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8)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8화(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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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h2 style=”text-align: center; font-size: 27px !important;” data-p-id=”2″ data-original-font-size=”30″>
<p>8화</p></h2>
<p></p>
<p></p>
<p></p>
<p></p>
<p>* * *</p>
<p></p>
<p>차갑게 굳은 레널드의 얼굴은 아까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p>
<p>배신의 상처를 한순간에 완전히 갈무리한 것이다.</p>
<p>제국의 ‘2대 상단’이라 불리는 페리웰의 젊은 실세.</p>
<p>교섭 테이블의 지휘자.</p>
<p>그 진면목이 드러났다.</p>
<p></p>
<p>“엠마가 유부녀란 걸 숨긴 채, 우연인 척 내게 접근시킨 것. 이것부터 설명하겠습니까.”</p>
<p>“레널드 씨, 저는….”</p>
<p>“의도가 없었다고 하지 마십시오. 이걸 이용해 대공가에 공을 세우려 했잖습니까. 영애한테 힘을 실어주면 엠마를 지켜주겠다고!”</p>
<p>“…!”</p>
<p></p>
<p>레널드의 폭로에 회의장 안이 웅성거렸다.</p>
<p></p>
<p>“심지어 엠마는 델로시프 공녀의 최측근인 전담 하녀. 직계의 곁에 사람을 붙이다니.”</p>
<p></p>
<p>레널드의 폭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p>
<p></p>
<p>“작정하고 날 속인 것으로 모자라, 본가에 첩자를 심은 것 아닙니까!”</p>
<p>“……!”</p>
<p>“……!!”</p>
<p></p>
<p>본가에 첩자를 심었다.</p>
<p>이건 사안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지는 말이었다.</p>
<p>미카린은 다급히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p>
<p>얼음 동상처럼 무표정한 가신들.</p>
<p>그리고….</p>
<p></p>
<p>“……!”</p>
<p></p>
<p>쿵!</p>
<p>제르노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가슴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p>
<p>미카린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p>
<p></p>
<p>“첩자라니요. 저는 절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요. 믿어주세요.”</p>
<p></p>
<p>그러나 얼어붙은 분위기는 여전했다.</p>
<p>미카린이 “아!” 하고 말했다.</p>
<p></p>
<p>“분명 서류가 있을 거예요! 엠마가 하녀로 지원할 때 제출한 서류 말이에요.”</p>
<p></p>
<p>그 말에 눈치 빠른 집사가 곧바로 엠마의 지원 서류를 가져왔다.</p>
<p>미카린이 화색을 띤 얼굴로 외쳤다.</p>
<p></p>
<p>“보세요! 여기 신분증명서에 ‘하벨록 출신’이라고 적혀 있어요. 엠마가 제 관할지 출신이면 언니의 하녀로 지원조차 못 했을걸요.”</p>
<p></p>
<p>제르노가 표정 없이 물었다.</p>
<p></p>
<p>“위조 여부는?”</p>
<p>“검증을 마친 서류입니다. 신분증명서의 직인도 니케아르샤 아가씨 것이 확실합니다.”</p>
<p></p>
<p>집사의 확인에 미카린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p>
<p>아무리 검사해도 진짜라고 나올 것이다.</p>
<p></p>
<p>‘내가 언니의 직인으로 직접 찍은 거니까!’</p>
<p></p>
<p>미카린은 때를 놓치지 않고 억울한 얼굴로 결백을 호소했다.</p>
<p></p>
<p>“아직도 절 못 믿으시겠다면… 제 관할지의 서류를 전부 조사해 보셔도 좋아요.”</p>
<p></p>
<p>어차피 엠마에 관한 서류는 전부 정리를 끝냈다.</p>
