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17)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17화(117/173)
“마차가 도착했다!”
“작은 마님이 오셨어!”
그때였다.
입구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소란이 일었다.
헐레벌떡 뛰어나간 고용인들이 도열하여 인사를 올릴 준비를 하고, 단테 역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앞으로 나갔다.
달칵.
마차의 문이 열리고 은발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저택을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 * *
‘으악, 귀청 떨어질 뻔했네!’
비행정에서 내린 뒤에 마차를 타자고 제안하신 건 다름 아닌 아버님이었다.
마법이면 뿅 하고 드리블랴네 저택에 갈 수 있는데 굳이 마차를 왜 타나 했더니 환영 연회를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나.
뭘 얼마나 거창하게 하려는 걸까 싶었는데 마차에서 내린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렁찬 인사 소리에 진짜 땅이 들썩거리는 줄 알았다니까.
“작은 마님……!”
“어서 오세요. 정말 잘 돌아오셨어요.”
제일 앞에 있는 건 유모와 린다였다. 두 사람 다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나이가 든 모습에 갑자기 속에서 뭔가가 왈칵 차올랐다.
가끔 마법으로 얼굴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니 감회가 달라.
“여전히 미트볼 닮으셨어요.”
그 뒤에 선 건 니나였다.
울음이 북받친 나는 세 사람을 동시에 꼭 껴안았다.
“많이 보고 싶었어. 다들 잘 있었어?”
그 외에도 난 얼굴이 익숙한 정원사와 주방장, 주방 식구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었다.
중간중간 처음 보는 얼굴들은 나중에 따로 불러서 이름도 물어보고 언제부터 드리블랴네에서 일했는지도 확인해 봐야겠지.
그렇게 환호와 기쁨의 눈빛을 받으며 앞쪽까지 걸어가니 그곳에는…….
‘단테.’
가주 할아버님과 이난나 님도 나와 주셨고, 양어머니도 계셨다. 오렌지색 머리칼의 벨라디도 있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보인 건 단테였다.
어릴 때 모습 그대로 자란 것 같은 잘생긴 얼굴. 그와 상반된, 수없는 훈련이 만들어낸 단단해 보이는 몸.
청록색 제복을 갖춰 입은 단테는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하도 열렬해서 눈빛에 델 것만 같다.
어쩐지 민망해져서 단테를 똑바로 볼 수 없었던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해 가주 할아버님께 인사를 올렸다.
“오랜만에 뵈어요. 저, 돌아왔습니다!”
“건강해 보이는구나. 다행이야. 이제 아주 숙녀가 되었구나.”
“할아버님도 건강하시지요? 건강하셔야 해요. 이난나 님도……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약간은 어색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내가 먼저 다가가면 된다는 걸 난 알았다.
“어머니도…… 무척 보고 싶었어요.”
“어서 오세요, 따님. 계속…… 계속 기다렸어요.”
양어머니를 꼭 껴안은 나는 이내 이난나 님의 손도 쥐었다.
안 본 새에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었던 분들은 더 어른이 되어버렸다.
아빠도 화이란도, 각 섬의 주인들도 워낙 늙지 않다 보니 아르칼리크에 있을 때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는데 여기 오니 세월이 흘렀다는 게 확 와닿았다.
‘특히 단테는 대체 뭘 먹고 혼자 저렇게 쑥 자란 거야?’
따라붙는 시선이 홧홧해서 나는 도무지 단테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단테는 끈질기게 내 뒤통수를 응시했지만.
“모두 다 함께 파티를 준비했단다. 자, 들어갈까?”
“네, 이난나 님!”
“거기서 어찌 지냈는지 자세히 말을 해주렴. 듣고 싶은 게 많단다.”
이난나 님이 내 손등을 토닥여주셨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가 돌아온 걸 기뻐해 주니 코가 시큰해서,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치 오래 떠나 있던 고향 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다만 한 가지-
‘그런데, 이안은 어디 있지?’
* *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웃고 떠드느라 오후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어른이 되었으니 이제 청포도로 만든 샴페인도 마실 수 있어서 몇 잔이나 홀짝거리다 보니 온 얼굴에 열이 올랐다.
약간의 어색함은 샴페인의 기포와 함께 토톡 터져서 사라졌고 이제 남은 건 ‘돌아올 곳에 마침내 왔다’는 안정감뿐.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도록 이안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리야 황태자여서 사적인 일로 쉽게 나올 수 없다지만…….
“야, 그만 마셔. 헤롱거린다.”
“아닌데!”
