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59)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59화(59/177)
“피로하신 것 같아서요.”
“…….”
“별거 아니지만, 잘 때 곁에 두고 자면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준대요.”
아버지는 빤히 내 손을 바라보았다.
린첼 자작이 곁에서 말을 보탰다.
“포푸리군요. 향이 정말 좋습니다. 이런 향은 시중에서도 팔지 않을 텐데. 혹시 아가씨께서 직접 만드신 겁니까?”
“……맞아.”
내 말에 가신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상에, 아가씨께서 직접 만든 포푸리라니.”
“참으로 정성이 갸륵합니다. 아가씨께서 전하를 많이 생각하셨나 봐요.”
“부럽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코 골았는데, 온 저택이 흔들린다며 혼만 났습니다.”
다행히 영혼석 건으로 내게 호의적인 가신들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그 덕일까.
아버지가 포푸리를 받아주셨다.
필요 없다고 내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웃으면 안 돼.’
나는 애써 입꼬리를 내렸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시던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몸은.”
“아…. 발현식을 치르고 각성자가 된 게 아니라 당장 승인을 받을 순 없대요.”
“…….”
“하, 하지만 각성자로서 행동하는 데엔 이상이 없으니까요.”
“그래.”
아버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린첼 자작이 조심스레 말했다.
“전하, 곧 귀족들과 회합이 있습니다.”
“가도록 하지.”
아버지가 걸음을 옮겼다.
손에 여전히 포푸리를 들고.
* * *
그날 저녁.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니케.”
노크도 안 하고 쳐들어온 사람은 아카인이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너…….”
“……?”
“…….”
아카인은 계속해서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대체 뭐지.
왜 갑자기 와서 시비야.
‘아버지께서 계시니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아카인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아— 피곤해.”
뒷목을 꾹꾹 주무르며 커다랗게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
“지인짜 피곤하네. 엄청 피곤하다. 잠이 잘 안 와. 불면증인가?”
어쩌라는 거야.
어이없어서 쳐다보는데 아카인이 나를 힐끔거리더니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요즘 잠도 푹 못 자고, 그래서인지 몸도 축축 처지고, 하아— 이러다 쓰러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아주 건장하다 못해 근육이 탄탄한 성인 남성이 그러니 어이가 없었다.
‘다른 쪽으로 병이 있는 거 같은데?’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는데 앨리스가 내게 속삭였다.
“아가씨, 모처럼의 기회니 그걸 해드리는 게 어때요?”
“그거? 하지만…….”
“한번 연습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요.”
앨리스가 내게 전수해 준 비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는 확실히 실험체가 필요한 일도 있었다.
나는 아카인에게 말했다.
“앉아 봐.”
“크흠, 네가 앉으라니까 앉는 거다. 어?”
아카인이 냉큼 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놀란 고양이처럼 아카인의 어깨가 솟구쳤다.
“뭐, 뭐, 뭐 하는 거— 으음…….”
하지만 이내 긴장했던 몸이 절로 느슨해졌다.
그야 그럴 것이다.
‘앨리스의 마사지 효과는 내가 가장 잘 알아.’
순식간에 사람이 흐물흐물 녹아내려서 무장 해제된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잘 재현해내느냐.
그걸 알아보기 위한 실험체가 필요했다.
‘앨리스는 실험체로선 탈락이고.’
“하아앙! 아가씨께서 이 뽀짝한 손으로 저를 위해 마사지를 해주신다니! 아아, 죽어도 좋아……!”
마시지 해주기도 전에 흐물흐물 녹아내리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카인은 꽤 적절한 실험체였다.
‘어린 동생이 자길 위해서 안마해 준다고 감동 같은 거 하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혈육의 손길이 닿아서 경기를 일으키면 일으켰지, 절대 좋아할 놈이 아니었다.
근데…….
‘벌써 녹은 햄스터처럼 됐는데?’
나는 액체 상태가 된 아카인을 떨떠름하게 보다가 내 손을 내려다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 아들을 녹이다니.
‘알고 보니 내게 엄청난 재능이?’