<p>엠마 남편의 서류까지 새로 만든 상황.</p>
<p>엠마가 엘우드 출신이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p>
<p></p>
<p>‘조사하면 오히려 좋지. 니케아르샤 말이 틀리다는 반증이 되어 줄 테니까!’</p>
<p></p>
<p>미카린은 니케아르샤를 바라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p>
<p></p>
<p>‘너무 섣불렀어요, 언니.’</p>
<p></p>
<p>계략 같은 거 써본 적도 없고 평생 솔직하게만 살아온 니케아르샤.</p>
<p>당연히 제 상대가 못 된다.</p>
<p></p>
<p>‘나였으면 이렇게 생각 없이 일 벌이기 전에 내 관할지의 서류부터 몰래 털어봤을 텐데.’</p>
<p></p>
<p>엠마의 출생신고서나 신분증명서 같은 것들 말이다.</p>
<p></p>
<p>‘하다못해 엠마의 지원 서류라도 위조해서 바꿔치기 해놓지.’</p>
<p></p>
<p>그렇다면 집사가 서류를 가져왔을 때 몰아갈 수 있었을 텐데.</p>
<p>여기 내 직인이 위조된 흔적을 봐라!</p>
<p>엠마가 내 관할민이 아니라는 증거다!</p>
<p>—하며.</p>
<p></p>
<p>‘난 역시 언니가 너무 좋아요. 이렇게 멍청해서.’</p>
<p></p>
<p>미카린은 상처받은 얼굴로 니케아르샤를 향해 입을 열었다.</p>
<p></p>
<p>“언니…. 이리도 ‘확실한 물증’이 있는데 왜 엠마가 제 관할지 출신이라고 하신 거예요?”</p>
<p>“…엠마가 어디 출신이든 상관없어. 네 관할지 출신이어도 나한테 충성하는 하녀니까. 애초에 난 결혼 허락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p>
<p></p>
<p>‘진짜 바보인가?’</p>
<p></p>
<p>미카린은 순간 표정 관리를 못 할 뻔했다.</p>
<p>기껏 레널드가 ‘본가에 첩자를 심었다’며 일을 크게 키워줬다.</p>
<p>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넘어간다고?</p>
<p>하긴, 생각해 보면 니케아르샤는 처음부터 결혼과 이혼 이야기만 했다.</p>
<p></p>
<p>‘딱 그 정도가 언니의 수준이라는 거겠죠. 불쌍하게도.’</p>
<p></p>
<p>“미카린, 너도 잘못했어. 어떻게 유부녀를 소개시켜 줘?”</p>
<p></p>
<p>아니나 다를까, 지금도 엠마가 유부녀라는 것만 걸고넘어지고 있다.</p>
<p>가신들도 니케아르샤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p>
<p></p>
<p>‘아아, 제르노 오라버니는 또 얼마나 실망하셨을까.’</p>
<p></p>
<p>가슴이 너무 아팠다.</p>
<p></p>
<p>‘하지만 언니가 날 이렇게 도와주는데 기꺼이 장단 맞춰드려야죠.’</p>
<p></p>
<p>미카린은 한숨을 푹 쉬며 속상한 얼굴로 말했다.</p>
<p></p>
<p>“저도 엠마가 유부녀인 줄은 몰랐어요.”</p>
<p></p>
<p>그 순간.</p>
<p>니케아르샤의 표정이 바뀌었다.</p>
<p>미카린이 ‘뭐지?’ 하며 미간을 찌푸린 찰나.</p>
<p></p>
<p>“아~ 그러니까, 엠마가 유부녀인 건 맞다는 거네?”</p>
<p>“네…?”</p>
<p>“거기선 ‘엠마는 유부녀가 아니에요’라고 했어야지, 미카린.”</p>
<p></p>
<p>니케아르샤가 생긋 웃으며 엠마의 신분증명서를 가리켰다.</p>
<p></p>
<p>“네가 ‘확실한 물증’이라고 주장한 이 서류에는 엠마가 미혼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실이랑 헷갈렸니?”</p>
<p>“……!”</p>
<p></p>
<p>‘내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p>
<p></p>
<p>순간적으로 방심해 버렸다.</p>
<p>제르노와 가신들 앞에서 첩자에 대해 추궁당해 극심한 압박을 받았다가 벗어나 긴장이 확 풀린 탓에.</p>
<p>아니, 아니 그보다—</p>
<p></p>
<p>‘니케아르샤가 머리를 쓴다고?’</p>
<p></p>
<p>설마 함정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p>
<p>니케아르샤의 머리는 예쁘장한 장식품일 뿐인데!</p>
<p>그 예쁘장한 장식품이 빙긋 웃었다.</p>
<p></p>
<p>“헷갈려하는 걸 보니 여기 이 ‘확실한 물증’이 네가 알고 있는 사실이랑 좀 다른가 봐?”</p>
