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2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28화(128/173)
‘하도 간절하게 칭찬을 하니 오히려 유리가 이들에게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 수 있어.’
일반 백성들은 행렬 선두에 서서 손을 흔드는 유리의 모습을 1초 정도 보는 게 다지만, 이들은 매일 부대끼며 소문을 듣는다.
그러니 이쪽 반응이 진짜였다.
“하긴, 유리의 눈웃음은 매혹적이긴 해.”
나는 대충 그렇게 말해두었다.
이들 중 누군가는 분명 유리의 눈이며 귀일 것이다. 아닐 리가 없었다.
“이제 혼자 좀 쉬고 싶으니 물만 더 데워놓고 나가 있으렴.”
“그리하겠습니다!”
대욕실의 구조는 꽤 특이했다.
넓은 내부에는 오직 찬물만 담긴 탕이 하나, 따끈한 물이 담긴 탕이 두 개 있다.
금빛 기둥과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놓았기에 마치 신들이 몸을 씻는 샘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대욕실의 오른편엔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 거길 통해 밖으로 나가면 노천탕이 자리했다.
내부부터 이 바깥까지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물을 채운 것이다. 그러니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가벼운 슬립을 걸친 채로 노천탕 가장자리에 앉아 발을 쭉 뻗었다.
물은 아주 뜨거웠기에 몸을 다 담그기엔 무리가 있었다.
담비 찜이 되어버리고 말걸.
나는 물에 젖은 바위에 기대어 발장구나 통통 쳤다.
그때였다.
푸드덕-!
“어?”
갑작스러운 날갯짓 소리에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둠이 내린 탓에 사위가 어둡다지만 횃불을 밝혀두었기에 담 위에 앉은 저게 뭔지 그럭저럭 알아볼 수는 있었다.
‘카나리아?’
잠깐, 발목에 뭔가 매달고 있는 것 같은데.
나와 눈이 마주친 카나리아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내게 부드럽게 날아왔다.
무심코 손을 뻗자 샛노랗고 작은 새는 내 손바닥에 가볍게 안착해선 발을 척 내밀었다. 누가 봐도 제 발에 달랑달랑 매달린 걸 풀어달라는 표시였다.
‘아주 작은 상자 하나랑 돌돌 말린 쪽지네.’
나는 작은 상자와 쪽지를 동시에 풀었다.
뭐부터 봐야 할지 몰라 고민했는데 카나리아가 앙증맞은 발톱을 쭉 뻗어 상자를 툭툭 쳤다.
‘그냥 카나리아가 아니라 새 수인인가? 카나리아도 수인이 되던가?’
의아했지만 아무튼 나는 상자부터 열었다.
벨벳으로 겉면이 덮인 작은 상자는 딱 봐도 반지 케이스 같았는데 정말로 그랬다.
‘붉은 보석이 박힌 반지네.’
꼭 누가 떠오르는데…….
“아.”
속이 울렁거렸다.
반지를 끼자마자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 확 들었다.
마치 일전에 아버님이 아공간을 선보이셨던 것처럼 묘하게 이 세상과 분리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서둘러 종이를 펼쳤다.
애기야, 반지부터 꼈지?
애기야.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다. 반지의 보석이 붉은색일 때부터 알아봤지만, 정말로 이안이 보낸 거구나.
그 반지는 너와 유리의 연결을 막아줄 수 있어. 숙부님이 만들고 있던 건데 내가 전달하게 됐네.
아공간을 보석에 넣는다는 게 쉽지 않아서 번번이 실패하셨다가 마지막으로 성공한 물건이야.
이안답다.
핵심부터 먼저 설명해 주는 게 참 좋았다.
아마 유리는 네가 보고 듣고 읽는 것을 모두 알 수 있는 것 같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뭔가 숨기고 싶다면 그 반지를 사용해. 조만간 만나자.
이안.
아버님과 이안이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구나.
쪽지를 모두 읽은 후의 감상은 그러했다.
‘아버님은 단테에겐 유리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셨어. 그런데 이안은 모두 알고 있네. 심지어 반지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맡았고.’
다행이다. 아버님은 이안에게 힘을 실어주고 계셨던 거야.
누구라도 이안의 편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게 아버님이었다니, 다행이지 뭐야.
나는 쪽지를 물에 담갔다. 그러자 잉크가 완전히 융해되어 글자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해진 걸 확인하고서야 나는 반지를 비틀어 빼냈다.
씻으러 들어갈 땐 없었던 반지가 나올 땐 있다면 시녀들이 수상쩍게 여길 테지.
‘입고 들어온 옷 주머니에 숨기는 게 제일이야.’
