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1화(11/173)
“푸딩, 또 머꾸 싶다…….”
이윽고 나는 텅 비어버린 유리병을 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유모가 후후 웃으며 내 입가를 살살 닦아주었다.
이미 유모는 내 포로가 되어 있었기에 손길이 아주 상냥했다.
“원하신다면 절반 정도는 더 내어오라 할게요. 하지만 너무 많이 드시면 이가 썩을 거예요.”
“움…… 구럼 갠타나. 대신…….”
“네, 작은 마님.”
“이고 만든 사람한테 고마오 하러 갈래!”
“어머, 주방장이 몹시 기뻐할 거예요.”
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속으론 음흉하게 킬킬거리고 있었다.
이건 다 내 음침하고 무서운 계략이란 말씀.
주방장은 그 집안 내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 주방장과 친해지면 최소한 라흰이 왔다 해서 내 식사가 부실해지진 않겠지.
‘비록 라흰이 나중에 주방장의 마음을 사로잡긴 하지만…….’
나는 문득 원작의 장면을 떠올렸다.
[“제프, 이건 떡볶이라고 해. 소시지를 넣어서 만들면 세 배로 맛있어!”“성녀님…… 이건…….”
“응? 왜 그래, 제프?”
드리블랴네의 주방장, 제프는 눈물을 훔쳤다.
그럴 수밖엔 없었다. 성녀 라흰이 내놓은 레시피는 그 역시 익히 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닌…… 오래전에 전사하신 아리아드네의 레시피였다.
“따님이 만드신 이 요리를 드시고 가주님께서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하지만 아리아드네 님이 그리 돌아가신 뒤로는…… 만들어 본 적이 없군요.”
“저런…….”
라흰은 놀란 듯 눈을 살짝 치켜떴다.
잊고 있던 아리아드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새카만 머리칼과 청동을 닮은 청록빛 눈동자.
저를 보며 늘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던 아리아드네는 매번 자신과 키락서스의 만남을 방해했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봉인된 동안의 기억이 없는 라흰으로서는 사실 어제의 일처럼 아리아드네가 생생했다.
‘설마 아리아드네도 나와 같은 곳에서 이 세계에 온 거였어?’
충격에 라흰은 잠시 비틀거렸다.
“오래되어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흐윽…… 꼭 맛있게 잡수실 수 있도록,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으응, 울려서 미안해.”
겨우 표정 관리를 한 라흰은 다 안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제프를 꼭 껴안아 주었다.
“떡볶이를 만들어 나가면 가주님께서 분명 기뻐하실 거야. 힘을 내실 수 있게 도와드려야지!”
“예에, 맞는 말씀입니다. 성녀님.”
“아이, 참. 난 이제 성녀가 아니야. 그냥 라흰이라고 부르래도.”
라흰은 해맑은 표정으로 한 발 물러나 바쁜 주방을 구경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나 불안했다. 신에게 빌 수 있었던 세 가지 소원 중 마지막. 드리블랴네 저택에 자연스럽게 존재하기 위해 그녀는 남은 소원을 모두 써버렸다.
‘이제 더는 대처할 방법이 없어.’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리아드네가 사실은 죽은 게 아니라거나, 혹은 죽음에서 되돌아온다면…….
‘난, 어쩌면 좋지?’]
다시 떠올려도 정말 충격과 공포의 막장 전개라니까.
‘하지만 나는 네가 온다고 해서 이 안락한 가문에서 순순히 쫓겨나 줄 마음 같은 거, 없어.’
난 고개를 들어 절제된 화려함이 가득한 복도를 바라보았다. 황궁에 견줄 만큼 아름답고, 부내가 났다. 못내 탐이 날 만큼.
“빤니 가꿍야(서둘러 움직이거라)!”
이윽고 존의 머리 위에 올라탄 나는 위풍당당하게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러자 주변에서 나를 보며 소곤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저분이 새로운 성녀 님이라면서요?”
“소문에는 미래를 예측하신다고 하더라고요. 믿기진 않지만요.”
“근데 알비노가 드리블랴네를 대표하게 된다니, 그건 좀…….”
“쉿, 그러다 천벌 받아요! 인간화를 못 하는 이유가 봄을 불러오느라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그렇다잖아요!”
후후. 계획대로군.
내가 인간화를 못 하는 건 알비노이기 때문이지만 약점은 진실 30%와 소문 70%로 감출 수 있다.
물론 처음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나다니면 수군거리는 말들이나 눈빛도 별로였고 말이야.
하지만 그런 저택 분위기는 내가 습격 정보를 알려준 다음 들어온 급보로 인해 완전히 뒤집혔다.
“습격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신 그 전선에 내 동생이 가 있었다고! 근데 저분이 미리 알려주셔서 산 거야!”
“습격 하루 전에 알려주셔서 다들 대피한 건 물론이고 되레 기습까지 할 수 있었대!”
