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1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18화(118/173)
* * *
혹시나 싶어 밤새 기다렸지만 이안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복귀 이튿날 아침.
느지막이 눈을 뜬 내가 린다와 니나의 시중을 받고 있는데 이난나 님이 전갈을 보내오셨다.
함께 늦은 아침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이난나 님!”
“어서 오렴. 속은 괜찮고?”
“샴페인이어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아요.”
“다행이구나. 그래도 속이 편한 걸로 준비를 했단다.”
봄이니 오늘 아침 식사는 야외 정원에서 이뤄졌다.
어여쁜 테이블에 앉자마자 게살을 다져 넣은 수프가 나왔다. 그 뒤에는 속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 단호박 샐러드와 생선찜 등의 요리가 날라져 왔다.
“단테 녀석, 많이 어른이 되었지?”
“네, 깜짝 놀랐어요.”
무심한 듯 슬그머니 얹은 한 마디라 나는 처음에는 그 의도를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식사 중반쯤, 이난나 님은 다시금 단테에 대해 언급을 하셨다.
“가주가 되기 위해 모두 열심히 살았단다. 단테는 가문 내에서도, 외부에서도 인기가 많아. 서글서글한 성품이니 그 애를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
“단테가 적을 만들지 않는 타입이긴 해요.”
그 누가 단테를 미워할 수 있을까.
단테는 거대한 상록수처럼 자라났다. 앞면과 뒷면이 똑같은 사람. 단순하고 곧고 올바르지.
제 감정이 고스란히 티가 나서 은근히 귀엽기도 하고…… 결코 나를 속일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든든하고 믿음이 가기도 해.
걷는 모습조차 기사의 교과서이니 이제 막 성인이 된 지금 얼마나 선망을 받고 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비밀을 하나 알려주자면, 그 녀석 몇 해 전부터 인근의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더구나.”
“아이들을요?”
“그래. 하다 말겠지 싶었는데 벌써 몇 해나 꾸준하게 해왔어. 제 딴에는 몰래 한답시고 한 모양이야.”
이난나 님이 베이글에 양파크림치즈를 바르며 흐뭇하게 웃었다.
“쉬는 날만 되면 부리나케 사라지기에 어디서 무얼 하나 싶었더니 그런 일을 하고 있었지. 전쟁 고아들을 위해 드리블랴네에서 세운 고아원인데…… 덕분에 그 고아원은 몇 해 내내 재정 투명도가 1위란다. 아이들 상태도 몹시 좋고.”
단테가 직접 가는데 어떻게 횡령을 할까.
다시 말하지만 단테는 거목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단 말은 뒤집으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의미다. 거기에 단테의 천성이 다혈질이다 보니…….
‘만약 애들을 학대하거나 돈을 빼돌린 게 들키면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당할걸.’
단테가 물렁해 보이지만 아마도 그건 내 앞에서만 보여주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른이 되면 그만둘 줄 알았는데 지금도 다니는 걸 보면 아마 앞으로 생길 제 자식을 돌보는 법을 익히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싶어. 가정적인 녀석이잖니.”
“자, 자식이요?”
일 났다.
뜨거운 차를 마시던 나는 너무 놀라서 그대로 혀를 데고 말았다.
아니, 아직 결혼도 안 했어요!
‘이런 이야기까지 하시는 걸 보면 이난나 님은 확실히 단테를 밀고 계신 거구나.’
그래서 어제 연회에 이안이 오지 못하게 한 걸까.
술기운이 완전히 가시고 말짱해진 이성을 붙들고 생각을 해보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제는 달이 없는 밤이었어.’
이안처럼 그림자를 밟는 직업이 가장 바쁠 날이었겠지.
문득 나는 내가 언제쯤 내려갈지 물었을 때 드리블랴네 쪽에서 어제로 날짜를 정해서 알려주셨던 걸 떠올렸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그 날 내려가지 뭐.’라고 여겼는데 지금 보니…….
‘일부러 단테만 먼저 만나도록 하신 거구나.’
입맛이 쓰다.
이안과 단테의 출발선은 달랐다. 그 사실은 어릴 때도 신경이 쓰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네게 더 많은 시간을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이난나 님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세 아이들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어 봤는데, 각기 너와 한 주씩을 온전히 함께 보내고 싶어 했어. 다른 아이의 방해 없이.”
“아하.”
“한번 그리해 보겠니?”
아버님이 하신 말씀과 비슷하다.
애초에 그렇게 3주를 보낸 뒤에 선택하려 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무 짧은 기간이어서 제 선택을 수긍할지 모르겠네요.”
빨리 가문 내부의 일을 정리하고 싶으신 건 이해한다.
어제 마신 샴페인 중 한 잔은 가주 할아버님과 이난나 님이 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연세가 드셔서 속상해서 마신 것도 있거든.
하지만 그 애들이 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과연 자신이 선택받지 못해도 내 결정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할까?
“저도 희망 고문을 할 바에 빨리 선택하고 싶긴 하지만요.”
“아이들의 성격이 워낙 제각각이니 걱정스럽겠지.”
“네. 정말로 일주일씩의 기회를 얻고 나서, 제가 선택을 하면…… 그걸 인정하겠대요?”
포식자 그 자체인 유리를 떠올리던 나는 어쩐지 불안해졌다.
내가 내려왔음에도 유리가 지금 이 시간까지 조용한 것도 몹시 수상했다.
상어의 첫 애착이라는 증상이 좀 가라앉은 거라면 다행이지만…… 그건 너무 낙관적인 바람이겠지.
