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14)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14화(114/173)
“솔직히 지금 잡담할 여유가 있는 것도 저놈이 정신 빠져 있기 때문이잖아.”
“그렇지.”
기사들은 자신들의 꼴을 돌아보며 짧게 한숨을 뱉었다.
멋들어진 제복은 어디로 사라지고 전원 상의를 벗은 채다. 사흘 내내 숲속을 구르는 바람에 머리칼도 까치집이 되었고 온통 흙이며 먼지 범벅이 된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기쁜 것은 이 상태가 평소 훈련보다 나은 상태기 때문이다.
최소한 비에 젖진 않았잖아!
등 뒤에서 화산이 터지는데 용암과 화산재를 피해서 달리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들이 이 말도 안 되는 훈련량을 버텨낸 건 모두 단테가 앞장서기 때문이었다.
미친놈 중에서도 제일 미친놈.
살아 있는 인간 병기 같은 놈.
기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동경의 시선으로 단테를 보았다.
단테는 지금 검지 하나로 버티며 물구나무를 선 채 푸쉬업을 하고 있었다.
한계까지 조밀하게 압축된 근육이 현혹적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극한의 노력이 빚어낸 예술품과도 같은 육체였다.
넓은 등과 어깨부터 시작해 역삼각형으로 내려가는 두꺼운 광배근. 완벽한 모양새로 발달한 대퇴사두. 거기에 선이 굵어 잘생긴 외모까지.
그 모든 게 단테를 이루는 요소였다.
체지방 관리도 얼마나 무섭게 하는지, 제복을 걸쳤을 때 단테는 결코 몸이 커 보이지 않았다.
덩치가 작다는 건 아니지만 우락부락하지 않다고나 할까. 그래서 제복 핏이 질투 나게 좋다고 할까.
입혀도 잘났고 벗기면 더 잘났으니 요즘 사교계에서 단테의 인기는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고 하늘을 찔렀다.
여자들은 호감을 갖고 남자들은 동경한다.
뭇 기사들은 단테가 옷을 벗고 기초 체력을 단련하는 모습만 보면 한숨을 내쉬며 제 몸을 돌아보았다.
분명 자신들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체격과 근육인데 단테에 비교하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
그렇게 단테는 시샘과 경탄이 뒤섞인 시선을 받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개인 훈련을 마쳤다.
오늘은 별도의 검술 훈련이 없는 날이다. 기초 체력 단련이 끝나면 곧바로 서류 작업을 해야 했다.
그에게 주어진 몇 가지 안건이 있는데 그걸 내일까지는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그러니 서둘러 들어가서 씻어야 하는데…….
‘어디 갔지? 물주전자가 분명 여기 있었는데.’
대충 수건으로 땀을 닦고 마실 물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그때였다.
“저어, 이거 드셔요!”
“아니에요, 제가 드리는 걸 드세요!”
“아니, 부디 이걸!”
숨어서 기사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한 무리의 영애들이 쪼르르 달려와 음료를 내밀었다.
단테는 당황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훈련장에 있던 물주전자가 사라진 건 다 계획된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연무장은 위험하니 가까이 오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딱딱하게 대꾸하자 영애들의 대표 격으로 서 있던 이가 두 손을 꼭 모으더니 눈을 깜빡깜빡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분명 검을 휘두르지 않으셨는걸요. 위험할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게다가 저희는 저어어만치 있다가 방금 온 거예요!”
“……도대체 영애들의 출입을 누가 허가한 겁니까?”
벌써 비슷한 일이 세 번째 벌어졌다.
말싸움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단테는 미간을 좁히며 뒤를 휙 돌았다.
그러자 기사들이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갑자기 훈련에 매진하는 척했다. 자신들은 이 한 무리의 영애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허가는 제가 가주님께 받았어요. 공자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지켜만 보겠다고 약속도 했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이의 이름은 아일라 슈르츠바츠.
드리블랴네의 장로회 노인 중 한 명의 아들의 사촌의 친구의 딸이었다.
요즘 단테가 어디를 가든 이런 식으로 따라와서 골치 아픈 인물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않는 단테가 기억이라는 걸 할까.
“단테 공자님은 저희 모두의 우상인걸요. 솔직히 벨라디 영애만 편하게 여길 오가면서 공자님을 독차지하는 건 불공평해요. 그렇게 말씀드리니 허락해 주셨어요.”
아일라의 말에 다른 영애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단테는 점점 굳어가는 표정을 억지로 펴려고 노력하며 속으로 이안을 떠올렸다. 이럴 때면 곤란한 상황을 손쉽게 대처하곤 하는 제 이복형이 참 부러웠다.
‘이 미친 짓을 막무가내로 막았다간 어떻게 터질지 모르니 가주님도 그냥 허락을 하신 모양인데…….’
차라리 제대로 겁을 줘야 하나.
원래는 이안에게도 따라붙는 영애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이안이 단검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테는 기사로서, 기사도를 배운 몸으로서 도저히 보호해야 할 영애들을 향해 날붙이를 들이밀 수가 없었다. 말로 좋게 달랠 뿐.
