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09)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09화(109/173)
* * *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안이 세게 잡기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그는 오히려 내게 기대었다. 마치 내가 없으면 그대로 쓰러져서 밤새 앓을 것처럼.
툭.
등에 닿는 이마가 뜨끈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열이 오른 탓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어떻게 이런 널 두고 나가.’
묻지 못하겠다. 이안은 캐묻는다고 해서 대답해 줄 사람이 아니었다.
입술을 꾹 깨물던 나는 결국 몸을 다시 돌려 이안을 받쳐 안았다.
“이상한 상처야. 내 신성력으로 치료가 안 돼. 누구에게, 어디서 입은 상처기에…….”
“…….”
“……마법으로 치료할 수는 없는 거지? 이렇게 다친 거, 비밀이라곤 해도 아버님한테만 몰래…… 말씀드리면 안 돼?”
“안…… 돼.”
내겐 마치 하늘처럼 거대하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든든하여 믿을 수 있는 사람인데, 이안에겐 아니구나.
그 사실이 참 속상했다.
이럴 때 이안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아무도 없는 거잖아.
이 부유하고 강한 가문 속에서 어째서 넌 혼자 외로워.
“잠깐 쉬면…… 다, 괜찮…….”
이안의 음성이 점점 잦아들더니 피 냄새가 왈칵 밀려왔다.
내가 새로 감아둔 붕대 사이로 기어코 비집고 나온 피가 보였다.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신성력을 퍼부어 봤지만 여전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상처라도 다 치료할 수 있었는데.’
이안을 낫게 해주지 못한다면 내 신성력이 무슨 쓸모가 있지?
“신이라며. 나를 지켜본다며. 설명해 줘. 왜……. 왜 신성력이 안 듣는 건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이안의 손을 꼭 잡은 채로 기도하듯 고개를 숙였다.
언제부터인가 단단해진 손목에서 맥박이 뛰는 게 느껴진다. 혹시라도 심장이 멈추는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너무 겁이 났기에 난 도저히 이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 그건 너보다 더 …… 신성력에 의한 상처로구나. ……으로 입은 상처는 오직 그보다 더 강한 신성력으로만 ……할 수 있단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주 먼 곳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웅웅거리는 탓에 집중해야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건 그 ‘신’이란 자가 보내는 전언이 틀림없었기에 한 마디도 놓칠 수 없었다.
– 믿음이 ……질수록 신성력의 크기는 커진다. 당장 그럴 수 없다면 마법이나 가이아노스의 힘을 빌리렴.
가이아노스!
눈이 번쩍 떠지는 해결책에 나는 이안의 손을 놓고 벌떡 일어섰다.
‘이안이 아버님은 안 된다고 했어. 그건 마법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아버님께 알릴 수 없다는 소리였을 거야.’
그렇다고 의사를 불러오려고 해도, 이 가문 내에서 내가 어른들의 눈에 띄지 않고 의사를 여기까지 데려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화이란이라면?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의학을 배워두지 않았을까?’
나는 화이란이 어디에 머무는지 알고 있었다.
“이안,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널 이대로 둘 수는 없어.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안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런 다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애를 쓰며 발을 재게 놀렸다.
“안녕하세요, 작은 마님!”
“응, 안녕!”
“어디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요?”
“난 잘 모르겠는걸? 식당에서 생고기라도 들여온 것 아냐?”
내가 평소에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일단 웃으면 되겠지.
입꼬리가 바들거렸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총총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저택 내에 화이란의 거처로 지정된 곳에 도착한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문을 두드렸다.
“화이란!”
귀한 손님이니 저택 안쪽에 방을 내어주는 게 관례겠지만 화이란은 외진 곳을 원했다.
앞에 작은 뜰이 있고 햇살이 잘 비치는 장소. 특히 1층에서 지내고 싶어 했는데, 그건 지금 내겐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저택 뒤편으로 한참 돌아가야 나오는 방이라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었다.
“화이……!”
“음, 아주 미세하지만 피 냄새가 나는데. 다치셨습니까?”
벌컥.
잠시 뒤, 문이 열리며 졸린 기색의 화이란이 나타났다.
낮잠 자던 사람을 깨운 게 몹시 미안하긴 하지만 이안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꼬리를 그제야 내린 나는 화이란의 팔에 매달려 속삭였다.
“화이란, 치료할 수 있지?”
“음. 지금 곤란하고 급박하며 들키기 싫으신 상황입니까?”
“맞아!”
눈치 빠르다, 화이란.
나는 간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환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누가 엿듣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불안해서 뒤를 흘끔거리는 나를 보던 화이란이 제 방 안으로 들어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이윽고 문이 닫히고, 화이란의 방에 완전히 들어선 나는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편히 말씀해 보십시오, 공주님. 이 방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마탑주도 못 듣습니다.”
“다행이다! 저기, 이안이 신성력으로 크게 다쳤어. 나는 신성력이 치료만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공격도 할 수 있나 봐. 내 힘으로는 치료할 수가 없어.”
