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25)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25화(125/173)
나는 단테에게 무게를 실은 채로 느리게 스텝을 밟았다.
음악 하나 없었지만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지금 우리 사이를 채우고 있는 선율이다.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 작게나마 켜둔 벽난로에서 불꽃이 타닥타닥 튀는 소리. 복도 청소 당번인 하인들이 무어라 수군대며 지나가는 발소리. 그 무엇보다 크게 들리는 단테의 심장 소리…….
‘아, 너는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거구나.’
단테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렇게 선명히 와닿은 적이 있던가.
나는 단테의 턱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 것을 알아차렸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작 이 춤이 뭐라고, 넌.
“흐아, 죽겠다.”
그때, 단테가 숨을 토해내며 손을 놓더니 나를 꽉 껴안았다. 얼결에 안긴 난 맞닿은 가슴을 통해 쿵쿵 뛰는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야, 동글.”
“……응.”
“나 심장 뛰는 거 느껴지냐. 이게 좋아하는 게 아니면 뭐야.”
귓가에 닿은 목소리가 낮았다. 간지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움찔 떨자 단테가 큭큭 웃으며 내 어깨에 이마를 툭 댔다.
“나 진짜 너한테 잘해줄 자신 있어.”
“응, 믿어.”
단테가 나를 배신할 리 없지.
아무리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단테만큼은 내게서 등을 돌릴 리 없다.
나는 그의 고지식함을, 외골수인 면을 그리고 순정을 믿었다.
단테는 낭만이 뭔지 아는 몇 안 되는 남자였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단테의 아내가 될 사람은 분명 죽는 그 순간까지 행복할 것이다.
‘단테의 아내…….’
그 단어를 입속으로 중얼거린 난 가슴 속이 간질거린다고 생각했다.
단테의 고동이 내게도 전해져서 그런 걸까.
익숙한 안정감이 조금 다른 형태를 띠려는 게 무서운 동시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테를 잃고 살아갈 수 있을까.
넌 내 가장 친한 친구인데…….
“플로린.”
이윽고 단테가 무언가 결심한 눈빛으로 나를 불렀다.
내리는 비마저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싶었다.
저걸 들으면 이제 정말 친구 사이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나 단테의 확고한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선을 넘을 거라고.
“입 맞춰도…… 될까?”
“……!”
“뺨이나 이마가 아니라, 여기……에.”
끝내 ‘입술’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헛기침을 하는 게 정말 너답다.
청록색 눈동자엔 간신히 끌어 올린 용기가 감돌았으나 그 끝에 두려움이 존재하는 게 내 눈엔 확연히 보였다.
‘거절하고 싶어.’
우리, 변하지 말자.
이대로 있자.
지금 이대로를 유지하면 우리는 서로를 잃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다 어린애 같은 투정일 뿐.
망설이던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혹 이안도 나와 이런 걸 하길 원하는 걸까……? 그때, 손등 위에 했던 그런 거 말고 직접 입술이 맞닿는 거.’
가슴이 떨렸다. 무언의 허락이 떨어지자 단테의 표정이 바뀐 탓이었다.
어딘가 성마르면서도 날 선 느낌이 평소의 그와 전혀 달라,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 진지하잖아.’
먹잇감을 사냥하기 직전처럼 등을 빳빳이 세워 부풀린 단테는 예상과는 달리 숙맥처럼 굴지 않았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심해서 입 밖으로 낸 저 한 마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뒤늦게 알게 된 나는 어딘가 사로잡힌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숙맥인 줄 알았는데! 설마 그게 다 연기는 아니…….’
흡!
단테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놀라서 숨마저 멈추며 눈을 질끈 감았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일이 벌어지지 않자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한쪽 눈을 떴다.
“어?”
그런데 단테가 눈앞에 없었다.
나보다 시야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게 보통인데, 어디로 갔……지?
의아해하며 두리번거리는데 밑에서 끅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고 시선을 내리자 단테가 쪼그리고 앉아선 눈물까지 닦으며 웃어대고 있는 게 아닌가!
“야,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러냐. 찐빵도 아니고.”
“!”
“설마 키스 처음 해봐?”
아까 내 얼굴이 그렇게 웃겼는지 단테는 정말 배를 잡고 웃어댔다. 민망해진 난 뺨을 확 붉히며 단테의 머리칼을 이대로 잡아 뜯어도 될지 고민했다.
조금 설렐 뻔도 했는데!
“흥.”
“아, 삐졌냐?”
“안 삐졌어. 나, 갈래.”
“야아. 네가 너무 긴장하기에 멈춘 거야. 그렇게 파들파들 떠는데 내가 뭘 하냐.”
몸을 팩 돌리자 단테가 장난스레 말하며 내 손목을 쥐었다.
그리 센 힘으로 잡은 것도 아닌데 뿌리치긴 좀 그래서 나는 한숨만 푹 내쉬었다.
솔직히 입 맞추지 않은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이리 와줄래?”
“맨바닥에 앉으라고?”
“아니, 내 품에. 네가 어떻게 맨바닥에 앉아.”
샐쭉해진 상태긴 했지만 단테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살살 달래자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고민하다 단테의 허벅지 위에 앉은 난 어색하게 시선을 비껴냈다. 단테는 그런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말없이 백허그를 해왔다.
