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0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03화(103/173)
신분이고 뭐고 죄 무시한 단테가 험악하게 눈을 부라렸다. 이안은 난감한 얼굴을 했을 뿐, 그런 단테를 말리지 않았고.
만약 여기서 유리가 화를 내면 어쩌려고 저러지…….
“메-롱.”
하지만 유리는 제 이부 형의 무엄함을 장난으로 받아넘겼다.
“부럽지? 부럽지?”
혀를 쏙 빼물곤 에베베거리는데, 그게 참 귀여웠다.
단테도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아는지 입을 꾹 다물곤 맹렬하게 노려보기만 했다.
‘……유리가 착한 애여서 다행이야.’
여기가 황성이 아닌 것도 정말 다행이다. 시종이 이 장면을 봤으면 기겁했을걸. 유리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항의가 들어왔을 거야.
안심한 나는 고마움을 담아 유리의 복슬복슬한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다시 돌아가는 건 어른들께 여쭤볼게. 아직 황제 폐하도 돌아오지 않으셔서 시간이 좀 걸리긴 할 것 같아.”
[알았어. 몸조심하고. 밥은 잘 먹고 있어?]“응! 이안은? 밥 잘 안 먹잖아, 이안.”
드리블랴네의 후계자들 중, 가장 식사량이 많고 식욕이 왕성한 건 앙드레였다. 그다음이 단테였고.
그 둘은 몸을 쓰는 훈련을 하니까 당연히 배가 많이 고프겠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안이라고 훈련 강도가 낮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검술뿐만 아니라 단검, 채찍, 쇠사슬과 같은 특이하고 잘 안 쓰이는 도구까지 사용법을 익힌다는데……. 그럼 많이 먹어야 정상이잖아.
“또 야채는 모른 척하고 안 먹는 건 아니지? 야채도 골고루 먹어야 해!”
이안은 식사량이 너무 적었다. 때때로 나보다 덜 먹기도 해.
그런 와중에 편식은 또 얼마나 심한지 당근 골라내는 걸 내가 두 번이나 목격했다니까.
[잘 먹고 있어. 이제 당근만 떠올리면 네가 생각나니까, 잘 먹을 수밖에 없지.]“아주 훌륭해.”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단테가 ‘나는 왜 걱정 안 해줘?!’라고 외쳐댔다.
지직, 지지직.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눈앞의 화면이 일렁거리더니 어느 순간 연결이 뚝 끊겼던 것이다.
“어라?”
아버님이 연결을 멈추셨나?
고개를 갸웃하던 난 저만치 멀리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아빠를 발견했다.
“앗, 아빠!”
여기에 내가 있다고 알리기 위해 폴짝거리며 손을 붕붕 흔든 나는 그러다 구름 바닥에 떨어진 폼폼을 주우려 했다.
“있지, 누나.”
그런데 나보다 유리가 한발 더 빨랐다.
폼폼에 묻은 구름 오라기를 툭툭 떼어내고 내민 유리가 가느스름하게 눈을 휘었다.
“나, 누나 아빠가 참 마음에 들어.”
“응? 갑자기?”
“응. 그리고 난…… 누나가 드리블랴네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친아버지 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잠시도 혼자 두지 못해서 저렇게 헐레벌떡 달려오잖아요.”
“그건…… 그렇지.”
나는 유리가 주워 준 폼폼을 받아 들어 안고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앞으로 내 인생에 이 정도로 고민을 할 일이 또 생길까 싶을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아빠한테는 아빠의 백성들이 있어. 아빠가 해야 할 일도 있고. 그걸 다 팽개치고 나랑 같이 지상에 내려오겠다는 건 말이 안 돼.’
나 말고 다른 후계자도 없는 상태인 거잖아.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계속 사는 건…….
‘그럴 거면 드리블랴네는 나 말고 다른 며느리를 다시 들이는 게 낫지 않아?’
감정을 다 빼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자면 그랬다.
지금이라면 다른 아이를 며느리로 들일 수 있어. 어쩌면 그게 더 드리블랴네에 이득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지만 그건 싫은데.’
엄청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끝까지 드리블랴네의 며느리이고 싶었다. 다음 대 안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싶단 말이야.
‘포기하고 싶지 않아. 양쪽 다.’
나를 마중 온 아빠 손을 꼭 잡고 타박타박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추모관에 도착했다.
아빠는 안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는데, 그 모습 하나하나에서 얼마나 엄마를 사랑했는지가 드러났다.
“아빠. 엄마 이름은 뭐였어?”
일단 복잡한 생각은 머리 한쪽으로 밀어두고, 나는 차분히 엄마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돌아가신 엄마를 처음 뵙는 자리니까, 엄마만 생각해야지.
