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1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16화(116/173)
과연 어떤 말을 하실까?
그래도 성녀이니 나라를 먼저 걱정하지 않겠는가.
혹은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지를 말씀해 주시거나 신성 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실지도 모른다.
어쩌면 봉인석에 갇혀 있는 동안 신과 깊은 대화를 나눴을지도.
라흰을 만난 적 없는 몇몇 신관들은 그렇게 기대했다.
하지만 라흰은 첫 마디로 그들의 기대를 완전히 깨부쉈다.
“키락서스는? 하암, 이미 죽었어?”
가벼운 어조로 질문을 던진 라흰이 기지개를 켰다.
단잠을 자고 일어난 동화 속 공주마냥 하품을 한 라흰은 이내 아기 사슴처럼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응? 왜 대답이 없어? 키락서스 말이야. 어떻게 됐냐니까.”
이게 대체 무슨…….
신관들은 얼이 빠진 채로 멍하니 라흰을 쳐다보았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제일 먼저 내뱉은 이름이 ‘키락서스’라고? 그건 저 무도한 마도 제국의 마탑주 아닌가!
나라도 아니고, 소중한 친우도 아니고, 황제 폐하도 아니고…… 하물며 교황 성하의 안부도 아니다. 라흰은 남자부터 찾아댔다.
“그간 겨울에 고통받은 백성들에게 하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기가 막힌 신관 하나가 그렇게 묻자 라흰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을 해? 나 배고파.”
“맙소사…….”
성녀 라흰을 처음 마주한 신관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라흰이 봉인에서 깨어나면 마땅히 참회의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했다.
신성 제국의 겨울은 지독했다. 수를 셀 수조차 없이 많이 이들이 죽어 나갔다. 겨울은 작물을 심어 거둬들이지 못하는 계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신성 제국의 백성들은 한 해가 지날수록 흉포해졌다. 전에 없던 도적 떼가 창궐해 귀족의 저택을 털었고 목숨을 위협했다.
때문에 신성 기사들은 도적을 막으러 다녀야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전쟁도 벌어졌고, 그 피해는 이제 겨우 복구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목에 핏대가 선 네 명의 고위 신관을 바라보며 교황을 비롯해 나머지 고위 신관들이 혀를 쯧쯧 찼다.
그들은 라흰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잘 알았기에 아무런 기대도 하고 있지 않았다.
라흰은 위험인물이다. 순수한 악의로 가득 찬 임프이며 이기주의자에 나르시시스트였다.
라흰은 마치 다섯 살 미만의 어린아이와도 같기에 오직 저만을 알고 타인을 배려할 줄도, 타인의 감정을 생각할 줄도 모른다.
신관들이 무슨 말을 하든 ‘배가 고프다’고 하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헌데 갖고 있는 신성력은 진짜다. 좋은 방향으로 쓴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날 것이나 라흰을 그렇게 움직이려면 끊임없이 오냐오냐하며 달래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심기가 뒤틀리는 일이 생기면 라흰은 모든 걸 집어 던지고 울부짖으며 제 신세를 한탄해댔다.
라흰의 신성력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보다 라흰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슬슬 감당할 수 없어지던 때에 라흰이 세상을 겨울로 만들었다.
그에 ‘이참에 치워버리자’ 싶어 봉인을 한 것이지, 반성을 기대하며 봉인한 것은 아니었기에 교황을 위시해 라흰을 이미 알던 이들은 실망하지도 충격을 받지도 않았다.
“라흰.”
“어? 어어, 잠시만! 나 너 알아!”
라흰은 교황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했다.
그에 신관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당연히 라흰은 개의치 않아 했다.
“설마…… 설마 조르주? 그 귀엽던 조르주야?!”
“맞아.”
“세상에…… 너 왜 이렇게 늙었어!”
라흰이 소리를 빽 지르며 교황의 뺨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도저히 참지 못한 한 신관이 나서서 무엄함을 꾸짖으려 했으나 교황, 조르주는 손짓으로 만류했다.
“네가 꽤 오래 봉인되어 있었지.”
“아이, 참. 속상해. 넌 얼굴 말고 봐줄 게 없었는데.”
“왜. 그래도 지금도 멀끔한 얼굴이라고 칭찬받는다만.”
40대 후반인 교황은 아주 평범한 생김새였다. 연갈색 머리칼과 눈. 어디서든 잘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외모.
하지만 저건 교황의 진짜 얼굴이 아니다.
교황은 보안을 위해 평생 진짜 얼굴을 감추고 신성력으로 만들어 낸 가짜 얼굴을 입고 살았다.
교황의 진짜 얼굴이 세상에 드러나는 건 숨을 거두었을 때. 그리고 진짜 얼굴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건 입관식 때뿐.
허니 라흰이 ‘교황의 가짜 얼굴’을 일컬어 늙었니 잘생겼니 어쩌니 하는 건 이치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몹시 무례하기도 했다.
“그런 기본적인 상식을 모르지 않을 텐데…… 교황 성하의 외모를 논하다니요.”
“정말 알까요?”
“그……큼. 모를 수도, 있긴 하겠군……요.”
신관들이 수군덕거리는 동안 교황은 침착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어? 이게 뭐야?”
“응, 구속구.”
“이걸 왜 나한테 채우는데? 불편해. 풀어줘!”
라흰이 항의했으나 교황은 익숙하게 무시했다.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쇠사슬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라흰의 발목에 착 휘감겼다. 무게가 없어 아프지도 않고 실체가 없으니 거추장스럽지도 않다. 그러니 불편하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이제 네가 어딜 가는지 내가 모두 알 수 있어.”
