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3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33화(133/173)
“노, 놓아라! 이건 교황님께서 공식적으로 항의할 것이야!”
“이 멍청한 머리로 어떻게 상급 신관까지 된 건지. 그냥 깔끔하게 떨어져 나가는 게 교황청을 위한 일 같은데.”
“뭐라고? 네 이놈……!!! 놓지 못할까!”
“아, 근데 그러면 내가 너무 좋은 일을 해주는 건가? 오히려 수고비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빈정대던 이안이 혀를 차자마자 그동안 가만히 있던 록산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낄낄거리며 눈물까지 흘려댔다.
나는 상황이 대체 어디로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저건 왜 또 미친 것처럼 폭소해?
그리고 위험한 인물로 자란 건 알겠는데, 이안…… 설마 진짜 신관을 죽일 생각은 아니지?
“아, 진짜 웃겨. 푸흐흑…… 모의는 메레반노와 하더니 불리해지니 교, 교황을 찾고. 푸하하!”
록산은 거의 울면서 웃었다.
한참을 혼자 그러다 몸을 바로 세운 록산은 이내 나를 향해 사과를 해왔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진짜 납치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
“이건 고위 신관 메레반노가 지시한 내용입니다. 어느 정도 따르는 척을 해야 그를 축출할 증거를 얻을 수 있어 연기를 좀 했는데. 이미 다 들킨 것 같으니…… 그만해야겠군요.”
뭘 들켜?
나는 잘 모르겠는데 록산이 웃는 눈으로 이안을 보았다.
그러자 이안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드디어 그 짓거리를 그만둘 용의가 생겼나 보군.”
“미안해요, 미안해. 그래도 저도 한 대 맞았으니 퉁 치면 안 될까요?”
뭘 퉁 쳐?
그렇게 묻기도 전에 록산의 전신에서 거칠다 싶을 만큼 강대한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꽥꽥거리던 나이 든 신관은 그 신성력을 깨닫자마자 기겁을 하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교, 교황 성하……!”
“그래요. 접니다.”
“신원은 확실했는데 대체 언제부터!”
“처음부터요. 신성 제국을 떠나올 때부터 전 이 얼굴을 하고 있었답니다.”
쯧쯧.
록산, 아니, 교황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메레반노가 아둔한 짓을 할 줄은 알았지만……. 권력에 눈이 멀어 그에 동조를 하다니요. 참 실망입니다.”
“건네준 건 결국 교황 성하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가장 젊고 힘없는 제게 가장 나쁜 일을 떠넘기더군요. 유감이었습니다.”
상황을 얼추 살펴보니 나를 납치하려 한 건 ‘메레반노’라는 신관인 듯했다. 그리고 교황은 얼굴을 바꾼 채 이들 사이에 숨어들었고.
‘아니, 근데 그럼 손수건을 주는 척만 해도 되는 거 아니었어?’
능청스럽게 눈가를 닦으라고 권유한 건 뭔데?
“저 못난 신관은 제가 데려가 혼을 낼 테니 넘어가 줄 수는 없겠습니까?”
내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교황은 방금과 다를 바 없이 몹시 유들유들했다. 헌데 위압적인 신성력이 더해지자 아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말에 힘이 팍 실린다고나 할까.
물론 그런다고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이걸 어디까지 큰 사안으로 키우느냐였다.’
나는 가능하다면 저 거머리 같은 작자들을 이쯤에서 완전하고도 영구히 떼어내고 싶었다.
국익과 연관이 되도록 하면 황제 폐하의 힘을 얻는 건 어렵지 않을 텐데. 그냥 확 국제적인 문제로 만들어 버려?
“나는 못 넘어가겠는데.”
오, 그렇지. 그 한 마디로 시작하면 좋을…… 응?
“아르칼리크에서 온 귀빈을 납치하려 한 건 중죄지. 마침 그 증거인 손수건이 바닥에 떨어져 있지 않은가.”
골수까지 얼어붙을 만큼 냉랭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허나 이 목소리는 이안의 것이 아니었다. 등골이 서늘해지게 만드는 기운 역시 이안의 것이 아니다.
‘숨, 막혀.’
이윽고 얼음 알갱이로 이뤄진 포말과도 같은 페로몬이 등 뒤에서부터 덮쳐왔다. 어지러울 정도로 강력한 그 힘은 내 폐부를 뚫을 듯 달려들어 끝내 심장을 움켜쥐는 듯했다.
“내 나라에서 감히.”
“…….”
“이런 짓을 벌인 대가는 비싸게 치러야 할 거다, 교황.”
빛이 어른거리는 공터로 나왔음에도 유리의 얼굴엔 여전히 그림자가 눌어붙어 있었다.
온 바다를 제멋대로 누비는 포식자의 기운은 고작 해 봐야 작은 담비일 뿐인 지금의 내겐 견디기 어려운 종류였다.
‘심해에 잠기는 것 같아.’
