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1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11화(11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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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교황이란 자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 이거네?”
“예. 바로 그겁니다요!”
안전한 드리블랴네 저택에서도 특히 안전한 곳이 바로 내 방이다.
팔랑팔랑.
나는 화이란이 가져온 서류를 확인한 뒤 가장 중요한 장을 펼쳐 탁 내려놓았다.
“그래서 내가 성녀란 소문을 듣고, 나를 내놓으라고 무력 집단을 보냈고 그게 성기사들이다.”
“맞습니다.”
“우리 가문에서는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안이 포함되어 있는 어떤 특수 부대를 보냈고?”
화이란이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란한 얼굴로 화이란을 쳐다보던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안이 다치게 된 원인이 나라는 것을.
“제삼자이자 아르칼리크의 특사인 입장으로 객관적으로 보기엔 드리블랴네가 잘못했습니다. 신성 기사단을 데려오긴 했지만 신성 제국에서는 일단 말로 요청했는데 그걸 냅다 후려갈기지 않았습니까.”
“그럼 화이란이란 개인의 의견으로는?”
“아주 잘했지요! 제가 가서 확 조져버릴 걸 그랬습니다!”
화이란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더니 거세게 흔들었다.
“지네가 뭔데 감히 공주님을 내놔라 말라입니까? 공주님을 뵙고 싶으면 무릎 꿇고 여기까지 기어오라고 하세요!”
“으응, 연설 잘 들었어. 감동적이네.”
감동적이다 못해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킬 발언이다.
자기가 직접 서류에다 교황이 황제보다 한 단계 높다고 해놓고는?
‘올 게 오긴 했지.’
내가 성녀라고 알음알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전쟁 중이었잖아. 당시에 신성 제국은 새로운 성녀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정신도 차렸고 숨도 돌렸으니 귀가 쫑긋하겠지. 내 얼굴이 보고 싶기야 할 테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만남을 요청하거나 교황이 직접 마도 제국 까지 오기엔 절차도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려. 뭣보다 명분이 필요하지.’
그래도 정상적이라면 그런 절차를 밟았으리라. 조금 기다려도 결국 만나긴 만날 테니까.
그러나 체면도 염치도 버리고 이런 짓을 한 이유는-
“공주님이 곧 아르칼리크로 가니까 똥줄이 탄 게지요.”
“그러니 아르칼리크로 가기 전에 나를 납치해서 성녀가 맞는지 아닌지를 직접 보고 싶다, 뭐 그런 소린 거지?”
“예. 아주 무도한 놈들입니다.”
화이란이 입매를 비틀었다.
차갑게 식은 두 눈을 보니 내 한 마디면 교황청에 숨어 들어가서 교황 멱살이라도 잡을 셈인 것 같은데……. 그럴 필요가 있나?
“내가 아르칼리크로 가면 없어질 분쟁이야. 아무것도 하지 마.”
“힝.”
“힝은, 무슨 힝이야.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말고. 백 살도 넘은 할아버지가.”
나는 질색하며 손을 흔들었다.
화이란은 시무룩하게 늘어트렸던 눈썹을 원위치로 복구시키고는 주섬주섬 서류를 안아 들었다.
그런 화이란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저 상세한 서류 안에 없는 정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교황의 얼굴이 그려진 자료 같은 건 구할 수 없었어?”
“음, 교황의 진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던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 기울였으나 화이란은 농담이 아닌 듯했다.
“일단 ‘대외용’ 얼굴이 있긴 해요. 근데 그건 교황의 진짜 얼굴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아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설마 진짜 얼굴을 본 사람은 죽는대?”
“예, 그렇다고 하네요.”
그게 뭐람.
하여간 이상한 집단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곤 내내 궁금했던 것을 혀끝에 올렸다.
“듣자 하니 거기에 원래 성녀가 있다면서.”
“성녀, 라흰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 여자가 일으킨 사건 때문에, 어휴. 말도 마십쇼. 아르칼리크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겨울을 불러온 사건 말하는 거지?”
“예. 그 사건이요.”
화이란이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마른세수를 했다.
“아시다시피 아르칼리크는 오래전부터 지상을 관찰하고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보호를 해왔습니다.”
“으응.”
“그런데! 갑자기 계절이 멈추다니요! 그건 재앙이었습니다. 세상 만물이 이치에 맞게 돌아가야 하는데! 자연법칙이 가이아노스께서 정하신 그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진노를 산단 말입니다!”
화이란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당시에 왕께서 건재하셨더라면 어긋난 계절을 금세 고쳤을 겁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때가 바로 왕비님을 잃으신 시기였지요.”
우연의 일치네. 공교로워.