“아, 왜애. 풀어줘. 풀어줘!”
“걱정되니까 하고 다니렴. 지금 국내 정세가 심상치 않거든.”
신관들은 라흰을 손쉽게 다루는 교황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몇 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이미 그들은 지쳐 있었다.
교황청 내에서 라흰과 같은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철없는 귀족가 자제들마저도 신관을 마주할 때만큼은 경건한 태도를 취했다. 이 나라는 신성력이 근간이며 신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신관들은 라흰과 같은 성격에 면역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보기만 해도 두통이 이는데 다행히 교황 성하께서 라흰을 통제할 수 있다니!
“치. 불편한데.”
라흰은 ‘자신을 걱정해서’ 구속구를 달았다는 말에 기세를 누그러트리고 입을 삐죽였다.
교황은 미소를 짓곤 그런 라흰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꼭 말을 듣지 않는 고양잇과 짐승을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키락서스에 관한 건 네가 몇 가지 일을 처리하면 알려줄 테니 걱정 말렴.”
“약속?”
“그래, 약속이란다. 앞으로 말 잘 들을 수 있지?”
과연…… 괜찮을까.
신관들은 교황과 함께 나가는 라흰의 발랄한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흰은 현재 성녀가 아닌 죄인 신분이었다. 즉, 마르고 딱딱한 빵 하나와 상하기 직전의 우유 한 잔이 식사의 전부다.
창문이 없는 독방에 갇히게 될 것이며 문에는 쇠창살이 쳐져 있다.
신성기사 두 사람이 지키고 서 있을 것이며 그들은 라흰에게 결코 대답하지 않을 터였다.
“매일 오전에 기도 시간을 넣었는데, 과연 저자가 기도를 할는지요.”
“외부 노동 시간에 나오긴 할지…….”
“지금은 저렇게 얌전하지만 방을 보고 나면 난동을 피울 것 같은데요.”
“잠들기 전까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뜨개질을 하여 스웨터를 짜야 하지 않습니까. 그걸 할 주변머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라흰의 처우를 정한 건 다름 아닌 고위 신관들이었다.
죄인으로서 해야 하는 마땅한 일과였는데 지금 와서는 크게 의문이 들었다.
라흰이 그 일과를 따를 것인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 * *
마도 제국, 드리블랴네 저택.
이곳은 오늘 흥겨운 축제 분위기였다.
“딸기 생크림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딸기부터 얹어!”
주방에서는 오래전, 작은 마님이 좋아하셨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7단짜리 케이크를 세 개나 만들어서 내놓을 셈이다. 거기에 딸기맛 머랭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을 계획이었다.
“거기 말고! 그 꽃병은 여기로 두세요!”
“어어, 조심! 조심해서 달아요. 안 떨어지게!”
니나를 위시한 하녀들 역시 들뜬 손길을 감추지 않고 연회장을 꾸몄다.
작은 마님이 돌아오신다!
그 소식은 드리블랴네 저택 전체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리고 흥분한 사람들 사이, 벨라디가 있었다.
“이 그림은 저 벽에 걸어줘. 이건…… 저기.”
벨라디는 지금 마도 제국 내에서 대단히 명성이 드높은 신진 화가였다.
벨라디가 어릴 때부터 그려온 ‘영혼의 빛’ 연작은 전시회에 내놓자마자 신성 제국이나 다른 왕국의 콜렉터들까지 관심을 가졌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유명한 작품이 몇 작 더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 건 얼마 전 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인 ‘짝사랑의 영혼’ 연작이었다.
그건 당대에 찾아볼 수 없는 과감한 붓 터치와 대담한 색의 사용으로 유례없는 극찬을 받은 작품이었는데, 벨라디는 그 작품에서 아주 특별한 배합으로 만들어낸 청록색을 사용했다.
푸른색을 바탕으로 녹색이 많이 섞인 청록.
이전 작품인 ‘영혼의 빛’에서는 쓰이지 않았으며 여태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유일무이한 색.
‘영혼의 빛’ 연작 이후로 ‘짝사랑의 영혼’까지 내놓자 벨라디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내 그림을 보고…… 플로린이 기뻐해 줬으면 좋겠어.”
“기뻐할걸? 널 제일 많이 응원한 게 플로린이잖아.”
플로린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회장에 작품을 걸어 놓은 벨라디는 긴장한 기색으로 손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그런 벨라디의 곁에서 연회장이 꾸며지는 걸 구경하던 단테는 재킷 주머니에 꽂아두었던 손수건을 꺼내 벨라디에게 내밀었다.
“자, 닦아.”
“아, 고마워…….”
“그만 긴장하고. 그러다 플로린을 보자마자 졸도하겠다.”
단테가 씩 웃으며 벨라디의 등을 툭툭 쳤다.
기사단 동료를 대하는 듯한 태도지만 아무튼 친밀한 것은 사실이다.
플로린이 없는 동안에도 벨라디는 꾸준히 드리블랴네 저택을 드나들었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은 이안과는 달리 단테와는 제법 친한 사이가 되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이 말이다.
다른 영애들은 그걸 오해하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벨라디와 단테는 친구가 맞았다.
‘어서 플로린이 돌아왔으면…….’
어디론가 떠나서 쾌활하게 대화를 나누는 단테를 바라보던 벨라디는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보면 안 된다.
눈에 담지 않기로 했잖아.
마음을, 영원히 감추고 죽이기로 했잖아.
‘플로린이 단테를 선택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죽을 때까지 이 마음을 드러내지 말아야지.
벨라디는 단테의 손수건을 소중히 품에 넣었다. 그 누구에게도 감히 드러낼 수 없는 마음이 먼저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