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6)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6화(6/177)
<p></p>
<p></p><h2 style=”text-align: center; font-size: 27px !important;” data-p-id=”2″ data-original-font-size=”30″>
<p>6화</p></h2>
<p></p>
<p></p>
<p></p>
<p></p>
<p>도무지 읽을 수 없는 글자였다.</p>
<p>대체 누구지.</p>
<p></p>
<p>‘…내가 따로 만난 사람이 있었나?’</p>
<p></p>
<p>파티장에서 집에 도착했을 때까지의 일을 떠올렸지만, 딱히 짚이는 사람은 없었다.</p>
<p></p>
<p>“저, 아가씨. 괜찮으세요?”</p>
<p></p>
<p>엠마가 어색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p>
<p></p>
<p>“구두 굽이 부러져서 어떡해요. 전 그럴 줄도 모르고 아가씨한테….”</p>
<p>“아니야. 그 덕에 오라버니랑 사이가 가까워졌는걸.”</p>
<p></p>
<p>엠마의 얼굴이 해쓱해졌다.</p>
<p>내가 아카인에게 안겨 온 게 자신이 준 구두 때문이라는 것.</p>
<p>그걸 확인받으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지?</p>
<p>미카린에게 공을 세우려고 잔꾀를 쓴 걸 텐데.</p>
<p></p>
<p>“네 덕분이야. 고마워, 엠마.”</p>
<p></p>
<p>그렇게 말하자 엠마의 얼굴이 금세 거만해졌다.</p>
<p>착각하는 것이다.</p>
<p>내가 망가진 구두를 받고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믿고 있다고.</p>
<p></p>
<p>“난 엠마 너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네가 결혼하면 어쩌지?”</p>
<p>“에이, 전 결혼해도 아가씨 곁에 있을 거예요.”</p>
<p></p>
<p>‘그래, 이미 결혼했지만 내 곁에 있지.’</p>
<p></p>
<p>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p>
<p></p>
<p>“설마 애인이랑 결혼 이야기 오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p>
<p>“후후, 그 사람이 자꾸 같이 사는 미래에 대해서 말하곤 해요.”</p>
<p>“…….”</p>
<p></p>
<p>역시 애인이 따로 있는 게 맞았다.</p>
<p>혹시라도 내 기억이 잘못되었을까 했는데.</p>
<p>얘까지 불륜충이라니.</p>
<p></p>
<p>‘설마 세상이 불륜 지옥이라서 신이 나를 회귀시킨 건가?’</p>
<p></p>
<p>내 칭찬에 도취된 엠마가 한껏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p>
<p></p>
<p>“제가 남자 마음 사로잡는 법을 잘 알거든요! 아가씨가 저한테 배우셔야 할지도?”</p>
<p></p>
<p>불륜하는 법 따위 알고 싶지도, 배우고 싶지도 않은데.</p>
<p>불륜충은 정말 수치를 모르는구나.</p>
<p>나는 ‘자기 자랑+애인 자랑’ 콤보를 시작하는 엠마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흥신소를 불렀다.</p>
<p></p>
<p>‘엠마의 <신상명세서>를 다시 볼 수 있어?’</p>
<p></p><div data-p-id=”59″ data-original-font-size=”20″ data-original-line-height=”32″ style=”font-size: 18px !important; line-height: 1.6 !important;”>
<p>- 이름: 엠마</p>
<p>- 성별: 여성</p>
<p>- 나이: 27</p>
<p>- 출생지: 엘우드</p>
<p>- 직장: 델로시프 대공가</p>
<p>- 직업: 상급 메이드</p>
<p>- 현주소: 델로시프 대공저</p>
<p>- 가족 관계: 발릭(남편)</p>
<p>- 인간 관계: 미카린(주인), 니케아르샤(고용주), 레널드(애인)…</p></div>
<p></p>
<p>오, 다시 뜬다.</p>
<p></p>
<p>‘게다가… <인간 관계>까지 뜨잖아?’</p>
<p></p>
<p>인간 관계는 업그레이드하면서 새롭게 추가된 항목.</p>
<p>전에는 없었다.</p>
<p></p>
<p>‘그런데 ♥를 소모하지 않고 확인 가능하다고?’</p>
<p></p>
<p>개꿀이잖아?</p>
<p>조사는 이미 그때 전부 완료했는데 표시할 수 없었던 건가?</p>