설마 안마 A급?!
악녀인데 최강 안마사가 되어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뭐, 뭐야…. 잠시 시간과 공간이 사라졌어.”
내가 손을 떼자 정신이 든 모양이다.
아카인이 “굉장한 손길…….” 하고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너, 너 이거 아무한테도 해주지 마!”
“뭐?”
“절대 해주지 마! 알았지?! 엄청 위험하니까!”
아카인은 나를 탈탈 흔들 기세로 말했다.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서 녹은 줄 알았는데 그냥 신경이 눌린 거였나.’
아버지한테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 * *
다음 날, 아침.
가신들과 함께 집무실로 들어서던 델로시프 대공이 멈칫했다.
린첼 자작이 휘파람을 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야, 오늘 집무실이 뭔가 훤한데요. 항상 무겁고 칙칙하기만 했는데.”
못 보던 화병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장식된 꽃은 화려하기보다는 눈을 청량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었다.
삭막한 집무실에 약간의 푸릇함이 추가된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가신들도 감탄하며 집무실을 구경했다.
“아, 꽃향이 아주 좋네요. 달콤하기보단 상쾌한 향입니다.”
“집중력을 향상시켜주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렐라파네요. 허브도 함께 있고.”
“집사장이 아주 신경을 많이 썼군. 시야를 방해하지도 않고, 전하의 위엄을 해치지도 않아.”
그 말에 집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신경을 아주 많이 쓴 건 맞지만, 제가 한 게 아닙니다.”
“호오, 새로 승진한 집사 중에 꽤 괜찮은 녀석이 있나 보지?”
“저희 집사부가 한 일이 아닙니다.”
가신들이 의아한 얼굴로 “그럼?” 하고 물었다.
“전부 아가씨께서 하신 일입니다.”
“아가씨께서?!”
가신들이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가씨께서 화병을 고르시고 손수 꽃꽂이까지 하셨습니다. 배치까지 신경 쓰셨지요.”
“…….”
“피곤하신 아버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요.”
델로시프 대공의 시선이 화병을 향했다.
린첼 자작이 흡족하게 웃었다.
“참으로 장하십니다. 얼마나 기특하십니까.”
“니케 아가씨께서는 꽃꽂이에 흥미가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만…….”
“잘 하지 못하는데 아버지를 생각하며 몇 번이나 연습한 거겠지요.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게 꽂혀 있는지.”
너무 화려해서 눈을 어지럽히지 않으면서도 정갈한 게, 일하다 기분 전환으로 보기 딱 좋았다.
집사장이 대공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가씨께서 이것을.”
달칵.
집사장이 내려놓은 트레이 위에는 허브티가 담겨져 있었다.
“아가씨께서 배합부터 직접 하신 허브티입니다. 피로 회복에 아주 좋다고 하니 드셔보시지요.”
대공은 묵묵히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한 모금 넘기자, 딱 좋은 정도의 온기가 입안으로 흘러들었다.
상큼하면서도 청량한데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대공의 입맛에도 딱 기분 좋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지금 마실 때 온도가 적절하도록 아가씨께서 신경 쓰셨습니다. 전하께서 항상 이때 집무실에 도착하시니까요.”
그 말에 가신들이 감탄했다.
“어찌 그리 세심하실까요.”
“피로 회복과 맛은 물론 온도까지 신경 쓰시다니.”
그 말에 린첼 자작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체되었다. 어서 시작해라.”
델로시프 대공의 말에 린첼 자작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런 따님이라면 좀 더 녹을 만도 한데…….’
하기야, 흐물흐물 녹은 델로시프 대공이라니.
니케아르샤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한 린첼 자작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린첼 자작은 어깨를 으쓱이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우선 동대륙 건입니다. 예상되는 물자의—”
자작의 말이 길게 이어지는 사이.
델로시프 대공의 무심한 시선이 화병에 머물렀다.
* * *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다음 날도.
“이야, 오늘은 에페란이군요. 이 계절엔 참 귀한 꽃인데요. 향기에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귀찮으실 텐데도 항상 새로운 꽃을 준비하시는군요.”