“아무튼 이렇습니다, 공주님.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화이란이 물러간 뒤, 나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창문에 뺨을 댔다.
지금은 누구도 보고 싶지 않다.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내가 여기에 있는 한 교황은 계속해서 나를 보려고 사람을 보내겠지?’
지금 이안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치상 밝은 빛 아래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단테가 계속 평소라는 단어를 반복했구나. 내게 알려주려고 그런 거야.’
이안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안은 죽어도 제 입으론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소모품.’
그 단어 하나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 입맛이 썼다.
‘하지만 이안은 자신이 원한 거라고 했어.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집단에 들어가서, 아마도 가장 꼭대기까지 올라갈 생각인 거야.’
그렇다면 내겐 이안에게 ‘그만하라’고 할 자격이나 권리가 없다.
만약 나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이안은 그 집단 속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야 하니까.
‘내가 평생 책임질 게 아니라면 위험하단 이유로 막아선 안 돼.’
엄청 걱정되지만…… 그래서 속상하지만…….
나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푹 박았다.
‘역시 아르칼리크로 좀 더 일찍 올라가야겠어.’
아빠는 내가 아기도 아닌데 매번 잠들 시간에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려 하시고, 눈을 감고 있으면 끝도 없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아빠에게 얼마나 의미가 크고 귀한지 모를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아빠는 나를 보낼 때마다 헛헛하고 마음이 아픈 정도를 넘어서서 거의 버려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사실 아빠를 두고 드리블랴네로 돌아오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기도 해.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했어.’
라흰을 대비하겠다던 초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이안, 단테, 유리. 그리고 앙드레와 메르엠, 시온까지. 어떤 의미로든 모두 나를 좋아해 주고 있어.
거기다 이 가문 사람들 중 지난 몇 년간 어려울 때 개인적으로 내 은혜를 입지 않은 이가 없었다.
어머니가 아프시다거나 동생의 약값이 모자라다거나 하는 가족 문제부터 시작해서 뭔가를 공부하고 싶다거나 혹은 기사단의 스콰이어가 되는 게 꿈이라거나 하는 자기 발전에 관계된 것까지.
나는 한 명 한 명을 세심히 살폈고 그들이 진심으로 꿈꾸고 바라고 있는 것들을 해결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 정도면 라흰이 와도 내 지위가 굳건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떠나도 될 거야. 어른이 되어서 내가 나 스스로를 지키고 책임질 수 있는 힘을 길러서 돌아오자.’
혼자 생각하다 보니 점점 마음이 굳어진다.
그래도 바로 어른들께 말씀드리기보다는 하루 정도는 더 생각해야지.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져서 나는 기운을 차렸다.
‘슬슬 배가 고픈데 뭐라도 좀 먹을까?’
그때였다.
톡.
톡.
어디선가 불규칙하게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에 누가 있나 싶어서 창문을 열어젖힌 난 거기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갸우뚱했다.
분명 누가 부르는 것 같았는데?
“응? 이게 뭐야, 동아줄?”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머리 위에서 동아줄 하나가 내려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웃음이 터진 나는 일단 그걸 잡기로 했다.
누가 나를 부르는 건지는 몰라도 가봐야지.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면…… 유리인데.’
단테는 은근히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이런 이벤트 같은 건 잘 생각해 내지 못한다.
하지만 유리가 여기에 있을 리가 없잖아.
“이안?!”
누가 나를 부르는 건지 궁금해하며 줄을 잡았는데 어느덧 지붕에 안착한 나는 붉은 머리칼의 미소년을 발견했다.
아파서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긴 대체 왜?
“답답해서 바람 좀 쐬려고. 저녁도 먹을 겸. 연어 샌드위치 줄까?”
“아프잖아. 누워 있어야지!”
“안 아파. 다 나았어, 플로린.”
거짓말. 완전 거짓말이다.
안색이 해쓱한데 무슨.
그러나 이안은 미소를 띤 채로 내게 샌드위치 한 쪽을 내밀었다.
하는 수 없이 그걸 받아 든 난 이안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혼자 방에 있느니 네 얼굴 한 번 더 보는 게 더 빨리 나아.”
“내 얼굴이 약이야?”
“휴식이지. 내게는.”
“치.”
입술을 삐죽거린 나는 연어와 양파, 양상추와 소스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를 입에 가져갔다.
아까까지 조금 우울했는데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잘 먹네. 우리 애기.”
“애기 아니거든? 다 큰 게 언젠데.”
“응, 잘 먹네. 우리 플로린.”
내 항의에 이안이 순순히 호칭을 바꿔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간 아무 말 없이 밤바람을 맞으며 샌드위치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