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2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22화(122/173)
엄숙한 한 마디에 동의하는 이들이 과반수.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오래전, 교황의 명을 받들어 신성 기사들에게 ‘마도 제국의 성녀를 생포해 와라!’는 명을 내린 장본인이었다.
“구, 굳이 가볼 것까지 있겠습니까? 데뷔당트 자리라니. 교황 성하의 엄숙함에 누가 되는 자리입니다.”
그의 이름은 메레반노.
올해로 88세로, 명실상부 교황청의 2인자다.
워낙 꼬장꼬장한 인간인지라 그는 불신자들의 천국이나 다름없는 마도 제국을 너무나 혐오했는데, 그랬기에 교황의 지시를 받았을 때 제멋대로 몇 마디를 바꾸어 명했다.
이를테면 ‘정중히 요청을 보내고 귀히 모셔와라’를 ‘생포하라’로.
한순간 홧김에 지른 말인데 그로 인해 신성 기사들이 드리블랴네에서 보낸 살수에게 내내 시달려야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교황의 명이라 해두었으니 교황만 모르면 될 일인데.’
혹시라도 교황이 마도 제국 연회에 갔다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오면 어쩐단 말인가?
메레반노는 다정한 성품이라 알려진 교황이 사실 그다지 성격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뒤끝이 악랄할 정도로 긴 성격이니 명을 대충 따른 것도 모자라 문장을 바꿔버렸다는 걸 알면 얼마나 괴롭혀댈지!
하지만 교황, 조르주는 애초에 메레반노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 교황이 아닌 신분으로 가면 되겠군요.”
“예, 그것 참 좋은 생…… 예?”
“걱정 마세요. 그쪽에서 먼저 다가와 말을 걸 수밖에 없는 외양을 꾸며내 갈 테니.”
“!”
“여러분이 하실 일은 그저 저를 모른 척하는 것뿐입니다.”
교황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신성력을 거두어 들였다.
교황의 곁에서는 숨을 쉬는 것조차 신성한 기분이 들었는데 완전히 신성력을 갈무리하고 나자 평범한 사람과 다름이 없어졌다.
놀라운 수준의 신성력 제어 능력에 고위 신관들은 입을 떡 벌렸다.
“자, 그럼 저와 함께 갈 사람을 뽑아야겠군요. 그 사람이 대표자가 될 겁니다.”
교황의 시선이 메레반노에게 오랫동안 머물렀다. 대표자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단테와의 데이트 4일 차.
오늘은 드리블랴네 가문 내에서 큰 행사가 있었다. 바로, 가주 자리 이양식.
아직 바깥에 공식적으로 알리진 않았으나 가문 내에서는 오늘부터 아버님이 가주다.
이전부터 이미 이런저런 인수인계를 받아오셨던 아버님은 별문제 없이 가주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아르칼리크에서 먹고 놀기만 했던 건 아니니까.’
나는 아르칼리크란 나라가 어떻게 여태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었는지를 배웠다.
아빠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이 나라의 근간이라지만 그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유능한 사람들을 움직이는 법. 그들을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는 법. 사람의 마음을 사는 법. 어려운 문제를 결정내리는 법. 그리고 책임지는 법.
내가 아르칼리크에서 보고 배운 건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니 잘 할 수 있어.’
드리블랴네가 하나의 왕국이나 다름없을 만큼 거대한 가문이라지만 운영하는 게 버거울 것 같진 않았다.
“키락서스에게 짝이 없으니 앞으로 안주인의 역할은 플로린이 도맡을 것이네.”
위엄 있는 차림을 한 이난나 님이 모인 사람들 앞에서 내 손을 꼭 쥐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 가문의 장로들, 가신 가문의 가주와 가족들. 방계의 일원들까지. 그 모두가 나를 보았다.
나는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그 시선들을 받아냈다.
“다들 나를 대하듯 새로운 안주인을 대해주었으면 하네. 젊지만 이 당시의 나보다도 경험이 풍부하고 배운 것이 많으니…….”
어리다고 만만히 보고 함부로 대할 생각 말라.
말꼬리를 흐렸지만 결국 그런 의미였다.
“우리는 20대 가주가 정해지고 나면 영지로 내려갈 생각이다. 그때까지 늙은 얼굴 좀 더 보도록.”
마지막으로 가주 할아버님이 뼈 있는 농담을 던지며 웃음을 유도하자 사람들이 와하하 웃었다.
나는 차마 웃을 수가 없어서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가 금세 내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언제고 일어날 일이라고는 여겼지만 내가 드리블랴네에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떠나시다니.
가주 할아버님과 이난나 님이 머물려고 하시는 영지 근처엔 드넓은 평야가 있어 일몰이 아름답다고 한다.
여생을 보내시기에 좋은 곳일 테지만, 그래도 여기에 좀 더 머물러 주시지 싶은 건 내 어리광일 뿐이겠지.
