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60)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60화(60/177)
제르노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화병의 꽃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 꽃도 설마…….”
“예, 니케 아가씨께서 손수 골라 삽화하셨습니다. 집중과 안정에 좋은 것으로요.”
린첼 자작이 미소 지으며 델로시프 대공에게 물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정성이 어여쁘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짓이다.”
“하하, 그래도 아가씨가 매일 선물하는 포푸리를 거절하진 않으셨죠.”
제르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왈칵 미간을 찌푸린 아카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막내가 직접! 해주는 안마는 정말 피로가 싹 풀려서—”
“아카인, 시끄럽다. 아버님의 집무실에서 떠들지 마라.”
아카인이 제르노를 돌아봤다.
“형님은 아무것도 못 받았어?”
“닥쳐.”
“…….”
집무실 안의 모두가 동시에 제르노를 바라보았다.
각기 표정은 달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아, 첫째 도련님……. 혼자서 아무것도 못 받으셨구나.’
* * *
나는 새로 만든 포푸리를 든 채 복도를 걸었다.
곧 있으면 아버지의 회의가 끝날 시간이었다.
때마침 저편에서 집사장, 윌터가 다가오는 중이었다.
“아가씨.”
“아버지께선 좀 어떠셔?”
“아가씨께서 준비한 차를 잘 드시고 계십니다.”
“피로가 풀리셨대?”
“……그런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혹시 다른 말이라도 하신 적 있어?”
“그게…….”
“괜찮으니 말해줘.”
“쓸데없는 짓이라고……. 송구합니다.”
윌터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수그렸다.
집사장인 그가 없는 말을 지어낼 순 없을 것이다.
‘……역시 이런 사소한 것으로 아버지의 환심을 살 순 없나.’
가신들이 하도 부럽다며 치켜세워서 조금은 기대했던 모양이다.
부모라면 자식의 효도에 기뻐할 거라고 해서.
바보같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인데.’
그저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여쁨 받았다면 결혼 후 친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워지고 미카린이 막내딸이 되지도 않았을 거고.
‘역시 각성자로서 쓸모를 증명하는 게 정답이야.’
꾸욱.
비틀어진 포푸리에서 향긋한 향이 올라왔다.
고작 이딴 걸로 기대했다니.
나 스스로가 한심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회의실로 향하던 걸음을 돌렸다.
‘일단 방으로 돌아가자. 각성자 행세를 잘 하려면 <흥신소>를 연구해야 해.’
우선 그걸 위해 살펴볼 게 있다.
전에 이스칼리온과 레널드에게 받았던 ♡.
예전에 받고 나서 써보려고 했지만…….
♡를 사용하려면 해금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이런 알림만 나왔다.
그 해금 조건이 뭔지는 알려주지도 않았다.
‘아직도 ♡ 사용이 불가능한가?’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능력을 갈고닦는 편이 좋은데.
초조하게 생각하는 순간.
<해금 조건: 불륜 칙칙폭폭 퇴치>를 달성하여 ♡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설마 그 조건이 미카린을 쫓아내는 거였을 줄이야.
나야 좋긴 한데, 진짜 이 능력은 뭘까.
♡를 사용하여 새로운 능력을 얻으시겠습니까?
새로운 능력?!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각성자 행세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능력이었으면 좋겠다.’
<권능>이 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 ̗̀ ♥ˎˊ: 축하합니다 : ̗̀ ♥ˎˊ:
당신을 위한 최고의 선택!
♥♡된 사랑의 흥신소ᯓ★
그 두 번째 능력!
<♥♡된 사랑의 파워 업!>
‘……금지된 사랑의 파워 업?!’
이름만으로 불쾌했다.
필요 없어, 그딴 거!
<♥♡된 사랑의 파워 업!>은 ‘대상의 <재능>을 파워 업!’ 시켜줄 수 있는 능력입니다. ฅ՞•ﻌ•՞ฅ
재능을 파워 업?
‘재능’은 권능자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
하지만.
‘앨리스의 B급 시중도 A급 시중으로 파워 업 시켜줄 수 있다는 뜻이야?’
그렇습니다!
정말 <♥♡된 사랑의 파워 업!>이 필요 없나요૮₍ .•̄ ·•̄ ₎ა?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줘.”
앞으로 <♥♡된 사랑의 파워 업!>과 함께 행복지수도 파워 업! 해보아요^ㅇ^
‘……이름에 신경 쓰면 지는 거야.’
