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0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06화(106/173)
“넌 매번 어떻게 그렇게 초까지 계산할 수 있는 거야?”
“나는 누나를 볼 날만 기다리면서 살아가거든요.”
“황태자가 그래도 돼?”
그랬다. 유리는 이제 황태자였다.
황후가 아들을 낳는지 딸을 낳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던 이들도 결론적으로 황녀가 태어나자 유리를 반대할 최후의 근거를 잃었던 것이다.
아들이 태어났어도 아마 황제는 나이 차이를 들어서 유리를 황태자로 봉했을 테지만……. 뭐, 아무튼 해피엔딩이니까 잘 된 거지.
유리가 황태자 위에 봉해지던 날, 황후는 산후 조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갓난아기와 함께 지방의 궁전으로 내려갔다.
아버님 말씀을 들어보니 거기서 영영 올라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수도에 있으면 황녀의 목숨이 위험해질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앗, 그 말은 내 일상을 알고 싶다는 뜻?”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황태자로 사는 거,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이었어. 많이 바쁠 텐데.”
요망하게 확대 해석하기는.
나는 싱글거리는 유리의 코를 톡 치고는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이렇게 나타난 걸 보니 한 시간은 있다가 갈 모양이다.
그럼 뭐라도 먹여야지.
“황태자가 뭐 별건가요. 수업에 제왕학이 추가되었다는 것뿐인데. 누나는 어떻게 지냈어요?”
“이리저리 바빴지. 이제 곧 위로 올라가야 하니까…….”
파르페 세 개 더.
너무 맛있어서 하나로는 참을 수가 없다.
존에게도 하나를 더 줄 겸 내 것까지 슬그머니 끼워서 주문한 나는 멈칫하고 유리를 돌아보았다.
꽃받침 자세로 턱을 괸 채 눈웃음을 짓는 모양새가, 어쩐지 기뻐 보이는데?
“이번에 가면 어른이 된 뒤에나 돌아온다고 했었죠.”
“으응. 싫지 않아?”
길길이 날뛸 성격이 아니긴 하지만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조금 신기하긴 했다.
단테는 얼굴 볼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주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거든.
나를 보고 좋아했다가 시무룩해졌다가 이내 슬퍼하다가 입매를 꾹 다물고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붙잡으면서 아르칼리크에 가지 말라고 한들 소용없을 테니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였다.
반면에 유리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잘 됐다. 거기에 있으면 안심이에요. 나만 같이 살지 못하는 게 짜증 났거든.”
“아…… 그래서구나? 표정이 오히려 밝아 보였던 게.”
“들켰어요?”
때마침 파르페가 나왔다.
유리는 파르페의 가장 위에 놓인 체리 절임과 맛있는 바나나 크림을 듬뿍 퍼서 내게 내밀었다.
“아, 해요. 아.”
“네가 먹어야지. 맛있잖아, 체리 절임.”
“제일 맛있는 건 언제나 누나 거예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약속해.”
물론 체리 절임, 엄청 좋아하긴 하지만. 이 높은 파르페 위에 딱 하나 있는 걸 내가 홀랑 먹어버려도 정말 괜찮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난 결국 입을 벌렸다. 스푼에서 크림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옳지, 잘 먹는다.”
“맛있는 거 나만 먹은 것 같아.”
“아닌데. 나도 맛있는 거 먹을 건데.”
내가 민망해서 볼을 문지르고 있자 유리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더니 몸을 일으켜 내게 상체를 숙였다.
“여기.”
“응?”
“묻었네요. 귀여워. 다 묻히고 먹고.”
유리가 내 코끝을 엄지로 훔치더니 날름 핥았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굳어버린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둘러 가지고 나온 가방을 뒤졌다.
‘거울. 거울!’
아니, 뭐가 그렇게 묻었단 거야?
하지만 막상 손거울을 열어보니 내 얼굴은 말끔하기만 했다.
어디에도 바나나 크림의 흔적은 없는……데?
“나 놀린 거지!”
속았구나!
통탄스러움에 눈을 치뜨자 유리가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매번 속으니까 그게 귀엽잖아요.”
“내가 한 살이나 더 많거든?”
“응, 누나.”
얘는…… 얘는 대체 왜 이렇게 예쁘게 자라서는!
단테는 성장기 소년답게 선이 엄청 굵어졌다. 이안은 벌써 어른 같았고. 그런데 유리만큼은 여전히 곱고 가녀리고 어여뻤다.
워낙 미소년을 좋아하다 보니 유리의 얼굴만 보면 화도 낼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화가 나질 않지. 화가 나야 화를 내지.’
저 얼굴이면 뭘 하든 다 오냐오냐하게 된달까.
난 얼굴에 약한 스스로를 탓하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누나.”
