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78)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78화(78/177)
반면 사내들은 아주 신이 났다.
“내 평생 그런 굴삭기는 처음이었어! 엄청나더만!”
“마력 주입을 그리 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폭탄은 대체 어떻게 만든 거요? 진짜 대단혀!”
“멍청한 마법사들은 못 하는 게 당연하지. 나니까 하는 거다.”
흠, 아주 싫진 않나 보다.
때마침 세르카엘이 날 발견했다.
“니케아르샤.”
“꽃까라 아가씨!”
“언제 오나 목 빠져라 기다렸소!”
다들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쌀을 넣은 영원의 스튜도 먹었다.
“크으…!”
모든 것이 완벽했다.
배를 탕탕 두들기는 나를 바라보던 헤레이스가 묘한 얼굴로 말했다.
“생전 <라테리움>을 내 손으로 캘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허구한 날 우리를 무시하던 권능자와 각성자 놈들을 이길 날이 올 줄은 더더욱 몰랐소.”
광부들의 말에 나는 “그래?”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너희가 이길 거라고 확신했는데.”
“……?!”
“권능자들이 평범한 인간에게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게 뭐.”
나는 굳은살이 박인 광부들의 손과 울끈불끈한 근육을 가리켰다.
“매일매일 광산에 들어가 직접 익힌 경험과 지혜, 손기술과 감각은 따라갈 수 없어.”
미션에 참가한 권능자들은 광산 일 자체가 처음이었다.
이쪽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
“심지어 경험만 믿고 게을렀던 것도 아니야. 다른 팀이 아무 준비도 안 할 때 우리는 준비했어.”
우리는 텐타 광산에서 일했던 광부들에게서 사전 정보를 얻었다.
‘우선 홀로그램 지도부터 받았지.’
그리고 <라테리움>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되었을 때의 상황 정보를 들었다.
그걸 토대로 마탑주에게 정보 수집용 마도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즉, 초반에 우리가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노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전혀 아니란 말씀.’
에너지 감지 마도구를 사용해서 계속 정보를 업데이트 받아 홀로그램 지도에 추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승리는 요행도, 우연도 아니야. 마땅히 누릴 권리지.”
사내들이 맥주잔에 입을 댄 것도 잊은 채 날 바라보았다.
멍하니 있던 헤레이스가 유쾌한 듯 웃었다.
“아하하, 그러고 보니 아가씨께서는 처음부터 그러셨죠. 우리와 함께 이길 생각이라고.”
“그래.”
“역시 아가씨의 ‘힘’을 믿었기 때문인가요?”
곱슬머리 사이에서 그의 눈동자가 기묘한 이채를 띠었다.
“평생 하던 작업입니다. 아가씨의 손길이 닿은 후, 제 몸이 확 달라졌어요. 제게 뭔가를 한 거죠?”
“일단은… 특별한 각성자라서?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 원하는 걸 다 이뤘다는 거야.”
나는 각성자회 미션 승리를.
이들은 광부들의 숙원인 <라테리움>을 직접 캐고, 또 자신들을 무시하던 권능자들에게 한 방 먹였다.
“……이제 끝이라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니 헤레이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른 사내들도 어쩐지 밥 굶은 강아지처럼 날 봤다.
“내 것이 되라는 말, 아직도 유효합니까?”
“……어?”
“저희는 아가씨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헤레이스가 내게로 커다란 몸을 숙였다.
이제 보니 곱슬머리가 꼭 털이 복슬복슬한 대형견 같기도 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내 것이 될 생각이야?”
“설마 제 몸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모르는 척하진 않으시겠지요.”
나는 “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웬 떡이람! 안 그래도 어떻게 꼬드기나 했는데!’
흥분으로 자꾸 숨이 떨려 와서 큰일이다.
‘‘레젠다’의 광부들이 내 것이 된다면 엄청난 힘이 될 거야.’
광업은 대다수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니까!
재능을 각성시켰는데 남 준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워서 어떻게든 계약을 연장할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알아서 내 손에 굴러들어 와 주다니!
애써 진정하려는데.
“영원의 스튜를 노나 묵었으면 영원히 가야지!”
“우린 한 냄비를 나눠 먹은 사인데!”
내 반응을 오해했는지 사내들이 내 어깨에 두툼한 팔을 척척 걸쳤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카엘은 나를 빤히 보다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맥주를 쭉 들이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르카엘과 함께 나왔다.
