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Who Accidentally Stole Their Hearts RAW novel - Chapter (85)
악녀인데 하트 받아버렸다 86화(85/177)
미치겠다.
안 보려고 해도 자꾸만 눈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하, 진짜 왜 이렇게 더운 거야.’
호수 연회는 날이 좋은 날을 골라서 열리긴 한다.
택일을 잘했는지 햇볕이 엄청 강했다.
그래서 자꾸만 뺨이 뜨거워졌다.
“왜 그래?”
귓가에 울린 이스칼리온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가 내게로 살짝 몸을 기울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임에 따라 안 그래도 단추가 다 뜯어진 셔츠가 더 벌어졌다.
대흉근 아래 옆구리 쪽 전거근이 쫙 갈라진 게 다 보일 정도로.
‘으아아아……!’
눈앞이 팽글팽글 돌았다.
형제가 둘이나 있어서 아예 상의 탈의한 남자 모습을 몇 번이나 봤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
“공녀?”
부름에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이스칼리온이 약간 난감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런 표정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데, 어쩐지 손바닥이 뜨뜻했다.
‘뭐지?’하고 고개를 내린 순간.
“……?!”
내 손에 이스칼리온의 복근이 찰싹 붙어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스칼리온의 복근에 내 손이 찰싹 붙어 있었다.
“부, 부, 부스러기가 다 묻었잖아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털었다.
부스러기를 털어주는 척.
샥샥.
“아, 많이도 묻었네.”
열심히 연기를 했지만, 이스칼리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겠지! 내가 봐도 안 먹힐 핑계인데!’
왜 갑자기 손이 나간 거야.
나는 손댄 기억이 없다고!
마치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통제할 수가 없었다.
‘파트너가 변태라고 동맹 파기하면 어쩌지?’
걱정이 너무 됐다.
왜냐하면…….
이 와중에도 내 손은 부지런히 근육을 쭈물거리— 아니, 부스러기를 털고 있었으니까.
이제 그만 털어도 될 텐데.
‘아니야. 황자가 계속 쿠키를 먹느라 자꾸자꾸 새로운 부스러기가 떨어지잖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난 이스칼리온의 파트너로서 선량한 마음으로 깨끗하게 도와주는 중이니까.
* * *
이스칼리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니케아르샤의 부드럽고 섬세한 손이 닿을 때마다 가슴 안쪽이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일렁거렸다.
‘공녀는 좋은 마음으로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주는 것뿐인데.’
아무 사심도 없는 말간 얼굴로 열심히 청소해 주고 있다.
‘젠장.’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가서 복근이 딱딱해졌다.
부스러기를 털어주는 니케아르샤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걱정되었다.
사실 더 걱정되는 건 따로 있었다.
‘다른 남자가 부스러기를 몸에 흘려도 이러는 건 아니겠지.’
요염한 여우향까지 뿌리는 놈이 있는 판국이다.
과자 부스러기를 온몸에 묻히고 나타나는 미친놈도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누구에게나 격의 없이 행동하는 건 아니겠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니케아르샤가 바로 손을 뗐다.
이스칼리온은 순간적으로 멀어지는 손을 붙잡을 뻔했다.
“격의 없이 행동해서 정말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이스칼리온이 욕을 짓씹었다.
“젠장.”
니케아르샤가 흠칫 어깨를 좁혔다.
“……죄송해요. 아무리 동맹 관계라도 해도 저희가 묻은 걸 털어줄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닌데.”
“그런 게 아니래도.”
“멋대로 만져서 불쾌하셨죠. 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
니케아르샤가 깜짝 놀라 이스칼리온을 바라보았다.
이 와중에 커진 눈이 꼭 놀란 토끼 눈 같았다.
손길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라서 곤란했다.
아직도 부스러기가 있는데 왜 멈춘 거야.
‘미쳤군.’
이스칼리온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였다.
“마마, 파파 또 싸워?”
어느새 쿠키를 다 먹은 황자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마, 파파 사이 안 조아?”
울먹울먹.
커다란 눈동자에 다시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니케아르샤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야. 우리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긍데 왜 구로케 멀리 떨어져 이써?”
하나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냥 옆에 앉아 있었다.
“마마랑 파파는 사이 조아야 해. 딱 부터서 아콩다콩 한 거래써.”
‘대체 누가 그렇게 가르친 거야!’
니케아르샤는 황자의 유모 얼굴이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아비인 황제가 제대로 사랑을 주지 않으니 저런 말을 해준 것 같았다.
대강 ‘황자님의 엄마, 아빠는 사이가 너무 좋아 딱 붙어 계셨답니다’ 같은 말을 하면서, ‘황자님은 사랑받는 아이’라고 달래주었다거나.
다 좋은데 문제는 자신과 이스칼리온이 황자의 부모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마, 파파 사이 나빠? 왜 떠러져 이또? 나 버릴 꼬야?”
