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2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26화(126/173)
단테와의 마지막 시간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담백하게 끝이 났다. 의외로 단테는 울지 않았고, 그저 씩 웃으며 나를 보내주었다.
나는 유리가 보낸 마차에 단테의 손을 빌려 오르며 폭풍과도 같던 한 주가 마침내 지나갔음을 실감했다.
‘단테는 진짜 멋진 남자가 됐어.’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깨달은 첫 주.
‘그리고 이제부터는 유리와 보내는 시간…….’
유리는 드리블랴네에서 내가 입던 것, 쓰던 것을 일체 가지고 오지 못하게 했다.
모든 건 내가 준비했어. 누나는 부디 몸만 와 줘.
나는 이 마차를 몰고 온 황궁 시종이 건넨 카드를 다시 한번 훑었다.
부탁하는 듯 보이지만 황태자의 입에서 나온 말인 이상 그건 부탁이라 볼 수 없지. 사실상 부드러운 명령일 뿐.
“어떤 일이 생기려나…….”
작게 중얼거린 난 빠르게 스쳐 지나는 거리에 아무 의미 없는 시선을 던졌다.
백성들은 제 할 일을 하다가도 황실 문양이 크게 박힌 마차를 보면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저건 존경과 사랑으로 하는 인사일까, 권력이 두려워 하는 수 없이 던지는 인사일까.’
유리에 대한 여론이 좋은 것 같긴 하던데, 진짜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 백성들 틈에 파고들어서 알아보지를 못했으니까.
‘유리와 함께 있는 도중에 평민 거리에 나가볼 일이 있으면 좋을 텐데. 가능할까?’
때마침 마차의 속력이 느려졌다.
이윽고 마차가 완전히 멈추었을 때.
나는 심호흡과 함께 유리에게 집중할 준비를 마쳤다.
“누나! 어서 와!”
찬란한 태양빛처럼 반짝이는 백금발이 제일 먼저 시야를 차지했다.
얼굴은 조막만 한데 눈과 입은 시원스레 크고 코는 높았으며 피부는 결점 하나 없이 희고 뽀얗다.
이제 곧 어른이라지만 여전히 어리게만 보이는 미모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한 동화 속 주인공을 떠올리게 했다.
‘정말 그대로 자랐네.’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내가 다 놀랄 지경이었다.
그냥 어릴 때 그 솜사탕 같던 모습에서 키만 자랐잖아?
“오는 길에 힘들진 않았어? 누나가 드디어 나한테 온다고 소문내고 싶어서 마차를 보냈어. 정말 보고 싶었어……!”
여전히 소란스럽고 조금은 수다스러운 모습에 긴장이 풀어지려던 찰나. 부는 바람에 라일락 향기가 훅 닿아와 나는 아주 조금 당황했다.
단테에게서 나던 옅은 땀 냄새와 비누 향. 숲의 솔내음이며 흙냄새와 달리…… 유리에게선 짙은 꽃향기가 났다. 마치 그 자신이 꽃다발인 것처럼 말이다.
“엄청 예뻐졌네. 키는 나보다 한참 작고.”
유리가 내게 다가와 허리를 살짝 숙였다.
투명하고 맑은 연보랏빛 눈동자에 한순간 시선을 빼앗긴 나는 몇 초간 생각을 멈췄다.
유리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유리 외에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만 같은…….
‘아. 정신 차려야지.’
보기 싫게 넋을 놓을 뻔했네.
고개를 흔들어 멀리 나간 의식을 되찾아 온 나는 밝게 웃으며 대답을 돌려주었다.
“안녕하세요, 황태자 전하. 전하도 예쁘게 성장하셨네요.”
그때였다.
유리의 뒤에 도열해 있던 수많은 시종과 시녀, 기사들이 동시에 헛숨을 들이켰다.
내가 못 할 말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저러나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뜬 난 일단 못 들은 척하며 말을 이었다.
“몇 년 만에 뵌 건데 어색하질 않다니. 이상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요. 전하가 연하라 그런가?”
장난스레 덧붙인 한 마디가 끝나자마자 몇몇 기사들이 몹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유리의 황궁 장악력이 상당하구나.’
다행이다.
‘황제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고, 황후와는 최악인 유리니까 혹시 무시당하고 있는 건 아닐지 아주 조금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그럴 필요가 없이 알아서 잘 해내고 있었던 듯했다.
‘밝고 사랑스러운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애는 아니긴 하지.’
성장한 유리에 대한 첫 감상은, ‘안심’이었다.
쾌활한 모습도 그대로고 우아하고 세련된 외모도 그대로라 그런가?
“누나, 나랑 황궁 구경하자! 오늘 누나랑 같이 지내려고 시간을 많이 빼뒀어!”
“정말? 기뻐요.”
“아, 왜 갑자기 존대를 쓰고 그래. 멀어 보이잖아. 그러지 마. 응?”
유리가 눈을 휘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곤 내게 손을 내밀었는데 확실히 단테와는 달리 굳은살 하나 없이 예쁜 손이라 괜히 움찔하게 됐다.
‘단테 생각, 그만해야지.’
이번 주는 온전히 유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니까.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유리의 손에 내 손을 얹었다.
그렇게 플로린과 유리가 떠난 자리.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파랗게 질려 있던 시종과 시녀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미쳤나 봐요. 저 손을 잡아? 잡는다고? 저 손이 심장을 몇 개나 뜯었는지 알긴 할까요?’
