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54)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54화(54/177)
“형이 지붕 위로 올라갔다고 했지? 원래 지붕을 잘 타?”
“네. 엄청이요. 다람쥐 같다니까요!”
“지붕 어느 쪽으로 갔는지 기억해?”
“네. 그런데 그건 왜요?”
의아한 표정의 크리스에게 난 생긋 웃어줬다.
“내 부관도 지붕을 잘 타는지 확인하려고. 다람쥐처럼 날랬으면 좋겠네.”
“……전 체육계가 아니라 사무 계열인데.”
“새로운 재능을 찾을 수도 있어.”
“정말 찾고 싶지 않군요, 그 재능.”
레널드가 울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좀 안쓰럽긴 하지만, 레널드는 지붕에 올라야 했다.
아직 어린애인 크리스를 올려보낼 순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쪽은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서 걸어.”
—레널드보다 한발 먼저 지붕에 올라와 있었다.
‘지붕이 좀 커야지. 혼자서 수색하다간 해 뜰 걸.’
“잘 좀 봐. 위에서 보면 뭔가 수상한 곳이 보일 수도 있어.”
“예. ……그런데 저 식료품 창고 말입니다. 위에서 보니까 진짜 크네요. 아래에서 볼 땐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혹시 숨겨진 공간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창고를 자세히 보기 위해 레널드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옆으로 가기까지 4걸음 정도 남은 순간.
철컥.
“방금 철컥 뭐야?”
“글쎄요. 그 철컥은 저도 들었는데에에에엑—!”
레널드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천장이 동시에 남쪽을 향해 움직인 것이다.
그러면서 빗물받이나, 굴뚝, 피뢰침 받침대들도 같이 이동했는데…….
굴뚝이 돌아가며 사람 하나는 너끈히 들어갈 만한 구멍이 생겼다!
바닥이 움직인 탓에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한 레널드는 한 발로 콩, 콩, 콩, 콩 뛰었다.
그리고 마지막 콩을 하면서…….
“으아아아아악!”
구멍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끄악!”
“꽥!”
어?
나와 크리스는 얼른 시선을 교환했다.
방금 ‘끄악!’은 레널드 목소리.
그 뒤에 이어서 들린 ‘꽥!’은……!
“형아!”
크리스가 잽싸게 구멍을 향해 뛰어왔다.
말릴 새도 없이 엄청나게 날랜 몸짓으로.
몸집도 작아서 정말로 다람쥐 같았다.
구멍 안엔 사다리가 있었다.
나와 크리스는 ‘조심, 조심’을 구령으로 외치며 천천히 내려갔다.
* * *
폴짝.
바닥으로 점프한 난 주변을 둘러봤다.
구멍 밖으로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어서 안을 살필 수 있었다.
이곳은 창고였다.
딱히 정해진 물건을 두는 곳 같진 않았다.
몇백 개나 되는 쌀 포대가 있는가 하면, 녹슨 마구들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또 오크통에 담긴 술도 몇 통이나 보인다.
그보다 나는 제일 중요한 인물을 찾았다.
“레널드!”
레널드는 바닥에 주저앉아 허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괜찮아?”
“예. 어디 하나 부러진 것 같긴 하지만요. 그래도 이 녀석이 받아줘서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레널드의 앞에 대자로 뻗은 남자가 있었다.
“……우리 정보원?”
“그쪽이 누군데 우리래?”
“그럼 크리스의 형?”
그렇게 말한 순간, 크리스가 “형—!” 하며 남자의 품에 뛰어들었다.
“으헉! 살살 해라. 부러진 뼈가 아직 다 붙지도 않았어.”
“부러졌어? 아저씨 받아주느라?”
“아저씨? 아, 저 남자. 저 남자는 쌀자루에 한 번 튕겨서 날아와서 그렇게까지 위험하진 않았어.”
“그러면?”
“내가 여기 처음 떨어졌을 때 다친 거야.”
대화로 미루어보아 크리스의 형이 확실했다.
‘레널드를 모르는 건 한 번도 직접 보고한 적이 없어서 그렇군.’
역시 정보원들은 마구 뿌려둘 게 아니라 중앙에서 제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두는 게 좋겠다.
물론 그땐 얼굴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지.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 아저씨가 네게 일을 맡긴 상단 총책임이고, 내가 상단주야.”
“상단 총책임…… 상단주…… 높은 사람…… 헉.”
크리스의 형이 엄청나게 빨리 무릎을 꿇고는 쿵! 이마를 박을 지경으로 낮게 엎드렸다.
“에, 에, 에릭입니다. 포시아 령 출신이고 나이는…….”
“열여섯 살.”
“허억!”
“나가면 눈물 쏙 빠지게 혼내줄 테다. 일어날 수 있겠어?”
“예에…… 저기 그런데 저만 구해주십니까?”
그 말에 멈칫했다.
‘저만’이라니?
“그럼 또 누굴 구해?”
“아, 그렇죠. 저만 고용하셨으니까 당연히…….”
