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4)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4화(1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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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믿을 수 없군요. 두 분이서 이렇게 몸싸움을 벌이시다니요.”
잠시 뒤, 사람들을 물리고 입단속을 시킨 라피렌은 나와 게르드를 데리고 의무실로 왔다. 게르드의 귀가 피투성이였기에 빠르게 조치를 취하기 위해선 의사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나았던 것이다.
“저게 나를 이런 꼴로 만들었다! 내 이 일은 아버님께 필히 말씀드릴 것이야!”
게르드는 라피렌 앞에서도 오만불손한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나는 라피렌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놓치지 않았기에 앞발을 공손히 모으고 철퍼덕 앉아 있었다. 반성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수염도 시무룩하게 늘어트리고 말이야.
“일단 게르드 님은 멀쩡하세요. 귀가 조금 찢어졌을 뿐, 청각에 문제가 있진 않네요.”
“그렇군. 작은 마님은?”
“작은 마님의 꼬리 역시 무사합니다. 다만 두 분 다 통증이 하루에서 이틀까지는 갈 수 있어요. 제가 약을 지어드릴 테니 식후 30분이 지난 다음 섭취하시면 됩니다.”
우리를 치료해 준 의사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푸근한 인상의 의사의 말에 존이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려왔다.
“그럼 두 분이 무사한 것도 알았으니 이제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들어야겠군요.”
라피렌은 몹시 엄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덮어두고 게르드의 편을 들려는 것 같지는 않다.
‘라피렌은 가주 할아버님의 최측근 보좌관이야.’
여기서 하는 말은 곧장 가주께 보고된다. 그걸 알기에 존이 나서려 했다.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마십시오. 두 분께 여쭙겠습니다.”
칼 같은 거절에 존이 하는 수 없이 물러섰다. 그의 순박한 얼굴이 걱정으로 뒤덮여 있는 걸 보니 아주 조금 미안하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얕보였다간 게르드는 평생 나를 얕잡아보며 괴롭혔을 거야.’
난 잘했어. 잘한 거 맞아.
한 번 기 싸움에서 꺾이면 그 뒤로는 괴롭힘을 당하는 일밖에 안 남는다. 괴롭힘이 시작되려 할 때 들이박아야 해. 난 그걸 경험으로 잘 알았다.
“내가 왜 너에게 설명을 해야 하지? 신하에게 설명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가주님께 직접 보고드릴 거야.”
“게르드 도련님께서는, 본인이 가주님의 일정을 방해하고 끼어들 만한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나, 나는 그분의 혈족이다! 당연하지!”
게르드는 내게 물리고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았다. 가주가 직접 며느리로 받아들인 나를, 가주 앞에 가서 내쫓으라고 할 셈인가?
‘제정신…… 아닌 것 같은데…….’
라피렌이 입을 일자로 다무는 걸 보며 나는 눈을 데로록 굴렸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게르드는 알아서 파멸할 것 같으니 난 그냥 입 다물고 있자.
“작은 마님께서는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하지만 게르드가 설명을 거부하자 화살은 내게로 날아왔다.
난 화들짝 놀란 티를 내며 앞발을 꼼지락거렸다.
“……잘몬해써요.”
“무엇을 잘못하셨습니까?”
“그…… 후계자인데, 물어써.”
“왜 그런 행동을 하셨습니까? 그런 행동은 야만적인 것입니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인내심입니다. 본능에 굴복하면 그저 동물에 불과하지만 이성이 있기에 인간인 것입니다. 현명한 분이니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요.”
라피렌의 올리브색 눈동자가 나를 주시했다.
입을 우물거리던 나는 어느 게 맞는 행동일지 고민했다. 계속 잘못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또박또박 설명을 하는 쪽이 더 점수를 얻을 수 있을지.
“푸, 푸딩 버려떠.”
“푸딩이라 하셨습니까?”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폼폼이 살살 날아와 내 품에 안겼다.
– 요리사들이 힘겹게 만든 푸딩을 눈앞에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댔어.
나는 시무룩하게 폼폼을 꼭 껴안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바떠.”
“그런 행동을 게르드 님이 하신 게 확실합니까?”
라피렌의 음성은 서늘했다.
잠시 망설이던 난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일러바칠 건 또 있었다.
“나랑 겨론하면, 첨탑에 가둔대써.”
– 결혼만 하고 나면 너 같은 것은 이혼한 뒤 첨탑에 가둘 것이다. 넌 평생 내 사랑만을 갈구하겠지!
이번엔 폼폼이 알아서 녹음된 게르드의 목소리를 내뱉…… 응?
‘뭐야, 이런 기능도 있었어?’
이건 몰랐는데???
놀라서 눈을 댕그랗게 뜨고 있는데 폼폼이 제멋대로 또 녹음을 재생했다.
– 이 몸이야말로 알비노 따위와 결혼할 수 없으니 지금 당장 가주님께 가서 말씀드려. 널 미래의 안주인으로 내정하신 건 실수라고, 그만두겠다고 하란 말이야!
“…….”
싸아아.