가짜 각성자 행세를 할 때, 엄청나게 도움이 될 거다
비록 ‘재능’ 관련 능력이라 각성자나 권능자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뭐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법.
‘이거라면 아버지께 꽤 쓸모 있는 딸이 될 수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는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중에는 내가 잘 아는 사람도 있었다.
마법에 조예가 깊은 샌디프 자작.
어머니 영혼석 사건 때 마법 지식으로 꽤 도움이 되었던 가신이다.
“아, 아가씨.”
샌디프 자작이 날 보고 멈칫했다.
그의 얼굴은 희게 질려 있었다.
왠지 예감이 안 좋았다.
“무슨 일이야?”
“그게…….”
“나한테 말하면 안 되는 이야기야?”
“아닙니다. 그저…….”
이상하게 가슴이 술렁거렸다.
나는 침착하려 애쓰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샌디프 자작이 눈을 질끈 감더니 뱉어내듯 말했다.
“대공비 전하의 영혼석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어머니의 영혼석에 문제가 생겼다니.”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께서 힘들게 지켜내셨는데…….”
“무슨 문젠데. 혹시 금이 가거나 깨진 건—”
“그런 건 아닙니다!”
샌디프 자작이 펄쩍 뛰며 두 손을 내저었다.
“아가씨께서 그토록 소중히 지켜내시지 않았습니까. 아직은 괜찮습니다.”
“아직?”
“영혼석의 에너지를 강제로 자극시킨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탓에 성소에서 폭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미카린의 짓이야.’
영혼석을 폭주시킨 후 공을 세워 대공가의 사랑을 받으려고.
감히 어머니를 이용했다.
“아가씨께서 안정시켰지만, 강제로 에너지가 요동쳤으니 그 여파가 온 모양입니다. 파동이 불안정해서…….”
“그럼 언젠간 깨질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죄송합니다.”
쿵.
심장이 땅 밑으로 떨어진 것만 같았다.
만약 이번에도 또 어머니의 영혼석이 깨진다면…….
불안정해서 아예 폭발해 버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나 때문이야.’
회귀 전에는 살짝 깨지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엔 어머니가 산산조각 날지도 몰라.
내가 괜히 끼어들어서.
“……가씨, 아가씨?”
탁.
나를 붙드는 손길에 헉, 하고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진작 알아냈어야 하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알아낸 건 자작이 살펴본 덕분이지. 고마워.”
“아가씨…….”
“어머니의 영혼석은?”
“신관의 연구소로 옮기는 중입니다. 혹시 마탑주께서는…….”
“세르카엘의 협력이라면 부탁해 볼게.”
“마탑주께서 도와주시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통신석을 꺼냈다.
곧장 세르카엘의 통신 코드를 입력했다.
‘응답이 없어…….’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일단 신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직접 어머니의 영혼석을 봐야 안심이 될 것 같다.
가는 내내 세르카엘에게 연락을 했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실험 중인가.’
세르카엘은 한 번 실험실에 들어가면 절대 통신을 받지 않는다.
연구원들이 날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가씨? 안색이……. 세상에, 식은땀 좀 봐.”
“어머니의 영혼석은?”
“아, 이쪽입니다.”
연구원이 술식을 풀고 안쪽 문을 열었다.
안쪽의 마도 장치 위에 어머니의 영혼석이 떠 있었다.
‘일단 겉보기엔 괜찮아.’
금이 가거나 깨진 곳은 없다.
하지만 안쪽의 빛이 일렁거리는 게 아무래도 에테르가 불안정해서 그런 것 같았다.
무질서하게 맥박치는 파동에 머리가 울렸다.
‘으…….’
보고 있자니 묘하게 힘이 빠지면서 기운이 쭉 빠졌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괜찮아.”
아무래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았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나는 고개를 털고 영혼석의 상태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르카엘과 연락이 닿는 즉시 상세하게 상황을 알려줘야 하니까.
하지만 울렁거림은 점점 더 심해졌다.
숨이 차오르고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허공에 떠 있는 영혼석이 유난히 반짝인다고 생각한 순간.
“헉…!”
가슴 아래를 훅 압박하는 감각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가씨!”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다.
고개조차 내 마음대로 들 수 없었다.
“……가씨, 큰일……!”
“어떡……. 정신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뭉개졌다가 선명해지길 반복했다.
깜빡깜빡 눈앞이 점멸하길 몇 차례.
삐이이이익—!
