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29)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29화(129/173)
* * *
그날, 유리는 충격을 받았는지 힘이 쭉 빠진 채로 돌아갔다.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진짜 털레털레 걷더라고.
‘아버님 말씀대로 된 거라면 다행인데.’
유리를 직접 만나보니 더더욱 확실해졌다.
나는 단테나 이안, 둘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그 둘 중 유리가 만에 하나 공격을 해왔을 때 가문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건 아직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다 되셨습니다.”
“정말 아름다우세요!”
“오늘 데뷔당트를 치르는 영애들 중 가장 예쁘실 거예요. 틀림없어요.”
나는 시녀들의 호들갑에 스르르 눈을 떠 거울을 보았다.
동그란 얼굴형에 여전히 통통한 볼살. 끝으로 갈수록 달콤한 빛깔로 변하는 은발과 붉은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웨딩드레스 같은 흰색 드레스가 아니라 가문에서 챙겨 온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나는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 준비하고 나니 이제 서둘러 연회장에 가고 싶었다.
‘입장은 유리와 하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어.’
오늘은 오지 않을까. 이안.
‘그래도 내 데뷔당트 날이잖아.’
오늘만큼은 직접 축하해 주러 올 것 같은데.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한편, 그 시각.
마도 제국의 황궁을 향해 세차게 달려오고 있는 새하얀 마차들이 있었다.
신성 제국 교황청을 의미하는 깃발을 높이 휘날리는 여러 대의 마차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늠름한 성기사의 모습에 백성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고위 신관을 비롯해 여러 신관들의 선교 방문.
겉으로 보기만 해도 너무나 신성하고 장엄한 광경이고 의미도 참 좋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여러 대의 마차 중 제일 선두에는 고위 신관 메레반노가 타고 있었다.
88세다 보니 거동이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먼 곳까지 여행을 하기에는 체력이 모자랐지만 어쩔 수 있나.
교황이 직접 내린 명령인데 따라야지.
메레반노는 신성 제국에서 출발하기 직전,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며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탄 마차에 신원이 확실한 신관 세 명을 미리 태웠다.
“저어, 꼭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
“허허. 나약한 소리를 하는군, 자네.”
교황이 듣지 못하는 곳에서 이 계획을 논해야 했는데 달리는 마차만큼 적합한 곳이 또 없었다.
내리기 전까지는 여기 앉은 모두의 동의를 구해야 하므로 메레반노는 망설이는 신관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다 신성 제국을, 나아가 신을 위한 일일세.”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들어 봐도 납치 아닙니까.”
“어허! 납치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하는군, 자네.”
메레반노의 계획은 이러했다.
첫째. 그럴 리 없지만 저 마도 제국에 있다는 그 성녀가 진짜인지 확인한다.
둘째.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진짜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정중히 모셔가서 성녀 라흰과 비교를 해 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신성 제국에 가는 걸 거부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너희는 그저 동물화를 일으키는 이 신성 도구를 쥐여 주기만 하면 돼. 그뿐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담비로 변할 테니 준비해 둔 우리에 넣으면 되고.”
“…….”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 만약 우리를 들키면 우리 쪽에서 데려온 애완동물이라고 둘러대라.”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그게 다 말인 줄 아는 건가.
신관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그런 모두 같은 생각 중임을 알아차렸다.
<동물화를 일으키는 신성 도구>는 오래전, 라흰이 장난으로 만든 것이었다.
당시에 성녀 라흰은 그 신성 도구를 온갖 신관들에게 들이대며 동물 모습으로 만드는 걸 아주 재미있어 했었다.
라흰이 봉인된 후로 감쪽같이 사라진 여러 개의 신성 도구 중 하나였는데, 그걸 메레반노 신관이 가지고 있었다니.
신성력을 손에 두르지 않고 무심코 쥔다면 그 누구라도 반드시 타고난 동물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이 무서운 물건은 다름 아닌 ‘손수건’이었다.