<p>“그, 그건….”</p>
<p></p>
<p>그때,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제르노가 입을 열었다.</p>
<p></p>
<p>“믿을 수 없겠군.”</p>
<p></p>
<p>미카린은 충격받은 얼굴로 제르노를 바라보았다.</p>
<p></p>
<p>‘여기서 니케아르샤 손을 들어준다고…?’</p>
<p></p>
<p>제르노의 한마디는 ‘확실한 물증’에 내린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p>
<p>니케아르샤가 명령했다.</p>
<p></p>
<p>“엠마 데려와.”</p>
<p></p>
<p>* * *</p>
<p></p>
<p>집무실로 오라는 전언에 엠마는 기고만장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p>
<p>애인인 레널드가 델로시프에 엄청난 공을 세운 상황이다.</p>
<p>뒷배인 미카린 역시 그 공을 함께 나누고 있을 터.</p>
<p></p>
<p>‘니케아르샤 아가씨야 소공작님께 또 혼나고 있겠지.’</p>
<p></p>
<p>레널드가 분명 자신의 복수를 해줬을 것이다.</p>
<p></p>
<p>‘흥, 그러게 나한테 잘했어야지. 아깐 왜 갑자기 혼낸 거야?’</p>
<p></p>
<p>엠마는 턱 끝을 치켜올린 채 집무실로 들어갔다.</p>
<p></p>
<p>“니케아르샤 아가씨, 무슨 일이세요?”</p>
<p></p>
<p>그런데 분위기가 뭔가 묘했다.</p>
<p>니케아르샤는 언제나처럼 오만한 얼굴인 데다 미카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p>
<p></p>
<p>‘레널드는 왜 나를….’</p>
<p></p>
<p>엠마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p>
<p>니케아르샤가 폭탄을 던진 것이다.</p>
<p></p>
<p>“아, 엠마 네 남편 말이야.”</p>
<p>“…네?”</p>
<p></p>
<p>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p>
<p>엠마는 애써 웃었다.</p>
<p></p>
<p>“하하, 아가씨. 저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요.”</p>
<p>“그건 첩자로 내 곁에 있기 위한 설정이고. 네 고향인 엘우드에 있는 진짜 네 남편 말이야.”</p>
<p>“처, 첩자라니요! 아가씨, 저 엠마예요. 아가씨의 충실한 심복.”</p>
<p></p>
<p>엠마가 재빠르게 무릎을 꿇었다.</p>
<p></p>
<p>“아가씨가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했잖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러시는 건가요?”</p>
<p>“…….”</p>
<p>“다른 하녀들은 아가씨의 패악을 견디지 못하고 피했을 때도 저만은 아가씨의 곁에 있었어요.”</p>
<p></p>
<p>무릎 꿇은 자세와 달리, 엠마의 말은 니케아르샤를 탓하고 있었다.</p>
<p></p>
<p>‘어차피 아무도 아가씨의 말 따위 믿지 않을걸?’</p>
<p></p>
<p>니케아르샤의 평판은 밑바닥.</p>
<p>가신들 중 니케아르샤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p>
<p></p>
<p>‘친오빠인 소공작님이 제일 안 믿을 텐데, 뭐.’</p>
<p></p>
<p>델로시프의 사랑을 듬뿍 받는 미카린이 제 뒷배다.</p>
<p>거기에 제 애인은 지금 델로시프를 살릴 아키탄을 가져왔다.</p>
<p>아까 자신을 혼낸 니케아르샤가 괘씸하기도 하고, 이렇게 된 이상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p>
<p></p>
<p>“이렇게 충심을 바쳤던 저를 갑자기 첩자라고 모함하시다니요? 설마… 레널드와 제 사이를 알게 되셨나요? 그래서 헤어지게 하려고 수 쓰는 거예요? 그렇게 일을 다 망쳐버리려고—”</p>
<p>“아니에요!”</p>
<p></p>
<p>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집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p>
<p>책 심부름 하녀였다.</p>
<p></p>
