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07)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07화(107/173)
“하아.”
그 탓에 마차에 오르고서야 나는 빨라진 심장 박동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난나 님의 말씀대로네.’
다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어필할 거라더니.
‘도대체 이난나 님은 이렇게 살벌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할아버님을 택한 거야?’
무엇이 ‘이 사람을 선택해야겠다’라는 확신을 준 걸까.
이난나 님은 그리 어렵지 않게 선택을 내렸다던데 나는…….
“작은 마님. 저택으로 돌아갈까요?”
“응, 그게 좋겠다.”
차라리 내 마음속에서 결정을 해버리는 게 나을까. 그러면 다른 아이들에게 여지를 안 줄 수 있잖아.
‘열 살에서 고작 세 살 더 먹었을 뿐인데 그때랑은 많은 게 달라졌어.’
여기서 또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무섭다.
‘아마 지금이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겠지.’
다녀오면 어른이고, 웬만하면 라흰이 나타나기 전에 다음 대 가주를 선택하는 편이 가문 내의 혼란을 줄이는 길일 테니까.
나는 슬슬, 모두와 친구로 지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었다.
* * *
저택에 도착한 나는 선물을 숨기기 위해 내 방으로 직행했다.
아직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았지만 고민이 커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방 앞에 아주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지 뭐야.
“단테?”
“어디 갔다 이제 오냐, 동글.”
지루한 얼굴로 기대어 서 있던 단테는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괜히 헛기침을 하더니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꾹 누르는 게 아닌가.
주변의 어른 기사들처럼 점잖은 체를 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난 서둘러 달려갔다.
“이안 선물 사러 갔지!”
“거창하게 무슨 선물씩이나. 형은 네가 침대 밑에 굴러다니는 금화 한 닢만 줘도 좋아할 텐데.”
“그러는 자기는 올해 나한테 검을 받아 놓곤?”
“크흠.”
단테의 생일은 3월 23일.
봄이었다.
나는 아빠를 졸라 아주 튼튼한 검을 한 자루 받았는데 그걸 단테에게 선물했다. 앞으로 팔라딘이 될 단테에겐 꼭 필요한 물건 같아서.
그래놓고 이제 이안의 생일이 되자 금화 한 닢이나 주라고 하다니.
“사람이 심보를 곱게 써야지, 그러면 못 써.”
“헹. 아, 근데 너…….”
단테가 내 손목을 조심스레 쥐더니 거기에 대고 코를 박았다.
킁 하고 냄새를 맡던 단테는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툴툴거렸다.
“상어 새끼 만났지. 그 새끼 물비린내가 아주 진동을 하네.”
“어휴, 동생한테 말하는 것 좀 봐.”
“말은 바로 해야지, 동글. 그 새끼가 우리를 형으로도 여기지 않는 거야.”
그건…… 그렇지만.
차마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던 나는 뺨을 긁적였다.
황궁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바깥도 새는 법이지 않나.
1년에 한 번 열리는 드리블랴네 가문의 총 회의.
모든 후계자는 열한 살부터 거기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유리는 대단히 오만한 태도를 취했다.
유리는 나 외에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고 심지어는 가주 할아버님, 이난나 님, 아버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넷 외에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테와 이안을 없는 사람처럼 완전히 무시했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수조에서 나온 지 햇수로 3년인데 그 시간 만에 벌써 황자로서의 위엄을 갖춘 것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드리블랴네에서도 저러는데 다른 곳에서는 얼마나 더 심할까 싶었다.
유리가 황제가 된다면 역대 최강이자 최고로 광오한 황제가 탄생하는 게 아닐까 하고 조금 걱정은 된달까.
‘아, 그래도 백성들 앞에서는 나한테 하는 것처럼 다정하게 군다던데.’
그래서 지금 마도 제국에서 유리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그거면 된 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게 백성인데 그 마음을 얻었다면 뭐어.
“그래서 뭐 샀는데?”