황자의 작은 코가 씰룩쌜룩거렸다.
곧 성대한 울음이 터질 것처럼.
‘에라, 모르겠다!’
니케아르샤는 이스칼리온에게 딱 붙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니야! 사이 엄청 좋아! 봐봐!”
당황한 이스칼리온이 몸을 굳혔다.
니케아르샤는 하하하 웃으며 진땀을 흘리며 속삭였다.
“방금 그렇게 따진 사람하고 이렇게 가까이 앉는 게 불편하겠지만 좀만 참아요.”
황자의 커다란 눈이 이스칼리온을 한 번 보았다가 니케아르샤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딱 붙어서 미소 지었다.
조금 어색한 미소였지만 최선을 다한 미소였다.
그런데 아이의 눈초리가 의심으로 새초롬해졌다.
“마마, 파파 거진말쟁이.”
“어?”
‘어떻게 알았지?’
니케아르샤는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들은 말이 있다.
아기는 사람의 감정에 아주아주 예민해서 결코 속일 수 없다고.
‘그게 진짜였어? 아기 때는 다들 <흥신소> 자동 탑재야?!’
“역시 싸운 고야. 나 버리구 가 꺼야.”
황자의 입술이 삐쭉빼쭉해지기 시작했다.
곧 커다란 울음이 터질 거라는 신호다.
“아아아니야! 사이 엄청 좋아!”
“그럼 마마랑 파파 뽀뽀해!”
뭐?
“유모가 그래써. 매일 나한테 뽀뽀해죠. 사랑하는 사이엔 당연한 고래.”
‘유모오……!’
애는 잘 잃어버리면서 대체 뭘 가르치는 거야!
니케아르샤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든 말든, 황자는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뽀뽀쪼 안 해?”
안 해!
니케아르샤는 힐끔 이스칼리온을 바라보았다.
딱, 눈이 마주쳤다.
‘뭐야, 왜 이렇게 어색하지?’
니케아르샤는 괜히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어, 어, 어떻게 하죠?”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뭔데요?”
솔깃한 니케아르샤가 바로 이스칼리온을 바라보았다.
이스칼리온이 픽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니케아르샤의 얼굴 위로 그늘이 질 정도로, 가까이.
‘어, 어라……?’
좀 너무 가깝지 않나?
꼭 뽀뽀 쪽 할 거처럼.
‘아니, 그럴 리 없지.’
그런데 이스칼리온의 속눈썹이 참 길었다.
속눈썹이 드리운 눈동자도 너무너무 예쁜 색이고, 콧대도 참 우뚝하고 그 아래 입술도…….
‘어, 입술이…….’
쿵쿵쿵.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니케아르샤의 눈앞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 순간.
“황자님! 황자니이임!”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모가 황자를 찾으러 온 거였다.
“아! 유모가 왔나 봐요.”
반가워서 말하는데, 콩 이마가 맞부딪쳤다.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니 이스칼리온이 내게 이마를 붙인 채 웃었다.
“왜 눈 감았어?”
니케아르샤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뒤로 휙 뺐다.
“제, 제가 언제 눈을 감았다고.”
그리곤 재빠르게 가제보에서 일어났다.
황자를 발견한 유모가 빠르게 달려왔다.
“황자님, 여기 계셨어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우웅, 마마랑 파파랑 가치 이써써.”
그제야 니케아르샤와 이스칼리온을 발견한 유모가 “헉!” 숨을 삼켰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대공녀님. 황자님께서 부모의 정이 고프셔서 그만……. 아직 어리신 분이니 부디 용서를 구합니다.”
그녀는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13황자의 입지가 정말 안 좋긴 하구나.’
하긴, 이미 작고한 친모의 태생조차 이민족 노예이니…….
쟁쟁한 황비들 태생의 황자들은 이미 장성한 상태고.
아무도 이 막내 황자에겐 관심 없었다.
‘친부인 황제조차도.’
니케아르샤는 씁쓸한 기분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전하께서도 괜찮으시죠?”
“그래.”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하의 차림새가…….”
유모가 은근슬쩍 13황자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힐끔힐끔 니케아르샤와 이스칼리온을 번갈아 보며 ‘옴멤메’ 표정을 했다.
니케아르샤는 억울했다.
‘범인은 내가 아니라 13황자라고!’
.
.
“아아, 저희 황자님께서 실례를 저지르셨군요. 새 셔츠를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정작 당사자인 아스칼리온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니케아르샤가 팔짱을 끼고 참견했다.
“너무 얇지 않은 걸로. 노출이 심하지 않은 걸로. 목 끝까지 잠그는 걸로.”
“네? 알겠습니다.”
“……챙이 넓은 여성용 모자도 가져오라.”
이번에는 이스칼리온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니케아르샤가 “전하! 제 꽃은요!” 하고 투덜거리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덧붙였다.
“밀짚으로 엮은 거라면 꽃을 꽂을 수 있잖아.”