분명 여긴 황궁의 정원인데 급작스레 내 안에 급류가 휘몰아쳤다. 바닷속에 세워진 공동묘지에 산 채로 묻힌 것처럼 섬찟했다.
그건 우리를 들고 있던 나이 많은 신관 쪽도 마찬가지인지 1초가 흐를 때마다 점점 더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런, 괜찮아. 숨 깊이 들이마셔 볼래?”
결국 숨을 할딱이기 시작하는 나를 알아차린 이안이 손을 뻗어 턱 밑을 간질였다.
“후아……!”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금세 괜찮아졌다. 호흡이 탁 막히고 폐부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는데 이안의 손길이 이어질수록 기도가 뚫리고 폐도 다시 펴지는 것 같았다.
“옳지.”
이안이 여름 바람처럼 따스하게 웃었다. 진짜 주변에 열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이큘리스로 나를 감싸주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유리는 그런 내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이내 교황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의 목에 핏대가 선 게 보였지만 나는 그걸 애써 모른 척했다. 알은체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
“이런, 이런. 일이 커지는군요. 하는 수 없이 고위 신관의 목이라도 내놔야 하겠습니다.”
“그걸로 끝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인데.”
두 알파의 기세 속에서도 교황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유리는 그에 맞춰 눈매를 휘었으나 눈빛은 건조하게 말라 있었다.
“플로린.”
이윽고 유리를 뒤따라온 기사 한 명이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긴 집게로 집어 들었다.
유리는 증거 확보까지 한 뒤에야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야지.”
일견 차분하게 들리지만 한 음절마다 날이 바짝 서 있다.
하지만 나는 유리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기 싫었다. 그보다는, 유리가 대체 어떻게 해서 ‘손수건’에 대해 아는지 묻고 싶었다.
‘너, 내가 동물화를 한 다음에 나타난 거잖아.’
유리는 이안보다 한발 늦게 도착했을 것이다. 이안보다 일찍 왔는데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
즉, 유리의 등장 시점에 손수건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저 손수건이 증거가 된다는 걸.’
심지어 지금 손수건은 정말 아무렇게나 풀밭에 나뒹굴고 있었다. 어떻게 보나 유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정말이었구나. 내가 어디서 뭘 하든 다 안다는 거.”
“……플로린.”
내가 나직하게 중얼거리자 유리가 다시금 내 이름을 불러왔다.
어떻게 들으면 화를 참는 듯 억눌린 음성이었고 또 어떻게 들으면 한없이 간절했으나…… 어느 쪽이든 사실 상관없었다.
“이 꼴로는 싫어. 이따 인간화를 한 다음에.”
“드레스는, 준비해…… 두라고 했으니 들어가면 시녀들이 바로 입혀줄 거야.”
고마워.
그 말은 입속에서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잊고 살았는데…… 유리는 내게 허공에 글자를 써서 소통할 수도 있었어.’
그땐 네가 보내주는 그 메시지들이 참 좋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때도 넌 내가 무얼 하는지 다 알고 있었던 거니?
“…….”
유리는 빈손을 움켜쥐며 몸을 홱 돌렸다.
굳은 표정만큼이나 얼어붙은 등이 나를 향했다.
그건 꼭 유리가 내게 단절을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 상어의 애착이란 정신병은 유리가 내게 마음을 끊고 싶어도 그러지도 못하게 만드니까.
저렇게 등을 돌려도 결국 또 내 곁을 맴돌겠지.
‘정상이 아냐.’
아, 아버님이 약을 구해 오셔야 할 텐데.
내가 유리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유리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였다.
내가 느끼기에 유리는 내게 집착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며 독점하기를 원한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달래서 제 영역에 가두려 하지만 그게 안 된다 싶으면 서슴없이 무력이라도 사용할 것 같았다.
만약 유리와 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유리를 견제하고 나를 지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내가 어떤 피폐한 상황이 되었을지 눈에 선했다.
‘왜냐하면…… 방금도 봐. 나를 배려해서 힘을 줄이기보다는…….’
자신을 화나게 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데 더 열중했지.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 남편감이 아니라는 것뿐이지.
온통 긁히며 덩굴장미에서 벗어난 신관은 교황에게 뒷 목이 잡혀 그대로 질질 끌려갔다.
나는 유리의 기운 탓에 바짝 긴장했던 몸에서 힘을 축 빼며 그대로 늘어졌다.
“우리 애기, 많이 긴장했어?”
“으응.”
“나중에 한 소리 해야겠네. 네 앞에서 페로몬 갈무리 똑바로 하라고 할게.”
아니, 그러지 마. 그러다 싸울라…….
말할 힘도 없어서 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자 쿡쿡 웃던 이안이 내 뺨을 콕 찔렀다.
“재회를 이 모습으로 할 줄은 몰랐는데. 귀엽다.”
“……!”
“그런데 역시 인간화한 널 보고 싶어. 이제 어른이잖아.”
나, 오래 기다렸는데.
장난스레 덧붙인 이안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빨려들 듯한 금빛 눈동자가 8월의 뜨거움을 품고 있어, 괜히 목이 메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