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35)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35화(135/173)
‘어쩌면 저자는 보기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몰라.’
그리고 정말 어쩌면…… 아르칼리크에서 죄를 짓고 쫓겨난 자일 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아빠는 죄를 지은 자의 후손의 후손부터 사면을 해주었거든.
“아르칼리크에서 추방을 당할 정도면 대역 죄인이거나 연쇄 살인마 수준이에요.”
화이란이 딱 잘라 말하던 게 기억난다.
“그러니 죄인과 그 직계 자식은 사면할 수 없지요. 저희가 워낙 오래 살다 보니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들은 대상이 아닙니다. 영원히 아르칼리크에 돌아올 수 없을 거예요.”
평소와는 달리 몹시 단호한 어조였다. 이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협상의 여지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만약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신성력이야 천신이 선택해서 내리는 거니까 갖고 있을 수도 있지.’
교황의 정체가 아르칼리크에서 추방당한 죄인과 신성 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일지도 모른다.
그리 가정하면 교황의 머리카락 색이나 눈 색이 평범한 게 이해가 됐다. 물론 그마저도 다 가짜로 꾸며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신성력은 교황에게 좋은 방패가 되었을 거야.’
그 누구도 아르칼리크인. 혹은 그 혼혈이 신성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따름이다. 진실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천신이라도 갑자기 나타나서 내게 말을 건네 오지 않는다면야-
‘교황의 뒤를 좀 더 자세하게 캐야겠어. 화이란에게 이야기를 해 봐야지.’
일전에 화이란이 알려준 건 교황과 교황청에 대한 표면적인 정보였다.
허나 이제 내게 필요한 건…… 교황이 한평생 감추고 싶어 했을 모든 비밀이었다.
* * *
그 날, 소득 없이 겉도는 대화가 끝난 뒤 이안은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답. 기다릴게.”
다정히 말하며 내 뺨을 슬쩍 문지른 그는 이내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여우에게 홀린 듯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또 카나리아를 보내서 대답을 듣겠다는 거겠지?’
그럼 이안은 오늘은 어디에서 잘까?
드리블랴네 저택에 들어오는 것 같지 않던데. 따로 지내는 곳이 있나?
‘다른 여자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둘이서 여행 가자고 그랬잖아.
바로 대답을 못 했지만 솔직히 가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안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영영 들을 수 없을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잠깐만. 여행을 간다는 건 다른 사람들을 끼우지 않고 단둘이……?’
시중인도 없이?!
‘……어쩐지 그런 의미일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서야 이안이 굳이 ‘대답을 기다린다’고 할 것 같지 않았다.
“어쩌지…….”
가고 싶은데, 가는 게 무섭다.
이안이 내게 뭔가 나쁜 짓을 할 리는 없지만 문제는 나였다.
‘내가 과연 이안을 그냥 둘까???’
나는 끌어안고 있던 베개를 퍽퍽 쳤다.
불쌍한 베개는 금세 찌그러졌는데, 나는 그걸 다시 주워 안고 얼굴을 푹 파묻었다.
“…….”
심장이 여전히 잘게 뛴다. 아주 작은 여우 한 마리가 내 가슴 속에서 뛰노는 것만 같아.
이 기분 좋은 떨림은 막는다고 막아질 게 아니었다.
‘안 돼. 선택하기 전에 특정한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런데…… 취향이라는 게 참 어쩔 수 없다.
얼굴에 열이 몰려 나는 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갔다.
찬물로 대충 얼굴을 씻은 다음 흐느적거리며 침대로 돌아온 난 그대로 뻗어버렸다.
그러기를 몇 초.
난 입술을 비죽 내밀며 혼잣말을 했다.
“오늘 이안, 짙붉은 슈트가 잘 어울리던데.”
슬림한 체형이라 그런지 슈트 핏이 엄청 좋았다. 자꾸 눈길이 간 탓에 보고야 말았는데, 이안은 다른 데는 다 말랐으면서 허벅지는 또 엄청 탄탄하고 굵었다.
‘몸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다니……. 반칙이야, 반칙.’
어릴 땐 예쁘장하다고 여겼던 얼굴이 지금은 수려한 미남의 것이 되어 있었다.
분명 예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유리처럼 선이 아주 얇으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
이안은 무척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고,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남달랐다.
‘아, 그리고…… 내가 선물한 넥타이를 하고 왔지.’
이런 것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를 하는 건 좀 이상한가?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데 친한 또래 친구라고는 단테와 벨라디뿐이다. 그리고 그 둘에게는 결코 지금 내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안을 보자마자 쿵 하고, 어디 암초에라도 걸린 것처럼…….
너무 어지럽다고.
