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43)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43화(43/177)
* * *
레널드가 나간 후.
나는 곧바로 크레센 거리로 향했다.
거리 곳곳이 향락으로 가득했다.
‘보이는 게 전부 다 도박장이라니…….’
화려하게 번쩍이는 도박장을 바라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향락가라고 하지만 치안은 좋다.
고급 상점이 가득한 렐리아 아케이드 바로 옆인 데다가 귀족들 대상이니까.
몇몇 영애들이 “꺄꺄” 하며 도박장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잭팟이 터졌나 봐.’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루크반?’
루크반이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응, 모른 척하자.’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불퉁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니케아르샤. 너 왜 여깄어.”
하…….
쟤는 왜 아는 척이야.
* * *
루크반은 짜증이 훅 올라온 얼굴로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왜 하필 지금 여기서 얘를 만나냐.’
미카린의 말이 머릿속에 울렸다.
자신 앞에선 그렇게 호구처럼 굴어놓고 뒤에서는 욕하며 비웃고 있었다니.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무엇보다 지금 루크반은 어머니의 뒤를 쫓는 중이었다.
‘뒷담이나 까는 니케아르샤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아주 신나서 촉새처럼 입을 놀릴 것이다.
사교계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겠지.
어머니는 한순간에 손가락질당할 것이고, 아버지는 비웃음당하리라.
꾸욱.
루크반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짜증 나.’
정말이지 짜증 났다.
가장 짜증 나는 건—
‘왜 안심이 되는 거야.’
더 불안하고 초조해야 하는데, 니케아르샤의 얼굴을 보니 맥이 탁 풀렸다.
아니, 니케아르샤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 아니다.
‘니케를 만났다는 핑계로 어머니의 뒤를 쫓지 않아도 되니까.’
이 어둑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을 구실이 생겼으니까.
“내가 여기 있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니케아르샤가 퉁명스레 말했다.
확실히 전과 다르다.
루크반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 전에 도박하다가 다 잃었던 거 생각 안 나? 또 얼마나 잃으려고.”
“그땐—.”
미카린이 부추겨서 그랬던 거고.
니케아르샤는 뒷말을 삼켰다.
옛날 일 갖고 루크반과 말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너는.”
“내가 뭐. 난 너처럼 안 잃었어. 나 맨날 따기만 하는 거 몰라?”
“왜 어머니를 미행하는데?”
멈칫.
루크반이 몸을 굳혔다.
이내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아?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어머니를 미행해?”
“아님 됐고.”
“웃기네, 진짜. 어머니가 왜 이런 데 오시겠어. 너 눈이 삔 거 아니야?”
“…….”
“아니면 뭐, 내가 아직도 엄마 뒤 졸졸 쫓아다니는 애새끼라고 비꼰 거냐?”
루크반이 왁왁 소리를 질렀다.
니케아르샤는 차분한 얼굴로 그런 루크반을 바라보았다.
‘……세월이란 뭘까.’
버럭버럭 성질을 내고 있지만 니케아르샤의 눈에는 다 보였다.
지금 루크반이 엄청나게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것이.
예전이었다면 당장 루크반의 손을 잡아주었을 것이다.
“넘머저써? 울디 마.”
“흐, 흐아앙! 니케에—!”
“니케 손 자바. 올치.”
아주 어렸을 적.
툭하면 울던 루크반의 손을 잡아주었던 것처럼.
‘하지만 이젠 나랑 아무 상관 없어.’
루크반이 불안해하든, 초조해하든, 겁을 먹었든.
이제 니케아르샤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뭐, 루크반은 다른 불륜파이브에 비해 나은 편이긴 하다.
‘얘는 내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걸 몰랐으니까.’
그리고.
‘……로르아 공작 부인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루크반의 어머니, 로르아 공작 부인은 니케아르샤에게 항상 다정하고 상냥했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부터 공작저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어.’
두문불출하면서 손님조차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이가 소원해졌는데…….
어쩌면 지금 루크반이 미행하는 이유가 계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쓸데없는 참견이야.’
여기서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레널드는 ‘그것’의 소유자가 계속 바뀌고 있다고 했다.
지금을 놓치면 또 주인이 바뀔지 모른다.