“여기 다른 사람이 있어?”
“예…….”
“누군데?”
나와 레널드가 모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에릭을 쳐다봤다.
에릭은 곤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누구냐고 하시면, 그, 어떤 사람을 말씀드려야 할지…….”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한 명이 아닌 거냐?”
레널드의 질문에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많아요…….”
“엄청?”
“네…….”
나와 레널드가 에릭을 재촉했다.
그들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에릭은 물건들 사이를 쏙쏙 비집고 다니다가 모포가 깔린 곳을 가리켰다.
“거기 밑에 철문이요. 저쪽 식료품 창고랑 길이 통해요.”
어쩐지 식료품 창고가 크더라니.
모포 아래는 정말로 에릭의 말처럼 철문이 있었다.
우리는 에릭의 안내를 받아 통로를 걸었다.
그리고 막다른 곳에 이르자, 에릭이 벽을 두드렸다.
“나야. 문 열어줘.”
그랬더니 끼이이익, 문 열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에릭이 힐끔 날 쳐다봤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아, 이분은 산전수전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 웬만한 일엔 놀라지 않으신단다.”
레널드가 하하하 웃으며 말해서, 난 그를 빤히 쳐다봐 줬다.
티 없던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때, 문이 열렸다.
“와, 와, 왔, 어, 왔어, 에, 에, 릭, 에릭, 와, 왔어.”
“으응, 왔어. 저기, 높으신 분들이랑 같이 왔거든? 그러니까 우리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몰라!”
“타, 탈출, 타, 타, 탈출.”
“그래! 탈출! 기쁘지?”
에릭은 벅찬 표정이었다.
그 애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레널드도, 에릭의 동생 크리스도 말을 잃었다.
그야…….
“상단주님, 총책임님, 인사하실래요? 마거릿 아줌마예요! 그리고 저 뒤에는 통스 할아버지, 레이나 누나, 티거 형, 그리고 마딘 누나랑요, 또 게네시 형…… 어?”
에릭이 눈을 크게 뜨더니 마가릿이라고 불렀던 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메리 할머니는요?”
“메, 메리, 메메, 메리, 메리 할, 할머니, 하, 할머, 머머머, 니, 자, 자, 잡아, 잡아가, 나쁜, 나, 나쁜 사람, 나쁜, 잡아가.”
“잡아갔다고? 그 부관이요? 이 나쁜 놈—!”
“자, 잡아, 잡아가, 에, 에, 에릭, 들키면, 에, 에, 리리, 릭, 잡아, 가, 빠, 빨리, 빨리, 리 가, 가.”
마가릿이 에릭을 밀었다.
그러자 에릭에게 닿은 손가락이 우직,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금세라도 먼지가 되어 날아갈 것처럼 타들어 갔다.
“어어, 아줌마!”
“안 돼!”
나는 재빠르게 바닥에 떨어진 신문지 같은 것을 주웠다.
그리고 마가릿에게 뒤집어씌웠다.
“만지면 안 돼. 세포 단위로 쪼개질 거야.”
“네? 왜, 왜요?”
“……키메라는 그런 거야. 사람의 온기에 아주 약해.”
“키메…… 라?”
그래, 키메라.
내가 전생에서 지하 감옥에 갇혀서 그렇게 되었던 것처럼.
여기 갇혀 있는 사람들도 키메라화 되어 있었다.
너무 끔찍해서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꼴로.
‘어쩐지 라파엘이 강제 각성 사업에 연관되어 있더라니…….’
회귀 전, 내게 가해진 고문 같던 짓.
총책임자인 라파엘이 어떻게 그렇게 능숙할까 생각했는데 이때부터 해왔던 짓이었다!
“왜, 왜 키메라가 돼요? 사람인데. 아, 처음엔 안 그랬거든요. 처음엔 대화도 잘 되고, 사람처럼 눈도 두 개고, 손도 두 개고……!”
“점점 이식한 세포와 맞는 쪽으로 달라지는 거야. 그렇게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 가지…….”
“세포? 이식? 그게 무슨 소리인데요?”
나는 눈을 꽉 감았다.
‘클레아스와 라파엘이 날 키메라화 시켰던 건 실험이 아니었구나.’
실험이 아니라 그냥 흑마술이었던 거다. 처음부터 완성된 흑마술.
이 사람들에게 실험하고, 완성된 흑마술을 내게 쓴 것이다.
“레널드, 상태가 심각한 사람들부터 옮기자. 최대한 빛이나 온기가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 오늘처럼 밝은 달이면 순식간에 부서질 거야.”
“예…….”
우리는 말한 대로 상태가 심각한 사람부터 지붕과 이어진 창고 방으로 옮겼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세요. 모포로 몸을 틈 없이 감싸시고요. 빛이 닿으면 절대 안 됩니다!”
와아아…….
키메라가 된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가슴에 무언가 얹힌 것처럼 힘없는 환호였다.
“할아버지, 나 꽉 잡아요. 알겠지? 마거릿 아줌마도. 내 다리 절대로 놓치지 마!”
