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3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31화(131/173)
맙소사, 이건 다 술기운 탓이다.
‘어른이 된 이안은 만나본 적도 없는데 무슨.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만 할 뿐인데 어떻게…….’
한참 침묵하던 나는 난간에 머리를 툭 기댔다. 그러다 입을 비죽 내밀었다.
‘너무해. 오늘은 올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코빼기도 안 비출 수 있어? 내가 보고 싶지도 않나?
‘난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나만 그런가 보다.
생각해 보면 저번에 카나리아가 가져다준 편지에도 ‘조만간 만나자’라고 되어 있었지 ‘보고 싶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래, 유리가 내게 집착하고 단테가 나를 좋아한다 해서 이안도 그래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뭔가 섭섭했지만 나는 마음을 다독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냥 맨입으로 달래지진 않는 법이라 나는 주변을 훑었다.
테라스에도 이곳에 나오는 손님을 위해 마련해 둔 작은 테이블과 술들이 있기 마련이다.
난 거기서 도수가 높은 샴페인 잔 하나를 거머쥐고 그대로 털어 넣었다. 들쩍지근한 딸기 맛이 입안에 확 퍼졌다.
‘그래, 서운해하지 말자. 내가 이안에게 내 마음을 다 준 것도 아니고, 우리가 미래를 굳건히 약속한 것도 아니잖아.’
물론 어린 날, 이안이 내게 자신을 선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그건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였다.
지금의 그는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지. 그도 아니면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걸지도 모르고.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
왠지 울컥해서 나는 남은 술을 죄 비워버렸다.
누가 말릴 사람도 없겠다, 잔소리를 할 단테도 없겠다. 이 기회에 실컷 마셔야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머릿속은 또렷해지기만 했다.
‘아니, 근데 너무 하잖아!’
진짜 내 생각이 전혀 안 나는 거야?
환영 연회에 안 왔을 때만 해도 바빠서 그러려니 했단 말이야. 그리고 가문 전체가 이안보다 단테를 밀어주는 분위기여서, 이안이 오기 껄끄러웠겠구나. 그랬다고.
근데 그 뒤에도! 그 뒤에도!
인사는 하러 올 수 있는 거 아니야?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내가 찾아가든 말든 하지!
‘……아냐. 내게는 원망할 자격 없어. 제일 첫 데이트 상태로 단테를 고른 건 나잖아.’
근데 뭘 원망하고 있어?
‘……그런데 왜 이렇게 속상하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한 선택인데, 결국 그게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결국 한숨을 뱉으며 눈가를 문질렀다.
아주 조금 눈물이 배어 나왔다.
이것도 아마 술이 부린 농간이겠지.
‘괜찮아. 괜찮아……. 이안이 다른 사람을 좋아해도, 괜……찮아.’
그런데 단테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상상하는 것과는 기분이 달랐다.
가슴 깊숙한 곳에 누가 가시 하나를 박아 놓은 것처럼 따끔따끔거려.
“그냥 얼굴이라도 보면…… 좋을 텐데.”
“삐-!”
그때였다.
힘없이 늘어트린 내 손등에 어디선가 날아온 카나리아 한 마리가 톡 앉는 게 아닌가.
길 잃은 새인가 싶어 느슨히 시선을 들어 올리던 나는 화들짝 놀라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이, 이안의 카나리아잖아?!’
아니, 내가 자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 어떻게 알고 보냈지?
꼭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뱃속이 간지러워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카나리아는 꼭 따라오라는 것처럼 부리로 내 손을 아프지 않게 콕콕 찍은 뒤, 날개를 활짝 펼쳤다.
“작은 새야. 어디로 가면 되니?”
이안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여기에 왔나? 왔으면 왜 바로 오지 않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래서 이제 더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걸까.
그 사람과 있느라 나를 까맣게 잊은 걸까?
오만 가지 상념이 나를 어지럽혔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그런 가정을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이안이 나 말고 다른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면…… 난 어떡하지.’
조금, 아주 조금 미울 것 같은데.
미워할 온당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쁘다, 나.’
단테가 나를 걱정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잠깐 솟았다가 비눗방울처럼 사라졌다.
나는 결국 카나리아를 따라가기 위해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난간에 발을 걸쳤다. 그런 다음, 신고 있던 구두까지 벗어 던지고 아래로 휙 뛰어내렸다. 그리 높지 않으니 다칠 것 같지도 않았기에 한 행동이었다.
“으악!”
어? 근데 왜 푹신하지?
게다가 으악이라니? 저건 내 입에서 터진 비명이 아닌데.
땅의 충격이 고스란히 타고 올라와야 할 텐데 뭔가 푹신했다. 꼭 밑에 있던 사람을 방석 삼기라도 한 것처럼.
‘잠깐만! 분명 밑에 아무도 없어서 뛰어내린 건데!’
술이 확 깨는 느낌이다.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밑에서 ‘아구구’ 하는 신음이 들리자 하는 수 없이 눈을 떠야만 했다.