<p>업그레이드한 덕분에 표시 가능해졌고.</p>
<p>이유야 뭐든 내게는 잘된 일이다.</p>
<p></p><div data-p-id=”75″ data-original-font-size=”20″ data-original-line-height=”32″ style=”font-size: 18px !important; line-height: 1.6 !important;”>
<p>- 인간 관계: 미카린(주인), 니케아르샤(고용주), 레널드(애인)…</p></div>
<p></p>
<p>‘미카린은 주인. 나는 고용주라.’</p>
<p></p>
<p>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이렇게 쓰여 있는 걸 보니 조금 허탈했다.</p>
<p></p>
<p>‘내 돈은 달달하니?’</p>
<p></p>
<p>그 와중에도 엠마는 끊임없이 애인 자랑 중이었다.</p>
<p></p>
<p>“제 애인이 얼마나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은데요. 뿐만 아니라 능력도 좋아요! 얼마 전에 선물을 받았는데 글쎄 가격이….”</p>
<p></p>
<p>엠마의 말을 대강 흘려듣던 나는 멈칫했다.</p>
<p>잠깐.</p>
<p></p><div data-p-id=”90″ data-original-font-size=”20″ data-original-line-height=”32″ style=”font-size: 18px !important; line-height: 1.6 !important;”>
<p>- 인간 관계: 미카린(주인), 니케아르샤(고용주), 레널드(애인)…</p></div>
<p></p>
<p>‘레널드?’</p>
<p></p>
<p>엠마는 틈만 나면 애인 자랑을 하면서도, 절대 이름을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p>
<p>별로 궁금하지도 않아서 그러려니 했는데.</p>
<p></p>
<p>‘이 남자가 엠마의 애인이었어?’</p>
<p></p>
<p>레널드 파비안.</p>
<p>파비안 상단의 주인.</p>
<p>파비안 상단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해서 훗날 제국의 ‘3대 상단’ 중 하나가 된다.</p>
<p>후발주자가 3대 상단의 반열에 오르려면 웬만한 능력으로는 안 된다.</p>
<p>그리고 레널드는 출중하다는 말도 모자란 수완가였다.</p>
<p></p>
<p>‘무려 델로시프 대공가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니까.’</p>
<p></p>
<p>그러고 보니 이 시기였다.</p>
<p></p>
<p>‘레널드를 데려온 미카린이 <델로시프의 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p>
<p></p>
<p>* * *</p>
<p></p>
<p>델로시프 대공저.</p>
<p>소공작 제르노의 집무실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p>
<p></p>
<p>“이대로 가다간 베스 댐이 못 버틸 것 같습니다.”</p>
<p>“앞으로 한두 달. 그 이후부터는 언제 무너질지 장담하기 힘듭니다.”</p>
<p>“붕괴 시 피해 규모는 계산했나?”</p>
<p></p>
<p>제르노의 말에 바렌토 자작이 마도구를 조작했다.</p>
<p>허공에 띄워져 있던 3차원 지도가 한층 더 확대되었다.</p>
<p></p>
<p>“베스 댐에 저장된 수량이 너무 많습니다. 순식간에 마을 세 개가 물에 잠길 거고, 그 아래….”</p>
<p></p>
<p>지도에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p>
<p>무너진 댐에서 넘쳐난 물은 좁은 협곡지대를 지나 평야까지 침범했다.</p>
<p></p>
<p>“…평야까지 피해를 볼 것입니다.”</p>
<p>“허어, 저 곡창 지대가 수해를 입으면 영지 전반에 타격이 오겠군요.”</p>
<p>“최대한 빨리 <아키탄>을 확보해야 합니다.”</p>
<p></p>
<p>아키탄.</p>
<p>댐의 안정화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p>
<p>베스 댐의 아키탄에 생긴 문제가 감지된 건 약 일주일 전.</p>
<p>워낙 큰 사안이었기에 소공작인 제르노가 직접 시찰을 떠났다.</p>
<p>그 탓에 니케아르샤가 발현에 실패한 상황에서 집에 있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p>
<p></p>
<p>“리즐 상단은 뭐라고 하지?”</p>
<p></p>
<p>아키탄 같은 주요 자원은 당연히 거래 제한이 걸려 있다.</p>
<p>황실의 인가를 받아 아키탄을 취급하는 곳은 단 두 곳.</p>
