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37)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37화(137/173)
제 11장. 네가 나의 구원이었듯
“성녀님이 이 황궁에 계시는데 어째서 대화를 나눌 수 없단 말입니까!”
“플로린 성녀님을 불러주십시오!”
“신의 힘을 가지신 분입니다. 신의 딸이신데 당연히 교황청에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성녀님을 보여주십시오!”
“제대로 대화를 나눌 기회만 주셨어도 그런 일까지 하려고 들진 않았을 겁니다!”
마도 제국의 황성은 평소 상당히 조용한 편이다.
그러나 데뷔당트 연회가 있었던 날로부터 사흘. 이제 황성은 시장 바닥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란의 중심에 선 것은 다름 아닌 신성 제국에서 온 교황청 일원으로, 그들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거센 항의를 하고 있었다.
“플로린 성녀님을 모셔가는 날까지 여기에서 떠나지 않겠습니다! 여기 드러누울 테니 밟고 가십시오!”
“맞습니다! 성녀님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오해를 풀 기회를 주십시오!”
“주십시오!!!”
황제, 샹귀온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손짓했다.
알현실 바깥에서 꽥꽥 소리 지르는 저자들을 당장 치우라는 의미였다.
특히 드러누워서 난동을 부리는 놈은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려 황성 꼭대기에서 던져 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바라는 대로 평생을 누워서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제 아주 예의도 차리지 않는군.”
잠시 후, 복도가 조용해지고 나서야 황제는 긴 한숨을 뱉었다.
그런 황제의 곁에 서 있던 유리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누가 들으면 기겁할 만한 소리를 툭 내뱉었다.
“머리만 돌려보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교황청도 권력을 탐하는 아귀들이 가득한 집단인데요. 저치들을 없애면 반가워할 자들이 수두룩할 겁니다. 저희는 조용해져서 좋고요.”
아들이 내놓은 전형적인 폭군의 해결방식에 샹귀온은 두통이 더욱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아, 귀찮아라.’
애초에 그가 교황청의 사절이 이 나라에 들어오는 걸 허락한 것은 정치, 외교적 이유 때문이었다.
신성 제국에서 교황은 황제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백성 중 신을 믿지 않는 자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니 당연했다.
교황이 하는 말, 교황이 가는 곳, 교황이 먹는 것. 교황이 내린 지시. 그 모든 게 이슈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교황청의 사절이 ‘마도 제국’에 방문한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신성 제국의 백성들은 마도 제국이 정말로 어떤 곳인지 궁금할 것이다. 교황청에서 움직인 길을 그대로 따라서 가고 싶어 하는 신도들도 있겠지.
‘그런 자들의 돈을 빼먹을 관광 상품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종교와 믿음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큰 원동력이었다.
그걸 이용해 서서히 양국 간의 교류를 원활히 하고 관광 사업을 벌이려는 게 샹귀온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저 미친놈들은 무려 황궁 정원에서 레이디 드리블랴네를 납치하려 든 것도 모자라 별 희한한 저주가 걸린 물건을 사용했고, 다 들킨 뒤에도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솔직히 유리의 주장대로 목을 베어 머리만 보내도 신성 제국의 황제는 할 말이 없을 터였다.
다만 그러지 못하는 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교황이 지닌 영향력 때문이었다.
교황청에서 ‘사절단’이 온다고 했지 교황 본인이 온다고 한 적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교황은 현재 제 신관들을 은근슬쩍 옹호하고 있고.’
만약 옹호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레이디 드리블랴네를 내놓으라는 게 교황 입장이다.
하여서, 샹귀온은 몹시 곤란해졌다.
레이디 드리블랴네를 신성 제국에 다녀오도록 강제했다가는 드리블랴네 가문은 둘째 치고, 아르칼리크에서 전쟁을 선언할 것이다. 과장 하나 없이, 나라가 망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레이디 드리블랴네가 자발적으로 신성 제국에 다녀오겠다고 한들 딱히 기쁘지는 않았다.
그건 저 뱀 같은 교황 놈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 아닌가.
황실의 자존심상 그럴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유리의 말대로 고위 신관인 메레반노를 처형하고 싶었다. 납치 미수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하지만 그랬다간 교황은 전쟁이 일어나도록 종용하겠지.’
마도 제국이 고위 신관을 무시하고 처형했다며 난리를 피울 게 눈에 선했다. 결국 이번엔 신성 제국 측에 대단한 명분까지 있는 전쟁이 되겠지.