“응?”
“있잖아요.”
보랏빛으로 물들던 하늘 끝부터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간. 일몰의 찬란한 석양에 휩싸인 유리는 꼭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요?”
유리의 얼굴에 홀린 바람에 난 유리가 무어라 하는지를 미처 알아듣지 못하고 반문했다.
“응?”
“누나가 나를 선택해 준다면, 누나가 가주가 될 수 있어요.”
방금, 뭐라고?
너무 당혹스러운 말이라 찬물을 뒤집어쓴 것만 같았다.
“나도 누나의 선택지 중 하나인 건 잊지 않았죠?”
유리가 장난스레 속삭였다.
하지만 난 이미 미소를 잃었다.
혹시 누가 들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다행히 텅 비어 있었다. 존 역시 언제부턴가 저 뒤편으로 물러나 있었고.
우리의 소곤거림 정도는 들리지 않을 거리였기에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가 널 선택하면, 내가 가주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우와, 누나 박력 있는 거 봐.”
“말 돌리지 말고. 그 이야기 하려고 오늘 온 거야?”
유리는 종잡을 수 없었다. 이슬에서 태어난 요정처럼 한없이 순수하고 사랑스럽나 싶다가도 언뜻언뜻 비치는 모습들이 서늘할 때가 있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난 그 또한 유리의 모습 중 하나려니 하고 넘겼다. 황제가 될 몸인데 너무 착하기만 해도 신하들에게 휘둘릴 테니까.
“난 황제가 될 거예요. 물론 드리블랴네를 황가 소유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누나가 갖는 게 좋잖아요. 그러면 드리블랴네는 황후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 될 거예요.”
“……!”
“지금까진 황태자가 아니었으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늘 그렇게 생각해 왔어요. 누나가 날 선택하면 드리블랴네는 누나 거라고.”
유리의 보랏빛 눈동자가 진지했다. 여전히 웃음기가 감겨 있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빛을 보고 있자니 지금 하는 말이 완벽히 진심이라는 게 와 닿았다.
‘내가 가주가 된다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유리를 선택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래서 내가 황후가 된다면, 드리블랴네는 다른 이에게 가주 자리를 맡기게 되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러면 복잡해지니까 웬만하면 유리를 선택할 마음은 없었다. 누구를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게 소중한 가문을 지키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니까.
“누나는 황후인 동시에 드리블랴네의 가주가 되는 거예요. 어느 한쪽을 포기할 필요 없어요.”
“…….”
“아무래도 누나가 나를 자꾸 후보에서 빼려는 것 같아서. 속상했거든.”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이제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가게에선 조명을 켰다. 인공적인 불빛이 닿는 유리컵 안의 아이스크림이 완전히 녹아 못 먹게 되었다.
괜히 그걸 뒤적거리던 나는 회피하는 걸 포기하고 스푼을 내려놓았다.
“나는 가주가 될 생각이 없어, 유리.”
“누나한텐 그럴 명분도 자격도 능력도 충분해요. 알면서.”
“알지만…… 그건 이안과 단테가 너무나 바라는 자리야. 그걸 내가 빼앗고 싶지 않아서 그래.”
“미움받을까 봐?”
유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게 낯설어서 대답을 망설였지만 이미 꿰뚫어보고 있는 애에게 거짓말을 해봤자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리가 부드럽게 손을 뻗어 내 뺨을 매만졌다.
“알잖아요, 누나. 어차피 한 명을 고르게 되면 다른 둘의 원망을 받을 수밖엔 없다는 걸.”
“……아.”
“하지만…… 걱정 마요. 이안 드리블랴네나 단테 드리블랴네는 상처를 받아도 세월이 지나면 잊을 테니까. 변방에서 다른 누군가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할 수도 있겠죠.”
유리의 말투는 사근사근했다. 귓가에서 사각거리는 느낌이어서 그런지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안을 파고들어 기어코 흔적을 남기곤 한다.
“그렇지만 난 안 돼. 알잖아요, 누나. 나는 누나 없으면 죽는 거.”
“……어린애가 못 하는 말이 없어.”
나는 무어라 웅얼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유리의 뒤로 거대한 상어와 함께 넘실거리는 파도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해변에 위태하게 선 나를 한입에 삼키려고 오는 상어 같아.
“피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피해도 돼요. 어른이 될 때까지는 기다릴 테니.”
“하지만 어른이 되면 널 선택해 달라고?”
“응. 내 모든 걸 다 줄 테니까……. 누나는 누나 한 사람만 주면 돼.”
그 말을 하는 유리의 표정이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보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저 일어섰고 존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 유리는 그런 나를 붙잡지 않았고.
그러나 난 내 등에 맹렬히 꽂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먹잇감을 노리는 상어의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