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2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23화(123/173)
내가 수년 동안 몹시 신경을 써왔던 존재가 라흰이었다.
나의 신이 내게 모든 걸 알려주진 않았지만 내가 ‘김아람’으로 살던 시절에 읽었던 책의 내용과 현실을 조합하여 나는 어느 정도 진실을 유추하고 있었다.
나는 천신의 화신.
라흰은 아마도 악신의 화신일 것이다.
나는 라흰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알던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으며 그랬기에 그녀의 행동 양식에 대해서도 얼추 예상하고 있었다.
‘눈을 떴다면 며칠 내로 소원을 빌어서 이곳에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인내심이 있는 성격이 아니잖아.’
나는 아르칼리크에 있는 동안 한 해에 두세 번씩 천신과 소통했다.
천신은 주로 내게 어렵지 않은 부탁을 했는데, 신성력으로 어떤 물건을 정화시켜 달라는 종류였다.
그러면 나는 아빠에게 이야기해서 그 물건을 구해달라고 했다.
천신의 말에 의하면 라흰이 남겼다는 저주는 그 모양도 종류도 참 다양했다.
단순하게는 소유자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는 반지부터 부칠수록 열병을 불러오는 부채와 가까운 사람을 해치도록 세뇌하는 단검 등.
그 모든 것에 라흰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아니지. 신성하진 않으니 그냥 신의 힘이란 의미로 신력이라 불러야겠지. 이렇게 창의적으로 저주를 남기기도 어렵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면서 든 생각은 단 하나.
라흰은 정말 악랄했다.
어느 정도 이기적일 수야 있겠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걸 즐기는 건 정신병에 가까웠다.
그건 아마 자신이 결코 보복당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겠지.
첫 번째 소원을 빌어 얻어낸 ‘성녀’의 지위.
그게 방패가 될 테니-
그 누가 라흰이 신력으로 저주를 걸고 다녔다고 생각하겠는가?
“네가 신경 쓸 건 없다. 잘됐지. 봉인당해 있을 땐 죽이지도 못했는데.”
그때, 아버님이 픽 웃으며 비꼬듯 한마디를 던졌다.
농담처럼 들리진 않았지만 농담으로 들어야 할 것 같아 나는 어색하게 아하하 웃었다.
‘라흰은 여전히 아버님께 집착하려나? 아니면 집착을 포기했기 때문에 지금 아무 소식이 없는 건가?’
급류에 휩쓸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모든 박자가 맞는데 불협화음인 듯해.
예상치 못한 일이 어느 날 갑자기 터질 것만 같아 속이 쓰렸다.
물론 다 괜한 불안감이겠지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 애와 내가 더럽게 엮인 것 같은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트볼. 유리는 남편감으로는 별로니?”
“아, 유리……요? 갑자기……?”
너무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혀를 깨물 뻔한 나는 반 박자 늦게 대답을 내놓았다.
“으음, 음. 그러니까…… 음.”
“듣지 않아도 알겠구나.”
“제가 결혼을 한다면 단테나 이안.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그런데 유리의 집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물론 아직 안 만나봐서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난 아리아드네 님과는 달랐다. 그것만큼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남편과 내 아이가 생긴다면 나는…… 내 가정에만 충실하고 싶다.
하지만 그랬을 때 유리의 반응이 어떨지 몹시 신경 쓰였다.
과연 가만히 있어 줄까?
“상어의 집착은 몹시 귀찮지. 내 누이를 향하던 황제 놈의 집착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모르지 않는다.”
“유리는 그래도 황제 폐하보단 덜……하지 않을까요? 제가 아르칼리크에 가는 것도 내버려 뒀고, 지금도 아무 말이 없으니까…….”
“글쎄다.”
기껏 희망적으로 운을 띄워 봤으나 아버님은 몹시 회의적으로 대꾸했다.
“그 녀석이 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을 거라는 데 한 표를 걸지.”
“……일거수일투족을요?”
그건 좀…… 많이 무서운데?
“아르칼리크인 중 하나가 제 소식을 유리에게 빼돌렸을까요?”
내가 심각해진 얼굴로 묻자 아버님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뻔한 방식은 사용하지 않지.”
“그럼요……?”
“장담컨대 네가 전혀 알 수도 없고 추측할 수도 없는 방식일 거다. 다만, 자신이 다른 녀석들에 비해 우월한 위치가 아닌데 널 순순히 놓아주었을 리가 없어.”
아버님의 말씀은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님은 빈말을 하지 않는단 거야.
“유리가 어떻게 너를 지켜보고 있는지 알아내려 해봤지만 불시에 찾아가도 별 소용이 없더구나.”
“음.”
“제 애비와 누님을 쏙 빼닮아 교활한 녀석 같으니라고는.”
