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2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21화(121/173)
들어줄 귀를 가진 사람은 죄 내쫓아놓고 툭툭 뱉는 혼잣말은 충분히 기이했다.
허나 라흰은 미친 것도, 정신을 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신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꼭 행복해야 할 텐데. 행복에 겨워서 어쩔 줄 몰라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그 애가 됐을 때 실컷 행복할 것 아냐.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나도. 나야말로 이 세계의 주인공이잖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야 하는 사람. 그치?”
라흰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생각은 단순했고, 그만큼 위험했다.
그녀는 자신이 반드시 행복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동시에, 제 욕심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 크다는 건 인정하지 않았다.
“남편을 왜 고르냔 말이야. 그냥 셋 다 확 차지해 버리면 되지! 아이, 좋아라. 이렇게 보니 봉인당한 게 차라리 다행이었네.”
실실 웃던 라흰은 꺄 하고 소리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라흰의 손에는 작은 종잇조각이 쥐여져 있었는데, 그건 오늘 아침 식사로 나왔던 수프 그릇 아래에 남몰래 깔려 있던 것이었다.
그 종이에는 지금 라흰이 원하는 이런저런 정보가 적혀 있었다. 바로, 드리블랴네 가문에 대한 정보였다.
‘딱딱하고 재수 없는 양반들이 나를 싫어하더라도 또 어느 누군가는 내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인 법이거든.’
라흰은 그러한 진리를 일찌감치 깨달았고 제게 잘 해주는 사람들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눈을 뜨자마자 키락서스에 대해 물어본 건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늙은 신관들은 기가 막혀하며 그 날의 일을 주워섬겼겠지.
듣는 귀가 많은 교황청이다 보니 누군가는 ‘성녀 라흰이 키락서스 드리블랴네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테고…… 그건 돌고 돌아 이러한 결과를 냈다.
라흰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정보를 모아서 전달해 주는 것이다. 이건 20년 전에도 그랬고 역시나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라흰은 이 정보 제공자가 누군지도 몰랐고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았지만.
‘눈엣가시 같던 아리아드네는 죽었는데, 걔가 미남을 셋이나 남겼다니!’
그리고 그 드리블랴네 가문의 후계자들을 죄 꿰차고 앉은 계집애가 마도 제국의 성녀, 플로린이라니!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한때 라흰이 키락서스에게 푹 빠졌던 이유는 오직 하나.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젠 키락서스와 비슷하게 잘생긴 남자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고 하니 라흰은 무척 기뻐졌다.
미남은 늘 다다익선인걸!
그때 봉인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팔팔한 젊은 미남들에게 손도 못 대는 나이가 되어버렸겠지?
“역시 세상은 나를 위해서 돌아가! 처음엔 안 좋아 보이는 일도 이렇게 돌고 돌아서 결국 내게 좋은 일이 되잖아.”
이 미남, 저 미남을 다 차지할 생각에 헤죽 웃던 라흰은 이내 벌떡 일어났다.
높은 신분, 나만을 좋아해 주는 남자들, 든든한 시댁 가문. 그리고 미중년이 되었을 키락서스까지.
자신이 원하는 극락이 바로 저기에 있으니 참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그건 천신의 성녀에겐 과분한 자리잖아?’
천신의 성녀야말로 지금 자신이 있는 이곳이 어울린다.
검소하라느니 남을 보살펴야 한다느니. 눈만 뜨면 떽떽거리고 귀찮게 구는 바로 여기가 그 애가 있을 곳이었다.
“세 번째 소원을 빌게. 또 다른 성녀 말이야. 플로린이란 애와 나를 바꿔줘. 할 수 있지?”
소원은 딱 세 가지만 빌 수 있다. 신이 처음 그녀의 앞에 나타났을 때 주의를 준 부분이었다.
‘이미 두 개를 썼으니 마지막 하나는 신중해야지.’
그래서 라흰은 답지 않게 아끼고 아끼며 상황부터 다 파악했다. 그런 다음에 빈 소원이다.
이러면 자신이 마침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을 바꾸는 게 아냐. 상황 자체를 바꿔줘.”
라흰이 해맑게 웃으며 소원을 빌자 갑작스레 온 사방의 촛불이 훅 꺼졌다.
교황청 전체가 어둠으로 둘러싸이는 기현상에 사람들이 크게 놀라며 두려워했다.
바깥 하늘조차 볼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방이기에 라흰은 완연한 암흑에 갇히게 되었으나 그녀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소원을 빌 때면 항상 이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참! 당장은 아니라도 상관없어. 가장 알맞은 시간, 가장 알맞은 때에. 가장 재미있을 순간에 내가 그 애가 되게 해줘.”