“어떻게 아신 걸까? 정말 감사한 일이야.”
소문이 내게 유리한 쪽으로 나는 데는 하루도 채 안 걸렸다. 사람들의 눈빛이 극도로 호의적으로 바뀌는 데는 이틀이면 족했고.
그다음에 내가 친한 척 굴자 반응이 완전 달랐다.
필살 애교, 배 보여주기!
기술명 [발라당]을 해줬더니-
“어머, 플로린 님이 너무 귀여워서 벽을 쳤더니 옆방이랑 마주하게 됐어요. 어쩌죠!”
내 정보 덕에 가족이 목숨을 구한 하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주접을 떨어줬다.
기술명 [동글 귀 까딱이기]를 해줬더니-
“후욱, 후욱. 하, 한 번만……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됩니까.”
동료들이 무사하게 된 기사들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호흡 곤란에 빠졌다.
아무래도 꿍실한 엉덩이랑 동글 귀 두 개, 풍성한 꼬리는 치명적이지. 요즘 살도 좀 붙어서 토실토실한 게 얼마나 귀엽다구.
뼛속까지 알비노 혐오자가 아니라면야 어린데 살갑게 구는 나를 내내 미워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미워할지 예쁘게 봐줄지는 한 끗 차이긴 했어.’
인간화도 못 하는 나를 미워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내 덕에 습격을 막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으니까.’
게다가 이 가문의 최고 권력자 중 하나인 키락서스가 나로 인해 소가주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런 상황에 나를 굳이 미워할 간 큰 고용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정확히는 내가 귀엽다기보단 내가 성녀인 거나, 내 주변을 둘러싼 권력이 귀여운 거겠지만.’
뭐, 상관없다. 애초에 내가 성녀라는 거짓 소문이 퍼지게 만든 게 다름 아닌 가주 할아버님인걸.
나는 급보가 들어왔던 날 밤. 누구도 몰래 가주님께 불려갔던 일을 떠올렸다.
“하늘 아래 성녀가 둘 있을 수는 없다.”
뒷짐을 지고 선 가주 할아버님은 조용히 말씀을 이으셨다.
“나는 네가 성녀라는 걸 믿지 않는다. 애초에 성녀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지.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가문에 이득을 준 이상, 네가 진짜든 우연히 맞힌 것이든 상관없다. 앞으로 너는 진짜 성녀고, 봄과 함께 깨어났다고 할 것이다. 봉인당해 있는 신성 제국의 성녀가 사실 가짜 성녀며 네가 진짜라고 소문을 낼 터.”
‘와, 진짜 악당 같으시다…….’
한순간에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짜가 되는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
“너로 인해 키락서스가 고집을 꺾고 소가주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니 그것만 해도 도움이 되었는데 이리 기특할 줄이야.”
이제 가주 할아버님이 나를 보는 눈은…… 음, 그래. 딱 그거다. 보물상자를 보는 눈빛.
나에 대한 값어치가 확 올라갔음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선물이다. 가져가서 먹거라.”
“마까롱……!”
그러더니 색색의 마카롱이 열두 개나 들어 있는 상자까지 주시지 뭐야!
“네 생각이 나서 황궁에 들른 김에 챙겨왔다.”
“고마뜨니다!”
마실 나간 김에 손자며느리 간식을 챙겨와 주시다니!
난 그걸 어제 모두와 함께 사이좋게 나눠 먹고 유모에게 혼이 났다. 너무 간식을 많이 먹으면 이가 썩는다고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
나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말들이어서 솔직히 듣기 좋았었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제 내게 계속해서 습격을 막아내기를 기대할 거야.’
그걸 오래 유지해야 하면 밑천이 들통 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봄이 왔다는 걸 알게 된 양국은 조만간 평화 협정을 맺을 것이다.
황폐해진 나라를 돌보는 시기가 도래하면…… 난 자연스레 명성만 얻을 수 있단 말씀.
“어서 오십시오, 작은 마님.”
“제푸!”
“허허, 주방은 위험한데 말입니다. 그래도 이리 찾아주시니 활력이 납니다.”
잠시 뒤, 나는 주방에 도착했다.
제프는 사실 처음엔 내가 주방에 오는 걸 몹시 경계하고 꺼렸다. 하지만 내가 그의 디저트에 대해 장점을 분자 단위까지 쪼개 칭찬하자 제프는 곧 내게 마음을 열었다.
“마침 마카롱 꼬끄를 굽고 있었는데 하나 드시겠습니까?”
“응!!!”
이게 웬 떡이람!
유모는 내 간식의 양을 꽤 엄격하게 통제하는 편이었다. 인간화를 못 하니까 동물 모습으로 먹어도 위험하지 않은 정도만 먹도록 권장한달까.
‘미안해, 유모. 몰래 먹는 간식이 더 꿀맛이라서…….’
이윽고 라즈베리 시럽으로 색을 낸 분홍색 마카롱 꼬끄를 품에 안은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담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