“아, 넥타이. 이안이 어른이 돼도 잘 쓸 것 같아서.”
“흐응, 그래? 무슨 색?”
“빨간색 샀는데, 왜?”
“아니, 잘 샀네. 정말 ‘평소’에도 하고 다닐 수 있겠어.”
단테가 어깨를 으쓱하곤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단테가 ‘평소’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한 것 같아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원정 훈련 갔잖아!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얼굴 좀 봐.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내가 다칠 것 같냐.”
“그래도 저번엔 화산 지대까지 갔다며!”
“아…… 단장님 훈련이 좀 기상천외하긴 하지. 그래도 이번엔 평범했어. 괜찮아.”
단테의 얼굴을 얼마 만에 보는 거더라.
나는 유리처럼 1분 1초까지 세는 능력은 없었기에 얼굴을 보지 못했던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호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나도 안 어색한 거, 참 좋아.’
이런 게 단테의 장점이었다.
세 달 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봤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해주는 거 말이야.
“앙드레가 찡찡거리던데. 천장에 장식 달기 힘드니까 빨리 오라고.”
“앙드레가? 그랬어?”
“군용 전서조로 그딴 내용을 보낸 걸 단장님이 보셨으니 내일부터 앙드레 얼굴 못 본다고 생각해.”
“앙드레도 참.”
쿡쿡 웃은 나는 단테와 함께 이안의 생일파티를 열기로 한 빈방 앞에 가서 섰다.
문을 열자 때마침 앙드레가 높은 사다리 위에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으아악!”
“하. 조심 좀 하랬지.”
나는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는데, 단테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이내 앙드레를 받아냈다.
단테는 미간을 좁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앙드레의 뒷목을 콱 쥐었다.
“오, 구해줘서 고맙……이 아니라! 나는 힘든 거 하고 있는데 자긴 플로린이랑 화기애애하게 들어오다니. 치사해!”
“시끄러워. 군용 전서구? 미쳤냐?”
“으악! 아니, 혹시 전서구가 중간에 탈취되는 일이 생기진 않나 하고 시험해 본 거지! 그거 본 사람들은 이게 무슨 암호인가 하고 생각했을 것 아냐!”
앙드레가 버둥거리고 단테가 혼을 내고. 그사이 메르엠이 내게 슬쩍 다가왔다.
“어떤 것 같아? 나름대로 준비를 해보긴 했는데.”
“작년보다 훨씬 장식이 좋아졌네! 나머지는 나도 도울게!”
이안은 이렇게 생일을 축하해 주는 걸 몹시 부끄러워하면서도 은근히 기뻐했다.
다른 애들도 생일 파티를 즐기긴 했지만 이안이 기뻐하는 만큼 기뻐하는 건 아니어서 그런지…… 이안 생일엔 모두가 다 합심해서 좀 더 잘 챙기게 된달까.
후계자 관이 다시 지어지긴 했으나 아직까지는 다 함께 본관에서 기거 중이라 챙기기가 어렵지도 않았다.
“악, 악! 그만 때려! 아무튼 오늘 준비 마쳐놓고 생일날 모이는 거지?”
“응, 맞아. 앙드레…….”
단테에게 쥐어박히던 앙드레는 날렵하게 움직여 내 뒤에 숨었다. 그러면 단테가 자신을 끌고 가지 못할 거라 여긴 모양이었다.
졸지에 인간 방패가 된 나는 한숨과 함께 손뼉을 짝짝 쳤다.
“단테, 앙드레가 못 단 거 좀 대신 달아줘. 다들 선물은 샀지?”
어쩌다 보니 단테와 곧바로 여기로 오는 바람에 선물을 손에 들고 왔네.
나는 방 중앙에 위치한 키 낮은 테이블에 내 선물을 톡 올려놓았다.
거기엔 이미 메르엠의 선물도 있었는데, 앙드레와 단테의 것은 없었다.
