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3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36화(136/173)
아, 이건 옆에 있어 달라는 어리광이구나.
그러나 내가 무어라 대답을 할 말을 찾기도 전에, 유리가 다시금 속삭였다.
“내가 가주 자리를 주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누나는 그런 이득보다는 사랑에 빠지고 싶다며.”
“……응.”
“근데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아르칼리크에 있을 때는 사랑 같은 거, 생각한 적 없었잖아.”
“내가 아르칼리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지냈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서?”
이게 핵심이다.
유리가 여태껏 감춰왔던 비밀.
그 정체는…….
“……내겐 <책> 한 권이 있어.”
유리의 얇은 입술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언제부터 생겨난 건지 모를, 내 자아가 형성된 그 순간부터 갖고 있었던 것.”
“책?”
“이렇게 생긴 건데.”
사르르.
유리의 손바닥 위에 이큘리스가 모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그걸 눈으로 쓰다듬던 유리는 입꼬리를 휘며 나를 보았다.
“알고 싶으면 따라와.”
“어디로?”
“이 모든 게 시작된 곳으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잠시 고민했으나 나는 결국 유리의 뒤를 따라갔다.
유리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그 범위는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것들을 낱낱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한 주는 본래 유리를 위한 시간이었으니까.
‘복도에 아무도 없네. 사람을 미리 물려두었나?’
오죽하면 내 슬리퍼 끄는 소리가 크게 울릴까.
텅 비어 생기 없는 황궁의 복도는 을씨년스러웠다. 유리의 종착지가 하필이면 거대한 수조가 있는 곳이라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몰랐다.
“여기는…….”
“익숙하지?”
오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유리가 나를 돌아보며 살풋 눈웃음을 지었다.
“바다를 흉내 낼 의지조차 없는 이 싸구려 모조품에서 나를 구해준 게 바로 누나잖아.”
오랜만에 본 수조는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물이 차올라 있을 때는 신비롭다는 감상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저 흉물스러웠다.
수조 내의 구조물 곳곳에 말라 죽은 이끼가 붙어 있었고, 작은 신전은 부식되어 무너지기 직전처럼 보였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수조 안에 하얀 벽돌집이 한 채 있었다.
정육면체 형태의 그 집은 창문도 없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막연히 유리가 수조를 부쉈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꼴도 보기 싫었을 테니까.’
그런데 유리는 오히려 이 안에 집까지 지어두었다. 게다가 누구나 들어가고 나올 수 있게끔 수조의 유리벽을 뚫어 입구를 만들어 두기까지 했다.
그건 내 눈엔 마치 수조에 전시되었던 자신의 과거를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더는 누구도 가둬지지 않을 거라는 어떤 의지의 표명처럼 보인달까.
‘가슴이 아파.’
지금 나와 유리 사이의 문제와는 별개로, 유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아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어. 내 <책>을 읽는 것. 그 외에는 어떤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지.”
“…….”
“그런데 그 <책>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알아?”
꼴깍.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러나 목구멍 역시 말라 있었으므로 쓰라리기만 했다.
“누나였어.”
“나?”
“응. 처음부터, 누나였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어떻게 내가 그 책에 나온다는 거야?”
유리가 내게 애착을 가진 게, 수조에서 처음 마주친 그날부터가 아니었단 말인가?
혼란스러움에 나는 눈가를 찡그렸다.
그러자 유리가 다시금 이큘리스로 책을 만들더니 펼쳐 보였다.
“이 안에는 누나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쓰여 있어. 누나가 작은 월귤나무 한 그루였던 것도, 나만은 알고 있지.”
“뭐?”
“아, 그 외에도 누나는 여러 가지로 다시 태어나고, 죽었지. 그리고 또 태어나고. 그 지리멸렬한 행위를 몇 번이나 반복했어.”
귓가에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건 외부에서 난 소리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난 굉음이었다.
방금 하늘이 무너졌나? 아니면 세상이 뒤집힌 걸까. 나는 너무 큰 충격에 숨 쉬는 법조차 잊었다.
그걸, 안다고?
“나는 그런 삶의 분투를 모두 지켜봤어. 애절하더라. 미물로 태어나는 게 서너 번 반복되면 지칠 만도 한데 누나는 사는 걸 포기하지 않더라고. 그런데 나는 그게 좋았어. 마치 나더러 살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
내 표정을 보더니 유리의 말투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누나는 마침내 사람이 됐지. 나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때 내가 느낀 희열을 누나는 절대 모를 거야.”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었다.
유리의 비밀을 밝히려다 도리어 내 안에 묻어두었던 게 드러나자 나는 할 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게 운명이 아니면 어떤 게 운명이야? 말해 봐, 누나. 나는 누나의 모든 걸 알고 있는데.”
“그건…….”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나는 몰라. 이 <책>의 주인공이 왜 누나인 건지도. 바란 적 없는데 누나가 내게 왔어. 그러니까 운명인 거지.”