그래서 이안.
‘넌 지금 어디에 있어?’
카나리아는 다시금 멀리 날아가 버렸고 이안의 기척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난 아쉬움을 삼키며 이내 노천탕 깊숙이 몸을 담갔다.
사실 잠자리가 바뀌어서 푹 자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 반지가 품에 있는 이상…… 좋은 꿈을 꿀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 * *
‘그래서 잠은 잘 잤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람.
다음 날, 목욕을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푹 자는 바람에 나는 애매한 시간에 일어났다.
아침 식사를 하기엔 너무 늦었고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각.
결국 간식이나 먹기로 한 나는 날씨도 좋으니 황태자 궁의 후원으로 나섰다.
라일락이 만개한 보랏빛 후원의 중앙에 놓인 테이블은 꼭 ‘여기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세요’ 라고 적힌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거기까지는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라일락 향기에 취해 있을 때까지는.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아, 해 봐. 응?”
“내 손으로 먹을 수 있어.”
“알아. 아는데……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그냥 내가, 먹는다니까?”
“응, 응. 알겠어. 이거 한 입만 더 먹으면 누나 손으로 먹어.”
나는 지금 고작 ‘내 손으로 식사를 할 권리’를 찾기 위해 삼십 분째 씨름 중이었다.
간단한 핑거푸드와 함께 나타난 유리가 자꾸 내게 먹여주려고 드는 탓이었다.
‘기사들은 못 본 척하고, 시종들은 파랗게 질려 있고. 시녀들은 못 볼 꼴 본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이 자리에 유리와 나뿐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황태자란 본디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열 명쯤 되는 인원을 대동하는 위치였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이러자니 수치스러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누나는 먹는 것조차 스스로 할 필요 없어. 정말이야. 다 내가 할게.”
“하아.”
“일주일이면 자연스러워질 거야. 걱정 마.”
아니, 글쎄. 이런 거 자연스러워지고 싶지 않다니까 그러네.
배는 고프고, 유리를 밀쳐낼 힘도 없어서 그냥 하자는 대로 하고는 있었지만 슬슬 짜증이 났다.
“나는 나를 멋대로 다루려는 게 싫어, 유리.”
유리가 또다시 롤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내 입가에 가져오자 나는 결국 정색을 하며 따끔히 말을 했다.
어쨌든 지금은 ‘황태자’가 아니라 그냥 ‘유리’로 있는 거니까 이쯤은 말해도 되겠지.
“네가 내게 뭐든 해주고 싶어 한다는 건 잘 알겠어. 그런데 내가 해달라고 한 거, 아니잖아. 원하지 않아.”
눈을 바로 쳐다보며 한 자 한 자 또렷이 내뱉자 유리의 동공에 이채가 감돌았다.
알아는 들었을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나오려나.
약간 긴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리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귀여워. 뭐 먹고 그렇게 귀엽게 자랐어?”
“……?”
“누나는 화가 나면 눈썹이 이렇게 돼. 근데 동글동글하고 순하게 생겨서 눈썹만 화가 나 있으니까 귀여워 죽을 것 같아.”
미친놈하고는 말이 안 통해서 이길 자신이 없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 짝이었다.
편지를 주고받을 땐 애가 이상하게 크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는데…….
“누나는 결국 나를 선택하게 될 거야. 사랑하면 좋겠지만,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때였다.
유리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말라붙었다.
꽉 차 있던 물병 속의 물이 삽시간에 줄어드는 것처럼 유리의 주변을 감돌던 반짝반짝한 분위기도 스르르 사라졌고, 남은 건 눈만 억지로 휘어 놓은 가짜 웃음뿐이었다.
나는 그런 유리를 보며 침착하게 물었다.
“내가…… 만약 너 아닌 다른 이를 선택했을 때. 내 선택을 존중할 생각은 있어?”
“그래야지. 마음에 안 들어도.”
“드리블랴네 가문에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을 거야? 내 남편을 해치려고 들지도 않을 거고?”
“어쩔 수 없으니까.”
유리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쉽게 믿기진 않았지만 일단 말이라도 저렇게 하니 다행이었다.
‘아, 지금이 바로 그 때인가?’
불현듯 아버님이 해주셨던 조언이 떠올랐다.
“있지, 유리야.”
“응, 누나.”
“난 사실…… 사랑에 빠지고 싶어.”
내게 있어 사랑과 결혼은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다른 말인 척해야 해.
나는 내 말투와 표정에 신경을 쓰며 온 진심을 담아 말을 마쳤다.
“하지만 네가 자꾸 나를 구속하려 들면,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