술기운 오른 뺨에 차가운 밤공기가 닿자 기분이 좋았다.
밤하늘을 보며 세르카엘에게 툭 말했다.
“고마워, 세르카엘.”
“내가 밤을 새운 만큼 네 몸을 내어주기로 한 거나 잊지 말아라.”
세르카엘이 픽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뒤에서 큰소리가 났다.
“지금 그, 그, 그게 무슨 소리요!”
“똑똑한 샌님인 줄 알았더니 이 양반이!”
사내들이 세르카엘에게 달려들었다.
세르카엘은 순식간에 근육지옥형에 처했다.
대흉근이 콧김을 뿜으며 내게 말했다.
“누가 괴롭히면 말하쇼.”
“……으응.”
나는 업계 최고의 광부들이 필요했던 건데, 어쩐지 든든한 덩치들이 생겨버린 것 같다.
뭐, 망나니한테는 그럭저럭 잘 어울릴지도.
* * *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1층 로비에 앉아 있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무거웠다.
아버지가 서늘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 사내놈들한테 다녀온 거냐.”
“네? 아… 우승도 했으니 축하 겸해서요.”
분위기가 더 안 좋아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제르노가 시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뜨거웠다던데.”
“뭐, 뜨겁긴 했지.”
틀린 말은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카인이 왈칵 성을 냈다.
“이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뭐?”
“그러니 더 먹고 싶다는 망언이나 하고 다니지!”
나는 황당한 얼굴로 아카인을 바라봤다.
이젠 하다하다 먹는 걸로 구박하는 거야?
“더 먹는 게 그렇게 잘못이야?”
“니케아르샤 델로시프!”
“스튜가 맛있으면 좀 많이 먹을 수도 있지! 광부들의 음식을 먹는 것도 가문의 체면을 깎는 일이야?”
씩씩거리는데.
“……?”
어쩐지 주변이 지나치게 고요하다.
세 남자의 반응도.
아카인이 고장 난 인형처럼 물었다.
“스, 스튜?”
“그럼 뭘 먹은 줄 알았는데?”
“…….”
“…….”
“……?”
말이 없는 두 형제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늦었다. 들어가 보거라.”
진짜 뭐지?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는 건 현명하지 않았다.
방에 가서 할 일도 있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내 방으로 올라왔다.
“어서 오셔요, 아가씨.”
앨리스가 나를 맞아주는 것을 대충 인사하고 나는 침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들어왔나 보군.]통신석에서 아켈로스 대공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에는 대공가에 방문 요청을 수십 번 넣어도 까였지만, 이제는 통신코드도 아는 사이란 말씀!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거든요.”
[그런데 늦었나?]“잘 풀렸으니 좀 더 어울렸죠.”
[분위기가 좋았나 보군. 그 사내들이랑.]대공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밤에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나는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댔다.
“참, 보내주신 ‘본론’은 잘 받았어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전하께선 제게 원하시는 것 없어요?”
[글쎄.]그는 언제나 그렇다.
회귀 전에도, 지금도 내게 딱히 바라는 게 없다.
딱 하나 내게 바란 것은—
‘나를 구원하는 것.’
저주가 깊어 죽을 지경이 되었으면서도, 자신을 구하는 게 아니라 나를 구하라고 했다.
대체 왜 이 남자는 내게 그러는 걸까.
그때 우린 처음 보는 사이였는데.
“……저주는 좀 어때요?”
페트라가 저주를 약화시킬 순 있어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내 <흥신소> 능력이 저주까지 없앨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진짜야. 누가 날 위해서 개량 페트라를 만들어준 덕분에.]“……치.”
통신석 너머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의외였다.
그는 잘 웃는 남자가 아니었다.
“언제 돌아와요?”
[나와 봐.]“……?”
[달이 예뻐.]“별로 안 예쁘던데요.”
[예쁠 텐데.]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
창백한 달빛이 테라스 문 너머로 쏟아져 내려 내 발을 적셨다.
천천히 그 문을 열었다.
군청 빛 밤하늘에 새하얀 달이 떠 있었다.
주위에 흐붓한 별빛을 베일처럼 두른 채.
그리고.
그 가운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는 이 장면을 또 회귀해도 잊지 못할지도 몰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스칼리온이 입매를 나른히 올리며 미소 지었다.
“거봐. 예쁘지?”
“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의 옆에 걸터앉았다.