누구라도 무해할 거라는 판단 하에 받아드는 물건. 여기 뭔가 묻었다며 건네주기에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것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 성녀님이라면 예를 갖추어 공경해야 마땅한데……. 이런 식은 옳지 못한 것 같습니다.”
침묵 끝에 한 신관이 소신 발언을 했다.
그러자 메레반노가 허허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리 강단이 없어서야. 어찌 고위 신관이 되누?”
“!”
“그래, 나머지도 비슷한 생각인가?”
상급 신관까지는 자신이 가진 신성력이나 해온 노력, 혹은 업적 등으로 될 수 있지만 고위 신관은 말이 다르다.
교황청 내의 극비 정보까지 열람할 수 있는 고위 신관은 반드시 현 고위 신관의 특별 추천을 받아야만 될 수 있었다.
그게 교황청 내에서 정치 싸움이며 파벌 싸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상급 신관쯤 되면 다들 비슷비슷한 능력치를 지녔기에 추천제가 아니고서야 누가 고위 신관에 어울릴지 판단할 수도 없었다.
“자네들이 관심이 없다 하니 그럼 다른 사람을 불러야겠군.”
“아니, 잠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허허, 왜 그러나? 납치는 좀 양심에 찔린다고 하지 않았나. 양심을 지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지. 좋은 일이야. 하지만 때로는 개인의 양심보다 나라와 신을 우선시해야 한다네.”
메레반노가 옹이구멍 같은 눈을 반짝이며 살살 부추겼다.
“게다가 진짜 신성 제국에 모셔갈 만한 성녀님인지, 아니면 그냥 쓰레기 같은 가짜인지는 아직 모를 일이긴 하지.”
“그건…… 그렇지요.”
“만약 가짜라면 데려갈 이유가 전혀 없네.”
그런데도 거절부터 하고 볼 것인가. 그러면 무조건 너희 손해가 되는데?
‘흥. 어차피 고개를 끄덕일 거면서.’
메레반노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상급 신관치고 고위 신관으로 올라가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에 있겠나. 기회가 닿고 안 닿고의 문제지.
메레반노 역시 젊은 시절, 한 고위 신관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저, 저도요! 제가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본디 인간이란 자신이 좋은 걸 못 가지는 건 상관없어도 남이 갖는 건 눈 뜨고 못 봐주는 법이다.
메레반노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은 그러했다.
“저어, 그런데 저희 중 누가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지…….”
“게다가 추천은 한 고위 신관당 한 명에게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셋인데…….”
결국 하겠다고 결정을 내리자 제 이득을 찾는 모습들에 메레반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건네는 건 셋 중 가장 젊은 자네가 하도록 하지. 자네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교묘하게 인적이 드문 곳으로 몰아넣어. 자네는 이 일이 벌어질 때 소란을 피워서 시선을 끌도록 하고.”
꿀꺽.
이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상급 신관들이 다 함께 마른침을 삼켰다.
음모를 꾸미기엔 지나치게 태양이 찬란한 오후였다.
‘괘씸하기는.’
그리고 여기, 메레반노가 꿈에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분명 신원이 확실하다고 생각해서 마차에 태운 세 명의 상급 신관. 그중 한 명, 가장 젊은 쪽은…… 다름 아닌 변장을 한 교황이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슬쩍 들어와 보았더니.’
역시나.
교황, 조르주는 입속으로 혀를 찼다.
‘없어진 손수건을 누가 숨겼나 했더니 메레반노였군.’
게다가 그걸로 마도 제국의 성녀를 납치한다라…….
‘내 손에 손수건이 들어올 테니 차라리 잘 됐어.’
그걸 건네주는 척하면서 가까이 다가가 살펴봐야겠다.
천신의 뜻을 받드는 사람으로서, 조르주는 알고 싶었다.
신께서 안배한 성녀가 정말로 라흰이 맞는지.
맞다면 어째서 그런 악랄한 성품을 지닌 자에게 큰 힘을 내려주셨는지.
‘그도 아니면, 우리가 지금껏 잘못된 성녀를 받들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상급 신관처럼 꾸민 조르주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마도 제국 황성이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