… 아니, 대단한 하녀인데!
“소유자를 파악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야. 지금은 누구 손에 있어?”
“이 남자입니다. 오늘 아침 이 남자 손에 넘어갔다더군요.”
레널드가 내게 서류를 넘겼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뇌리에 입력하며 서류를 읽어내렸다.
다행히 남자의 소재지는 전부 파악된 상황이었다.
“만나긴 어렵지 않겠네. 아예 <클럽 하데스>에 살고 있는데?”
“예, 아가씨께 보고를 마치고 접선할 생각입니다.”
“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헌데 ‘그것’처럼 위험한 물건은 어디에 쓰려고 찾으신 겁니까?”
“곧 황궁에서 새벽 다과회가 열리잖아.”
“아……!”
새벽 다과회.
황비들이 돌아가며 주최하는 다과회로, 다음 대 사교계를 이끌 ‘새벽’들이 초대받는다.
“이번 다과회의 선물을 준비하신 거였군요.”
“맞아.”
새벽 다과회에는 ‘가장 고귀한 자’에게 바칠 선물을 가져가는 것이 관례다.
가져온 선물 중 가장 좋은 것을 고르고, 채택된 영애는 큰 상을 받는다.
‘지난번엔 내가 데려갔던 미카린의 선물이 선택받았지.’
미카린이 가져온 선물이 대단하긴 했다.
무려 루크반 집안의 가보를 가져왔으니까.
‘루크반 놈도 제정신이 아니야. 미카린한테 홀려서 가보까지 넘겨주다니.’
부모님이 우시겠다.
그때, 레널드가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
“그럼 서둘러 <클럽 하데스>로 가야겠군요. 제가 ‘그것’을 구해와야…….”
“됐어. 내가 직접 가볼게.”
“공녀님께서 직접이요?!”
“응. 대신 다른 부탁을 들어줘.”
나는 레널드에게 필요한 것을 말했다.
계획을 다 들은 레널드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외쳤다.
“공녀님의 계략…획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이뤄드리겠습니다…!”
“…….”
방금 ‘계략’이라고 하지 않았어?
은근슬쩍 계획인 척했지만.
레널드가 “크흠.” 헛기침하더니 말을 돌렸다.
“다과회에 동행할 영애는 생각해 두셨습니까?”
초대받은 영애들은 각자 한 명씩 동성의 동행인을 데려갈 수 있다.
‘사교계의 중심’에게는 곁에서 보좌하는 ‘최측근 영애’가 꼭 필요하니까.
그 예행인 것이다.
“혹시 미카린이 자기를 데려갈 거라고 기대하는 거 아닙니까. 최근 공녀님께 엄청 편지를 보낸다고 들었고.”
나는 이런 중요한 자리에 항상 미카린을 데려갔다.
“언니가 없으면 사람들이 절 무시하는걸요. 저는 절대 고귀한 영애님들과 한자리에 낄 수 없으니까…….”
미카린이 그렇게 말하며 울었으니까.
“복수를 위한 책략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미카린을 안 데려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모두가 ‘새벽’의 측근이 되어 다과회에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여태까지처럼 계속 미카린 영애만 곁에 두신다면…….”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겠지. 어차피 난 미카린만 곁에 둘 거고, 미카린 말만 들을 거라고 생각해서. 다들 나보단 미카린에게 갈 거야.”
“영민하십니다.”
전부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이다.
미카린은 나를 보좌하지 않고, 자신이 승승장구하는 데에 날 이용했다.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어.’
그 애정과 신뢰의 결과가 불륜 칙칙폭폭이었다.
나는 픽 웃었다.
“걱정 마. 처음부터 미카린을 데려갈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탁월하십니다!”
레널드가 짝! 박수를 쳤다.
‘어쩌니, 미카린. 이번엔 새벽 다과회에 가지 못해서.’
그 애의 얼굴이 일그러질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