<p>리즐 상단과 페리웰 상단뿐이었다.</p>
<p></p>
<p>“리즐 상단은 여전히 재고가 없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p>
<p></p>
<p>제르노의 입가에 비뚜름한 미소가 맺혔다.</p>
<p></p>
<p>“리즐 후작이 델로시프를 엿 먹일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지.”</p>
<p>“아무리 그래도 과합니다. 사소한 시비야 언제나 있는 알력 다툼이지만….”</p>
<p>“이건 가문끼리 완전히 척질 수도 있는 문제잖습니까. 리즐 후작도 그걸 바라진 않을 텐데.”</p>
<p></p>
<p>처음엔 값을 올리려고 시간을 끄는 줄 알았다.</p>
<p>하지만 지금까지도 뻗대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p>
<p></p>
<p>“황실이군.”</p>
<p></p>
<p>제르노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p>
<p></p>
<p>“내가 황가에 중재를 요청하길 기다리고 있는 거다.”</p>
<p>“설마 황가에서 델로시프에 빚을 지우려고 리즐 후작과 밀약을…!”</p>
<p>“그래. 리즐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겠지.”</p>
<p></p>
<p>황실과 델로시프. 양쪽에서 값을 받을 테니까.</p>
<p></p>
<p>“페리웰 상단은?”</p>
<p>“어떤 조건을 걸어도 요지부동입니다. 황가까지 개입한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겠지요.”</p>
<p>“현명한 선택이군.”</p>
<p></p>
<p>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황가의 뜻에 반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p>
<p></p>
<p>“우리는 속 타지만요.”</p>
<p></p>
<p>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찾아왔다.</p>
<p>툭, 투둑.</p>
<p>제르노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드넓은 집무실에 울렸다.</p>
<p>긴 장고 끝에 제르노가 입을 열었다.</p>
<p></p>
<p>“…입궁해야겠군.”</p>
<p>“하, 하지만 황실에선 분명 각하의 혼사를….”</p>
<p>“아카탄의 값에 얹을 정도로 내 결혼이 가볍진 않아.”</p>
<p></p>
<p>무려 차기 델로시프 대공의 혼사다.</p>
<p>이런 빤히 보이는 계책 따위에 좌우될 리 없다.</p>
<p></p>
<p>“지금 당장 값을 요구하진 않겠죠. 하지만 이런 일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혼사 이야기를 꺼낼 겁니다.” </p>
<p>“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각하!”</p>
<p>“영지민의 생명이 걸려 있다.”</p>
<p>“…!”</p>
<p>“빠르게 댐을 안정시키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해.”</p>
<p></p>
<p>바렌토 자작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다.</p>
<p>그야말로 외통수.</p>
<p>황실의 어느 쪽이든 협상을 하는 수밖에 없다.</p>
<p></p>
<p>똑똑.</p>
<p>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열렸다.</p>
<p></p>
<p>“큰오라버니.”</p>
<p></p>
<p>미카린이 다과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해사하게 웃었다.</p>
<p></p>
<p>“다들 회의 때문에 피곤하시죠? 다과라도 들며 하세요.”</p>
<p></p>
<p>바렌토 자작이 미간을 찌푸렸다.</p>
<p>미카린이 델로시프의 가신들에게 꽤 귀여움을 받긴 하지만, 이건 명백하게 선을 넘었다.</p>
<p></p>
<p>“미카린 아가씨, 감히 허락도 구하지 않고 각하의 집무실에 들어오시다니요.”</p>
<p>“아, 죄송해요. 제가 예의 없었죠.”</p>
<p></p>
<p>미카린이 깜짝 놀라 눈꼬리를 내렸다.</p>
<p></p>
<p>“베스 댐 때문에 고심이 크실 오라버니와 가신 분들의 시름을 덜어드리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제가 무례를 저질렀어요.”</p>