“살리기를 원하십니까?”
“당연하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 먼저 가서 치료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오십시오.”
“어, 응?”
위치 알아?
그러나 내가 그렇게 물어보기도 전에 화이란은 사라졌다.
삐걱거리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난 흠칫 놀라며 고개를 휙휙 돌렸다.
‘창문을 통해서 나간 것 같은데, 나간 줄도 몰랐어.’
화이란이 어떻게든 해주겠지. 분명 그럴 거야.
나는 심호흡을 깊게 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안이 무사할 거라는 확신이 들고서야 퍼즐이 맞춰졌다.
‘마도제국 내에 신성 기사가 있을 리 없으니 이안이 다녀온 곳은 신성제국이야.’
전쟁이 끝났다는 건 개소리였구나. 이제부터는 물밑 전쟁이 시작인 거였어.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아르칼리크에 가도 되는 거야?’
* * *
이날 저녁, 화이란 덕분에 이안은 열이 떨어졌다.
삼십 분쯤 전에는 의식도 돌아왔는데, 그때 미리 준비해 놨던 묽은 수프를 먹이고 약도 먹게 하자 숨소리가 훨씬 좋아졌다.
“마법이면 깔끔하게 나았을 텐데…….”
속상해서 그렇게 중얼거리자 화이란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법이 만능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법으로 반복해서 상처를 치유하게 되면, 그 몸은 점점 약해지지요. 고통을 이겨내는 법 또한 모르게 됩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알아야 해?”
“공주님은 아니지만, 이 소년은 그게 필요해 보이는군요.”
화이란의 대답은 부드러웠지만 냉정했다.
더 속상해진 난 입을 다물고 이안의 손만 어루만졌다.
“누군가를 아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짊어져야 할 고통까지 없애줄 수는 없답니다.”
“……응.”
나는 이안을 안다.
이안은 몹시 심지가 굳고 은근히 고집이 센 편이었다. 자기 일은 자기가 다 안고 가려고 하지.
오늘처럼 다치고 아파하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것 또한 이안의 계획 속엔 전혀 들어있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속상해. 이안은 매번 내가 기대게 해주고, 떼를 쓰거나 투정 부리는 걸 다 들어준단 말이야.”
“좋은 소년이군요.”
“그런데 내가 어깨를 빌려주는 건 한사코 거부해. 내게 기대려 하지 않아. 그건…… 내가 어려서 그런 걸까?”
어쩌다 보니 화이란에게 고민 상담을 하고 있네.
나는 한숨을 삼키며 이안의 이마에 놓인 물수건이나 집어 들었다.
“흐음, 제 생각에는 공주님이 어려서, 공주님을 믿지 못해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 겁니다.”
“그럼?”
“뭐긴 뭐겠어요.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사내도 있답니까.”
“……그런가?”
하지만 유리는 약한 모습을 잘 보이는데. 그렇다고 유리가 날 안 좋아하는 건 아니고…….
‘음, 아니다. 그건 좋아한다는 마음이랑은 약간 다르지 않나?’
애착에서부터 형성된 독점욕과 집착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좋아한다는 게 뭐야?”
“그걸 제가 상담을 해드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이거, 영광입니다.”
화이란이 헤죽 웃었다.
질문한 거 회수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니까.
입을 비죽이며 차가운 물수건을 이안의 이마에 올리고 있자니 화이란이 생각보다 진지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 사람만 온종일 생각나는 거지요. 그 사람을 생각하면 기쁘고 행복하고, 기꺼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하고 싶은 거예요.”
“화이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그럼요. 그 상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고, 괜히 멋있어 보이고 싶고. 그렇습니다. 좋은 것을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고, 나쁜 건 피해 가게 해주고 싶죠.”
“으음.”
“근데 저라면 이렇게 배 뚫린 꼴을 보였으면 그 즉시 징징거리면서 어리광을 피워 볼 텐데요. 그러지 않는 걸 보면 이 소년의 정신력이 꽤 강한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꾀병 부릴 성격도 아닌 것 같고…….”
콜록, 콜록.
그렇게 말하면서 화이란이 배를 꾹 누르는 바람에 이안이 잔기침을 터트렸다.
나는 그런 화이란의 등짝을 그대로 후려갈기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녀석이 깨어나지 못하면 공주님이 걱정하면서 여기에 밤새 계실 것 아닙니까. 이제 슬슬 정신을 차리라고 한 겁니다요.”
“그래도 치료해 준 환자 배를 누르면 어떡해?!”
“아야야. 잘못했습니다.”
“이안이 이렇게 된 건 처음 봤단 말이야. 화이란 말대로, 이안은 꾀병을 부릴 성격이 아냐.”
그런 건 유리 전문이지.
난 한숨을 내쉬며 붉은 머리칼의 미소년을 빤히 보았다.
아프니까 더 청초해 보이네.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