그러기 위해서라면 이런 끔찍한 침실에 머무는 걸 얼마간은 더 참을 수 있다.
라흰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성녀라고 칭하기보다 차라리 악마라 불러야 마땅할 모습이었다.
* * *
“저것은 악마입니다.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신성력은 어찌 설명할 거요?”
그 시각, 교황청 내의 비밀 장소.
이곳에서는 지금 ‘라흰’을 두고 치열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실 라흰이 현재 기거하는 방은 아주 특수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다. 그 방 안에서 오가는 모든 대화는 이 비밀 장소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처음엔 혹시 모를 광신도의 잔당이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아주 달라졌다. 라흰이 툭툭 내뱉은 몇 마디 말이 이곳에 둘러앉은 고위 신관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것이다.
“영험한 신성력을 내리실 수 있는 건 오직 천신뿐이오. 그렇지 않소?”
“동의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악신에게 그럴 힘은 없지요.”
“그러니 라흰이 성녀임은 부정할 수 없는 거요. 비록…… 이상한 말을 한다고 해도.”
“하지만 마도 제국에도 성녀가 있잖습니까.”
“그 성녀는 교황청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소! 진짜라면 응하지 않을 이유가 뭐란 말이오!”
고위 신관들은 저마다 혼란에 빠졌다.
그들이 일평생 믿어온 진리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악신은 세상에 악을 불러오는 존재이며 천신의 대적자이다.
둘째. 악신은 신성력을 내어줄 수 없다. 오직 위대하신 천신만이 신성력을 주신다.
셋째. 신성 제국만이 신을 정성껏 모시므로 신성 제국의 성녀만이 진짜 성녀다. 마도 제국에서 성녀가 나올 리 없다.
버젓이 라흰이라는 성녀를 내려주시고 또 마도 제국에 성녀를 주셨을 리가.
그것이 편견이라 할지라도 너무나 강력한 믿음이었기에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은 고위 신관들로서는 그 생각을 뒤집기 힘들었다.
그건 인생이, 더 나아가 종교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금까지만 해도 고위 신관들은 얼마든지 라흰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아무리 경박한 라흰이라 할지라도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속죄하며 불쌍한 이들을 돌본다면…… 그 죄를 용서하는 건 신께서 하실 일이니까.
라흰이 조금만 바뀐다면 그들은 그녀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 될 수 있었단 말이다.
마도 제국의 성녀가 진짜 성녀라는 급진적인 생각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그게 낫지.
헌데 방금 들은 말은 대체 무엇인가?
“세 번째 소원을 빌게. 또 다른 성녀 말이야. 플로린이란 애와 나를 바꿔줘. 할 수 있지?”
“몸을 바꾸는 게 아냐. 상황 자체를 바꿔줘.”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몇 신관들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설마 정말로…… 신의 힘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겠다는 고약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저 악행을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봉인을 괜히 풀었나?
여러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엔 없었다.
사실은 극비 중의 극비 자료라 교황을 비롯해 고위 신관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단 네 명만이 열람 가능한 정보가 있었다.
라흰이 겨울을 불러왔을 때 했던 말.
“두 번째 소원을 빌게.”
거기에 이어 지금이 세 번째다.
그러니 장난으로 뱉은 말은 아닐 텐데…… 상황을 대체 어찌 바꾼단 말인가?
“두 번째는 알지만, 첫 번째 소원이 무엇인지 저희는 지금 모르는 상황입니다. 만에 하나…….”
라흰이 성녀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 거라면.
한 신관이 말을 하다 말았다.
그에 다른 이가 수염을 쓸며 엄중히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하시오. 신성모독이 될 수 있소.”
성녀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고 한들, 천신께서 그걸 들어주셨다면 그건 결국 신의 뜻이다. 인간에게는 감히 신의 뜻을 함부로 재단할 권리가 없었다.
“……예. 신께서 답을 주시면 좋을 텐데요.”
지금 신성 제국에는 신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처음 신성력을 받았을 적에 이적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끝.
그나마 신과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게 성녀와 교황이니, 이런 상황에서는 교황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성하. 어찌 생각하십니까.”
“저희에게 답을 주십시오.”
그리고 교황, 조르주 바이올로그 록산 일레그레치오 4세. 그는 모든 대화를 들은 뒤 낮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얼마 뒤면 마도 제국에서 데뷔당트 시즌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은……?”
“한번 가 봐야겠지요. 어느 쪽이 진짜인지 가려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