<p></p>
<p>그러나 가신들의 낯빛은 더 싸늘해질 뿐이었다.</p>
<p>다과와 기특한 마음 따위로 이들의 시름을 덜 순 없다.</p>
<p>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능력뿐이었다.</p>
<p>이 상황을 타개할!</p>
<p></p>
<p>“…마음은 아름답지만, 다과는 필요 없습니다.”</p>
<p></p>
<p>명백한 거절과 축객령.</p>
<p>그것도 가신들이 나설 뿐, 제르노는 말 한마디는커녕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있다.</p>
<p>거부당한 미카린이 당황한 얼굴로 “아…!” 탄성을 흘렸다.</p>
<p></p>
<p>“제 말씀을 오해하신 것 같아요.”</p>
<p>“충분히 무례하셨습니다. 이만—”</p>
<p>“제가 아키탄을 구할 수 있어요!”</p>
<p>“…!”</p>
<p></p>
<p>가신들의 표정이 일변했다.</p>
<p>장내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p>
<p>미카린을 중심으로.</p>
<p>확실히 그녀는 연출에 재능이 있었다.</p>
<p></p>
<p>‘자, 그럼.’</p>
<p></p>
<p>미카린은 정말로 구할 수 있다든가, 어떻게 구할 수 있다든가 하는 말 따위 하지 않았다.</p>
<p>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급급해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p>
<p>미카린은 침묵한 채 단 한 사람만 바라보았다.</p>
<p>이곳의 주인인 제르노만을.</p>
<p></p>
<p>“…….”</p>
<p></p>
<p>이윽고, 결코 열릴 것 같지 않았던 제르노의 입술이 열렸다.</p>
<p></p>
<p>“지금 그 말, 쉬이 뱉은 허언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p>
<p>“제가 어찌 감히 오라버니께 가볍게 고하겠어요.”</p>
<p></p>
<p>미카린이 생긋 웃었다.</p>
<p>사뿐사뿐 집무실을 가로지른 그녀가 제르노의 곁에 다과를 올려놓았다.</p>
<p></p>
<p>“너무 일만 하셔서 몸이 상하시진 않을까 저는 늘 걱정이어요. 제 마음을 봐서 드셔주세요, 오라버니.”</p>
<p></p>
<p>미카린이 에헤헤 웃으며 쿠키를 제르노의 입가에 내밀었다.</p>
<p>천진난만한 햇살처럼.</p>
<p></p>
<p>* * *</p>
<p></p>
<p>나는 내 앞에 서서 벌벌 떨고 있는 하녀에게 무심히 되물었다.</p>
<p></p>
<p>“그래, 미카린이 큰오라버니 집무실에 들어갔다고.”</p>
<p>“예, 예에….”</p>
<p></p>
<p>하녀가 어깨를 움츠리며 답했다.</p>
<p>책 심부름을 했던 그 하녀였다.</p>
<p></p>
<p>“고생했어.”</p>
<p>“벼, 별말씀을…. 저 말고 아무한테나 물으셔도 되었을 텐데….”</p>
<p></p>
<p>고개를 꾸벅 숙인 하녀가 우물쭈물하며 날 힐끔거렸다.</p>
<p></p>
<p>“더 할 말 있니?”</p>
<p>“아, 아니에요. 저, 저는 그럼….”</p>
<p></p>
<p>화들짝 놀란 하녀가 연신 고개를 숙이더니 사라졌다.</p>
<p></p>
<p>‘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는 줄 알겠네.’</p>
<p></p>
<p>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소파에 기댔다.</p>
<p>미카린이 집무실에서 뭘 했는지는 뻔하다.</p>
<p>자기가 아키탄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겠지.</p>
<p>그리고 며칠 후, 정말로 구해온다.</p>
<p></p>
<p>‘덕분에 미카린은 한순간에 영웅이 됐지.’</p>
<p></p>
<p>베스 댐이 무너졌으면 마을 몇 개가 수몰되는 것은 물론, 곡창지대가 침수해 식량 문제까지 생겼을 것이다.</p>
<p>미카린은 그 모든 것을 막아냈다.</p>
<p>방계 아가씨에 불과하던 미카린이 영지민들의 구원자가 된 것이다!</p>
<p></p>
<p>‘나와는 다르게.’</p>
<p></p>
<p>발현식에서 실패한 망나니 직계 니케아르샤.</p>
<p>영지민들을 구원한 천사표 방계 미카린.</p>
<p>비슷한 시기에 맞물린 일이라 비교당할 수밖에 없었다.</p>
<p>다만.</p>
<p></p>
<p>‘그 모든 게 레널드의 도움 덕분이었지.’</p>
<p></p>
<p>레널드가 어떻게 아키탄을 구했는지는 모른다.</p>
<p>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구해왔다는 거다.</p>