<p>“니케아르샤 아가씨가 패악을 부려서 견디지 못한 게 아니에요. 아가씨께서 제게 일을 맡기려고 해도 엠마가 사사건건 끼어들어서 방해했어요. 아가씨 머리도 못 빗게 했다구요!”</p>
<p>“내, 내가 언제…!”</p>
<p>“얼마 전 파티에서 부러진 구두도 엠마가 굳이 바꿔 신긴 거예요. 아카인 도련님이 아니었다면 큰 망신을 당할 뻔했어요.”</p>
<p></p>
<p>갑작스러운 증언에 니케아르샤는 깜짝 놀랐다.</p>
<p></p>
<p>‘쟤 나 무서워하는 거 아니었나?’</p>
<p></p>
<p>“기묘하게 엠마의 손을 타면 아가씨한테 문제가 생겨요. 아가씨의 총애를 받는 엠마가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어요.”</p>
<p></p>
<p>하녀가 번쩍 고개를 들고 엠마를 노려보았다.</p>
<p></p>
<p>“첩자니까!”</p>
<p>“모함이에요! 저를 몰아내고 아가씨의 측근 자리를 꿰차려고…!”</p>
<p></p>
<p>엠마가 고개를 홱 돌려 니케아르샤를 다그쳤다.</p>
<p></p>
<p>“아가씨! 그간 제가 얼마나 아가씨께 잘 해드렸는지 생각해 보세요.”</p>
<p></p>
<p>모두의 시선이 니케아르샤를 향했다.</p>
<p>니케아르샤는 짜증 난 얼굴로 말했다.</p>
<p></p>
<p>“아니, 네 남편 왔다고.”</p>
<p>“……?!”</p>
<p>“아까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사람 말 좀 들어.”</p>
<p></p>
<p>니케아르샤가 고갯짓하자 문이 열렸다.</p>
<p>그곳엔 엠마의 남편, 발릭이 시뻘게진 얼굴로 서 있었다.</p>
<p></p>
<p>“당신 제정신이야? 미혼인 척하고 남자나 후리고 다녀?”</p>
<p>“아, 아니, 여보….”</p>
<p>“여보라니? 당신 남편 없다며?!”</p>
<p></p>
<p>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p>
<p></p>
<p>* * *</p>
<p></p>
<p>제르노의 측근들은 언제 어느 때나 무게감 넘치게 행동했다.</p>
<p>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p>
<p>집무실을 나오자마자 그들은 서로 입을 여느라 바빴다.</p>
<p></p>
<p>“와, 물건 팔러 와서 갑자기 결혼 허락해달라고 할 줄이야….”</p>
<p>“이혼부터 해야 한다고 했을 땐 깜짝 놀랐다니까? 반전이 장난 아냐.”</p>
<p>“어후, 진짜 남편까지 등장했을 땐 숨 쉬는 걸 까먹었잖아.”</p>
<p></p>
<p>느닷없이 펼쳐진 막장 불륜극.</p>
<p>이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직관한 흥분감이 이들을 들뜨게 한 것이다.</p>
<p>델로시프 대공가— 그것도 소공작 제르노를 보필하는 것은 분명 보람 넘치는 일이었지만….</p>
<p></p>
<p>‘노잼이긴 하지.’</p>
<p>‘일하면서 웃을 일 하나 없고.’</p>
<p>‘웃을 일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웃으면 짤릴 것 같은 분위기니까.’</p>
<p></p>
<p>“이 노잼 직장에 끝없이 잼얘를 주다니.”</p>
<p>“대공가에 이런 복지가 있을 줄이야.”</p>
<p>“니케아르샤 아가씨 의외로—”</p>
<p></p>
<p>쾅.</p>
<p>듣다 못 한 바렌토 자작이 직접 문을 닫았다.</p>
<p></p>
<p>‘떠들 거면 아예 멀리서 떠들 것이지. 요즘 엠지(Map Zero 정해진 길을 벗어나 인생의 지도 없이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는 세대)들은….’</p>
<p></p>
<p>물론 심정은 이해한다.</p>
<p>집무실 안에서 입 꾹 다물고 있었던 것만 해도 엄청난 인내심이다.</p>
<p>다만 제르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p>
<p></p>
<p>“하하,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입니다.”</p>
<p>“그 짜증 나는 막장 치정극으로 끝난 게 잘 해결된 건가.”</p>
<p></p>
<p>제르노는 막장 취향이 아니었다.</p>
<p>신성한 일터에서 강제 직관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p>
