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80)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80화(80/177)
앨리스가 후다닥 가서 트레이를 홱 낚아채듯 받아 내게 가져왔다.
“초대장이 정말 많이 오네요, 아가씨!”
“그러게.”
“그것도 아가씨 이름으로요.”
앨리스가 싱글벙글 웃었다.
왜 기뻐하는지 알 거 같아서 픽 웃음이 나왔다.
‘개인적인 친분이 꽤 많이 생기긴 했지.’
앨리스가 집사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이제 나가봐.”
“아, 네.”
집사가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갔다.
뱃지를 보니 3등 집사라 내 측근 하녀인 앨리스가 훨씬 상급자였다.
나는 쭈욱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는 중정에서 마실래. 초대장도 볼 겸.”
“네, 아가씨.”
앨리스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 * *
복숭아 절임이 들어간 아이스티는 완벽했다.
나는 아이스티를 마시며 초대장을 살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알리타 부인? 2황비의 측근인데. 루베란 부인은 3황비의 측근이고…….’
나는 다시 초대장을 확인했다.
대공가 이름으로 보낸 게 아니라, 나한테 보낸 게 맞다.
‘새벽 다과회에 참석해서 새벽별로 선택 받은 효과인가.’
최근 각성자회에서 우승한 것도 한 몫 했을 거다.
사실, 내 또래의 고위 귀족가 영애들은 각각 황비의 측근들과 어느 정도 연을 맺은 상태다.
여태 이런 개인적인 연락을 한 번도 못 받은 건—
‘—내가 하도 망나니라 소문 나서.’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초대하겠어.
괜히 초대해서 델로시프 대공가와 황가 사이에 분란을 만드느니.
그냥 평화롭게 얽히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거기엔 미카린의 공이 컸지.’
걔가 부지런히 내 악담을 퍼트리고 다닌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다른 권력가들과 관계를 맺었다면, 결혼 후 미카린이 그렇게까지 활개를 칠 수 있었을까?
회귀 전에는 불륜파이브한테만 둘러싸여 있느라 인간 관계가 너무 좁았다.
‘이번에는 권력가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입질이 올 줄이야.’
나야 너무 좋지.
나는 킥킥 웃었다.
그리고.
‘그 권력자들 가운데 이스칼리온에게 저주를 건 사람도 있을 테니까.’
힘도 쌓으면서 파트너도 돕고.
딱이다.
룰루랄라 다음 초대장을 넘기는데.
‘라파엘?’
반사적으로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나는 초대장을 열어보지도 않고 앨리스에게 건넸다.
“이거 불태우고 와.”
“세상에! 아가씨께서 기분 나빠하실 초대장은 거르라고 내가 말했는데…!”
앨리스가 씩씩거리며 초대장을 들고 떠났다.
나는 남은 초대장을 좀 더 살펴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파엘 놈 때문에 초대장 볼 마음도 사라졌고 가서 일이나 할까.’
중정을 나서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아가씨. 초대장 받으신 거예요?”
돌아보니 아카인의 보좌관, 쟈넷이 서 있었다.
“어디에 참석하실진 결정하셨나요? 제가 좀 봐 드릴게요.”
이건… 진짜 선 넘는데?
“네가 뭔데?”
“아…. 저는 그저 아가씨 오라버니의 보좌니까—”
“그러니까.”
나는 삐딱하게 쟈넷을 올려다봤다.
“아카인의 보좌관이 뭔데 공녀인 나의 사교계 참석 여부를 결정하냐고.”
“……!”
쟈넷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저는 아가씨를 돕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밖에서 또 소란을 피우면 오라버니가 속상해하시니까…….”
저번엔 아카인이 심란하다더니, 이번에는 속상할 거라고?
예전의 나였다면 이 말을 듣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카인이 내 외출 건으로 엄청 화를 냈구나.
보좌관이란 사람이 나한테 몇 번이나 와서 뭐라 할 정도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제는 아냐.’
제르노가 나를 탓하려고 쳐다본 게 아니었듯이, 아카인도…….
그러니까.
“아카인이 그랬어?”
“네?”
“아카인이 나 때문에 속상하고 심란하다고 그랬냐고.”
쟈넷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카인을 짝사랑하는 것까진 좋아.
하지만 선을 넘으면 안 되지.
“네가 아카인의 부인도, 내 올케도 아닌데 왜 은근슬쩍 안주인 행세냐고.”
“아, 안주인 행세라니요.”
“내 외출에 대해 훈계하고, 사교계 참석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안주인 행세가 아니면 뭐지?”
나는 천천히 쟈넷에게 다가가 눈을 똑바로 맞췄다.
그리고 조곤조곤 말해주었다.