‘밖에서 떠드는 저 멍청한 자들은 교황이 제 목숨들을 인질로 잡았다는 걸 알기는 할까.’
레이디 드리블랴네를 내어준다면 저자들의 목숨을 주겠다.
하지만 내어주지 않는다면 끝까지 신관들을 보호하겠다. 그랬을 때 내가 돌아가서 어떻게 세 치 혀를 놀려 백성들을 자극하고 선동할지는 모를 일이지.
신성 제국 백성의 지지를 등에 업은 교황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력했다.
‘이건 뭐, 뱀이 제 꼬리를 무는 격이군.’
샹귀온은 마른세수를 했다.
뾰족한 해결책이 당장 보이지 않는다.
레이디 드리블랴네를 보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신관 일동에게 죽음으로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관광 사업 역시 망가지게 생겼고 저치들이 이 나라에다 뿌릴 선교 자금 또한 물 건너가는 셈이었다.
“……살리기는 해야 한다. 알지 않으냐.”
“아, 예. 뭐.”
“황궁 안에 구금할 수는 있으나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안 된다. 저들이 그 손수건이 어떤 건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게다가…….”
“플로린에게 손수건을 건네준 자는 멀쩡했죠. 당연합니다. 교황이니까요.”
“하아.”
그놈의 성녀가 뭐라고.
샹귀온은 눈가를 손으로 덮으며 입속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황제 자리를 유리에게 던져주고 사라지고 싶었다.
교황청의 일원들이 저토록 뻔뻔히 굴 수 있는 것도 다 지금 그가 한 계산을 저들도 했기 때문이다.
죽이지 못할 것을 아니 막 나가겠다 이거지.
“그래서 어디에 숨겨두었다고?”
“비밀입니다. 제가 그걸 왜 말씀드립니까? 저 몰래 플로린을 빼내 저치들에게 던져주실지도 모르는데요.”
유리는 제 부친을 향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딱 잘랐다.
그 싸가지 없는 모습에 샹귀온은 혀를 끌끌 차며 이걸 어떻게 수습할지 가늠했다.
‘어차피 레이디 드리블랴네가 어디에 있든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았을 것이고.’
행방에 대해선 저자들을 신성 제국으로 돌려보낸 다음에 알아보면 될 일이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차라리 겉으로 별문제 없는 척 덮고 지나가야 차후 드리블랴네 가문에서 살수를 보내 저자들의 목을 따도 문제가 불거지지 않겠지.’
공식적으로 처형하는 게 정치적 부담이 크다면 은밀히 죽이면 될 일.
샹귀온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이득이 되려면 레이디 드리블랴네는 내어주지 않고, 납치 미수에 대한 책임은 돈으로 받아야 한다.’
우선 샹귀온은 ‘레이디 드리블랴네의 정신적 피해 보상금’으로 제국을 1년간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의 기부금을 내놓으라고 할 생각이었다.
거기에 얹어서 신도들이 마도 제국에 관광을 올 수 있도록 유도를 하면 금상첨화지.
물론 저쪽에서는 무려 교황이 담비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며 길길이 날뛰고 있지만 다행히도 레이디 드리블랴네가 피해자라는 걸 증명해 줄 증인이 있었다.
“들어오게.”
끼익.
짧은 명령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며 붉은 머리칼을 지닌 훤칠한 사내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이안 드리블랴네.
그를 보자마자 제 아들 주변의 기온이 급속도로 하강하는 게 느껴졌으나 샹귀온은 둘 사이의 신경전을 철저히 무시했다.
“예의는 됐고.”
이안이 입을 벌리려고 하자마자 샹귀온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귀찮은 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폐하께서 아량을 베풀어 그리 말씀하시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황제와 황태자.
그 둘이 조금도 감추지 않고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페로몬 앞에서도 조금도 압도되지 않은 이안은 바르게 허리를 폈다.
그 모습에 샹귀온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드리블랴네라고 하면 다들 키락서스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드리블랴네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단테’라고 대답할 터였다.
사교계에도 잘 나오지 않고 남성 전용 살롱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으며 친구조차 얼마 없는 존재.
비밀에 휩싸인 이안 드리블랴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다지 없었다. 샹귀온 역시 이안이란 자에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고.
‘헌데 이것 봐라. 꾀가 많아 보이는군. 그저 증인 역할이나 하라고 불렀더니 무언가 생각해 둔 게 있으렷다?’
짜증스럽기만 하던 와중에 작은 흥미가 샘솟은 샹귀온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안의 차분한 태도가 신뢰감을 불러일으켜 하는 말을 들어 볼 생각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