<p></p>
<p>“그래도 아가씨의 새로운 면모를 또 발견하지 않았습니까.”</p>
<p>“…….”</p>
<p>“첩자 문제를 갑자기 유부녀 치정극으로 격하시켰을 땐 저도 아차 했습니다만, 그마저도 아가씨의 계획이었죠.”</p>
<p>“…….”</p>
<p>“베아르를 이용한 계획부터 시작해 이번 일까지. 아가씨의 성장세가 남다릅니다.”</p>
<p>“…그때 인사권을 달라고 했던 것도 하녀가 첩자인 것을 알아채서인 게 맞았군.”</p>
<p></p>
<p>자신이 빼놓은 칭찬을 굳이 덧붙이는 모습에 바렌토 자작은 빙그레 웃었다.</p>
<p></p>
<p>“영민하신 분입니다. 역시 각하의 동생분이십니다.”</p>
<p>“…아직 멀었다.”</p>
<p></p>
<p>그렇게 말하는 제르노의 입매는 아까에 비해 훨씬 풀어져 있었다.</p>
<p></p>
<p>“이제 보니 아가씨께서 인망도 있으시지 않습니까. 하녀가 먼저 나서서 아가씨의 역성을 들었을 땐 깜짝 놀랐습니다.”</p>
<p>“하녀가 주인을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p>
<p>“오늘 새로운 인재와도 인연을 만들었지 않습니까.”</p>
<p></p>
<p>그 말에 제르노의 눈동자가 깊어졌다.</p>
<p></p>
<p>“레널드 파비안이라면 이미 소문이 자자합니다. 페리웰의 젊은 실세라고.”</p>
<p>“그놈이 니케를 따라갔지.”</p>
<p>“네, 졸졸 따라가더군요. 어렸을 때 아가씨가 각하의 뒤를 따라다니던 것처럼.”</p>
<p>“……헛소리.”</p>
<p></p>
<p>제르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p>
<p>그러나 바렌토 자작의 눈에는 보였다.</p>
<p>돌린 고개 틈으로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p>
<p>제르노가 다시 고개를 바로 했을 때, 그 찰나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p>
<p></p>
<p>“아직 남은 일이 있지.”</p>
<p></p>
<p>제르노의 시선에 집사가 미카린을 데려왔다.</p>
<p></p>
<p>“오, 오라버니….”</p>
<p></p>
<p>집무실에 들어온 미카린이 애처로운 눈으로 제르노를 바라보았다.</p>
<p></p>
<p>“다 제 불찰이고 제 잘못이에요. 저를 벌해주세요…!”</p>
<p></p>
<p>쿵!</p>
<p>미카린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찧듯이 꿇었다.</p>
<p></p>
<p>“하지만 이것만큼은 믿어주세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엠마의 정체 같은 거, 절대…!”</p>
<p>“…….”</p>
<p>“제가 얼마나 본가에 헌신적이었는지 아시잖아요. 사교계에서 언니의 손과 발이 되어 영애들과의 사이를 중재하고….”</p>
<p></p>
<p>미카린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p>
<p>제르노의 붉은 눈동자가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바짝 움츠러들었다.</p>
<p></p>
<p>“아, 앞으로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p>
<p>“미카린, 넌 나를 실망시킨 적 없다.”</p>
<p>“……!”</p>
<p>“앞으로도 네가 날 실망시킬 일은 없겠지.”</p>
<p></p>
<p>콩닥콩닥.</p>
<p>미카린의 심장이 뛰었다.</p>
<p>제르노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타고난 지배자.</p>
<p>워낙 정 없는 성격이라 모든 이들에게 칼같이 굴었다.</p>
<p></p>
<p>‘그런데도 나에게만은 항상 관대하셨어.’</p>
<p></p>
<p>친동생인 니케아르샤에게도 냉정하게 굴면서, 미카린에겐 크게 화낸 적조차 없다.</p>
<p>그 망나니와 달리 자신은 언제나 사랑스러운 동생이었으니까.</p>
<p></p>
<p>“오라버니이….”</p>
<p></p>
<p>미카린이 귀엽게 말꼬리를 끌며 고개를 들었다.</p>
<p>그리고 제르노와 눈이 마주친 순간.</p>
<p></p>
<p>“……!!!”</p>
<p></p>
<p>미카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