“미안. 내가 욕심부렸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애가 타서.”
“사과할 일 아냐. 결국 안 했잖아.”
“그래. 멈췄지.”
탁, 타닥. 탁.
소파보다도 아래에 앉아 있노라니 벽난로 안에서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가 아까보다 크게 들려왔다.
‘긴장이 확 풀려서인가……. 노곤해.’
갑자기 몸이 확 따뜻해진데다 단테는 한참 동안도 말이 없었다.
단테가 무어라 할까 싶어 억지로 눈을 뜨고 기다리던 나는 끝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조금 자. 이따 깨워줄게.”
“으응…….”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려고 용을 쓰자 단테가 그런 내 손목을 잡아 내렸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하면서도 어차피 오늘 할 일이 더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수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네 선택을 받지 못해도, 난 오늘 이 추억으로 평생 살아갈게.”
마지막으로 단테가 무어라 한 것 같긴 한데…….
비 오던 오후.
단테는 도둑 키스를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끝냈다.
애달픈 입맞춤이었다.
* * *
“바로 안 가보십니까?”
“해 뜨기 전까진 동생의 시간인데, 내가 왜.”
단테가 플로린과 함께 있던 시점에서 몇 시간 뒤. 어둠이 짙은 새벽, 수도의 모 저택.
그곳엔 불그스름한 머리칼의 사내가 있었다.
곁에는 수많은 이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모두 똑같이 생긴 가면으로 얼굴을 감추었으며 엇비슷한 키와 체격인지라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일명, 광대들.
신출귀몰한 암살자 집단인 그들은 2년 전부터 덩치를 키워 정보상의 역할까지 손에 넣더니, 이제는 동종 업계의 다른 암살단을 하나씩 없애고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은밀하게.
종래엔 오직 ‘조커’만이 남도록.
오늘 역시 그런 청소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으십니까.”
“무엇이?”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입을 여는 건 단 두 사람뿐.
이안은 핏물에 젖은 바닥을 딛고 선 채로 마찬가지로 엉망이 된 셔츠를 벗어내고 있었다. 그런 이안이 갈아입을 새 셔츠를 들고 선 한 남자가 불만스레 말을 이었다.
“가문에서 공식적인 자리에도 마스터를 배제하려고 들지 않습니까. 플로린 님을 환영하는 날도 일부러 마스터께서 수도에 없던 날로 잡았고요.”
흐릿한 불빛 아래 드러난 근육질의 등이 사납다. 수많은 임무를 헤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칼자국 하나 나지 않은 몸은 이 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흠모의 대상이었다.
이안과 함께 가면 반드시 가치 있게 죽을 수 있다.
그 믿음은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조커 내에 뿌리 박혔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
아무리 살수라 해도 한낱 벌레처럼 죽고 싶진 않은 법이다. 자신의 죽음에 이유나 의미를 붙이고 싶어 하는 건 산 존재라면 당연한 것.
이안은 그걸 만들어주었고, 그보다 한발 나아가 웬만하면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작전을 짰다.
그건 이전의 마스터와는 분명 다른 부분이었다.
“내가 가주가 되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건 이미 알고 있던 거잖니.”
“……예.”
“그러니 이제 와서 속상할 것도, 서운할 것도 없어. 플로린을 환영해 주지 못해 아쉽지만 어차피 갔어도 그 애는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바빴을 테니.”
새카만 셔츠를 새로 걸치고 소매 단추를 잠그던 이안은 빙그레 웃으며 여상히 대꾸했다.
“애를 태울 것 없어. 단테가 가주가 된다 하더라도 조커가 드리블랴네에서 독립하는 건 바뀌지 않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를 해왔지 않니.”
단검이나 총을 쥐기 편한 검은 가죽 장갑과 핏물이 묻어도 티가 나지 않을 만한 붉은 슈트.
어른이 된 이안이 선호하는 건 그런 차림이었다.
키가 큰 데다 부피가 큰 근육보다는 실전에서 사용되는 잔근육 위주로 발달한 슬림한 체형이다 보니 슈트 핏이 나쁠 리가 있나.
소중히 간직한 붉은 넥타이까지 맨 이안은 방금까지 살육 전쟁을 벌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리만치 훤칠하고 수려했다.
“깨끗이 정리해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의뢰를 받고.”
“예. 늘 하던 대로 하겠습니다.”
오늘 와해시킨 암살단의 이름이 ‘칼리’였던가.
평범한 귀족인 것처럼 행세하며 제법 세를 불려놓은 자들이나 지금 이 순간부터 ‘칼리’의 알맹이는 조커로 바뀔 것이다.
물론 의뢰인들은 그런 줄 모르겠지만.
‘내가 늦게 나타날수록 넌 내 생각을 하겠지.’
수하들에게 뒤처리를 맡긴 이안은 테라스로 나가 독한 시가를 입에 물었다.
제 몸에서 풍기는 피비린내를 덮기 위해 특별한 허브와 향초로 만든 물건이었다.
‘그런데 네가 내 걱정을 할 걸 아니까. 그게 좋아서…… 더 늦게 나타나고 싶어져.’
네가 내게 안달 내는 게 좋아, 플로린.
이안은 난간에 느슨하게 기대어 키득 웃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화를 낼 소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은 내가 심술궂단 걸 알면, 넌 싫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