“주제 파악 좀 해.”
“아, 아가씨…….”
“델로시프의 개망나니가 빡돌아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
나는 창백하게 굳은 쟈넷을 그대로 지나쳐 걸었다.
* * *
중정에 혼자 남은 쟈넷은 주먹을 콱 틀어쥐었다.
‘아카인의 동생이니 예쁘게 봐주려고 했는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가르치듯 말하는 태도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 주는 사람한테 이렇게 패악을 부리니 망나니 소리를 듣는 거야.’
쟈넷은 입술을 짓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중정을 지나자 연무장에서 수련 중인 아카인의 모습이 보였다.
웃통을 벗은 상태라 모양 좋게 잡힌 근육이 움직이는 게 잘 보였다.
쟈넷은 연무장 한 켠에 서서 그 모습을 감상했다.
땀이 갈라진 복근을 따라 흘러내리고 고이길 반복했다.
“왜.”
아카인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아카인 님.”
“용건은.”
“일전의 관할지 세율 조정 보고입니다.”
아카인은 연무장의 벤치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가 서류를 넘길 때마다 견고한 견갑골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흠, 세율을 낮춰서 관리 놈들 반발이 있었을 텐데 잘 처리했군.”
“얼굴 보고 이야기하니 잘 협조해 주더군요.”
“수고했어.”
그 말에 쟈넷이 미소 지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저 아카인 님.”
“왜.”
“아가씨와 이야기를 해봤는데, 많이 화가 나셨더라고요.”
대강 서류를 넘기던 아카인이 고개를 들어 쟈넷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이 왜?”
“아카인 님이 걱정하신다는 요지의 말씀을 드렸는데 그러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
“주제넘다고 하셨어요.”
난감한 듯 말하며 쟈넷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오라버니가 심란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주제 파악 좀 해.”
모두 니케아르샤가 했던 말이다.
아카인이 아니라, 쟈넷에게 했던 말이지만.
상관없다.
‘나한테 하는 말이 곧 아카인한테 하는 말이니까.’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 않는가?
아카인 역시 자신처럼 속이 상해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걔가 그랬다고?”
“네.”
쟈넷은 너무 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 아카인과 나는 너무 잘 맞아.’
그렇게 생각하는데—
“난 또 뭐라고.”
“……네?”
“그냥 평범한 내 동생이네. 어디 아픈 건 아닌 모양이야.”
“…….”
아카인이 픽 웃었다.
쟈넷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용건은 그게 끝?”
“……네.”
“그럼 가 봐.”
쟈넷은 고개를 숙인 후 걸음을 옮겼다.
‘나한테는 용건만 딱딱 묻고 없으면 가라고 하면서!’
심지어 니케아르샤 이야기를 꺼내기 전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쟈넷의 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벌컥!
거칠게 캐비닛 문을 연 쟈넷이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깊숙한 곳에서 작은 주머니가 나왔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변할 거예요, 내 사랑.’
쟈넷은 주머니를 콱 틀어쥔 채 히죽 웃었다.
품에 주머니를 잘 숨긴 뒤, 그녀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쟈넷이 찾던 남자가 나타났다.
“쟈넷?”
“이리 와.”
쟈넷이 남자의 팔을 끌어당겼다.
창고 문을 벌컥 열고 남자를 강하게 밀쳤다.
쿵!
벽에 밀쳐진 남자가 당황한 눈으로 쟈넷을 바라봤다.
“지금 여기서? 이러다 들키면…….”
“싫어?”
쟈넷이 도발적으로 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
사내가 쟈넷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음…!”
우악스레 입술이 겹쳤다.
쟈넷은 사내의 목을 끌어안았다.
생긴 것도, 능력도 아카인과 비교도 되지 않는 못생긴 남자.
근육이 탄탄히 자리잡힌 아카인과 달리, 비쩍 골은 몸은 남성성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하, 쟈넷.”
아카인과 다르게 자신을 뜨겁게 원하는 모습이 만족감을 주었다.
“후후, 직장에서 이래도 돼?”
“몰라.”
“그것도 네 아내가 있는 직장이잖아.”
“그래서 오히려 더 짜릿한데?”
“이 변태.”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너야.”
그 말에 쟈넷이 입술을 쭉 내밀며 눈을 깜빡였다.
“네 아내는?”
“그 여편네는 지가 잘난 줄로만 알아. 내가 여자랑 결혼한 건지 엄마랑 결혼한 건지!”
“엄마라니, 너무해!”
까르르, 쟈넷이 재밌다며 웃었다.
“엄마보다 더하다니까? 큰엄마야.”
“흐으응, 직장까지 구해준 능력 있는 큰엄마를 배신하다니. 나쁜 남자네~.”