두 사람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던 유모가 고개를 숙였다.
“절대 살이 비치지 않고 노출이 심하지 않은, 목 끝까지 잠기는 남성용 상의와 밀짚으로 엮어 꽃을 꽂을 수 있지만, 챙이 넓어 얼굴이 잘 가려지는 여성용 모자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니케아르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왠지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저렇게 들으니까 요구 사항 많은 진상 같잖아.’
하지만 요구 사항을 하나라도 뺄 생각은 들지 않았다.
* * *
우리는 따로따로 카바나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스칼리온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왜 따로 돌아가자는 거지?”
“전하를 노리는 나쁜 권력자가 우리 둘이 사이좋은 걸 보면 저를 차~암 좋아하겠어요, 그쵸?”
내가 접근하면 이스칼리온과 한패라고 생각해서 바로 경계할 거다.
모두 내가 이스칼리온과 친분 있는 관계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루크반이나 율리시즈, 라파엘보다 친하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슬프지만, 내가 불륜파이브들과 함께한 세월이 있는 만큼 다들 내 ‘찐친’은 그쪽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 사이가 꽤 가깝다는 소문이 난 거 같은데.”
“아아, 미카린이 내준 소문 말이죠. 내가 약혼자를 두고 전하랑 바람피운다는 거. 꽤 신빙성을 잃었잖아요.”
“…….”
잘된 거 아닌가?
왜 저런 표정이지.
“아무튼 적어도 ‘우리 둘이 몰래 으슥한 호숫가에서 따로 만났어용’ 티 내는 것보단 낫죠.”
“……알겠다.”
“그럼 이따 봐요!”
나는 이스칼리온에게 손을 흔들고 먼저 카바나로 돌아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가 왜 그렇게 탐탁잖아했는지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델로시프 공녀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호수의 요정과 같은 모습이군요. 이리 아름다운 악혼녀를 놓치다니. 덕분에 제게 기회가 온 거겠죠?”
“아아, 너무 아름다우셔서 꽃이 세 송이인 줄도 몰랐군요. 내겐 한 송이 공녀의 얼굴밖에 안 보여서…….”
여성들만 있었던 아까와 달리, 카바나에 남성들도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내게 말을 거는 영식들을 바라보았다.
모자로 얼굴의 반을 가렸는데 대체 어떻게 날 바로 알아보고 우르르 몰려온 거지.
‘뭐, 내 조건이 탐나긴 하겠지.’
델로시프 대공녀.
(역대급이라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는) 각성자.
유일하게 세 황비의 선택을 모두 받은 영애.
‘그래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 내 망나니 소문이 꽤 가라앉은 모양이야.’
대강 소문 분석을 하는데, 한 영식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킁킁, 어디서 타는 냄새 나지 않습니까?”
“안 나는데요?”
“제 마음이 타는 냄새.”
“…….”
내 눈빛이 절로 차가워졌다.
영식이 “요염한 여우향이라더니!” 하며 향수병을 패대기쳤다.
그 옆의 다른 영식이 “흠흠” 하더니 갑자기 전위적인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
뭔지 몰라도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제르노가 저런 사람이랑 눈 마주치지 말랬어.’
고개를 돌리니 그 영식이 “팔굽혀펴기 백 번은 부족했나!” 하면서 엎어졌다.
‘아아, 근육 어필이었나 보구나.’
안타깝게도 바로 직전 끝내주는 대흉근을 봐버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영식들을 해치고 셀레나와 에디타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그럴 줄 알았어.”
등 뒤에서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니케.”
탁.
손목이 잡혔다.
클레아스가 나를 애틋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누가 보면 우리가 억울하게 헤어진 연인인 줄 알겠다.
“다른 남자가 아무리 네게 다가가려 해도 틈 하나 내주지 않잖아.”
“…….”
“내가 널 그리워하듯, 넌 내가 그리워서.”
“…….”
“그래서 누가 어떤 유혹을 해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 거잖아.”
타는 냄새와 전위적 행위 예술이 어떻게 유혹으로 둔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
클레아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니케, 역시 우리는—”
“지금부터 틈 만듭니다. 틈 완전 활짝 만들기 시작. 한 명도 아니고 세 명도 아니고 열 명 들어올 틈 축제 시작.”
나는 클레아스를 휙 지나치며 손가락 열 개를 쫙 펼쳤다.
“내 틈 안에 들어올 선착순 열 명~!”
그러자 우루루 영식들이 “저요!” “저요!” 몰려왔다.
왜인지 “언니!” 하는 영애들도 있었다.
‘응, 아주 좋아. 클레아스 꼽주기만큼 연회에 어울리는 건 없—’
흐뭇하게 미소 짓던 나는 멈칫, 몸을 굳혔다.
저 멀리서 막 카바나 영역에 도착한 이스칼리온이 엄청 마음에 안 드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열 명의 하렘을 거느린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