“그러기로 했단다. 내일부터 7일간 한 명씩과 시간을 보내도록 해보렴. 여행을 가도 좋고, 집 안에 머물러도 돼.”
“순서는요?”
“네가 선택하는 게지. 내일 정오쯤에 선택하게 될 거란다.”
이난나 님이 주름진 손으로 내 손등을 가만가만 토닥였다.
내 번뇌와 고민을 이해한다는 뜻이 담뿍 담겨 있다.
그 토닥거림에 몸을 내맡기던 난 조용히 질문을 했다.
“가주에 어울리는 사람을 택하고 나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까요? 지금은 사랑이 아니더라도요.”
“대부분의 정략혼이 그러하단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 집안 남자들을 봐 오니 어쩌면 행운인 편이지. 사랑을 하게 될지 그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하더라도 사랑을 받을 것임은 확신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사랑하게 된단다.
이난나 님의 속삭임이 내 가슴께에 간질간질 내려앉았다.
“참, 키락서스에게는 짝이 없지 않니. 그러니 나와 임마누엘이 시골 영지로 내려가고 나면 네가 유일한 안주인으로서 일을 도맡게 될 게다.”
테이블이 모두 치워지고 레몬 셔벗이 후식으로 나왔다.
그걸 떠서 내게 스푼을 내밀며 이난나 님이 짓궂게 웃으셨다.
“드디어 의무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 기쁘구나. 앞으론 젊은 네가 잘 해주리라 믿고 있단다.”
“노력할게요.”
셔벗은 새콤달콤했다. 마치 앞으로 내게 닥쳐올 선택의 시련과 결정 이후의 기쁨을 의미하듯이.
“아, 그리고 그 3주 안에 데뷔당트도 치르게 될 거란다. 그래야 공식적으로 이 가문의 안주인이 될 수 있을 테니.”
“……!”
“그건 다행히 살로네스가 돕고 싶어 하더구나.”
음, 그래요. 어떤 이야기든 시련이 먼저인 법이지.
나는 셔벗을 바닥까지 다 긁어 먹은 다음 힘차게 일어섰다.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 * *
다음 날은 눈을 뜬 순간부터 드레스의 산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아르칼리크에 있을 때 미리 치수를 재서 알려드렸더니 양어머니께서 옷을 잔뜩 만들어 두셨던 것이다.
“아무래도 데뷔당트 자리는 진지하잖아요. 영애들의 성인식 같은 거니까.”
“그렇지요.”
“그러니 분홍색은 안 입을래요. 노란색도 빼고요. 너무 어린애 같아요.”
내게 잘 어울리는 건 한색보다는 난색 계열이다. 그러니 분홍과 노랑을 빼면 가짓수가 확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으니까.
양어머니는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고 손뼉을 짝짝 쳤다. 그러자 드레스가 잔뜩 걸린 곳 앞에 서 있던 의상실 직원들이 열심히 옷을 빼냈다.
“그럼 이제 흰색, 금색, 붉은색 정도가 남네요. 어머니, 어떤 게 좋을까요?”
좀 특이하게 오렌지색이나 보라색 같은 것도 있지만 그건 데뷔당트 자리에서 입을 건 아니고.
나는 무난하면서도 눈에 띄는 세 가지 색의 드레스 앞에서 고민했다.
“역시 금색이 좋지 않을까요? 따님.”
“그럴까요? 린다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질문을 던지자마자 황홀한 눈으로 드레스를 보고 있던 린다가 손을 번쩍 들며 와다다 대답을 해왔다.
“저는 붉은색 드레스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마님의 흰 피부와도 잘 어울리고, 눈동자 색이랑도 맞으니까요!”
“그래……?”
나는 어깨를 완전히 드러내는 디자인의 드레스를 물끄러미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러플이며 레이스가 잔뜩이라 마음에 들긴 해.
린다는 내가 고민하고 있는 걸 알아차렸는지 장신구가 놓인 테이블로 후다닥 달려가 뭔가를 꺼내왔다.
“이걸 목에 두르시면 어떨까요?”
“레이스 초커 목걸이?”
“네! 작은 마님은 목이 가늘고 예쁘시니까 엄청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사심을 가득 담아 아이템을 추천한 게 뿌듯한지 린다가 헤헤 웃었다.
나는 얇은 레이스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이것과 다른 목걸이를 함께 레이어드하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 저 이거 입을래요.”
“그럼 드레스는 결정 났군요. 빠르게 결정 나서 다행이에요. 영 마음에 차는 게 없으면 재단사를 다시 불러야 하나 싶었거든요.”
“아니에요, 어머니. 이것만 해도 충분히 많아요.”
거의 내가 3년 동안 입을 양의 드레스를 만들어 두셨는데 또 재단사를 부른다니.
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내가 안주인이 되고 나면 몇 년간은 옷을 새로 맞추지 않아야지. 이미 가진 게 너무 많아.’
물질적인 것을 가지는 건 이미 익숙했다.
어쩌면 그러다 보니 이 모든 것을 되갚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내 감정에 집중하지 않기로 한 걸지도 몰랐다.
‘사랑에 빠져버리면 눈이 먼다고들 하잖아.’
이성적으로 가주에 어울리는 사람을 택할 때까지 난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아껴뒀다가 선택한 다음 사랑하고 싶었지.
그때였다.
댕, 댕 하고 종이 울리는 소리가 열두 번 들려왔다.
정오를 알리는 소리에 나는 뻣뻣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