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30)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30화(130/173)
* * *
데뷔당트 날, 성인이 된 영애들은 모두 모여 한 번에 입장한다.
파트너가 될 영식들은 문 안쪽, 연회장에서 이미 일렬로 서서 기다리고 있고 자신이 에스코트할 영애가 들어서면 한 명씩 손을 잡고 중앙 플로어로 가는 식이었다.
나 역시 이번에 데뷔당트를 치르는 영애들과 함께 서 있었는데 대부분 얼굴도 이름도 잘 몰랐지만 다행히 옆에 벨라디가 있었다.
“솔직히 연회장 안에 그 샹들리에 조명, 참석한 귀족들의 눈을 멀게 해버리겠다는 의지를 갖고 번쩍이는 것 같지 않아?”
“아, 맞아. 가끔 올려다볼 때마다 눈 아파.”
“좀 어두워야 몰래 뽀뽀도 해 보고 그럴 텐데.”
“얘는……!”
기다리기 지루한지 영애들이 킥킥대며 수다를 떨었다.
거기서 나온 ‘뽀뽀’라는 단어에 벨라디는 뺨을 발갛게 물들였다.
‘그러고 보니 내 일에만 몰두하느라 벨라디가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는 관심도 없었네.’
친구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반성한 나는 몸을 살짝 기울여 벨라디의 귓가에 대고 속닥거렸다.
“벨라디, 있잖아. 혹시 넌 좋아하는 사람 없어?”
“아, 으, 응?”
“좋아하는 사람 말이야. 사귀는 사람은?”
오늘 벨라디의 파트너는 로이바이엄 가문의 기사였다.
통상적으로 비슷한 나이대의 영식이 파트너를 맡다 보니 공작이 직접 나서진 못하고, 가문 내의 믿을 만한 기사를 발탁한 모양이었다.
“아, 나는…….”
벨라디가 시선을 떨어트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뭐어? 정말? 누구?!”
벨라디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뜻밖의 정보에 흥분한 나는 눈을 반짝였다.
이건 골치 아픈 일들 사이에 발생한 유일하게 즐겁기만 한 이야기였으니 어찌 놓칠까.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해.”
“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얼마나 매력적인데!”
벨라디는 멋진 화가인데다 정말 특별한 그림을 그려내잖아.
어디 그뿐인가. 벨라디는 나보다 키가 훨씬 컸다. 늘씬한 건 물론이고 전체적으로 기품이 우러나오는 성숙한 모습인지라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성격은 차분하지, 사려 깊지. 그런데 이런 벨라디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지?
“괜찮아.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말하지…… 않으려고 해. 영영…….”
“그런 게 어디 있어! 그건 너무 슬프잖아.”
“원랜 이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벨라디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곤 자신감 없이 어깨를 떨어트렸다.
‘어째. 정말 좋아하나 봐.’
벨라디의 반응을 보니 가벼운 마음이 아닌 듯했다.
몇 년은 혼자 짝사랑을 한 것 같은데……. 도와줄 길이 없을까.
‘일단 오늘 벨라디를 관찰하면서 누구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지부터 봐야지.’
나는 정해진 사람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운명이지만 벨라디는 누구와든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지금 내 처지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 자유로움이 조금 부럽기는 했다. 어딘가로 훌쩍 여행을 떠났는데 거기서 운명을 만난다든지,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그런 벨라디가 벌써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줄이야.
“신기해. 너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다니.”
벨라디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더 캐묻진 않은 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할까 하고 고민하던 내 눈에, 연회장에 양각된 <나룬>이 들어왔다.
물결과 같은 머리칼을 지닌 여인. 아직은 눈을 감고 있지만 곧 <나룬>은 우리를 볼 것이다. 데뷔당트를 치르는 우리를 하나하나 기억해 두기 위해서.
“이 <나룬> 말이야. 이걸 처음 본 게 내 첫 황궁 연회 때였거든.”
“아…… 그…… 날.”
“응, 그 날.”
아주 어릴 적에 이난나 님과 황궁 연회에 왔었다. 이안과도 함께였지.
그 날 까딱하면 린다는 범인으로 몰릴 뻔했고 나는 셀리나 로이바이엄과 척을 지기로 맹세했다.
그 날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 내가 어른이 됐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하고.
감회가 새로웠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황제 궁의 시녀장인 메이즌이라 합니다.”
그때, 뒤쪽 복도에서 한 무리의 시녀들이 나타나 인사를 해왔다.
“지금부터 <나룬>을 가동하겠습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나룬>에게 인사를 건네주세요.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마침내 이난나 님이 내게 일러주셨던 바로 그 순간이 왔다.
<나룬>에 등록되는 것이 곧 마도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어른이라 인정받는 첫발.
“난 모든 술을 다 마셔볼 거야.”
“그러다 취해서 난동이라도 피우면 어쩌려고!”
“뭐 어때. 오늘만큼은 다 용서하고 이해해 주잖아? 그간 얄미웠던 우리 오빠 머리나 좀 쥐어뜯지 뭐!”