<p>그리고.</p>
<p></p>
<p>‘레널드는 불륜 피해자야.’</p>
<p></p>
<p>클레아스와 결혼한 후, 나는 그 집에서 살며 인적이 없는 곳만 골라서 다녔다.</p>
<p>그날도 사람들을 피해 좁고 어둑한 다락에서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기를,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p>
<p>그러다 레널드와 미카린을 보았다.</p>
<p></p>
<p>
<p>“어떻게 감쪽같이 날 속였는지. 나와 미래까지 약속했으면서….”</p></p>
<p>
<p>“나도 너무 충격이야. 괜히 내 탓인 것 같아 널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어.”</p></p>
<p>
<p>“아닙니다. 텔시 영애도 그녀가 유부녀인지 몰랐지 않습니까.”</p></p>
<p>
<p>“미안. 나보다 레널드가 더 충격일 텐데…. 하지만 난 신분과 관계없이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렇게 배신당할 줄은….”</p></p>
<p></p>
<p>나는 이때 레널드가 엠마의 연인이라는 걸 몰랐다.</p>
<p>그저 유부녀에게 속은 불쌍한 남자라고만 생각했다.</p>
<p></p>
<p>‘불륜 피해자를 불륜 칙칙폭폭이 위로하고 있다는 게 참 우스웠지만.’</p>
<p></p>
<p>어쨌든 같은 사람에게 배신당해 동병상련을 느낀 걸까.</p>
<p>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해 주며 더 가까워졌다.</p>
<p></p>
<p>‘덕분에 미카린은 3대 상단주인 레널드의 비호를 받았지.’</p>
<p></p>
<p>과연 이 모든 게 우연일까?</p>
<p>미카린과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레널드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데.</p>
<p></p>
<p>“하, 미카린.”</p>
<p></p>
<p>진짜 얘는 대단하다.</p>
<p></p>
<p>“너만 불륜하는 것도 모자라서 다른 사람까지 불륜하게 만들었니.”</p>
<p></p>
<p>이건 불륜 칙칙폭폭 정도가 아니다.</p>
<p>불륜 전염병이다.</p>
<p>미카린, 이 불륜 염병아.</p>
<p></p>
<p>“고마워.”</p>
<p></p>
<p>내가 속았던 그 상냥함과 다정함으로 사람을 감화시키지 않아서.</p>
<p>네 수준에 딱 맞는 불륜으로 기만하고 이용해서.</p>
<p>그래서 나같이 성격 나쁜 애가 새치기할 수 있게 해줘서.</p>
<p></p>
<p>“네가 차려준 밥상 잘 먹을게.”</p>
<p></p>
<p>* * *</p>
<p></p>
<p>레널드는 마차에서 내려 고개를 들었다.</p>
<p>거대한 델로시프 대공저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그를 굽어보고 있었다.</p>
<p></p>
<p>‘엄청난 위압감이군.’</p>
<p></p>
<p>델로시프 대공저에 온 것은 처음이다.</p>
<p>연인이 델로시프 대공저의 사람이긴 하지만 일개 하녀에 불과했고.</p>
<p>이곳에 눌러살다시피 하는 미카린과 지인 사이였지만, 그녀는 방계일 뿐이었다.</p>
<p></p>
<p>‘굴하면 안 돼.’</p>
<p></p>
<p>레널드는 두 주먹에 힘을 준 채 앞을 바라보았다.</p>
<p>이곳엔 마녀가 살고 있다.</p>
<p>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자신의 연인을 괴롭히는 못된 마녀가.</p>
<p></p>
<p>“내가 마녀의 손아귀에서 구해내야 해.”</p>
<p></p>
<p>그가 결심을 다지며 계단을 다 오른 순간.</p>
<p></p>
<p>“그 마녀가 혹시 날 말하는 거야?”</p>
<p></p>
<p>봄바람처럼 촉촉하고 보드라운 목소리가 들렸다.</p>
<p>반사적으로 그쪽을 바라본 레널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p>
<p>햇빛에 반짝이는, 연한 꽃잎 빛깔로 물든 분홍빛 긴 은발.</p>
<p>티 없이 투명한 피부.</p>
<p>5월의 장미보다도 더 붉은 눈동자.</p>
<p>장난스러운 미소.</p>
<p></p>
<p>“어서 와, 마녀의 집에.”</p>
<p></p>
<p>진짜로 마녀가 서 있었다.</p>
<p></p>
<p>“자, 잘못했어요, 아가씨. 제발 용서를….”</p>
<p></p>
<p>발밑에 레널드의 연인, 엠마를 무릎 꿇린 채.</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