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0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02화(102/173)
* * *
그 시각-
키락서스는 기와지붕의 꼭대기에 올라앉아 며칠간 고민했던 것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네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숨이 하얗게 흩어졌다.
놓아주어야 한다.
여기에 두고 가야만 한다.
그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찌를 듯 아파왔다. 그게 옳다고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이 받아들이질 못하고 우스운 투정을 부려대는 것이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플로린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제 친부를 만난 그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늘 얼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근심조차 없어지고 그저 해맑은 어린아이가 되었다.
드리블랴네에선 그리 어른스럽던 아이가 제 아비 앞에선 어리광을 피우고, 말투도 좀 더 아이답게 변했다. 그 차이가 키락서스의 눈에는 선연히 보였다.
‘그 친부가 설마하니 게이트를 연 그자일 줄은 몰랐지만.’
아니, 정말로 몰랐나? 플로린을 빼앗기게 될까 싶어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키락서스는 픽 웃으며 허공을 응시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꽤나 치사하게 여겨져서였다.
“세상을 멸망시킨 것도 딸에 대한 부성애 때문이요, 시간을 돌린 것도 부성애 때문이니…….”
어차피 둘이 같다면 친부의 곁에 있는 것이 보다 행복하지 않겠는가. 아직 많이 어리기도 하니 그 편이 플로린을 위한 일이다.
게다가 플로린의 친부는 그를 질투하고 있었다. 한발 먼저 플로린과 친해진 것. 그래서 플로린의 안에 절대적인 믿음으로 자리하게 된 것을.
본디 그건 아버지의 자리였는데 그 자리를 빼앗은 것에 대해 무한에 가까운 질투를 한다.
플로린이 그러길 원하니까 아침 식사를 함께 하지만 그때마다 키락서스는 저를 향해 들끓는 그자의 시선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봤자 친부는 저면서. 욕심도 많지.’
질투라면 키락서스 역시 뒤지지 않았다.
그는 한평생 플로린의 입에서 ‘아빠’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할 것이다. 플로린은 결코 그의 앞에서는 부모와 자식처럼 편해질 수 없을 것이고, 무엇이든 항시 애를 쓸 터였다.
매번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려고 할 테지.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친부모와 친자식의 관계일 터인데…….
그가 가장 바라는 걸 이미 거머쥐고 있으면서 뭘 더 원하는 건지.
‘여긴 플로린의 나라이니 없애버릴 수도 없고……. 그건 저자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겠지.’
키락서스는 길게 호흡을 내뱉으며 자신이 영영 줄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지금쯤 이안과 단테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할 터.’
이곳에서도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키락서스는 아공간을 열고 거기서 폼폼을 꺼냈다.
이번 여행에서 플로린은 깜빡했는지 폼폼을 챙기지 않았는데, 그래도 상관없었다. 폼폼은 그와 마법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언제고 소환할 수 있으니까.
‘대충 이러면 되겠군.’
이것저것 폼폼을 손보던 키락서스는 툭 하고 쳤다. 어서 플로린에게 가라는 의미였다.
* * *
“아버니임!”
나는 유리와 함께 삼십 분째 아버님을 찾고 있었다.
궁인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른다고만 하고 혹시나 싶어서 잘 가지 않았던 장소까지 가봤음에도 아버님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어디로 가신 건지.
“곧 돌아올 테니 그만 찾아요, 누나. 발 아프겠다.”
“으응. 여긴 구두가 아니라서 아프진 않지만…….”
이곳의 신발엔 굽이 거의 없었다. 그 누구도 높은 굽을 신지 않았기에 움직이는 데 무리가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아버님이 어디 가신 거면 내가 찾아봐야 소용없기는 하지.’
유리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한 나는 그냥 구름길이나 한 번 더 산책할까 싶었다.
놀랍게도 여기도 흙, 꽃, 나무가 있다. 정말 땅을 그대로 들어 올려 하늘에 띄웠을 뿐인 듯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여기가 하늘 위임을 잘 느끼지 못하는데 딱 한 군데. 구름길에 가면 ‘아, 참. 내가 하늘에 있었지.’ 하고 깨닫게 됐다.
“유리, 구름길에 또 갈래?”
“좋아요.”
궁전 뒤편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흙길이 끝나고 바닥이 온통 구름으로 이뤄져 있는 탁 트인 장소가 나온다. 바로, 태양섬의 가장자리였다.
끝으로 가면 아래의 뻥 뚫린 하늘이 내려다보이는데, 무엇인지 모를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추락할 위험은 없었다.
내게 처음 이곳을 설명해 준 건 다름 아닌 시중인인 령이인데, 모든 섬에 안전막을 설치하고 그걸 유지하고 있는 게 아빠라고 했다.
그리고 이 안전막에 접근하는 사람은 그게 누가 됐든, 어느 섬에서 일어난 일이든 아빠가 다 볼 수 있다고도 했고.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산책을 하면 산책하는 모습을 아빠가 본다는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분리불안증이 심한 아빠를 위해서 여기에 나오는 것도 있었다.
아직 자세하게 들은 바는 없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건 아마도 사고인 것 같고, 아빠는 그에 대해 대단히 자책하고 있는 모양이거든.
내가 엄마처럼 사고를 당할까 봐 아빠는 엄청 불안한 거 같으니까…… 아빠의 눈에 닿는 곳에 있어주는 거랄까.