‘방금 제 눈앞에서 방글방글 웃던 저 사람이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우리 황태자 전하가 맞습니까……?’
‘히이이익! 괴물이 황태자 전하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다! 황태자 전하가 웃다니! 웃다니!’
‘저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어요……? 경멸하는 눈빛이나 비웃는 게 아니라, 저렇게 해사하게 방긋댄다고요?’
한 마디라도 잘못 내뱉었다간 수명이 팍 줄어들지도 모른다.
특히 여기까지 공주님을 모셔온 황태자의 최측근 시종, 제임스 앞에선 어떤 말도 쉬이 해선 안 되었다. 제임스는 황태자의 눈과 귀이니까.
그렇기에 궁인들은 덜덜 떨면서도 결코 입 밖으로 속내를 내뱉지 않았다. 그저 눈짓으로 서로 소통하며 모두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뿐.
‘소름 돋아.’
‘저게 다 연기라는 걸 저 순진한 공주님이 아셔야 할 텐데…….’
머리에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평상시와 완전히 달라진 황태자의 모습은 공포에 가까웠다.
시녀들은 제 팔에 돋은 소름을 벅벅 문지르며 한 가지 생각을 공통적으로 했다.
‘만약 황태자 전하가 저 공주님과 결혼한다면 그건…….’
사기 결혼이나 다름없었다.
* * *
“여긴 사계 장미가 피어 있는 온실이야. 누나가 좋아할 것 같아서 나무 그네도 달아놨어.”
그 무렵, 나는 어느 작은 온실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유리는 마치 어린 날 그 시절처럼 내게 친근하게 굴었고, 덕분에 어색함은 금세 휘발되었다.
“여기 앉아봐. 밀어줄게.”
“조금 부끄러운데.”
“아무도 안 봐. 나 빼고.”
온실의 장미 아치에 매달린 새하얀 나무 그네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그림처럼 어여뻤다.
솔직히 앉아보고 싶긴 했지만 나이 먹고 그래도 될까 싶었는데, 유리가 재차 권했기에 난 못 이기는 척 그네에 엉덩이를 붙였다.
“여기 정말 평화롭다.”
“마음에 들어?”
“응.”
아무래도 바깥의 정원이 아니라 유리 돔을 씌운 온실이다 보니 이 안엔 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마법으로 설치된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음이 없는 공간.
여기에서 꽃을 보고 있자니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나 걱정 따위가 모두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너도 여기 자주 와?”
“자주 오지. 내가 직접 돌보는걸.”
“뭐어? 정말?”
“물론 대부분의 일은 정원사가 하지만. 그만큼 각별하게 신경 쓰고 있단 의미야.”
유리가 쿡쿡 웃더니 근처에 피어 있던 소담한 장미꽃을 투둑 하고 꺾었다.
그렇게 수십 송이를 꺾어낸 유리는 솜씨 좋게 팔찌를 만들어 냈다.
“오늘을 기념하는 선물. 끼워줘도 돼?”
“응, 고마워.”
그런데 다음 순간-
유리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팔찌 하나 끼우는데 무릎까진 다소 과하지 않나 싶었는데 뒤이어 정말 기함할 일이 벌어졌다.
“유, 유리?”
“응, 누나.”
“구두는 왜 벗기는 거야?”
나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는데 유리는 태연했다.
신발에 손을 대는 건 오직 시중인만 하는 행동이었다. 황태자인 유리가 할 행동은 결단코 아니다.
허나 유리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걸 끼워줘야 하잖아. 근데 난 누나가 남의 손을 타는 건 싫어서.”
순간, 내 등골을 타고 소름이 쭉 돋았다.
희고 고운 손가락이 아름다운 꽃으로 만들어진 ‘그것’을 내 발목에 끼웠다.
당연히 팔찌라고 생각했던 게 발찌가 된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추워졌다.
‘모양만 예쁠 뿐, 족쇄 같아.’
아니지. 모양이 예뻐서 더 섬찟한 건가.
“잘 어울린다, 누나.”
유리가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유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참, 며칠 뒤면 데뷔당트잖아.”
“응.”
“선물을 준비했어. 누나가 그 날 입고 나와 줄 드레스야.”
내 침묵을 알아차렸을 텐데도 유리는 꽃 발찌에 대해선 어물쩍 넘어갔다.
뒤이어 나온 화제는 데뷔당트 드레스였는데, 나는 이미 입을 것이 정해져 있었기에 고개를 내저었다.
“뭘 입을지 정했어. 장신구도 다 맞춰 두었고.”
“그야 누나는 뭘 입어도 잘 어울리겠지만, 그보단 이쪽이 더 예쁠 거야. 장담해.”
막무가내로구나. 황태자가 그렇다는데 무슨 말을 더 꺼내겠느냐만은…….
“드레스는 이 방에 뒀어. 이 안에 있는 건 모두 누나 거야.”
드레스가 있다는 방은 온실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유리는 신나서 어쩔 줄 모르겠단 얼굴로 문을 열었는데, 그러자마자 환하게 쏟아진 햇볕에 나는 잠시 눈가를 찡그렸다.
“어때?”
그러다 유리의 채근에 겨우 눈을 떴는데-
“…….”
순간, 시야에 들어온 드레스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이건 꼭, 웨딩드레스 같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