“오늘은 무슨 꽃이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듭니다. 향도 다르니 환기도 잘 되고요.”
니케아르샤는 지치지도 않고 새롭게 집무실을 단장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오늘의 허브티입니다.”
달칵.
집사장이 대공의 곁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낮에도 허브티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커피를 많이 드시면 속이 상할 수 있다고 아가씨께서 걱정하시더군요.”
그 말에 가신들이 부러운 눈으로 대공을 쳐다보았다.
“제 아들놈은 제가 술 마실 때 걱정은커녕 혼자 마시냐며 뺏어 먹을 생각뿐인데…….”
“따님께 이리 사랑받는 비결이라도 알려주시죠.”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대공의 반응은 싸늘했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호들갑은.”
가신들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전하에서 이런 사소한 정성에 움직이실 분이 아니긴 하지.’
‘하지만 망나니 소리 듣던 아가씨가 모처럼 기특한 일을 하는데. 칭찬해 주셔도 좋을 것을.’
생판 남인 자신들조차 정성에 감동해 이렇게 대공에게 어필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제르노와 아카인이 집무실에 들어왔다.
대공의 귀환 당일 이후, 오늘이 첫 내방이었다.
두 사람은 바뀐 집무실의 분위기에 멈칫했다.
“웬 꽃이…….”
아카인이 황당한 얼굴로 집무실을 장식한 꽃을 쳐다봤다.
집무실과 꽤 잘 어울리는 꽃이었지만, 실용주의자인 아버지 곁에 꽃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제로노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가신들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델로시프 대공이 방금 ‘호들갑 떨지 말라’고 했다.
괜히 꽃과 허브티 이야기를 더 했다간 날벼락만 맞을 것이다.
‘막내 아가씨한테까지 불똥이 튈 수도 있고.’
괜한 짓을 벌여서 일하는 데 방해한다고 혼내실 수 있다.
제르노는 크게 관심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인이 린첼 자작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여기, 기사단 훈련 내역입니다.”
린첼 자작이 놀란 눈으로 아카인을 바라보았다.
“아직 기한이 남았는데 서류 작업을 벌써 마치시다니.”
“아, 요즘 일이 잘 되더라고. 잠을 잘 자서 그런가?”
“……?”
“잠을 잘 자니 일할 맛도 나고, 서류 작업도 잘 되고. 괜히 잠이 보약이라는 게 아니야.”
제르노가 미친놈 보듯 아카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든 말든 아카인은 우쭐한 얼굴로 목을 까딱였다.
“막내가 손끝이 꽤 야무지더라고.”
“……여기서 니케 이야기가 왜 나오지.”
“아아, 피곤하다고 하니까 니케가 어깨를 주물러 줬거든.”
“……?!”
아카인이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피곤한 게 속상했나 봐. 안마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앉아 보라더니, 애가 그 작은 손으로 얼마나 열심히 주무르던지.”
제르노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혀도 아카인의 자랑은 끝날 줄을 몰랐다.
두 아들의 한담을 지켜보던 델로시프 대공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런. 전하께서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극히 싫어하시는데…….’
‘원흉으로 아가씨를 지목하실지도 몰라.’
‘아가씨가 괜한 짓을 해서 일을 방해한다고!’
가신들은 조마조마하게 대공의 눈치를 보았다.
이윽고 대공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윌터.”
시립해 있던 총 집사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찻잔이 비었다.”
아가씨에 관한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윌터는 침착하게 새 허브티를 따랐다.
청량한 차향이 허공에 퍼졌다.
아카인이 의아하게 대공을 바라보았다.
“입맛이 바뀌셨습니까. 항상 커피를 드시던 분께서.”
“딱히.”
대공의 무심한 대답에 린첼 자작이 끼어들었다.
“니케 아가씨께서 준비하신 겁니다. 계속 커피를 마시면 전하의 속이 상할까 봐.”
“……그 녀석이.”
“피로 회복에 좋은 것으로 직접 배합하셨다고 합니다. 향이 참 좋지요?”
아카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