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20)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20화(120/173)
* * *
유아들의 낮잠 시간이 되어서야 고아원은 겨우 조용해졌다.
나이가 좀 있는 아이들은 각자 공부를 하고, 기사가 되고 싶은 몇몇은 마당 한쪽에서 단테에게 배운 가로 베기를 시작했다.
단테보다 일찍 지친 나는 고아원 전체를 푸근하게 감싸주는 감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는데, 얼굴에 닿는 봄바람이 참 좋았다.
“힘들었지?”
그러고 있는데 단테가 차가운 음료가 든 잔을 가져와 내 뺨에 슬쩍 댔다.
엉겁결에 받아 들자 그다음에 불쑥 내미는 건 단호박 파이다.
노란 윗면이 참 맛있어 보였다.
“이거, 애들이 어제 만든 거래.”
“정말? 솜씨 좋다!”
“그렇지? 자기 가게를 여는 게 꿈인 녀석이 있거든.”
아이 한 명 한 명의 꿈이 무엇인지까지 돌아보는 모습은 확실히 색달랐다.
단테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그대로 간직하고 자라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단호박 파이를 반으로 쪼개 한 쪽은 내가 갖고 다른 쪽은 단테에게 돌려주었다.
“오, 나도 주는 거야?”
“하나밖에 없으니 나눠 먹어야지.”
“너 다 먹어도 되는데.”
단테가 피식 웃더니 파이 조각을 날름 먹어치웠다.
나도 한 입 깨물어 봤는데 부드럽고 달고 고소한 게…… 실력이 상당히 괜찮았다.
“아, 덥다.”
내 옆에 털썩 주저앉은 단테가 목의 단추를 끌러냈다. 그러더니 그것도 모자라 아예 셔츠를 벗어버리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서 움찔 굳은 난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테가 셔츠 안에 몸에 딱 달라붙는 재질의 상의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두 겹이니까 덥지.”
“그러게. 이 아래에 아무것도 없길 기대했어?”
“아아아니? 전혀 아닌데?”
아, 저놈의 근육.
단테는 제 매력이 어디에서 뿜어져 나오는지 잘 아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근육의 모양이 도드라지는 저런 옷을 입고 있을 리 없잖아.
“이거 봐. 내 팔, 꽤 근사하지? 만져봐도 돼.”
“……누가 만져보고 싶어 했어?”
“엉. 못 만져서 안달이던데.”
단테가 개구지게 웃더니 내 뺨을 쿡 찔렀다.
나는 그를 살짝 흘겨보고는 근육질의 팔에서 억지로 눈길을 뗐다.
‘착한 생각 하자. 착한 생각.’
예를 들면…… 단테는 언제 팔라딘이 되는 거지?
“여전히 말랑거리네.”
하지만 단테는 내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 뺨을 슬쩍 꼬집어보질 않나 그래놓고 흐뭇하다는 듯 저렇게 말하질 않나.
단테를 쳐다보지 않는 걸 실패한 난 결국 한숨과 함께 묻고 말았다.
“넌 내가 왜 좋아? 어릴 땐 어릴 때고…… 이젠 다 자랐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진 않아?”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
“그…… 내가 여자로 안 보일 수도 있잖아. 그냥 결혼할 수도 있는 사이였다는 것 때문에 감정이 헷갈릴 수도 있는…… 거고……?”
내 이야기를 듣던 단테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지해졌다.
아주 약간의 장난기조차 없어진 모습에 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플로린.”
“으응.”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널 좋아하는 걸 멈춘 적 없어.”
쏴아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감나무 잎이 흔들렸다.
단테는 내 머리에 붙은 잎을 떼어주며 느리게 말을 이었다.
“그때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
“…….”
“사람들이 그러더라. 나는 다 좋은데, 너무 고지식하다고. 그렇게 외골수인 건 누굴 닮았느냐더라고. 누구긴 누구겠어. 할아버지지.”
지금은 노인이신 가주님이지만 분명 이렇게 젊었던 시절이 있으리라.
그렇다면 단테도 나이가 들면 가주 할아버님처럼 될까?
단테의 노년이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플로린. 네가 아직 나한테 아무 마음 없는 거 알아.”
“음.”
“해봤자 친구 정도겠지.”
들켰네.
단테는 정말 멋있었다. 오늘도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단테에게 어찌나 열렬한 시선을 보내던지.
솔직히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외모이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나도…… 딱 그 정도인 것 같았다.
잘생긴 소꿉친구. 그 정도.
“할 말이 있어, 플로린.”
“뭔데?”
“부담스럽게 듣진 마. 내가 선택한 거니까.”
무슨 말을 하려고.
나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무릎을 모아 끌어안았다. 단테가 분위기를 잡자 어쩐지 숨을 쉬는 게 힘들었다.
“나, 팔라딘이 됐어.”
“!”
“비밀이야. 너한테 처음 말하는 거거든.”
단테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그 바람에 나 역시 축하를 해줘야 하는 건지 아닌지 잠시 헷갈렸는데, 그래도 역시 축하하고 싶었다.