‘난 해야 할 일이 많아. 회귀 전보다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귓가에 로르아 공작 부인의 다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후후, 맛있니? 니케가 잘 먹는 걸 보니 뿌듯하네. 민트 넣고 초코쿠키 만들길 잘했어.”
“이 쿠키, 공작 부인께서 직접 만드신 거예요?”
“니케에게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을 테니까. 니케가 이렇게 예쁘게 웃으면서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테고.”
“……?”
그때는 로르아 공작 부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공작 부인이 그러고 싶다는 말을 특이하게 한다고만 생각했다.
좀 더 크고 나서야 알았다.
‘우리 엄마 이야기라는 걸.’
생전 어머니는 로르아 공작 부인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언제든지 오렴. 우리 예쁜 니케는 언제나 환영하니까.”
“공작 부인도 예쁘셔요.”
“어머나? 우리 니케는 분명 엄마한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었을 거야.”
“정말이요……?”
“그러엄! 내 눈에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엄마 눈에는 어떻겠어. 분명 지금도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지켜보고 계실걸.”
우뚝.
니케아르샤의 걸음이 멈췄다.
로르아 공작 부인의 품이 아주아주 따뜻했다는 것까지 기억나자 더 이상 앞으로 걸어갈 수가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야, 너 어디 가?”
등 뒤로 루크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니케아르샤는 무시했다.
“저게……!”
루크반이 서둘러 니케아르샤의 뒤를 따랐다.
어두운 골목.
루크반이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항상 멈춰 섰던, 그 골목 안으로.
“야! 내 말 안 들려?!”
루크반은 자신이 그 경계를 넘었다는 것조차 모른 채, 니케아르샤에게 바짝 다가갔다.
“너 설마 우리 엄—.”
“조용히 해. 들키고 싶지 않으면.”
니케아르샤는 루크반의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부릅떴다.
루크반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살금살금 공작 부인의 뒤를 밟았다.
공작 부인이 모퉁이를 돌면 벽에 찰싹 붙어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확인하고.
공작 부인이 뒤를 돌아보면 샥샥 가판대 사이로 숨었다.
그러길 한참.
이윽고 공작 부인이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휴우— 안 들켰군.”
길거리에서 파는 별 모양과 하트 모양 선글라스를 낀 두 사람이 슬쩍 코끝으로 렌즈를 내렸다.
니케아르샤는 눈을 들어 건물의 간판을 확인했다.
<클럽 하데스>
하트 렌즈 안 니케아르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내 목적지잖아?!’
* * *
로르아 공작 부인이 <클럽 하데스> 안으로 들어간 후.
나는 곧바로 건물 앞으로 향했다.
“잠깐, 난 아직……!”
뒤에서 루크반이 뭐라고 외쳤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웬 덩치가 앞을 막아섰다.
아무래도 여기 문지기인 듯했다.
“죄송합니다. 회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태도는 정중했지만, 기세가 장난이었다.
물론 이런 데에 쫄 내가 아니다.
입을 열려는데…….
휙!
루크반이 나를 제 뒤로 잡아당겼다.
어찌나 거친지 몸이 휘청하면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나를 뒤로 숨긴 루크반이 재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
“야,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앞을 막는 거야?”
“죄송합니다.
“하? 진짜 죄송하면 어서 비켜야지. 내가 바로 로르— 읍! 읍!”
나는 기겁해서 루크반의 입을 막았다.
“미쳤어? 공작 부인께 네가 왔다고 광고할 생각이야?”
“……칫.”
나는 푹 한숨을 쉬며 덩치를 눈짓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지는 알걸.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
“……뭐, 네 얼굴이 좀 예— 크흠! 하여간 너 진짜 재수 없어.”
“신문을 보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지.”
내 말에 덩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녀님 기사는 잘 봤습니다. 워낙 망나니로 유명하시니 저희 고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좀 좋은 기사가 났다 해도, 역시 뿌리 깊게 박힌 이미지가 단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래, 난 아주 부자인 데다가 거리낌 없어. 이런 더러운 곳에 돈을 펑펑 쓸 수 있지.”
“……저희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뭐래.
“아무튼 이런 호갱 예정자에게는 맛보기 서비스를 해도 괜찮지 않겠어?”