“아버님. 가주가 되신 거, 축하드려요.”
이윽고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아버님께 다가갔다.
무게감 있는 새카만 슈트 차림의 아버님은 인파에 둘러싸이는 게 영 싫은지 일부러 벽에 느슨히 기대서 계셨다.
벽에 있다는 건 말을 걸지 말라는 신호이니 사람들은 흘긋거리며 눈치만 볼 뿐,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만 빼고.
난 한숨 비슷한 걸 내쉬며 아버님의 곁에 슬그머니 섰다.
“괜찮으세요? 아버님. 표정이 별로 안 좋으세요.”
“아아. 미트볼이 안주인 역할을 도맡게 됐다니. 그 많은 일을 다 하려면 피곤할 텐데 정략혼이라도 미리 해둘걸 그랬나 싶구나.”
예상대로 아버님은 나를 거부하지 않으셨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내가 찾을 때면 늘 나타나 주셨던 분.
나는 1년에 두어 번씩 이안이 그냥 죽으려 했던 날을 꿈으로 다시 보았다. 물론 그날 아버님이 나를 구해주셨던 것도 그 긴 꿈속엔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아버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아버님이 나를 내칠 리 없다.
아버님이 내게 대답해 주지 않으실 리 없다.
나는 견고한 신뢰감으로 가득 찬 눈으로 아버님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다 할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버님이 저만치 멀리 있던 의자 하나를 마법으로 끌어당겨 와 툭 놓았다. 거기에 앉으라는 의미다.
서 있어도 상관없었지만 아버님이 굳이 의자를 가져다주셨으니 앉지 않을 이유도 없어, 나는 살짝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잖아도 전달할 사항이 있었다. 교황청에서 공식적인 연락이 왔단다. 데뷔당트 주간에 찾아오겠다더구나.”
“연회에요?”
“그래. 선교 활동을 위함이라더군.”
“아…… 그걸 막을 순 없지요.”
신성 제국의 황족이 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교황청이지 않나.
교황청은 그 권력만 따지자면 황족과 별 차이도 없었지만 종교 기관이기에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 방문하는 것이 자유로웠다.
다만 내가 좀 찜찜한 건, 애초에 아르칼리크에 보다 일찍 올라가게 됐던 원인이 그들이기 때문이었다.
날 산 채로 포획하려 들었잖아!
“가능하다면 데뷔당트 주간에 유리와 붙어 있으렴.”
“유리랑 내내요? 조금 자신 없는데.”
아직 안 만나봤지만 확실히 마음이 편한 상대는 아니었다.
내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아버님이 턱을 쓸었다.
“교황 쪽에서 널 강제로 납치하거나 하진 않을 거다만, 신성력이 있는지는 끈질기게 확인하려 들 거란다. 하지만 유리가 있으면 그런 개짓거리를 차단할 수 있지.”
“그냥 신성력이 있는 거 맞다고 보여주고 끝내면 안 되는 거죠?”
“그 나라는 신성력의 유무가 모든 것이니 신성력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귀찮게 굴 거란다. 그렇다고 감추면 감추는 대로 밝히려 들 테고.”
아버님이 쯧 하고 혀를 찼다. 나 역시 골머리를 앓았고.
적당히 피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게 정답인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거든.
‘그렇다고 황제 폐하가 교황청더러 오지 말라고 할 이유도 없고.’
전쟁이 끝난 지도 한참이다.
이젠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갓난아기가 태어나는 새 시대였다. 평화와 화합을 위해 손을 맞잡는 척이라도 할 때지.
마도 제국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교황청이 올 때 빈손으로 오진 않을 거라는 게 핵심이었다.
빈민 구제품이나 선교 자금 등을 가져와서 이 나라에 잔뜩 뿌리고 갈걸.
결국 교황청의 방문은 국익이 큰 사안이었다.
“제가 신성력을 갖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져요?”
“널 검증하려 들 테지. 하늘 아래 성녀가 둘일 수는 없으니 어느 쪽이 진짜인지 확인하려 할 테고. 마지막엔 네가 신성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네 소속을 자기들이 거머쥐어야 한다고 요구할 거다.”
“아……. 정말 귀찮네요.”
예전에도 무섭진 않았지만 다 자란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아니, 마도 제국이 바보인 줄 아나?’
성녀는 신성 제국이 다 가져야 한단 논리라니.
그들의 사상이 이해가 되질 않아 난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이내 의자에서 일어섰다.
“거긴 거기 성녀가 있잖아요. 거기 성녀랑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왜 저한테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그쪽 성녀 말인데…….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얼마 전에 봉인에서 풀려났다더구나.”
“……라흰이요?”
벌써? 그럴 때가 되긴 했지만, 이렇게 이르게?
‘아니, 잠깐. 그런데 왜 아무 반응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