천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건 정말 이상했다. 유리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다는 것에서 넘어서서, 내가 지금까지 거쳐 온 그 고통스러운 세월을 다 알고 있다니.
다 봐 왔다니.
‘그건…… 그건.’
아.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그 감정의 이름은…….
“나는 누나를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 왔어. 그리고 기다린 거야. 만나기를……. 만날 수 있는 날만을.”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볼 안쪽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혼자라고 생각했다.
해파리의 흐느적거리는 몸뚱이에 갇힌 채로, 해류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 한탄했다.
다른 해파리들 사이에서 나는 별종이었고, 사실 해파리끼리 의사소통이 그다지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무엇으로 태어나도 다 똑같았지.
나는 너무나 고독했다. 그런데 유리가 그런 나를 다 지켜봐 왔다니.
‘이건 좀 감동인데…….’
그런 동시에 오싹하다.
나는 양립할 수 없는 서로 다른 감정 사이에 갇힌 채로 무슨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몰라 애매한 얼굴을 했다.
그런데 눈물이 멈추질 않아.
누군가 내 삶을 알아준다는 게 이렇게 충격적이고 기쁜 일이었나?
“그러니까 난 좀 더 기다린다고 해도 상관없어.”
수조의 열린 입구 근처에 서서 같이 들어가자는 듯 유리가 고갯짓을 했다.
나는 눈가를 소매로 문지르며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누나가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가주를 이안이나 단테 중 하나로 세우겠다고 해도…… 그래. 마음에 들지 않지만 참을게.”
“참는다고?”
“응. 참을게. 드리블랴네에 해를 끼치지도 않을 거야.”
정말일까?
나는 유리의 얼굴에서 거짓의 징후를 찾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 내가 발견한 건 진심뿐이었다.
‘진심이라면 다행인데.’
유리가 순순하게 구는 게 조금 찜찜하다. 게다가 유리는 아직 그래서 그 책을 계속 볼 건지 말 건지에 대해서는 입도 떼지 않았다.
“그런데 있잖아. 누나가 누군가를 선택한다고 해서 그게 내가 내 사랑을 멈춰야 할 이유는 아니라고 판단했어.”
“……그건 무슨 의미야?”
“누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주로 택한 게 아니라면, 내가 누나를 사랑하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어? 사랑에 빠지고 싶다며.”
“……?”
“나랑 해, 그 사랑.”
수조 안은 밖과는 달리 너무나 눅진했다.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는 듯한 느낌에 나는 눈물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문득, 정말 찰나의 순간.
나는 유리가 여전히 수조 바깥에 서 있음을 알아차렸다.
“플로린. 이렇게 겨우 만났는데 내가 어떻게 널 놓아 주겠어?”
“유리……?”
“사랑에 빠지게 해줄 테니 내가 주는 사랑만 받고 살아.”
덫이구나!
황급히 몸을 돌렸으나 유리가 한발 더 빨랐다.
쿵! 분명 존재하던 입구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수조 전체가 굉음을 내며 뒤흔들렸다.
나는 비명을 삼키며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맙소사……!’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의심한다고 했는데, 유리가 자신의 모든 걸 내보여주며 비밀을 털어놓는 모습에 속고야 말았다.
“내 마음을 이해해 줄 때까지 여기 있어, 플로린.”
유리가 허물어져 내리듯 수조의 벽면에 이마를 댔다.
“이 수조엔 마법이 걸려 있어. 이 안에 사람이 들어가게 되면 안에서 밖을 볼 수는 있지만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볼 순 없도록.”
유리!!!
소리를 지르며 벽을 두드렸으나 다시 입구가 생겨나지는 않았다. 당연히 내 힘으로 벽을 부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물화 해봤자 작은 담비인데 뭘 하겠어.
‘어떡하지. 완전히 갇혔어.’
유리의 말대로라면 내가 여기서 아무리 비명을 지른들 누구도 모를 것이다.
아버님이 돌아오시지 않으면 여기 걸려 있다는 마법을 깰 수 없겠지.
‘하지만 아버님은 지금 신성 제국에 가셨잖아……!’
우리 아빠한테 이 상황을 알릴 수도 없는데. 이안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찾는다고 한들, 여기서 꺼내줄 수 있나?
‘아버님, 조언을 주신대로 이야기했는데요……! 유리가 예상보다 좀 더 미쳐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두드려 대던 걸 포기하고 벽면에 손을 댔다.
내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유리 역시 수조의 벽에 손을 대어 왔다.
“이게 내 사랑이야, 플로린.”
신이 빚어놓은 최고의 작품처럼 황홀한 얼굴로, 유리는 사랑에 빠진 듯 키스했다. 내가 갇힌 수조의 유리벽 위로.
“여기서 나를 기다려 줘. 내가 그러했듯 긴 시간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