일곱 잔 마셨을 때였나, 여덟 잔 마셨을 때였나. 여태 말이 없던 단테가 내게 다가오더니 샴페인 잔을 빼앗아 들었다.
가주 할아버님과 이난나 님은 먼저 들어가시고 남은 사람들끼리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찰나였다.
“아니긴. 딸기 물든 것처럼 빨개졌으면서.”
단테가 콧방귀를 뀌며 잔을 멀리 치웠다.
그래 봤자 내가 못 마실 건 아니지만 확실히 많이 마시긴 했으니 자제하는 게 좋겠지.
‘기쁜데 속상해서 그랬나 봐.’
모두가 나를 반겨주는 게 행복해서 한 잔.
이안이 이 자리에 없는 게 야속해서 한 잔.
벨라디가 멋지게 성장한 게 기뻐서 한 잔.
이안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게 초조해서 또 한 잔.
그러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나가서 좀 걷자.”
“……응. 나 잠시 다녀올게, 벨라디.”
시간이 늦었는데도 지금까지 함께 해 준 벨라디였기에 감사 인사를 먼저 건네고서야 난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이미 저만치 입구에 가서 헛기침을 하며 기다리던 단테는 내가 가까이 오자 제 망토를 풀어서 머리 위에 푹 덮어버렸다.
“밤엔 추워.”
“열이 올라서 그다지 안 추운 것 같은데.”
“그러다 금세 추워지면서 감기 걸리는 거야.”
민망한지 코밑을 슥 훔치며 단테가 시선을 멀리 보냈다.
나는 그런 단테를 빤히 쳐다보다 망토를 어깨에 둘러 여몄다.
‘크다.’
단테의 품이 이렇게 넉넉했던가?
안긴 건 아니라지만 그의 망토만으로도 충분히 어깨며 가슴의 넓이를 잴 수 있었다.
게다가…… 흘긋 보기만 해도 단테의 체격을 가늠할 수도 있었고.
“훈련, 열심히 했나 봐.”
“어, 어어. 그랬지.”
“부기사단장이라면서? 축하해.”
“아…… 뭐,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단테의 말대로 아무리 봄이라 해도 밤의 기온은 서늘했다. 그리고 그 온도만큼 우리 둘 사이 역시 서먹했다.
뭔가 어릴 땐 분명 자연스럽게 재잘거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무슨 말을 하려 해도 목 끝에서 덜컥 걸려 버려.
나는 똑같은 나고, 단테는 똑같은 단테인데도…… 다 커버렸다는 것 하나가 우리 사이에 장벽을 세운 것 같았다.
내려오기 직전까지 편지로는 잘만 소통했었는데 말이야.
“크흠.”
단테 역시 그런지 갑자기 멈춰 서더니 헛기침을 했다.
“야. 동글.”
“……?”
“너…… 나, 어떤 것 같냐.”
무슨 의도로 하는 질문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남자로 보이느냐와 같은 의미일 테지.
“너는……?”
“뭐,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래.”
“뭐가 당연한데…….”
아, 왜 이렇게 민망하지!
나는 말끝을 흐리며 괜히 밤하늘이나 쳐다보았다. 하필이면 오늘은 달도 보이지를 않았다.
“너무 급하게 가진 않아도 되니까. 그, 그래도 나도 제법 쓸 만한 남자가 됐거든. 어, 튼튼하고…… 인기도 있어.”
단테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아마 나만큼이나 민망한 모양이었다. 슬쩍 눈길을 주니 단테의 목덜미부터 귓불까지 시뻘게진 게 보이거든.
“근데 난 너만 생각했어. 진짜야. 그리고 다시 너 만나니까…… 심장이.”
“심장이……?”
단테가 저러니까 나도 덩달아 얼굴에 열이 몰렸다.
샴페인 탓이 크겠지만 아까부터 내 심장도 쿵쿵거리면서 뛰고 있었다.
아마 술기운이겠지, 이건. 아니면 긴장감 때문일 테고…….
그때, 단테가 내 손을 아주 조심스레 쥐더니 제 가슴팍에 툭 올려놓았다.
“……아.”
날뛰는 심장 박동이 선명하다.
쿵. 쿵쿵쿵. 쿵, 쿵쿵쿵쿵.
단테의 심장은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것처럼 난폭하게 뛰고 있었다.
지금 내 심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마치 폭주하기 직전 같아서……. 단테가 못다 한 말이 그 안에 한가득 들어 있어서.
그래서 난 불에 덴 듯 손을 확 뗄 수밖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