“으음.”
큰일 났네. 역시 유리는…… 완벽한 집착남으로 성장한 것 같지?
헤어지기 직전에 내게 ‘가주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게 기억난다. 예쁜 얼굴로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때부터 영 불안불안하긴 했는데…….
‘아주 어릴 땐 순수했었는데.’
난 앙증맞고 귀엽던 유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잠시 눈물을 머금었다.
“아, 한 가지 더.”
“네?”
이제 슬슬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한 발을 떼려던 찰나였다.
“!”
귀가 멍멍해진다.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주변의 소음이 혼탁해지더니 나와 아버님을 흘끔거리던 시선들도 옅어졌다.
“아공간을 펼쳤다. 여긴 그 어떤 이큘리스도 투과할 수 없는 공간이지. 유리가 이큘리스를 이용해 너를 주시하고 있다면, 이 안에서 나누는 대화만큼은 숨길 수 있을 거란다.”
“신기해요.”
나는 여전히 이 자리 서 있는데, 실은 나와 아버님만을 감싸는 아공간 안이라니.
아버님의 능력이 대체 얼마나 더 발전한 건지 묻기 두려울 정도였다.
“유리를 만나보고, 유리와 역시 결혼할 마음이 없다면. 플로린.”
“네, 아버님.”
대단한 공간인 만큼 유지 시간은 짧겠지.
아버님은 간결하게 본론만 말씀하셨고 나는 그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 한 마디를 건네거라. 나는 사랑에 빠지고 싶어.”
“사랑을…….”
“상어 일족은 상어의 애착이라는 비정상적인 정신병이 있지만, 그 외의 모든 부분에서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이성적이란다. 사랑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아냐. 하지만 네가 사랑을 입에 올리는 순간부터 유리는 네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행동을 조심하게 될 거다.”
“!”
“어쩌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모방하려 들지도 모르지.”
차라리 그게 낫다는 말씀이구나.
유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물이니까…… 행동을 제한할 수 있도록 수조를 만들어 주라는 뜻인 거야.
“하지만 아버님. 그러면 유리가 너무 가엾잖아요……. 겨우 수조에서 나왔는데.”
물리적인 수조에서 꺼내놓고 감정적인 수조에 다시 집어넣게 되는 꼴이라니.
유리는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것만이 폭주를 막을 길이란다. 네가 가주를 정하게 되었을 때, 유리는 내심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래도 아직 네 마음을 얻을 길이 있다고.”
“그러니까 따지자면 제가 정략혼을 한 거고, 자신과 연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거란 거군요.”
“그래. 가주를 선택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으니까. 네가 조건만을 보고 선택했다고 여길 테지. 그리고 네 입으로 사랑을 말했기에, 그 순간부터 유리의 내면에서 그 어떤 조건보다도 사랑이 더 귀한 가치가 되었을 테니…… 유리는 기꺼이 참을 거다.”
기만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아주 기만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솔직히 내가 누구도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유리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 거긴 해.
나는 마른세수를 하려다 그러면 린다가 정성을 들인 화장이 망가질 거라는 걸 깨닫고 손을 멈췄다.
“유리를 직접 만나본 다음에, 지금 조언을 주신 대로 해야 할 것 같으면…… 그때 그렇게 말해도 될까요?”
“그러렴.”
아버님의 청록색 눈동자가 깊었다.
오롯이 나에 대한 염려만으로 이런 말씀을 하신 거라는 걸 알기에 난 아버님을 꼭 껴안았다.
아버님은 그런 내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주시다 이내 나직이 속삭였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마. 상어의 애착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가져올 테니.”
“그런 약이 있대요?”
“신성 제국에. 거기 황족도 바다 동물이지 않니. 알아보니 이빨 고래족도 애착증이 심했는데 특수한 식물로 만든 약을 먹은 뒤로 일족 전체가 괜찮아졌다고 하더구나.”
맙소사. 그런 기적의 약이 있었다니!
유리가 내게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길 바란다. 최소한 황제 폐하처럼 살아도 죽은 것처럼…… 그런 인생을 걷지 않았으면 했다.
애착증은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 특별한 약이 효과가 있다면 좋을 텐데.
“몇 번 가문 이름으로 요청했지만 아무 답신이 없었으니 슬슬 직접 나서봐야겠지. 먼 길 다녀오게 되겠구나.”
아버님이 설핏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와 동시에 멍멍했던 귀가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공간이 사라졌구나.’
아버님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는 듯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섞였다.
잠시 시간 차를 두고 기다리던 나는 이내 단테를 찾아 그 옆으로 다가갔다.
이 자리에 없었던 유리가, 과연 오늘 내가 누구와 내내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을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