흥분한 영애들이 호쾌한 발언을 하며 깔깔댔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술이 좀 마시고 싶은데…….
‘아, 한번 취해볼까?’
한 번도 제대로 취해본 적 없잖아. 저번에도 단테가 말려서 마시다 말았고.
“나, 주량이 좀 센 편인 것 같은데. 시험해 보고 싶어.”
“그, 그래도 돼……?”
내 과감한 발언에 이번엔 벨라디가 깜짝 놀랐다.
나는 방금 어떤 영애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뭐 어때!”
생각해 보니 데뷔당트는 나 자신의 소중한 날이잖아. 이날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즐기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
살면서 내가 몇 번이나 더 오직 나만을 위한 하루를 보내 보겠어?
‘자, 가자.’
이윽고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환한 빛과 함께 달콤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데뷔당트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아, 더워라.”
황태자와 그 파트너가 연회의 첫 춤을 춰야만 하므로 나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플로어를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고도 유리가 쉽게 놓아주지 않아 연속해서 춤을 췄더니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두 뺨에 열기가 후끈 올라왔다.
잠시 쉬고 싶어서 빠져나와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 근처에 서 있자니 달아올랐던 열은 금세 식었다.
‘유리, 정말 집요했지.’
하도 붙잡고 놔주질 않는 바람에 단테와 아직 인사도 나누질 못했다. 양어머니도 아까 눈으로만 인사했고 말이야.
이제 한숨 돌렸으니 슬슬 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축하도 받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다.
‘아, 단테 저기 있다.’
단테를 발견한 나는 마실 것을 두 잔 들고 서둘러 움직였다.
“단……!”
허나 다음 순간, 말이 목구멍에 턱 걸려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단테의 등 뒤, 몇 발짝 떨어진 곳에…… 벨라디가 있었던 것이다.
‘설마…….’
사랑에 빠진 사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던가.
나는 책에서 그런 문장을 읽을 때마다 의심했다. 좋아하는 마음조차 연기로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벨라디를 본 순간, 나는 단 몇 초 만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벨라디가 좋아하는 게 단테라는 것을.
‘달라. 다른 애들이 단테를 보는 눈빛과…… 완전히 다르잖아.’
막연한 동경도, 가벼운 호감도 아니다. 상대방을 향한 깊은 애정이 넘실대는 눈빛.
나는 저런 모양을 한 눈빛을 알았다. 바로, 단테가 나를 보는 눈빛이었다.
“플로린!”
그때, 나를 발견한 단테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벨라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허둥지둥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 확실하네.’
부정할 수 없이 벨라디는 단테를 좋아한다. 단테는 나를 좋아하고…….
“뭐야. 표정이 왜 이렇게 심각해?”
“아, 아냐. 이거 마실래?”
“오, 나 주는 거야? 마셔야지 그럼.”
마침 목이 말랐다며 단테가 샴페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는 동안 벨라디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 버렸고.
‘나한테 제일 소중한 여자 친구가 벨라디고, 남자 친구가 단테인데.’
이걸 어쩌면 좋지…….
“나, 어머니 좀 뵙고 올게.”
“어어. 저기 계시더라.”
“고마워.”
그렇게 둘러대며 자리를 피한 나는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술이었다.
* * *
그렇게 연회에 흥이 한창 올랐을 무렵, 교황청 일행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신관’이란 존재를 몹시 신기해하며 다가가 말을 걸었지만 내겐 피하고 싶은 대상에 불과했다. 특히 지금처럼 마음이 복잡할 때엔 더더욱.
‘테라스로 나가면 못 쫓아오겠지.’
신관 중 하나가 나를 알아본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지만 나는 깔끔히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갔다.
“잠깐 대화를……!”
쾅!
면전에서 이렇게 문을 닫는 건 예의에 어긋나지만 알 게 뭐람.
나중에 문제 삼으면 부르는 걸 못 들었다고 하면 되지.
“아, 시원하다.”
테라스의 문까지 야무지게 잠가버린 나는 난간에 기대어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주홍색 불빛이 이리저리 반짝이는 걸 보니 또 벨라디가 생각나서 심란해지고 말았지만.
‘언제부터 단테를 좋아했던 걸까?’
나는 솔직히 벨라디의 마음이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그럼 내 마음은 어떻지?’
두 사람, 퍽 잘 어울려 보였어.
단테는 활기차고 벨라디는 차분하니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벨라디도 단테 못지않은 순정파인 것 같으니까 그런 두 사람이 만나면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정말 그게 다야?’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질투가 나진 않는지. 벨라디가 단테를 좋아한다는 게 못 견디게 싫지는 않은지.
그런데 대답은 전부 ‘아니다’였다. 그 외엔 무슨 마음이 드느냐면…….
“이안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건 무심코 튀어나온 한 마디였다.
나조차 몰랐던,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내뱉은 진심 한 조각. 뱉어놓고 화들짝 놀라 나는 내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