‘그래,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
나는 도톰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공정해야 한다. 이안은 단테에 비해 한참 뒤에서 출발하는 게 사실이고, 가문의 대부분이 단테를 지지한다.
이 상황에서 내가 이안을 선택하려면 반드시 이안에게 비장의 수가 숨겨져 있어야 했다.
‘그런 걸, 준비해 두었을까?’
나는 멍하니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깨달음이 늦여름에 피는 꽃처럼 느리게 찾아왔다.
세 명의 후보들 중 내가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건 오직 한 명. 이안뿐이라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자 내 얼굴에도 열꽃이 피어났다.
무어라고 말로 더 설명하기가 어려운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안이 궁금했고, 보고 싶었고, 원망스러웠고, 조금 미웠다. 그러다가 만났고, 도움을 얻었고, 의지했고, 어른이 된 그에게 반했다.
그런 뒤에는 아쉬웠지. 더 함께 있지 못한 걸 지금까지도 아쉬워하고 있고.
‘선택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자라면 안 되는데…….’
그런데 아픔은 참을 수 있지만 마음이 커지는 건 어떻게 참지?
“하아.”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것인지라 어렵기만 하다.
나는 한숨을 뱉으며 웅크려 앉은 뒤 무릎에 뺨을 꾸욱 눌러 붙였다.
그러나 머릿속엔 여전히 이안이 배회하고 있었다.
마치 새하얀 눈밭에 남겨진 여우 발자국을 따라가듯, 나는 그를 생각했다.
‘페로몬으로 남을 압박한 것도 아니고 못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협박을 한 것도 아니고……. 다 아닌데도 이상하게, 이안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그런 걸 보고 카리스마라고 하나. 리더십이라고 부르나.
단테는 보살피는 자고, 동경을 받는 자이며 앞장서는 자였다.
‘유리는 군림하는 자고, 지배하는 자지.’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이안은 상대가 자발적으로 그를 위해 행동하게 만드는 자였다.
나쁘게 말하면 여우처럼 교묘하고 교활한 거고, 좋게 보면 정치적인 감이 있다는 뜻이다.
‘정치나 외교 쪽으로 가문을 잘 이끌 것 같기는 한데……. 이안이 가주가 되면 기사들은 분명 등을 돌릴 테고.’
어쩐다.
고민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나. 들어가도 돼?”
높낮이가 거의 없는 어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특색 없는 말투. 애교가 가득 실려 있던 평소의 유리가 아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은 채로 대답을 해주었다.
“응. 들어와.”
“……안녕, 누나.”
지금 내 손가락엔 이안이 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러니 가설대로라면 유리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를 터.
나는 울 것처럼 젖은 얼굴을 하고 있는 유리를 보며 조용히 손을 뻗었다.
“대화를 좀 할까? 우리.”
아마 오늘 이 시간이 너와 나의 끝이겠지.
이안에 대한 생각을 잠시 지운 나는 눈앞의 유리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리는 아까 내가 그러했듯 내민 손을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싫어. 꼭 해야 해?”
“싫은데 왜 왔어?”
“오지 않으면? 내일부터 나를 돌아볼 생각은 있고?”
상처받기라도 했다는 듯 차게 웃는 유리는 꽤 낯설었다.
나는 그 낯섦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가식을 완전히 버렸구나. 아마 이쪽이 진짜 너에 가까운 모습이겠지.
나는 결국 유리를 달래는 걸 포기하고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
“나는 네게 어디로 나간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무슨 일이 있었다고 설명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어?”
“뭐가.”
“손수건 때문에 내가 동물화했다는 걸. 넌 분명 이안보다 늦게 왔잖니. 그 장면을 봤을 리 없는데.”
유리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문간에 서 있는 걸 보니 조금 마음이 안 좋았으나 이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어릴 때야 크게 상관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제 어른이고, 나는 내 가장 은밀한 사생활 하나하나까지 다 내보여지고 싶지는 않거든.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사랑의 힘으로 찾은 거라고 해 두자.”
오랫동안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던 유리가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 것 때문에 우리 사이가 변할 이유가 없잖아. 응? 누나.”
“네가 나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안다는 걸 사소한 일 정도로 취급하고 싶은 모양인데, 나는 그럴 마음이 없어. 유리.”
“알려주면?”
그때였다.
유리가 고개를 홱 들어 올렸다.
반들거리는 두 눈에 위험한 광기가 감돌았다.
나는 그제야 침대에서 내려와 유리에게 몇 발짝 다가갔다. 그러나 유리는 오히려 한 발짝 멀어지며 쏘아붙였다.
“내가 그 힘으로 널 찾을 필요 없게 내 옆에 있어 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