‘여기에서 살 건 아니니까…… 있는 동안만이라도.’
아빠의 상태가 몹시 불안하긴 하지만 나는 내가 있을 곳이 드리블랴네라고 생각했다.
여기도 좋고, 여기 사람들도 친해지면 분명 좋은 사람들이겠지만 그래도 아직 드리블랴네를 떠나고 싶진 않아.
내 손으로 만든 내 집이어서 그런지 드리블랴네에 대한 나의 애착은 강했다.
하지만 그럼 아빠는……?
“요즘 이런저런 고민이 많죠?”
“응? 아…… 응. 티 났어?”
“엄청. 눈썹이 이렇게 축 내려가 있잖아요, 누나.”
말없이 나와 함께 걸어주던 유리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러더니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나를 흉내 냈다.
“아니, 내가 그렇게까지 시무룩해했어?”
“여기에 남을지, 지상에 돌아갈지 고민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헉.”
그건 또 어찌 알았담.
“누나는 어떡하고 싶어요? 누나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죠.”
“나는…….”
망설이던 내가 입을 뗀 찰나였다.
허공 어디선가 ‘피칭-!’ 하는 느낌으로 빛이 반짝이더니 뭔가 동그란 것이 내게 쏜살같이 날아왔다.
엉겁결에 팔을 뻗어 그걸 안았는데, 자세히 보니-
“폼폼?!”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안 챙겼던 것 같은데!
깜짝 놀란 나는 저도 모르게 폼폼을 토톡 두드렸다. 그러자 폼폼이 지이잉 하더니 갑자기 허공에 홀로그램을 펼쳐냈다.
“뭐, 뭐지?”
눈을 크게 뜨고 있자니 점점 놀람이 가시고 깨달음이 찾아왔다.
“여긴…… 드리블랴네 저택인데!”
홀로그램은 몹시 신기했다.
흰 구름이 가득한 길에서 펼쳐져서 그런지 몰라도 엄청 선명했다. 꼭 내가 한 걸음만 내디디면 저기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아.
게다가 내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어져서 두 개의 방이 한꺼번에 보였는데, 아무래도…… 단테와 이안의 방인 것 같았다.
왜냐면 단테가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거든!
‘아버님이 폼폼을 보내셨구나!’
안 그래도 둘 다 엄청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아시고!
그때, 비어 있던 오른쪽 방의 문도 열리며 책을 잔뜩 품에 안은 이안이 나타났다.
단테는 바닥을 보며 체력 단련 중이고 이안은 책에 가려져서 앞을 못 봤으니 둘 다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다음 순간-
나를 목격한 이안이 동시에 눈이 커다래져선 들고 있던 걸 떨어트렸다.
플로린!!!
그렇게 외치자마자 단테 역시 삐끗하더니 쿠당탕 넘어졌다.
진짜 플로린이야? 거긴 어디야?
만나지 못한 지 얼마 지났다고 왜 이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지.
진짜가 아니라 영상임을 알면서도 손을 뻗어본 나는 내 손이 이안의 손을 휙 통과하는 걸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신기한데, 이거. 숙부님의 마법인가?
“그런가 봐. 이안, 단테. 잘 지냈어?”
단테가 옆에 놓인 수건으로 대충 목덜미를 닦더니 거기에 그대로 얼굴을 묻었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가 약간 목이 멘 듯해서 나는 조금 웃고 말았다.
잘 지냈지. 훈련하고 밥 먹고 훈련하고. 근데 훈련하고 나서 널 못 보니까. 너무 오래 가 있는 거 아냐?
투덜거리는 게 정말 단테답다.
이 두 사람을 만나니 갑자기 내 현실로 훅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표정을 보니 아르칼리크의 왕이 친아버지였나 보다. 축하해, 플로린. 그럼 시간이 좀 흘러야 돌아오겠네.
반면, 이안은 역시 어른스러웠다.
‘아, 아니지. 내 옆에 있는 유리를 봤을 텐데 약속이라도 한 듯이 무시하는 걸 보면…… 그렇게 까지 어른스러운 건 아닌가.’
유리는 대화를 나누는 나를 보기만 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안과 단테가 예의를 지키든 말든 크게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오늘 추모관에 가 보기로 했어. 엄마 흔적을 찾으러. 여긴 신기한 게 너무 많아.”
빨리 돌아와. 동글동글한 게 하늘에 있으면 떨어진다?
내가 아르칼리크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게 싫은지 단테가 입을 비죽였다.
단테. 그러면 안 되지. 저긴 플로린의 고향이잖아.
그에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 이안이 점잖게 타일렀다. 아마 이 영상 통화는 세 지점이 모두 연결되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나도 어서 내려가고는 싶어. 하지만 아빠랑 아직 못다 한 이야기도 있고…… 아빠랑 아버님이 대화를 시작하지 않아서 말이야.”
내가 얼마나 여기에 있을지는 두 분이 상의를 하셔야 하는데, 아침 식사만 끝나면 눈도 안 마주치고 쌩하니 스쳐 지난단 말이지.
“걱정 안 해도 돼. 누나가 안 떨어지게 내가 안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때, 유리가 나를 뒤에서 꼭 껴안더니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럼 안심이지?”
그렇게 말하자마자 단테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나보다 동생이면서 플로린한테 치근대지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