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40)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40화(140/173)
– 그건 아직 때가 아니로구나. 대신 다른 걸 하나 더 알려줄 수는 있겠어.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묻는 것에 대해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 찜찜했지만 알려주지 않겠다는데 그걸 강제할 방법은 없어, 나는 불만스러운 상태로 볼을 부풀렸다.
– 수면 아래의 세계와 수면 위의 세계. 이건 그에 대한 이야기란다.
스르르.
수조 안에 묘한 바람이 불더니 신성력이 하나로 뭉쳐져 하얗게 빛이 났다.
나는 그 빛 덩어리를 중심으로 한 희끄무레한 형체를 볼 수 있었는데,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 이제 네가 수면 위의 세계에 공고히 존재하고 있으니 수면 아래의 세계는 없어질 때가 되었지. 그건, 네가 없으면 이 세계에 생길 이야기니까.
아마도 신일 존재가 내 이마에 검지를 대고 무언가 따스한 힘을 흘려 넣었다.
나는 스며드는 정보들을 남김없이 받아들였는데, 그 속 어디에도 악신의 계약자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여전히 신이 내게 알려주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 조급해 말렴. 네 대적자를 처음 마주하는 날 모든 것을 알게 될 테니…….
천신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 참, 그리고 오늘 힘을 많이 써서 당분간은 말을 건네기 어려울 것 같구나.
그렇게 마지막 한 마디는 아스라이 흩어졌다.
내가 ‘김아람’으로 살며 읽었던 극도로 피폐한 책이 사실은 수면 아래의 세계라는 정보를 남기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실…… 잘 모르겠어.’
천신이 이렇게까지 나를 이 세계로 되돌려 놓으려 애를 쓴 게 정말 내가 없으면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이라고?
‘아냐. 분명히 더 숨기는 게 있어.’
고작 이 정도 정보로는 이 세계에 두 명의 성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 * *
그날 밤, 드리블랴네 저택으로 돌아가게 된 나는 상황이 아주 우습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유리. 가문에서 밀고 있는 건 단테.
아버님과 화이란이 택한 건 이안인 거잖아.
‘어떻게 이렇게까지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못할 수가 있지?’
어느 한 후보로 지지가 모이면 차라리 내가 선택하기가 더 쉬웠을 텐데.
‘모르겠다. 쉬고 싶기만 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외출복 상태로 침대에 엎어진 나는 물미역처럼 흐느적거리다가 문득 내일이면 이안의 시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여행, 가자 그랬지.’
가고 싶어. 갈래.
이안과 함께 수도를 훌쩍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면 해방감이 들 것 같았다.
교황도, 황제도, 황태자도, 신관들도 없는 먼 곳.
그런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줘.
“공주님!!!”
그때였다.
갑갑해서 열어둔 창문에 누군가가 불쑥 나타났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치신 곳은 없고요? 그 새끼 상어가 감히! 교황청이 납치를 시도하다니! 다 죽여 버리겠습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창틀을 넘어온 화이란은 굉장히 화가 나 보였다.
내가 황궁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다 아는 듯했고.
나는 길길이 날뛰는 화이란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이안에게 들었어?”
“예! 그러잖아도 황궁에 가신다는 말씀을 하신 뒤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크게 걱정했습니다. 슬슬 기다리기 힘들어져서 황성을 뒤엎으려던 찰나에 이안을 만났지 뭡니까.”
생각해 보니 짧은 시간 내에 참 많은 일이 일어났구나.
데뷔당트를 치렀고, 유리와 춤을 췄고, 그 정원에서 일반 신관으로 분장한 교황을 마주쳤다.
빌어먹을 손수건 탓에 담비가 됐다가…… 이안이 나서서 도와줬지.
다시 사람이 된 뒤에는 교황을 떠보았다.
그러고는 유리가 나를 수조에 가뒀고, 풀려나나 싶었는데 갑자기 천신이 나타나서 유리가 계약자라고 하지를 않나…….
그게 고작 며칠 사이 벌어진 일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화이란 입장에선 내가 데뷔당트 이후에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보였겠다.’
걱정할 만하네.
나는 한숨을 삼키며 화이란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러고는 진지하게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지나간 일은 차치하고, 지금은 미래의 일부터 생각할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교황이 아르칼리크인인 것 같아. 의심돼.”
“……예? 갑자기요?”
“농담 아니야. 교황은 절대 본래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잖아. 죽어서 관에 들어갈 때만 보여주고. 그런데 평소에도 얼굴을 여러 개 갈아 끼우고 다니나 봐.”
내 표정을 본 화이란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입을 다물었다. 교황이 아르칼리크인이라는 것을 곰곰이 되짚어 보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주 말이 안 되는 추측은 아닙니다.”
“그치? 그리고 왠지 나를 이용해서 아빠를 불러오려는 것 같았어. 납치까지 감행했잖아.”
내가 그냥 평범한 스무 살이라면 그런 악의를 잘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미물로서 수많은 생을 반복한 사람이었고 그런 경험들은 내 안에 축적되어 실제 나이보다 정신연령을 높였다.
