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39)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39화(139/173)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요? 나한테 중요한 건 하나도 말을 안 해주면서.’
신의 음성에 서운함이 짙게 배어 있었으나 나는 눈을 부라렸다.
솔직히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야 겨우 튀어나오다니. 너무한 건 내가 아니라 천신 쪽이지!
– ……여전히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금세 때가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오늘, 하나는 알려줄 수 있겠구나. 네가 궁금해하는 답을 주려 하니 너무 역정 내지 말아주렴. 네가 화를 내면 슬퍼진단다.
‘뭘 알려준다고요? 정말로?’
믿기지 않지만 나는 우선 허리부터 폈다.
이 수조는 안에서는 밖이 보여도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다.
신관이며 교황이 복도에 진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천신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이고 싶진 않았기에 이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마치는 게 좋을 듯했다.
– 결론부터 말하는 게 널 위한 길이겠지? 내 사랑스러운 화신은 성격이 다소 급한 편이니까.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천신이 이렇게 길게 말을 끄는 법은 거의 없었기에 의아했다.
신이 이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시간이 몹시 짧다고 늘 본론만 던지고 사라졌었는데.
“지금 누가,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아차. 유리가 여기 있었지.
유리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무심코 유리에게 괜찮다고 하려다가 멈칫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목소리가 들려?”
“무슨 때를 말하는 거야? 화신은 또 뭐고.”
“진짜 다 들린다고? 신의 목소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
성녀가 왜 성녀겠는가. 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으면 그게 어떻게 성녀겠어?
그랬기에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천신이 일부러 들려준 건가? 왜?
– 내가 아끼는 아이야. 알다시피 나는 네 세계에 너무 많은 간섭을 할 수 없단다. 나와 내 형제는 빛과 그림자이기에…… 빛이 환해질수록 그림자도 함께 짙어지니까. 내가 움직이는 만큼 내 형제가 움직여도 되는 빌미가 생기지.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이해하기 어렵진 않았다. 충분히 그럴듯한 소리였으니까.
‘아무렴 신이 둘인데 하나만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리는 없지.’
악신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천신 역시 나서지 않는다.
그런 말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뜻을 대신 이뤄줄 인간을 찾았고 그것이 화신과 계약자란다.
지금 내가 듣는 것은 유리도 같이 듣고 있다.
나는 답지 않게 인상을 쓰고 있는 유리를 힐끔 보았는데,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 알다시피 화신은 너지. 아이야. 내가 사랑하고 내가 아끼는…… 오직 너 하나뿐. 물론 계약자도 하나만 둘 수 있단다. 그런 약속을 했으니까.
그럼 계약자는 누군데?
미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천신이 속삭였다.
– 네 앞에 있지 않으니.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아이가.
찰나, 유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빛 한 점 없이 어둡던 거리에 태양이 떠올라 구석에 숨은 그림자조차 모조리 쫓아낸 것처럼, 다시금 생기로 가득 찬 보랏빛 눈에 나는 탄식을 뱉었다.
신이시여, 저를 진정으로 아낀다면 이러면 안 되죠.
– 그 아이가 읽는 <책>은 그 아이의 힘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란다. 내 계약자에게 부여한 나의 권능이었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가벼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말투만 들으면 꼭 드디어 소개해 줄 수 있어 기쁘다는 것 같았다.
– 이제야 밝히지만 사실 나는 너를 한 번 잃어버린 적이 있단다. 처음부터 나의 성녀로서 살아갔어야 할 너는 악신의 화신이 빈 소원 때문에 이 세계 바깥으로 튕겨 나가게 되었지.
라흰의 첫 번째 소원.
‘성녀’가 되게 해달라.
‘설마 그것 때문에 내가 튕겨져 나갔다는 거예요?’
마음으로 묻자 신이 긍정했다.
– 그렇단다. 본래 너는 아르칼리크 왕의 딸로 태어나 나의 사랑을 듬뿍 받을 운명이었는데…… 그게 비틀렸지. 차원 바깥까지 튕겨 나간 네게 나는 본래 살아야 하는 곳의 이야기를 책의 형태로 보여준 거란다. 네가 라흰에 대해서도, 이 세계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미리 알 수 있도록.
잠깐. 그렇다면 만약 라흰이 그런 소원을 빌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많은 죽음을, 재탄생을 반복할 필요가 없었던 거 아냐?’
그냥 여기서 처음부터 행복하게 아빠와 살 수 있었던 거 아니냐고.
골이 띵한 생각에 나는 잠시 비틀거렸다.
유리가 놀란 기색으로 나를 붙잡았으나 난 곧바로 손을 쳐내고 원망스러운 눈을 했다.
– 그런 너를 되찾아 오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 그 뒤에도 사람으로 태어나게 손을 쓸 때마다 악신이 방해를 했단다.
수많은 삶을 살아왔다.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이게 그저 책에 빙의한 거라고 믿으면서.