이명 소리와 함께 완전히 암전되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아, 아, 아가씨?!”
쓰러진 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경악한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목소리도 제대로 들린다.
“지, 지금…….”
“괜찮아. 순간적으로 그냥 힘이 빠졌나 봐.”
“그, 그게 아니라 아가씨 눈이…….”
“내 눈?”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아까는 시야가 이지러지고 눈앞이 캄캄했는데 지금은 괜찮았다.
잘 보인다.
‘아직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하긴 하지만…….’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찰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아까에 비해선 훨씬 나았다.
“아가씨 눈 색이 변했어요!”
“뭐?”
연구원 하나가 내게 거울을 보여주었다.
나는 멍하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
붉은빛이던 내 눈은 사파이어 같은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깊고 품위 있는 푸른빛.
어머니의 색이다.
“아아, 정말 대공비 전하 같네요.”
“예, 눈빛이 살아생전의 대공비 전하와 똑같습니다.”
나이 든 연구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머리카락도…….”
그 말에 나는 무릎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내 머리카락은 분홍빛이 돌긴 했지만, 확실히 은발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리카락은 온통 꽃잎 같은 분홍이었다.
‘어머니처럼…….’
얼떨떨한 기분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는데.
“어머니의 영혼석은? 어디 있지?”
“안쪽이 소란스러운데.”
오라버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 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괜찮은 거 맞—”
나를 본 아카인의 목소리가 멎었다.
제르노가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니케.”
미간을 찌푸린 제르노가 내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괜찮나.”
아카인도 헐레벌떡 내게 다가왔다.
“대체 무슨 일이야. 너 왜 머리카락이랑 눈이 변했어.”
나는 두 사람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답을 모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어느새 문간에 선 아버지가 아무 말도 못 한 채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고 계셔서.
그 시선이 꼭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더듬는 것 같았다.
* * *
잠시 후.
“니케의 상태는.”
아버지의 말에 연구원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한시적인 문제 같습니다. 영혼석과 서로 반응한 탓 같은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아픈 곳은.”
“괜찮아요.”
“시야는.”
“다 잘 보여요.”
나는 대답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버지가 조금 다정하신 것 같아.’
당연한가.
‘어머니와 닮았으니까.’
내 붉은 눈은 아버지를 닮았는데 반해, 머리카락은 부모님 어느 쪽도 닮지 못하고 어정쩡했다.
아버지의 은발과 어머니의 분홍빛 머리카락이 애매하게 섞인 느낌.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의 유전자를 진하게 물려받은 느낌이니…….
‘아버지가 누그러지신 것도 이해가 돼.’
모든 사람이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도 어머니가 너무너무 좋았다.
어머니는 밝고, 다정하고, 따뜻하고, 아주아주 멋져서.
품에 안기면 꼭 봄햇살에 안긴 것 같았다.
‘올라간 눈꼬리는 아버지를 닮아서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얼굴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어정쩡한 내 원래 모습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아버지도 나를 저렇게 빤히 바라보고 계시는 거겠지.
“저, 어머니의 영혼석은요?”
“괜찮다.”
그 말을 듣자 어깨에서 힘이 쭉 빠졌다.
연구원이 말을 보탰다.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 오히려 아까보다 조금 더 안정되었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아가씨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덕분인 것 같습니다. 성소에서 아가씨의 마력이 영혼석에 들어갔었잖습니까.”
“그럼 내가 어머니의 영혼석과 함께 있는 편이 좋을지도.”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다리에 힘을 주는데,
“……?”
내 앞에 손이 내밀어졌다.
아버지의 손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조금 멋쩍은 기분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내게서 손을 뗀 아버지가 땅에 떨어져 있던 포푸리를 주웠다.
포푸리는 엉망이었다.
아까 집사장과 만나면서 나도 모르게 꽉 쥐어버린 데다가, 쓰러지는 바람에 뭉개지기까지 했다.
“이리 주세요. 제가 버릴게요.”
“왜?”
“네?”
아버지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 버리지?”
“너무 볼품없어서…….”
“상관없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조잡하게 망가진 포푸리를 여전히 손에 든 채.
나는 가만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아버지.”
아버지가 말없이 나를 돌아보셨다.
“호, 혹시 식사를 같이 해도 괜찮을까요?”
말하고 바로 후회했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핀잔받았으면서, 또 아버지의 시간을 낭비하겠다는 말을 하다니.
“괜찮아요. 말이 잘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