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3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38화(138/173)
“폐하께서 제게 요구하시는 것이 오직 증인으로서의 역할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시한 방법을 고려해 주십시오. 저 무도한 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누르는 건 물론이고 감히 마도 제국의 황성에서 뻔뻔한 행태를 보인 것에 대한 불법적인 복수를 할 수도 있으며 실질적인 배상금이 몇 배로 뛰게 될 겁니다. 아, 물론 자발적인 기부금이라는 명목이겠지만요.”
유려하게 말을 마친 이안이 특유의 다정함이 담긴 미소를 그려냈다.
샹귀온은 문장 사이에 ‘불법적인 복수’라는 단어가 끼어 있었던 건 듣지 못한 척하고 되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거지?”
“그걸 알려드리기 전에…… 약속을 하나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약속?”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드리지 않습니까.”
이안이 재킷 안쪽에서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 꺼내며 능청스레 입을 뗐다. 그
건 평범한 색의 종이가 아니라 놀랍게도 시중에 판매되지 않는 새카만 색이었기에 보다 이목을 끌었다.
“이 안에는 메레반노라는 신관이 저지른 이런저런 크고 작은 잘못이 적혀 있습니다.”
“호오.”
“어떤 추문은 신성 제국 백성들이 ‘천벌을 받았다’라고 말할 만하더군요. 숨기려 했겠지만 이게 터지면 메레반노는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걸 자네는 어찌 얻었고?”
“고위 신관이 마도 제국에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접한 순간부터 캐냈습니다.”
이안이 쥐고 있는 건 먹음직스러운 먹이였다.
샹귀온은 턱을 쓸며 피 냄새가 나는 먹이를 내려다보았다.
꽤나 향긋했다.
저거면 메레반노의 목을 베어도 문제가 없단 소린데…….
“여론전을 벌이자?”
“그런 셈입니다. 아, 다만 메레반노를 제외한 신관들은 모두 무사히 돌려보내 주셔야 합니다. 몸에 상처 하나 없이요. 그자들은 제 먹이입니다.”
이안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샹귀온은 꽤 감탄을 담은 눈길로 이안을 훑으며 느릿하게 읊조렸다.
“그러면 마도 제국은 자존심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겠군.”
“예. 그리고 교황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우리 나라의 성녀를 데려갈 생각을 하지 말고, 그쪽 성녀를 데려오라고.”
이안은 두루마리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고 픽 웃었다.
“교황을 심부름꾼 정도로는 써 줘야 수지가 맞지 않겠습니까.”
제 아들 놈만 배배 꼬인 줄 알았더니 여기 비슷한 놈이 또 있을 줄이야.
샹귀온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옥좌의 팔걸이를 두드렸다. 그러나 셈할 것도 없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송곳니가 제법 날카롭군.”
“칭찬 감사합니다.”
이안은 공손히 대꾸하며 입매를 비틀었다.
‘그래. 모두 사지 멀쩡하게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셔야지. 그러지 않으면 곤란하지.’
이안은 플로린을 납치하려 한 그자들을 용서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냥 죽이지도 않으리라.
그자들, 살면서 자신이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일일이 기억하기는 할까.
이안은 놈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을 거머쥐고 있었다. 그 정보를 하나씩 풀며 지금껏 그들이 아등바등 쌓아 올린 모든 걸 부숴 줄 것이다.
추락이란 본디 높은 자리에서 떨어질수록 아픈 법인지라, 이안의 복수는 교묘하고도 고통스러운 종류였다.
‘단순히 죽여 사고사로 위장하는 것보다 훨씬 잔인한, 사회적 말살을 선사해 주지.’
그런데 몹시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다른 신관들에 대해서는 몇 시에 어디서 태어났는지까지 알아냈는데 단 한 사람.
교황.
그에 대한 건 누군가 깨끗이 도려낸 듯 정보가 없었다.
어느 지역 태생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어릴 때 어디서 자랐는지, 친한 친구는 있었는지-
사람이라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의 기록이 텅 비어 있는 자.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교황은 신의 사자가 낳았다’거나 ‘신께서 창조하셨다’는 둥, 말도 안 되는 헛소리뿐이었다.
“그래서 청이 무엇인지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
정보도 이안이 구해왔고, 인력을 써서 여론전 역시 이안이 펼칠 것이다.
그에 대한 대가는 무엇인가.
하문한 것은 황제이나 이안은 황태자인 유리 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플로린을 풀어주셔야겠습니다.”
“…….”
“다음 주 내내 데이트 약속이 있어서.”
명백한 도발에 유리가 눈을 휘어 웃었다.
이안의 입꼬리 역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정기 넘치는 두 짐승의 기 싸움에 질려버린 건 황제 쪽이었다.
“신관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나면 레이디 드리블랴네를 돌려보내지. 황제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유리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 해도 소용없었다. 황제의 이름으로 내건 약속이니, 이걸 뒤집고 싶거든 반역을 저지르는 수밖에.
샹귀온은 차라리 제 아들이 이 귀찮은 황제 자리를 강제로 가져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나 하며 손을 내저어 축객령을 내렸다.
그래도 앓던 이가 빠진 기분에 속이 시원했기에 샹귀온은 나서는 젊은 사내의 뒷모습에 대고 높은 점수를 던져주었다.