팔라딘은 오직 실력으로만 뽑잖아.
“거기 들어간 거, 엄청 대단한 일이잖아! 축하해!”
“응. 제안이 먼저 온 거긴 해도 시험은 봐야 했거든. 근데 통과했어.”
“대단하다, 정말. 언제 그렇게 강해졌대?”
내가 너스레를 떨자 단테의 표정이 점차 풀렸다.
“그래도 만약 네가 나를 택해준다면 관둘 거야. 그리고 우리는…… 친구부터 시작하자.”
“아.”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지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차마 어떤 말로도 함부로 대꾸할 수 없었다.
그저 작은 감탄사 비슷한 걸 뱉을 뿐.
이건 그의 말을 듣지 않아서, 혹은 그가 하는 말에 대꾸할 문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말이나 해서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말을 아낀 것이지.
“오늘 봤듯이 난 어린애 대하는 게 능숙해. 애는 내가 다 키울게. 넌 너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응.”
“내가 가문 내에서 버티고 서서 널 평생 지지할 테니까…… 넌 나를 선택하기만 해, 플로린.”
사랑을 실컷 받고 자란 사람은 그 사랑을 나누어 주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던가. 어느 책에서 그렇게 읽은 것 같다.
나는 단테의 청록색 눈동자를 고요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 떠도는 작은 별 조각 같은 불안과 두려움과 떨림과 설렘이 보였다.
손을 넣어 휘저으면 단테의 감정들이 두 손 가득 담겨 올라올 것만 같아, 나는 눈맞춤을 거두었다.
“하지만 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럼 나는 팔라딘이 될게.”
단테가 팔라딘이 되는 미래가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하지만 내가 단테를 택한다면, 단테는 가주가 되겠지…….
“내가 변방에 가면 넌 마음이 괴롭겠지. 그렇게 두고 싶지 않았어.”
“……응.”
눈물이 날 뻔했다. 담담한 어조로 내뱉는 저 배려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아서.
입술을 깨물고 있는데 단테가 나를 흘끔 보더니 볼을 쿡 꼬집었다.
“말랑이. 그런 표정 하지 마. 네 선택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도 내 결정이고, 실제로 팔라딘이 하는 일에 관심이 있기도 하니까.”
“넌…… 진짜 나무 같아.”
“그래? 무슨 나무?”
“가지를 넓게 뻗은 느티나무.”
넉넉한 품으로 아낌없이 배려하는 사람이 됐구나, 너는.
네 배려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나도 3주가 지나면 제대로 선택을 해야지. 만약 널 선택하지 않을 거라면 팔라딘이 될 너의 미래를 붙잡고 있는 꼴만 되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단테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리는 게 아닌가.
“아, 좀 덜 귀엽든지…….”
투덜대는 목소리가 컸다.
키득거린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단테와의 데이트 첫날이 지나갔다.
* * *
그 시각, 신성 제국.
교황청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은 하급 신관들은 요즘 죽을 맛이었다.
그들의 두통을 유발하는 건 다름 아닌 성녀 라흰이다.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새벽 다섯 시잖습니까!”
“아, 안 들려어. 안 들린다아.”
“으아악!”
기상 시간에도 불구하고 늘어져라 잠을 자는 건 물론이요-
“외부 봉사 활동 갈 시간입니다.”
“안 가. 배 아파.”
“어제도 그렇게 빠지지 않으셨습니까.”
“어젠 머리가 아팠고.”
평민들이 사는 곳에 가서 직접 봉사 활동을 하고, 신의 뜻을 전하는 일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불참하질 않나-
“이딴 걸 음식이라고 가져와?”
“아니, 성녀님. 이건 저희 하급 신관들도 다 먹는 빵입니다!”
“그럼 너나 먹어!”
딱딱한 빵이 먹기 싫다며 행패를 부려댔다. 심지어 뜨개질을 해서 스웨터를 뜬 다음, 그걸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줄 거라고 설명했는데 딱 하루 만에 뜨개바늘을 부러트리기까지.
그러한 패악에도 하급 신관들이 어쩌지 못한 건 결국 라흰에게서 흘러나오는 강대한 신성력 때문이었다. 그녀를 존경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그 신성력만큼은 진짜니까.
함부로 대했다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두려운 게 당연했다.
‘아, 지루해.’
그리고 그런 하급 신관들의 생각대로, 라흰은 충분히 자신이 지금 머무르는 이 거지 같은 침실을 무너트리고 상처 하나 없이 나갈 수 있었다. 저와 계약한 신은 힘이 강력했고, 또 그 힘을 빌려주는 걸 서슴지 않으니까.
심지어 라흰의 신은 라흰이 멋대로 굴 때마다 더더욱 기뻐했다.
‘그래, 천신의 개들을 더 못살게 굴렴.’ 이러면서.
그러니 라흰의 태도가 누그러질 리가 있나.
방금도 성질을 부려 하급 신관을 내쫓은 라흰은 소파에 늘어진 채 발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래서, 나랑 비슷한 힘을 가졌다는 그 계집애는 지금 행복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