“……소복이 쌓인 눈에서도 향기가 나는 걸 아니?”
“눈에도 향기가 있어?”
“그래. 비는 그런 사람이었단다.”
아빠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고 있지 않은데도 우는 것만 같았다.
“이름은 설향. 너무나 연약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지.”
수많은 휘장을 늘어뜨린 공간은 아담하고, 소박했다.
추모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유리가 씌워진 케이스가 쭉 늘어서 있었는데, 아마 그 안에 든 것들은 엄마가 생전에 쓰던 물건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 끝에 있는 건, 엄마 초상화인가 봐.’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 아빠가 초상화를 가린 베일을 걷어내자 동글동글한 얼굴형을 지닌 여성이 나타났다.
“와.”
정말 나, 엄마를 쏙 빼닮았구나?!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나보다 훨씬 착해 보였다.
초상화를 뚫고 나오는 선함이 있달까. 거기다가 아빠의 표현대로, 너무나 가녀려 보이는 자태였다.
“아빠, 엄마한테 첫눈에 반했지?”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나라도 저렇게 생긴 사람이면 첫눈에 반하겠어.”
선이 곱고 단아한 미인.
담이 높은 궁궐 속에서 그저 보호만 받아왔을 듯한 이미지다.
“어쩐지 엄청 덜렁거렸을 것 같은데, 울 엄마…….”
“그건 또 어찌 알았니?”
“아빠도 덜렁이잖아. 둘이 같이 덤벙거리고, 나 혼자 야무졌겠다.”
엄마가 살아 계시고, 내가 두 분의 자식으로 자라났더라면 그러지 않았을까?
하염없이 초상화를 바라보다가 그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아기 옷이 보였다. 아기용 꽃신도.
물론 둘 다…… 사용하지 않은 새것이었다.
“비가 몰래 만들었던 모양이야. 네게 입히기 위해……. 이 신발은, 네가 어느 정도 자라 걷는 연습을 할 때가 되면 신겨주려 했겠지.”
엄마는 내가 태어나는 걸 기대했다. 내가 자라는 것도.
그걸 알게 된 것만 으로도 갑자기 가슴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나를 아주 많이 사랑했던 거야!
“나도 향을 꽂을래. 저 향로에 꽂으면 되는 거지? 화이란이 가르쳐 줬어. 이렇게 하면…… 죽은 사람의 넋이 좋은 곳으로 간대.”
“맞아. 그뿐 아니라…… 이 사람의 영혼이 다시금 이 나라에서 태어나길 기원하는 거란다.”
“향을 피우면 그렇게 돼?”
나는 기다란 막대기처럼 생긴 향을 향갑에서 꺼냈다. 그런 다음, 쌀알이 잔뜩 담겨 있는 향로에 톡 하고 꽂았다.
다른 향들은 거의 다 타서 짜리몽땅해졌는데, 내 것만 기니까 눈에 띄었다.
“아르칼리크 사람들은 지상으로 떨어지는 걸 가장 두려워한단다. 지금껏 지상은 우리에게 그저 죄인을 추방하는 곳에 불과했으니.”
“아하.”
“그래서 이 향을 피워, 다시 아르칼리크에서 태어날 수 있게끔 넋을 인도하는 거란다.”
“그럼 아빠랑 엄마,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겠다.”
“!”
아빠는 삼천 살이고, 앞으로도 어쩌면 그만큼 더 살아가실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엄마의 영혼이 돌고 돌아서 다시 아빠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언젠가는 말이야.
‘나도 아빠보다 먼저 죽게 될 텐데, 그러고 나서 아빠가 너무 외로워지면 어떡해.’
그러니까 그때 엄마가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 아빠가 엄마를 또 만날 수 있게.
“……그래. 언젠가는.”
멈칫했던 아빠가 파르르 떨리는 눈매를 늘어트리며 울듯이 웃었다.
치이익.
이윽고 아빠가 향 끝에 불을 붙이자 연기와 함께 특이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향기였다.
“저어, 그런데 아빠.”
엄마가 쓰던 머리 장식품이나 옷을 구경하던 나는 아까부터 입속을 맴돌던 질문을 결국 툭 뱉어놓았다.
“엄마는 어쩌다 사고를 당하신 거예요?”
아무리 아빠가 대단한 사람이어도 24시간 내내 엄마와 딱 달라붙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극은 언제나 가장 행복한 순간의 빈틈을 찾아들기 마련이고, 그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니 아빠가 잘못했다거나 조심성이 없었다고 생각하진 않아.
게다가 엄마도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있었을 것 아냐. 그러니까 이건 말 그대로 정말 알고 싶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