‘저놈이 가주가 되는 편이 황실에 더 이득일 듯한데.’
레이디 드리블랴네의 선택이 비로소 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 * *
수조에 갇혀 지낸 지도 어느새 며칠이 지났다.
몹시 불편하고 괴로울 만도 한 상황인데 우습게도 수조 안에는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었으므로 나는 나가지 못하는 점 외엔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단지 좀 어이가 없을 뿐.
“대체 언제부터 나를 여기 가두고 싶었을까…….”
나는 허망하게 중얼거리며 오늘도 홀로 머리칼을 빗고 옷을 갈아입었다.
늘 누군가 해주다 보니 조금 서툴렀지만 그래도 아주 이상한 꼴은 아니었다.
왜냐면 전신 거울이 있어서 내가 내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고, 나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었거든.
이상하면 고쳐 맬 시간이 넉넉했단 말이지.
“어휴……. 그 뒤로 찾아오지도 않고.”
수조 안에 갇힌 뒤로 내가 제일 먼저 한 건 일단 몸을 편히 뉠 곳을 찾는 거였다.
두려움과 당혹감은 잠깐에 불과했는데, 난 아무튼 간에 내가 여기에 영원히 갇혀 있진 않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이 언제 돌아오셔도 돌아오시겠지. 그럼 당연히 나를 구해주실 거고.
‘아무렴 신성 제국에 끌려간 것보단 낫잖아?’
낙천적으로 생각한 나는 괜히 힘 빼지 말고 벽돌집 안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그렇게 들어선 벽돌집은, 딱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인형의 집.’
이 작은 공간에 어떻게 이 많은 게 다 들어가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지.
1인용 침대, 그 위에 놓인 푹신한 깃털 베개와 이불은 내 취향에 꼭 맞았다.
부드러운 카펫과 여성용 실내 드레스, 신으라는 듯 가지런히 놓인 토끼 모양 슬리퍼도 마음에 들었고.
빗과 거울이 있는 화장대와 자수용품. 뜨개질 거리. 이젤과 종이, 그림 도구들. 읽을 만한 책과 깃펜.
위험한 칼 같은 도구는 없었지만 그 외에 식탁이 놓인 쪽에는 먹을 만한 것 역시 잔뜩 구비되어 있었다.
뭐랄까, 취미생활만 하면서 지낼 수 있는 완벽한 감옥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여기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유리에게는 차후 이 일에 대해 크게 화를 내겠지만, 고백하자면…… 적응하고 나니 좀 좋았다.
늘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니 이렇게까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없거든.
‘그래도 이제 슬슬 신께서 나타나서 내게 유리의 힘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셨으면 하는데.’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기도하는 자세로 꿇어앉은 나는 천장을 노려보았다.
하늘 위에 신이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느낌상 위를 쳐다봐야 할 것 같아서였다.
‘저더러 뭐 시킬 땐 그리 잘만 나타나시더니 지금은 입 꾹 다물고 있기에요? 그동안 아무 설명을 안 해주셔도 참았잖아요?’
치사하게 이러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단 말이지.
“유리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면 악신의 신전을 세워버릴 거얏!”
“……뭘 세운다고?”
그때였다.
끼익.
벽돌집의 하얀 문이 열리더니 유리가 나타났다.
몹시 피곤하고 지친 얼굴로 나를 보던 유리는 이내 사르르 눈웃음을 지었다.
“안녕, 누나.”
“……너!”
“황명이야. 여기서 나가도 좋아.”
“!”
황제 폐하가 나서주셨다고? 왜?
한순간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여기 더 있을 이유는 없었다.
벌떡 일어선 나는 눈가가 붉게 짓무른 유리를 빤히 보다가 이내 코웃음 치며 시선을 거둬들였다.
지나친 정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끊어낼 땐 끊어내야지.
“……미안해.”
말없이 스쳐 지나는 나를 붙잡지는 못하고, 고개를 떨군 유리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미모로 저러니 측은하게 느껴지지만 나는 눈을 꾹 눌러 감아 그를 보지 않으려 했다. 얼굴을 안 봐야 보다 냉정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작은 벽돌집 안에 유리를 남겨놓고 나온 나는 수조 안의 공기가 이상하게 청량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늪 속에 잠기기라도 한 것처럼 눅눅하던 게 어떻게…?
– 내 사랑하는 아이야.
작은 의문은 금세 풀렸다.
내가 생각지 못한 퍽 찬란한 방식으로.
나의 신이 내게 말을 건넨 것이다.
– 오랜만에 네 기도에 답을 건네는구나. 좀 더 일찍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때를 기다리느라.
텅 비어 있던 수조 안이 신성력으로 가득 차 반짝거리기 시작한 건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폐부 깊숙한 곳까지 숨이 들어차는 느낌에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니, 아무리 방금 기도를 올렸다지만 이렇게 갑자기요?’
천신이 말을 건네올 때면 늘 이런 느낌이 들었다.
내 안팎으로 신성력이 충만하여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기분.
누군가 나를 꼭 껴안으며 까르르 웃는 듯한 착각이 나를 사로잡는달까.
내가 무릎을 짚으며 헉헉거리자 이번에는 누군가 내 등을 부드러이 쓸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 그래도 악신의 신전을 세우겠다니. 그건 좀 너무하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