테라스 난간에 앉아 올려다본 달은 어쩐지 평소보다 더 반짝거렸다.
보름달도, 초승달도 아니고. 반달을 누가 한입 베어 먹은 것 같은 애매한 모양.
분명 아까 집에 돌아오면서 봤을 땐 예쁘다는 생각도 안 했는데—
“예쁘네요.”
중얼거리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이스칼리온이 달이 아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에 물든 내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새하얗게 빛났다.
그가 나른히 웃었다.
“그래. 예쁘네.”
나는 가만히 그를 보다 미소 지었다.
“그리고 대공님도 예뻐요.”
“……뭐?”
“대공 전하는 낮보다는 밤에 더 예쁘시네요.”
“…….”
이스칼리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그게 재밌어서 나는 히히 웃었다.
‘아, 왜 왔는지 ‘본론’을 물어야 하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궁금했다.
대공저의 보안이 그렇게 쉽게 뚫리는 것도 아닌데.
그에게 묻기 위해 몸을 돌리는데—
“으아?”
난간에 걸터앉아 있던 몸이 삐끗했다.
‘떨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정말이지.”
커다란 품이 날 끌어안았다.
아주 단단하고 뜨거운 품.
견고해서 절대 나를 떨어트리지 않을 것 같은.
“넌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귓가에 더운 숨결이 파고들었다.
낮은 목소리가 꼭 위스키를 넣은 초콜릿 같았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끌어안겨 밭은 숨을 내쉬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
선명히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아주 가까이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빛이 부서진 뺨과 턱.
살짝 찌푸린 눈매.
어쩔 수 없다는 듯 올라간 입꼬리.
어쩐지.
하려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내려갔다.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
.
그 시각, 1층 로비 라운지.
니케아르샤가 떠난 뒤로도 세 남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약간 반성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며, 린첼 자작은 내심 흐뭇함을 느꼈다.
‘그래, 아가씨가 망나니가 아니듯이 도련님들과 대공님도 멀쩡한…….’
“기분이 더러운데.”
멀쩡하다고 생각하자마자 아카인이 말했다.
제르노 역시 미간을 일그러트린 채 중얼거렸다.
“짜증 나게 불쾌하군.”
‘아니, 다 오해란 걸 알게 되었으면서 왜 또 기분이 더러우신데요!’
린첼 자작이 서둘러 대공을 살폈다.
두 아들들보다는 관록 있는 대공이 훨씬 나으니까.
그런데.
“집사장, 대공저 보안을 다시 점검해 봐라.”
“예? 어쩐 연유이신지.”
집사장이 당황한 얼굴로 대공을 바라보았다.
이 야밤에 갑자기 보안 점검이라니.
“왠지 거슬려.”
“…….”
린첼 자작이 서둘러 나섰다.
“또 왜 그러십니까! 지금 이 밤에 저택 보안을 뒤집어엎으면 아가씨께서 쉬지도 못 할 겁니다. 외출로 지쳤을 텐데!”
“…….”
“아가씨와 그 사내들 사이도 오해하지 않으셨습니까. 소란에 아가씨께서 의아해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자작의 딸처럼 야반도주하겠군.”
“크윽!”
린첼 자작이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보안 건은 없던 것으로 하지.”
“예, 주인님.”
집사장이 린첼 자작의 희생에 탄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아카인의 곁으로 한 여성이 다가왔다.
아카인의 보좌였다.
“도련님, 여기 기사단 보고서입니다.”
“그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아, 그 녀석 때문에.”
아카인이 그렇게 칭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보좌가 빙그레 웃었다.
“에이, 요즘 아가씨께서도 많이 좋아지셨잖아요.”
“뭐…….”
“아가씨 마음을 살피는 건 쉽지 않겠죠. 아무래도 대공저엔 여성분이 없으니까.”
안주인의 빈자리.
아카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숙였다.
보좌가 얼른 그를 위로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한번 아가씨를 살펴볼게요.”
* * *
며칠 후.
“오늘도 정말 완벽하세요.”
“네! 모두 우리 아가씨 앞에 무릎 꿇을 거예요!”
앨리스와 하녀들이 나를 감상하며 황홀하게 말했다.
“다 좋은데 나는 싸우러 가는 게 아니야.”
쟤네는 내가 맨날 쌈박질하고 다니는 줄 아나.
나는 한숨을 쉰 뒤 방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카인의 보좌관이 나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