그리고 내 밑에 깔려 있는 인물이 대체 누구인지 확인하자마자 난 그대로 입을 떡 벌렸다.
‘시, 신성 제국에서 온 신관!’
새하얀 법의를 입고 있잖아!
잠시 머리가 멍해져서 이걸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신관은 내 밑에 개구리처럼 짜부라진 채로 깔려 있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내가 앉은 곳이 신관의 등이라는 점이었다.
불행이라면?
지금 내가 입고 두르고 걸친 것들에 달린 보석 무게만 해도 꽤 나간다는 것이지, 뭐.
아찔해진 나는 일단 신관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내가 비키자마자 콜록거리며 밭은 숨을 뱉는 걸 보니 살긴 산 것 같았다.
뛰어내린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 망정이지……!
“괘,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신관님!”
“아야야. 머리를 부딪친 것 같은데…….”
“어떡해. 궁의를 불러드릴게요!”
저 신관이 내 얼굴을 명확히 보기 전에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나는 죽어도 ‘데뷔당트 날 신관을 깔아뭉갠 레이디’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평생 그런 꼬리표가 달릴 거란 말이야!
“잠시, 잠시만요. 공주님.”
신관들은 다 연회장 안에 있는 거 아니었어?
괜히 억울해진 나는 미안함과 당황이 뒤섞인 얼굴로 달렸다.
“어디 다치신 곳 없으십니까?”
그런데 절뚝거리면서도 잘도 따라온 신관이 나를 붙잡았다.
차마 피해자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던 나는 하는 수 없이 멈춰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표정이 너무 안 좋으신걸요. 누구에게도 방금 일을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주님. 신께 맹세합니다.”
그래주면 정말 고맙긴 한데요…….
‘그런데 왜 나를 공주님이라 부르지?’
내 호칭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중 적당한 걸 고르면 될 텐데 왜 굳이 제일 높은 신분으로 불러주는 건지 모르겠다.
조금 당혹스럽달까.
“이런, 눈가가……. 이걸 쓰세요.”
그때, 신관이 허둥대며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그걸 무심코 받아 들 뻔한 나는 멈칫하며 손을 말아 쥐었다.
‘이 손수건.’
라흰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아무리 봐도 착각은 아닌 것 같다.
“공주님?”
시선을 올리자 걱정스러운 눈빛이 나를 향하는 게 보였다.
삼십 대 후반 정도 되었을 듯한 외모다. 신관답게 선한 눈꼬리에 무던한 인상과 긴 머리칼을 지니고 있는 남자.
굳이 따지자면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을 법한 얼굴이라 해야 하나?
얼굴에서 유별난 점을 찾자면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듯 순수한 눈동자인데, 마치 갓 태어난 송아지 같았다.
그러나 나는 몹시 찜찜했다.
원하는 대로 얼굴을 마음껏 바꾸는 재주를 가진 화이란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냥 받아?’
아무리 생각해도 신성력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척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이게 시험일지도 모른다.
신성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물건에 걸린 저주를 알고도 받을 리 없잖아.
게다가 저 손수건에 깃든 기운은 별것 아니었다.
지금껏 라흰의 기운이 남은 물건은 수십 개도 더 보았다. 내가 저주를 풀어낸 것 중엔 저 손수건보다 훨씬 강한 힘이 실린 것도 있었으니 크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사소한 문제점이 있다면, ‘무슨 저주’가 걸려 있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대개 심한 장난을 치는 정도이긴 했지만…… 때때로 도를 넘는 것도 있었는데.
“저를 아시나요?”
나는 일단 침착하게 질문을 했다.
그러자 신관이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모르겠어요. 은발에 붉은 눈을 가지신 분인데요. 알비노가 사실은 아르칼리크란 나라의 특징임을 밝혀내신 분 아닙니까. 더불어 마도 제국의 성녀님이기도 하시지요.”
“신성 제국에서 오신 분들이 제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여러 일들이 있었잖아요.”
“지나간 일들이지요. 지금은 저희 제국에도 성녀님이 깨어나셨고요. 참, 제 이름은 록산입니다.”
신관, 록산이 뒷머리를 긁더니 순박하게 헤헤 웃었다.
“록산?”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유명한 고위 신관 중에 록산이란 사람은 없었다. 나이 자체가 고위 신관이 되기엔 너무 젊기도 하고.
정말 별것 아닌 하급 신관인가? 고위 신관의 수발을 들러 따라온?
“저, 그런데…….”
“?”
“제가 정말 신경이 쓰여서 그러는데요. 그…… 눈가가 번지셔서.”
아, 아까 눈물이 배어나서 마구 문지르는 바람에 화장이 번졌구나.
그런 꼴로 이안을 만나긴 싫었기에 나는 록산이 내미는 손수건을 받아 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걸로 눈가를 닦아낸 바로 그 순간.
록산이 눈을 반짝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박쥐의 그것처럼 번득이는 빛을 인지한 순간-
‘어?’
뭔가 잘못됐다.
내 몸이 어디론가 빨려드는 느낌이 들더니 손수건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 훅 날아올랐다.
‘이,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