“아저씨는 나랑 가요. 나도 형만큼 힘 쎄요!”
“괜찮으시면 몸에 잠깐 손을 대겠습니다, 레이디.”
에릭과 크리스, 그리고 레널드는 정신없이 사람들을 옮겼다.
에릭은 아주 기쁜 표정이었다.
저 애는 이곳에 떨어진 후 몇 시간이나 기절했다고 한다.
그동안 지붕이 닫혀버려서 나오지 못했단다.
그렇게 키메라화된 사람들을 발견하고, 대화하면서 매일매일 기도했다고 그랬다.
지붕만 열리면 내가 다 구해줄 거야.
내가 다 데리고 나갈 거야.
“……나도 그랬는데.”
“예?”
여자들을 지붕 위로 옮기고 돌아온 레널드가 날 쳐다봤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도 그랬어. 나와 같은 실험체들이 다 죽기 전에 데리고 나갈 거라고 맹세했어.”
“예?”
“지하 감옥엔 다른 실험체들이 있었어. 아주 초창기엔 말야. 다들 실험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서 남은 건 나뿐이었지만.”
“…….”
“난 에릭처럼 결심을 이루지 못한 거야.”
“……아가씨.”
“…….”
“일이 끝나면 따뜻한 물에 목욕하시고 앨리스가 말린 어미 새 품 같은 이불에서 푹 잠드세요.”
“…….”
“그러고 나면 악몽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겁니다.”
레널드가 내 앞에 무릎을 굽히며 말했다.
“아가씨 앞에 나타난 과거의 상처는 제가 치워드리겠습니다.”
“……고마워.”
정말로.
그렇지만—.
“내 상처를 없앨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 말씀은…….”
“클레아스에게 이제 지옥을 보여줄 때가 왔어.”
내가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을 때였다.
“그 지옥을 보여주는 데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키메라화 된 사람들 중 유일하게 아직 사람의 형상이 남은 여자의 말이었다.
“당신은…….”
“마딘이에요. 궁 소속의 시녀였습니다.”
나는 시녀라는 말에 미간을 좁혔다.
마딘은 비식, 실소했다.
“못 믿겠나요?”
“거짓말이니까.”
“……네?”
방금 하트를 소모해서 확인 중이거든.
– 이름: 마딘
– 출생지: 멜베프 국 나탄 령.
…
– 권능: 인격 조종(E급)
– 잠재력: 인격 조종(C급)
“멜베프 국의 사람이군요?”
“아, 젠장. 말투에서 티가 났나.”
마딘이 쯧, 혀를 차곤 말했다.
“하지만 시녀였다는 건 사실이에요. 제국 황제가 아니라 멜베프 국왕의 시녀였을 뿐이지.”
“멜베프면…….”
“라파엘 헤이스가 멜베프 국 사신단의 접대를 맡는다고 합니다. 노예의 인체 실험을 허용하는 나라지요.”
레널드에게서 들었던 보고가 떠올랐다.
이번에 사신단을 보내는 나라.
‘거기의 시녀라고?’
심지어 국왕의 시녀면 능력도, 집안도 뛰어나야 한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혹시 귀족인가요?”
“맞아요. 국왕의 시녀는 귀족들만 뽑거든요.”
“그런데 왜 먼 타국에서 이런 실험을 당한 거죠?”
“……속았으니까.”
“자세하게 말해줘요.”
마딘은 말했다.
“실험에 쓸 예비 권능자가 부족했겠죠. 그래서 신체 개조 실험이라고 날 속였어요.”
신체 개조?
그런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마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마딘이 “목표를 위해선 못 할 게 없죠.” 하며 픽 웃었다.
“또 하나, 그쪽의 신뢰를 얻기 위해 밝혀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뭔데요?”
마딘이 천천히 걸치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아, 달빛이 위험할 텐— 어?”
나는 멈칫했다.
마딘의 목에 무언가 있었다.
실험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본래 있던 것처럼 멀쩡한 어떤 부위였다.
아담스 애플…… 그러니까 목젖이.
“신체 개조…… 설마 목젖을 없애고 싶었어요?”
“반대예요. 선이 굵고, 늠름한 몸이 갖고 싶었죠. 왜냐면…….”
“……?”
“난 남자거든요.”
청초했던 목소리가 단숨에 바뀌었다.
‘하, 성별은 맨날 뛰어넘고 읽어서 이번에도 스킵했는데.’
설마 남자였을 줄이야.
“참고로 암살 전문 가문의 장자. 시녀가 된 건 왕을 암살하고 새 왕의 즉위를 돕기 위해서였죠.”
성별을 숨긴 건 별거 아닐 정도의 비밀이었다.
“하지만 스물이 넘도록 여장을 하고 암살하는 건 좀 싫었거든요. 그래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개조해 볼까 하고 지원했는데…….”
마딘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튼 같이 합시다. 이래 봬도 내가 사흘 전에 왕의 목을 따고 온 놈이거든요.”
음, 역시 얘도 제정신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