나는 나의 감을 믿었기에 화이란에게 교황과 나눴던 대화와 반응을 알려주었다.
“교황이 죄인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습니다.”
“아르칼리크인이라는 가정을 하고 이안과 함께 알아볼래?”
“그러겠습니다, 공주님.”
만약 교황이 아빠에게 위협이 된다면 미리 싹을 잘라야겠지.
화이란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뭔가를 생각해 보더니 이내 몸에서 힘을 축 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솔직히 이안이 아까 공주님이 수조에 갇혀 계셨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말입니다. 저는 진짜 친선 국가고 뭐고 깽판 치러 갈 뻔했습니다요. 헐레벌떡 무사하신지부터 확인하러 왔는데 지금 교황 이야기를 안 해주셨으면 진짜 엎으러 갔을지도…….”
“황성을 엎어버리는 건 나도 참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지금은 아냐. 교황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아. 뒷조사를 제대로 해야 하니까.”
교황이 아르칼리크에서 추방당한 죄인이냐 아니냐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만약 죄인이 맞다면 아르칼리크에서 개입할 명분이 생긴다.
“쥐새끼 같은 놈이라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겠지만……. 제가 누굽니까. 화 섬의 주인! 화이란 아니겠습니까.”
“든든해.”
“들어보니 교황이란 놈은 공주님을 납치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아니더라도 메레반노라는 고위 신관을 처형할 목적인 모양이었습니다. 결국 제 손을 더럽히지 않고 원하는 걸 취했으니 교황 입장에선 이득이기만 한 셈이죠.”
화이란이 용서할 수 없다며 중얼거렸다.
‘교활하네.’
어릴 때부터 꾸준히 나를 괴롭혀 왔던 교황청 세력이 떠오른다.
그 배후에는 분명 교황이 있었겠지.
“참, 공주님.”
이윽고 화이란은 다시 창틀에 걸터앉아 나를 보았다.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분위기를 좀 가볍게 하려는 듯 장난스러운 기색이었다.
“이제 슬슬 누군가를 택하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으아, 화이란도 그 이야기야?”
“누굴 택하고 싶으신지 궁금해서요.”
대충 대답하려던 나는 움찔했다.
화이란의 질문은 누구를 택하겠느냐가 아니다. 누굴 선택하고 싶으냐는 거지.
미묘한 차이였지만 전자와 후자는 확실히 달랐다.
후자는 내 마음에 대해 묻는 거니까.
나는 내 손가락에 무사하고 안전히 끼워져 있는 반지를 흘긋 보고는 느릿이 입술을 달싹였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저 입 모양으로만 그려낸 이름.
그에 화이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비밀이야.”
“그럼요. 이 화이란, 입이 무겁습니다.”
그래 봤자 아빠가 압박하면 대답할 거면서.
물론 아빠 외에 다른 모두에게 비밀로 할 거란 건 믿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번 한 주, 부디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그렇게 빌어줘서 고마워.”
유리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기에 난 지친 상태였다.
여기서 더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소망하며 나는 이만 줄을 당겨 하녀들을 부르려 했다.
‘옷을 갈아입어야지. 씻기도 해야 하고. 그리고 또…….’
내가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문을 닫고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으니 다들 걱정 중이리라.
특히 단테는 복도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게 뻔하니 얼른 얼굴을 보고 괜찮다고 말도 해줘야 하는데.
“예쁘게 입었네.”
그런데 창문에서 등을 돌린 바로 그 순간, 다정한 음성이 나를 감싸듯 닿아왔다.
그게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린 나는 설렁줄로 향하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이안……?”
“데리러 왔어, 애기야.”
“난 아직 간다고 대답도 안 했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반가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안을 향해 거의 달려갔다.
하지만 단테에게 하듯 쉽사리 안길 수는 없었다.
왠지 조금 쭈뼛거리게 된달까.
“이런, 안겨주었으면 했는데.”
창틀에 걸터앉은 이안이 나를 향해 팔을 벌렸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 이상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 방에 들어올 수는 없다는 듯이.
“화이란도 그렇고, 왜 다들 창문으로 다녀?”
“정문으로 다니는 것보다 그게 빨라서.”
부드럽게 대꾸한 이안은 여전히 자신이 팔을 벌리고 있음을 각인시키듯 살짝 손을 흔들었다.
“누가 안겨줘야 팔을 내릴 수 있을 텐데.”
“인형 안겨줄까?”
“그것도 좋지만…… 나도 요즘 많이 놀라서 사람 온기가 필요하네.”
이안이 처량한 척 눈썹을 늘어트렸다.
“좋아하는 여자가 납치될 뻔하지를 않나. 그것도 모자라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돌아와 보니 수조에 갇혀 있지를 않나.”
“!”
“세상의 미친놈들이 다 널 좋아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플로린.”
다 죽여버릴까?
이안이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좋아하는 여자……라고 했어. 방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