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0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08화(108/173)
물론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말하기 싫을 수도 있지.
‘그런데…… 이렇게까지 평소에 어딜 다니는지 흔적이 안 보인다고?’
거기다 약속이나 한 듯 다들 거기서 입을 꾹 다물었잖아. 나와 앙드레만 빼고 다른 애들은 이안의 일상을 아는 것 같은데…….
왜 앙드레가 모른다고 판단했느냐면 그 애는 도무지 뭘 숨길 줄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뭐든 곧이곧대로 말하는 단순한 성격인지라 거짓말을 하면 횡설수설하며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런데 내가 따로 불러서 이안에 대해 물어봤을 때 그냥 순진무구한 표정 그대로 ‘난 잘 몰라!’라고 했거든.
‘하지만 단테랑 메르엠은 그렇게 쉽게 입을 열 만한 성격은 아니고……. 무엇보다 이안의 일인데, 더 캐묻고 다니기도 좀 그렇고.’
이안, 괜찮은 거 맞겠지……?
‘아침에 일어나는 거 힘들어 하는 걸 아니까 안 찾아갔었는데.’
오늘은 내가 식사를 좀 준비해서 가져가 볼까.
이건 다분히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이안은 안 그렇게 생겨서 의외로 잠투정이 심하니까 아무도 오전에 이안을 건드릴 생각을 안 하거든.
전에 앙드레가 아침에 한 번 이안을 깨우러 들어갔다가 그대로 창밖으로 내팽개쳐져서 늑골에 금이 갔다.
힘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 튼튼한 앙드레가!
이후로 이안이 일어날 때까지 그 복도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게 됐었지.
‘설마 나도 그렇게 집어 던지는 건 아니겠지.’
조금 두렵긴 했지만 나는 아침에 먹을 만한 잣 스프와 과일 종류를 챙겨서 이안의 방문 앞에 섰다.
“이안. 나 왔어.”
대답이 없네.
역시 괜히 와서 자는 애를 깨운 건가.
“아침 가져왔는데 문 앞에 두고 갈게. 그럼 먹을래?”
그런데 그때였다.
쿠당탕!
안에서 뭔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급히 문이 열렸다.
움찔하며 한 발 물러선 나는 피 칠갑을 한 채 숨을 몰아쉬는 이안을 인지하고는 기겁하며 놀랐다.
“이…… 읍!”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소리쳐서 의사를 부르려 한 바로 그 순간.
이안이 너무나 절박한 얼굴로 내 입을 막더니 끌어당겨 방 안으로 들였다.
쿵.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이안이 그대로 옆으로 넘어갔다. 모든 것이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
이안이 눈을 뜬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뒤였다.
빈혈로 눈앞이 핑 도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던 이안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플로린.”
울기 직전의 얼굴.
바들바들 떨리는 손에 쥐고 있는 물에 적신 손수건.
그리고 바닥에 쏟아져 엉망이 된 과일과 수프 그릇…….
그것만 해도 이미 모든 정황을 알아차린 이안은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플로린이 아니라 하녀나 하인이었더라면 사고사로 위장해서 죽여 버리면 되는데, 플로린은 그럴 수 없으니까.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앙드레를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지는 쇼까지 벌였는데.’
역시 너는 내 예상을 항상 뛰어넘는구나.
피식 웃고 있자니 점점 더 머릿속이 또렷해졌다.
아까 무슨 정신으로 플로린의 입을 막아서 끌고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가장 알맞은 판단을 내린 것이긴 했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려져선 안 되니까.
단테나 메르엠은 눈치가 빨라 알아챈 것 같지만 그 누구도 명확하게 이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조커의 단원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두 극비였다.
“웃어? 지금, 웃어?”
가늘게 떨던 플로린이 이를 꽉 물고 중얼거렸다.
굉장히 화가 났는지 평소에 잘 넣고 다니는 동물 귀까지 뿅 튀어나와 있는 바람에 이안은 버릇처럼 귀엽다고 하려다 꾹 참았다.
지금 그 말을 했다간 플로린이 얼마나 화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게 뭐야. 배가 왜 이래. 붕대에 계속 피가 배어나서, 아무리 지혈해도 안 돼서. 내가, 내가 얼마나…….”
“애기야.”
파랗게 질린 얼굴이 안쓰러웠다.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는데.
이안은 손을 뻗어 플로린의 눈가에 매달린 눈물방울을 다정히 닦아냈다.