“자, 그럼! 어떤 걸 드시겠어요?”
아일라를 위시한 영애들이 그를 향해 물컵을 쭉 내밀었다.
그러나 단테는 짤막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마시지 않겠습니다. 훈련에 방해되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목이 마르지만 플로린이 아닌 다른 여성들이 챙겨주는 물을 입에 대고 싶진 않다.
안에 사랑의 묘약이라도 탔을지 어떻게 아는가.
단테는 둔한 편이었으나 멍청하지는 않았기에 이 한 무리의 영애들이 그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돌려줄 수 없는 마음이니 애초에 받지도 않겠다.
단테는 나름대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간다. 훈련 양, 제대로 채우도록.”
기사들을 향해 짤막하게 명령을 내린 단테는 귀찮은 소란을 피해 저택으로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영애들이 저택 안까지 쫓아오진 않기 때문이다.
“훈련 끝났니?”
“아, 형.”
“올라가자. 가주님이 부르신다.”
햇살이 느른히 비치는 저택 로비. 그곳에 불그스름한 머리칼의 사내가 서 있었다.
여우처럼 갸름한 눈매와 언제나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매. 얼핏 보기에 호리호리해 보이는 체형이나 자주 검을 부딪쳐 본 단테는 알았다.
이안의 악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 수많은 임무를 헤쳐 나오면서도 단 한 번도 상처를 입은 적 없다는 것만 봐도 이안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로 우리 둘을?”
“글쎄. 어쩌면 우리가 기다려왔던 그 일일 수도 있고.”
이안의 부드러운 한 마디에 단테는 숨을 멈췄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단 한 명의 소녀.
플로린.
그 애가 돌아온다고.
“플로린이 오는 거면, 황궁에도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는 것 아냐?”
“그래서 알아봤는데…….”
느릿하게 복도를 거닐던 이안이 창가를 향해 툭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마침 이쪽을 향해 날아온 새 한 마리가 창틀에 곱게 내려앉아 무어라 지저귀기 시작했다.
단테의 귀에는 그저 거슬리는 새 소리에 불과했으나 이안은 거기서 어떤 메시지를 읽어내는 듯 보였다.
“형은 도대체 어떻게 새로 소통하는 거야?”
“훈련하면 다 돼.”
“아니, 내 말은. 새를 어떻게 훈련시키느냔 거지.”
“그것도 하면 다 돼.”
단테의 물음에 이안이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새를 검지 위에 올렸다.
“그래, 그랬구나.”
단테는 안달이 났지만 이안이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노란 카나리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던 이안은 이내 눈매를 휘었다.
“아아. 드디어.”
“드디어? 진짜? 진짜 플로린이 온다고?”
“이 아이가 숙부님을 뵈었다고 하네. 황태자궁에서.”
“와.”
단테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이안은 카나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품에서 해바라기 씨앗을 꺼내 창틀에 뿌려주었다.
그런 이안의 옆얼굴로 오후의 햇살이 비쳐든다.
턱에 단단히 힘이 들어간 모습을 흘긋 본 단테는 이안 역시 긴장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성장했을까. 우리가 어른이 된 만큼 너도 어른이 되었을 텐데.
이안은 어느 순간부터 플로린과 서신으로만 연락했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물어보니 이안은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래야 나를 다시 만났을 때 남자로 볼 테니까.”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던 단테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 역시 편지로만 연락을 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어릴 때도 엄청 귀여웠는데. 커서도 귀엽겠지?”
잔뜩 들뜬 단테가 그렇게 말을 꺼내자 이안이 조용히 대꾸했다.
“멋있어졌을지도 모르지.”
“아, 그건 그래. 머리는 길게 길렀을까? 짧게 쳤을까? 운동은 좀 했을까? 걔, 엄청 말랑말랑했잖아. 여전히 말랑말랑하려나?”
사교계에서 단테를 평하는 단어는 ‘과묵하다’와 ‘무뚝뚝하다’였다.
단테가 이렇게 수다스러워지는 경우는 이안과 함께 있을 때가 유일하다.
아직 플로린이 돌아온다고 확실해진 것도 아닌데 상기된 이복동생을 보던 이안은 문득 플로린이 그들에게 남긴 것을 떠올렸다.
사실 플로린이 이 가문에 있었던 건 고작 몇 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 애가 남겨준 것은…….
“왔느냐.”
“가주님.”
가주의 집무실에 도착한 둘은 예를 갖추어 허리를 숙였다.
가주 임마누엘은 이제 나이가 몹시 많았기에 올해 안으로 후계자인 키락서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요양차 시골 영지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나기 전에 플로린이 돌아오는 걸까?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해소되었다.
“일주일 뒤. 플로린이 내려올 게다.”
“!”
“준비하거라.”
근엄한 한 마디에, 단테와 이안이 동시에 몸을 굳혔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평화로운 지금의 일상이 플로린의 선택에 의해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격변의 시기.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