그랬는데…….
– 나는 불안을 느꼈어. 같은 일이 또 벌어질 때를 대비해 너의 일생을 어딘가 기록해 둘 필요를 느꼈지. 그러면 만에 하나 같은 일이 벌어져도 내가 그 기록을 읽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외부 기억 저장소 같은, 그런 느낌인가? 남이 대신 써주는 일기 같은 거?
‘그게 유리의 능력이고?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 있는 그게?’
나는 기가 막혀서 말을 잃었다.
“누나, 이상해.”
“……허.”
“내 귀에는 신이 우리 사이가 운명이라고 하는 것처럼 들려. 누나는 안 그래?”
이미 맛이 간 눈을 하고 있는 유리가 몽롱하게 속삭였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나에겐 찾을 신이 남아 있지도 않았다.
유리가 제대로 반성을 하기도 전에 저렇게 말을 해버리면 어떡해……!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책이라면서!
갓난아기 때 계약한 거면 사기 계약이지!
– ……틀린 말은 아니다만 본인이 저리 좋아하지 않니. 게다가 외모도 꽤나 신성한 편이라 계약자의 지위와 잘 어울리고…….
천신이 궁색한 변명을 했다.
그래, 신이니까 인간의 오욕칠정에 아무 관심 없을 수 있지. 있는데.
‘그렇다고 내 모든 게 기록되는 책을 준 건 정도가 지나치잖아!’
당장 그 힘 거둬들여. 거둬들이라고!
내가 발작하듯 화를 내자 보이지 않는 신성력이 한 올 한 올 움찔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계약자와 화신의 차이가 뭔지 똑바로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요.”
분명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다 죽어가던 유리는 어느새 물이 올라 보송보송해졌다.
나는 이를 박박 갈았는데, 그래도 유리가 방금 한 질문이 의표를 찌르는 것인지라 대답을 듣고 싶긴 했다.
– 쉽게 설명하자면 화신은 자식과 같고…… 계약자는 고금리 대출을 해준 것과 같달까?
고, 뭐요?
앞에 영체라도 떠 있으면 거기를 째려볼 텐데 아무것도 없이 목소리만 들리니 곤란했다.
나는 씨근덕거리는 숨을 억누르며 대답을 기다렸다.
– 화신은 내가 주는 신성력을 마음껏 쓰지만, 내게 아무것도 줄 필요 없단다. 정해진 운명이 결국 내가 바라는 것을 이행하게 만들어 줄 테니. 그러나 계약자는 나의 권능을 사용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지.
“아기 때 멋대로 계약자로 만들어 놓고는 대가는 무슨…….”
빠드득.
잇새를 맷돌처럼 갈며 중얼거리자 어쩐지 수조에 들어찬 기운이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 그, 그래서 유리에겐 무언가를 받지 않는단다. 본래는 받아야 하지만…….
“본래 뭘 받는데요?”
– 공양을 받지. 신전을 세워주고 신도를 모아주거나 기도를 올리고 양초에 불을 켜고, 먹을 것을 진상하는 그런 것.
천신이 허겁지겁 대답했다.
나는 눈썹으로 욕을 했는데, 유리는 옆에서 ‘잘 됐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 대가도 내어놓지 않고 천신의 계약자가 된 게 아주, 아주 기뻐 보인달까.
“왜 그 책 속 주인공이 누나일까……. 왜 하필 누나였을까. 그렇게 고민했는데…… 이유는 뻔한 거였어.”
꿀통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가 달콤하다.
유리는 내게 얻어맞은 손등을 쥔 채로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운명이어서, 우리가.”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좋아서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질린 표정밖에 보여줄 게 없었다.
“……라흰은 소원을 빌던데. 그것도 세 개나. 저는 빌 수 있는 소원이 없나요?”
– 안타깝게도…… ‘소원’은 별개의 문제야. 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 대가는 참혹하단다.
“얼마나 참혹하기에….”
–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은 딱 세 가지. 그 대가는, 영혼이지. 신의 거름이 되어 영원히 다시 태어날 수 없게 돼. 악신은 그걸 즐겨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구나.
정리하자면 신이 부여한 권능, 신성력 따위는 화신인 나는 대가 없이 쓸 수 있다. 하지만 유리는 계약자에 불과하므로 제사 같은 걸 지내줘야 한다.
하지만 갓난아기 시절에 천신이 멋대로 해버린 계약인지라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한 거고.
소원은 빌 수야 있지만 그걸 들어주게 되면 영혼을 빼앗긴다라.
거기까지 들은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악신의 화신은 라흰이잖아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책으로 이미 읽어 아는 그 애.
그렇다면…….
“악신의 계약자가 누군지 알려주세요.”
어차피 이것저것 말해 달라고 조른들 신은 결코 한 번에 모든 걸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핵심만 짚는 게 내게 이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