“나, 선물 가져올게!”
눈치를 보던 앙드레는 단테를 피해 재빨리 문을 열고 달아났다.
단테는 그걸 뒤쫓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앙드레에게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 양어머니께 크게 혼날 테니까.
“단테는?”
“아, 나야 방금 왔으니까. 그래도 주문 넣어둔 구두는 내일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이번 선물, 구두구나!”
“엉. 형이 유용하게 ‘평소’에도 쓸 만한 구두로 주문 제작 했어. 여러 기능이 있는 걸로.”
도대체 이안의 평소가 어떻기에 저렇게 자꾸 강조하는 거지……? 좀 불안한데.
“플로린, 이걸로 꽃을 만들어줄래?”
그때, 메르엠이 다가와 내게 색색의 젤리를 주었다.
그간 알아본 결과 내 연성술은 딱히 매개체에 제한이 없었다. 다만 내게 좀 더 잘 맞는 종류가 따로 있었는데, 그건 주로 먹을 것이었고…… 가장 쉽게 꽃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젤리였다.
나는 젤리를 침실 여기저기에 두곤 연성을 했다. 이안의 생일이 내 꽃으로 가득 차도록.
내가 만든 꽃은 지속력이 좋아서 오늘 이렇게 피워놔도 보름은 멀쩡했다.
“참, 그런데. 얘들아.”
꽃을 다 만든 뒤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문득 의아해졌다.
“너희, 이안이 평소에 어디 다니는지 알아?”
* * *
‘수상쩍어. 아주 수상쩍단 말이지.’
일주일 뒤.
이안의 생일 당일 아침.
나는 무화과 잼이 잔뜩 든 요거트를 먹으며 눈가를 좁혔다. 그런 내 앞에서 앙드레가 토스트를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단테와 메르엠은 이른 아침부터 안심 스테이크를 먹었고.
그 소심한 시온조차 나와서 크루아상을 집어 들고 있는데, 이 자리에 이안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안이야 불면증이 있으니까 원래 아침을 거르지.’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는 이안이 아침에 나타나지 않는 걸 이상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점심 식사는 원래 함께 하지 않으니까.’
이 가문 모두가 각자의 일정으로 바쁜 시간이 바로 오후다. 그러니 식당에 모이기보단 다들 자신이 있는 곳에서 간단히 먹는 편이었다.
저녁은 대외 일정이 있으면 바깥에서 먹거나 혹은 집안 어른들과 먹거나 했다.
당연히 그러다 보면 시간대가 안 맞아서 이안을 하루 종일 못 보는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며칠 내로 한 번은 얼굴을 보곤 했다.
황궁에 있어서 쉽게 나올 수 없는 유리나 아예 원정 훈련을 가는 단테와는 달리 그래도 닷새에 한 번씩은 꼭 간식이라도 같이 먹었거든.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안의 일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깊이 생각하면 아주 이상하긴 하단 말이지.’
첫째. 단테는 흑륜 기사단의 정예 중의 정예와 함께 움직인다. 특수한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수많은 종류의 훈련을 받는다나.
그러니까 그건, 단테가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내가 안다는 의미였다.
둘째. 앙드레는 저택 내에서 남아 있는 기사들과 함께 훈련했다.
성격이 워낙 밝고 말이 많은 편이어서 복도를 걷다 보면 앙드레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고는 했다.
왁왁 소리를 지르면서 뛴다든지 나무를 타고 오른다든지……. 별의별 장난을 쳐서 주목을 하지 않을 수가 없기도 하고.
즉, 앙드레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게 됐다.
마지막으로 메르엠은 나와 동선이 제일 많이 겹쳤다. 집사, 총무관 등 저택 내의 행정, 회계 실무관에게 뭔가를 배우고 있거든.
두어 가지 수업은 나와 메르엠이 함께 듣기도 한다.
‘그런데 이안은……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뭘 하는지.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그런 걸 내가 전혀 모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