쟈넷이 남자를 바짝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난 나쁜 남자가 싫지 않더라.”
“아아…….”
남자가 쟈넷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헐떡거리는 숨 사이로 쟈넷이 재차 속삭였다.
“내 말, 들어줄 거지? 응?”
그녀의 말에 묘하게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뭐든, 하… 들어줄게.”
“그럼 아카인의 차에 이걸 넣어.”
쟈넷이 남자의 손에 작은 주머니를 쥐여주었다.
미량의 독이 들어있는 주머니였다.
죽을 정도는 아니다.
그냥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릴 정도의 독.
쟈넷은 남자의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였다.
“내 말 뭐든 들어준다고 했잖아. 그치? 아카인의 차에 독을 넣어.”
“아카인의 차에 독을…….”
“이건 너를 위한 거야.”
“나를…… 위한 거?”
“내가 아카인의 아이를 임신해 봐.”
쟈넷이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는 듯 몽롱한 눈으로 말했다.
“내 인생이 피면 자기도 든든한 뒷배가 생기는 거라고.”
“뒷배…….”
“능력 좋은 아내 두면 뭐 해. 자기를 말단 집사 자리에 처박아두는데.”
“…….”
“더 이상 큰엄마한테 매달릴 필요도 없어.”
쟈넷의 목소리는 꼭 뱀처럼 남자의 머릿속을 휘감았다.
“그러니까 내일 밤, 아카인의 차에 독을 넣어.”
“응…….”
쟈넷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일은 아카인을 제외한 대공 일가가 모두 외출하는 날.
자신을 위해 준비된 날이다.
‘내가 아카인의 아이를 임신하기만 해봐.’
바로 그 건방진 공녀의 콧대부터 콱 꺾어줄 것이다.
10살 넘게 많은 어른한테 따박따박 안주인이냐고 묻는 얼굴이 그렇게 버릇없을 수 없었다.
‘그 버르장머리 내가 고쳐줄게. 델로시프의 안주인이 되어서!’
킥킥.
쟈넷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웃었다.
* * *
다음 날.
아카인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로비에 서서 뚱한 얼굴로 가족들을 노려봤다.
“왜 나만 집을 지켜야 하는 거지.”
“관할지를 관리하려면 그 책임도 짊어져야 한다.”
제르노의 말에 아카인은 더 미간을 찌푸렸다.
일찍이 관할지 관련 사항을 다 처리해 놓았을 형님이야 그렇다 쳐도.
“니케, 너는.”
“응?”
“너도 관할지를 다스리는 지주로서 책임을 짊어져야 할 거 아니야.”
“나는 레널드라는 아주 유능하고 대단한 보좌관을 둬서. 기한 한참 전에 일을 끝냈더라고.”
아카인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니케의 옆에서 싱글싱글 웃던 그 인상 좋은 놈을 생각하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
“오라버니가 언제부터 파티 참석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원래 귀찮아했잖아.”
“…….”
“아카인.”
델로시프 대공이 둘째 아들을 불렀다.
아카인은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했다.
“문제없게 잘 처리할 거라 믿는다.”
“……예.”
결국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열심히 일이나 해보자고 결심하는데.
“니케, 내 손을 잡아라.”
“니케, 손을 이리로.”
아버지와 형이 동시에 니케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차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려는 것이다.
‘나만 뭐냐고…!’
왠지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 * *
결국 아카인은 집무실에 처박혔다.
니케아르샤가,
“가문의 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라버니라고 부르고 싶지 않네.”
—라고 꼴에 귀여운 투정을 부렸기 때문이다.
‘참나. 걔도 틱틱거리는 척 재롱부린단 말이야.’
니케아르샤가 들었다면 기겁했을 생각이었다.
‘뭐, 일단 걔가 ‘부탁’한 것도 있으니까. 어차피 집에 있을 생각이었지만.’
아카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서류를 넘겼다.
“아카인 님, 여기도 사인 부탁드립니다.”
쟈넷이 서류를 내밀었다.
“옆에 둬.”
“네.”
고개를 끄덕인 쟈넷이 서류를 옆에 놓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도 오늘만 넘기면 바쁜 일이 끝나네요.”
“…….”
“렐리아 아케이드에 새로운 초콜릿 가게가 생겼는데, 봉봉을 정말 잘 만든대요.”
“그래서.”
아카인이 인상을 찌푸린 채 쟈넷을 쳐다봤다.
붉은 눈동자엔 짜증이 짙게 배어 있었다.
“아, 저는, 그저…….”
함께 일한 지 몇 년이나 되었는데도, 이럴 때면 숨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카인은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맹수 같은 남자였다.
그래서 위험하고,
‘그래서 더 갖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