의무실 내의 온도가 10도쯤 떨어진 듯 서늘해졌다.
라피렌은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보였는데 아까 나를 보던 표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싸늘한 얼굴로 게르드를 돌아보았다.
“증거가 있군요.”
“조, 조작이야! 조작된 거라고!”
“저건 키락서스 님의 발명품입니다. 키락서스 님께서는 이미 실수를 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가문 내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즉, 넌 이제 엿 됐다.
난 생각지도 못한 도움에 시무룩한 척해야 한단 걸 잊고 표정을 폈다.
“파닥이도 있어떠. 파닥이로 내 꼬리를 잡아써.”
게르드가 끌려 나가기 전에 이것도 얼른 일러바쳐야지.
난 라피렌을 향해 재빨리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자 충실한 나의 친구 폼폼이 내 말을 해석했다.
– 바람의 중급 정령이 나를 위협했어. 존의 머리 위에 있던 나를 잡아서 끌어 내린 게 정령이야.
“지금 리첸비움 왕실에서 호위 명목으로 준 정령을, 작은 마님께 공격용으로 사용했단 말씀입니까?”
“아냐! 난 그냥, 그냥 혼만 내주려고. 저게 날 먼저 비웃었어!”
“……게르드 도련님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계시군요. 왕실 정령을 이용한 공격은 리첸비움과 드리블랴네의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단 말입니다!”
부들부들 떨던 라피렌이 결국 목청을 높였다.
누가 자신에게 호통을 친 적이 없는지 게르드는 배신감과 충격, 놀람과 억울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곧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알비노를 혼내주려 한 게 왜,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
그때였다.
카앙!
문이 거세게 열리더니 지팡이 끝이 대리석 바닥을 깨트릴 듯 짚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의무실은 넓었는데 그 안에 풍채 좋은 사람이 늘어나니 좁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였다.
“경솔하구나.”
등장 자체로 이미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시는 분. 커다란 덩치의 곰 수인 호위 기사를 넷이나 거느리고 나타나신 가주 할아버님은 위험한 일이라도 하고 오신 듯 무서울 정도로 엄숙한 차림이었다.
라피렌은 그런 가주에게 가장 먼저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위대하신 가주님을 배알합니다.”
“음.”
노회한 맹수의 시선이 내게 한 번, 게르드에게 한 번 내리꽂혔다.
속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이라 살짝 불안해지려던 찰나.
“아버지.”
열린 문에서 누군가 느긋이 걸어 들어왔다. 밤이 품은 고독한 어둠보다도 더 짙은 흑발. 그 아래 위치한 만물을 꿰뚫어 볼 듯한 청록안이 해사하다.
키락서스는 내게로 성큼 다가와 나를 달랑 들어 올려 안았다.
“존경하는 아버지께서는 늘 아버지께 도전하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으셨지요.”
“용서하지 말라?”
“다 듣지 않으셨습니까. 설마하니 벌써 귀가 안 좋아지신 건 아닐 테고.”
응? 언제부터 들었는데?
뭐가 뭔지는 몰라도 키락서스가 내 편을 들었다.
그걸 깨달은 나는 키락서스의 옷깃을 꼭 붙잡고 고개를 잠시 떨궜다.
‘후, 하, 후, 하.’
잠깐만, 연말 연기 대상급 연기를 펼쳐 보이기 전에 심호흡 좀 하고.
“가, 가주님……! 저 다쳤어요!”
그런데 키락서스의 행동을 보던 게르드가 냅다 가주 할아버님에게 달려갔다. 다친 귀를 보여주는 영악함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내 교활함이 한 수 위다, 이놈아.’
이윽고 나는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모를 수 없을 만큼 처량하고 안쓰럽게.
‘가주 할아버님은 아직 내게 완전히 넘어온 게 아냐. 지금도 분명 계산 중이겠지.’
이 일은 게르드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게르드를 처벌했을 때 리첸비움에서 어떻게 나올지 뻔하지. 당분간 공식 항의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주 할아버님은 지금 내게 그런 걸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재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의 일이 꼭 이득으로만 돌아가진 않더라고.’
이 생까지 합쳐서 일곱 번이나 빙의를 거듭하며 자연히 터득하고 배운 것이다. 세상은 대부분 이윤으로 돌아가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마음이더라.
“쯧.”
이윽고 결정을 내린 듯 가주 할아버님이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내가 끼어들었다.
“가주밈. 호오 해주께요.”
받겠다가 아니라 해주겠다. 그 단순한 차이에 가주, 임마누엘은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아야 하면 안대.”
“아야?”
“우응. 가주밈 아파요.”
내가 앞발을 뻗자 키락서스가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오늘 가주 할아버님이 입으신 새카맣고 반들거리는 셔츠 깃으로 시선을 주었다.
‘얼룩이 져 있어.’
은회색 정장의 소매 부분에도 뭔가 붉은 것이 점점이 튀어 있고. 저게 설마하니 잉크는 아닐 거잖아?
주의력이 없고 산만한 게르드는 미처 못 본 모양이지만 내 눈엔 아주 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