“내가 실수해서 다친 거야. 별것 아냐.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겠지.”
“실수? 뭘 하면 이렇게 다치는데? 단테나 앙드레는 한 번도 이렇게까지 다친 적 없었어. 이건…… 이건 검에 관통당한 거잖아. 아니야?”
“음.”
눈치 빠르네, 우리 애기.
어쩌지.
원래 이안의 계획은 저택에 돌아온 다음 남몰래 숙부를 부르는 것이었다. 마법으로 치료를 받으면 말끔해지니까.
그런데 어젯밤에 임무 중 입은 상처는 꽤 깊었다. 가지고 있던 약을 바르고 실로 얼기설기 꿰매 대충 처리를 했지만 아무래도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현기증이 일었다.
그 바람에 이성을 잠깐 잃었고…… 플로린의 목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어버린 것이다.
그러지 말고 그냥 보냈어야 했는데.
“사람은 안 불렀어. 방에 붕대랑 약이 다 있기에 그걸로 내가 직접 붕대를 다시 갈았어. 알리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고마워. 잘 했어.”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만약 사람을 불렀더라면 입막음을 해야 했을 것이다.
임무로 인해 다친 것을 바깥에 드러내면 조커의 일원으로서 실격. 조용한 입막음은 어길 수 없는 강력한 규율이다.
그나마 플로린은 차후에 이 가문의 안주인이 될 테니 예외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똑바로 말해줘. 가문 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다른 후계자들처럼…… 뭘 배우고 있는 거 아니었어? 훈련하고, 공부하고.”
“나는 조금 달라.”
목덜미가 뜨끈한 걸 보니 열이 오르는 모양이다.
제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쓸어 넘긴 이안은 고민했다.
빨리 마법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플로린의 눈앞에서 숙부를 불렀다간…….
‘내가 위험한 임무를 맡은 걸 알면서도 숙부가 방치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플로린의 미움을 살 테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숙부는 앞으로 그를 도와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플로린의 미움을 사게 행동했으니까.
‘그냥 좀 아프지 뭐.’
결론을 내린 이안은 천천히 말을 골랐다.
“내가 제일 형이잖아, 플로린.”
“……그게 뭐? 어른은 아니잖아.”
“원래 드리블랴네의 후계자들은 일찍이 어른처럼 살아.”
작년에 이안은 바니(bunny) 신세에서 벗어났다.
암살 조직 ‘조커’의 단계는 모두 넷.
지금 그는 리틀 클라운이라 불리며 정식 조직원이 되었다.
그래봤자 단독 임무를 맡을 수는 없고, 광대들이 가는 곳을 따라다니며 허드렛일을 하는 입장이었지만 최소한 토끼 시절보다는 나았다.
오늘 다친 건 표적이었던 신성 기사가 생각 외로 너무 강했기 때문인데……. 이런 걸 플로린에게 줄줄이 읊을 수는 없고.
“이렇게 크게 다치는 임무를, 지금껏 반복해서 맡은 거라면…… 가주님께 말씀드릴래. 이건 아니잖아. 단테가 받는 훈련 정도로 강도를 맞춰야지, 어째서 이안만 이래?”
“임무가 아니라 훈련. 그리고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플로린이 말속에 슬쩍 ‘임무’라는 단어를 끼워서 유도 심문을 했다. 그걸 알아챈 이안은 입매를 부드러이 끌어 올리며 단호하게 딱 잘라냈다.
“하지만…… 하지만 생일인데 이게 뭐야…….”
“이런,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플로린.”
상체를 세우고 싶은데 배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일어나는 걸 포기한 이안은 밭은기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누르고 플로린을 달랬다.
입술을 앙다물던 플로린은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가 모든 걸 다 말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윽, 잠시만. 플로린.”
“놔. 쉬어야지. 옆에 누구 있으면 푹 쉴 수 없잖아.”
냉담한 척 등을 돌렸지만 플로린의 작은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보내면 또 어디서 혼자 울겠지. 그리고 단테가 달래줄 테고.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그런 건 싫었기에 이안은 방금 포기한 게 무색하게 억지로 몸에 힘을 주고 일어나 플로린을 뒤에서 껴안았다.
상처가 벌어져서 피가 좀 더 새는 느낌이 나지만…… 괜찮겠지. 눈앞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이안은 힘든 것을 감추기 위해 플로린의 등에 이마를 댔다.
“가지 마, 애기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