내 합리적이고도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덩치는 곤란한 얼굴이었다.
‘하긴, 문지기에게 멋대로 날 들여보낼 권한은 없겠지.’
그렇다고 무작정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을 거다.
나 같은 대어를 그냥 돌려보냈다간 호갱을 놓쳤다고 욕먹을 수 있으니까.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덩치의 머리에서 스팀이 빡빡 올라왔다.
‘흠…….’
나는 이 불쌍한 문지기를 도와주기로 했다.
망나니 특유의 마법주문을 읊은 것이다.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
* * *
그리고 사장은 호갱을 외면하지 못했다.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 화려하게 꾸며진 클럽 복도를 룰루랄라 걸었다.
등 뒤에서 사장의 숨넘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 도, 도, 돈다발이 스스로 걸어오다니……! 오, 오늘 남쪽에서 귀인이 온다는 게 이거였나……!”
루크반이 기막힌 얼굴로 사장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진짜…….”
내가 뭐, 왜, 뭐.
나는 뻔뻔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로르아 공작 부인이 있는 방은 4층 세 번째 방.’
사장은 호갱의 질문도 외면하지 못했다.
‘그리고 옆방에서 안을 엿볼 수도 있다고…….’
사장은 호갱의 요구 역시 외면하지 못했다.
‘이렇게 뒤가 구린 클럽이라면 당연히 엿볼 수 있는 방은 만들어 놓기 마련이지.’
기본 상식이다.
나는 척척 걸음을 옮겨 공작 부인의 옆방으로 들어갔다.
루크반은 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답지 않게 쭈뼛거리고 있길래 난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안 들어올 거면 돌아가. 문 닫아야 하니까.”
루크반 따위의 기분에 하나하나 신경 쓰며 눈치 보던 나는 없다.
“지멋대로만 굴고…….”
루크반은 투덜투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문 닫기 전, 재빨리 방 안으로 들어왔다.
* * *
달칵.
문이 닫힌 후, 니케아르샤는 지체 없이 방을 살펴보았다.
황금빛 표범 장식을 발견한 그녀가 눈을 빛냈다.
“여기, 이 표범의 눈을 찌르면…….”
니케아르샤가 손가락 두 개를 착! 브이 자로 세웠다.
그리고 그대로 표범의 눈을 찌르려고 했다.
‘아니, 좀 평범하게 누를 순 없나?!’
기겁하던 루크반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사장이 그랬다.
표범의 두 눈을 동시에 누르면 옆방을 엿볼 수 있다고.
루크반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잠깐!”
그러나 이미 늦었다.
달칵.
손가락 두 개가 동시에 표범의 눈을 찔렀다.
마도구가 구동하며 벽면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응, 바로 보이네.”
니케아르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루크반은 웃을 수 없었다.
‘나,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루크반은 차마 옆방을 보지 못하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외면하듯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니케는 뭘 하고 있지.’
루크반이 힐끔 눈을 들어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니케아르샤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수도 있으니까.
왜 어머니를 미행했냐고.
쓸데없는 짓 했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뭐야……. 왜 저렇게 놀라고 있어.’
니케아르샤의 얼굴은 경악에 가득 차 있었다.
* * *
‘뭐, 뭐야?’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홉떴다.
밀실 안에서 공작 부인이 웬 제비 같은 젊은 남자와 단둘이 만나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불륜 지옥 속에서 살았다고!’
고작 ‘유부녀가 밀실에서 남자와 단둘이 만난다’는 것에 충격받을 리가.
나는 로르아 공작 부인을 좋아했지만, 무작정 믿진 않았다.
‘내가 믿었던 사람은 모두 불륜충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공작 부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를 사용해 사랑을 사냥합니다.
사냥할 사랑: 필립
—내 능력을 썼다.
곧바로 필립의 <인간 관계>부터 확인했다.
‘찾았다.’
머지않아 로르아 공작 부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다행이랄지, 공작 부인은 필립의 ‘애인’은 아니었다.
대신…….
– 인간 관계: …데니즈 로르아(물고기), …
‘물고기?!’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지금 상황에 물고기라면—
‘설마 저 제비가 공작 부인을 꼬셔서 어장 관리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