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4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41화(141/173)
심장이 콩콩 뛰어댔다.
왜 이안이 하는 말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다 좀 더 멋있어 보이고 그럴까.
‘그냥 내 취향이 연상 쪽인가?’
고민하며 나는 이안의 품에 살짝, 아주 살짝 안겨들었다.
“응, 딱 좋다.”
이안은 그런 나를 꽉 껴안았는데, 그에게선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났다.
‘향수는 아닌 것 같은데.’
굳이 따지자면 밤이슬과 싱그러운 나뭇잎, 약간의 쇳내와 그걸 덮으려는 듯한 코코넛 비누 향기.
기억하고 있는 이안의 냄새에서 조금 달라진 향이 낯설었고, 동시에 설렜다.
“쪽지를 써둘래? 그러면 걱정을 하지 않을 거야.”
이윽고 이안이 눈짓으로 책상을 가리켰다.
나는 달아오른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얼른 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으, 응. 맞아. 쪽지를 써둬야지.”
그런데 잠깐. 그럼 지금 창문으로 나가서 여행을 가자는 건가?
몰래 나가자니 왜 이렇게 떨리는지, 결국 나는 철자 하나를 틀리고 말았다.
허둥지둥 새 종이를 꺼내 다시 쓰려던 찰나, 기다리고 있던 이안이 내게 성큼 다가와 뒤에서 끌어안았다.
“가는 길에 몇 군데 보여줄 곳이 있어.”
“보여줄 곳……?”
“응. 내가 그동안 네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해 줘.”
이안의 체온이 느껴지자 손이 가늘게 떨렸다.
어느 현자가 그랬는데.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그 말이 와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자, 애기야.”
“으응.”
철자 하나 정도, 틀려도 상관없겠지.
이안이 한 번 더 보채자 머뭇대던 난 결국 깃펜을 던져버렸다.
나도 얼른 여기서 떠나고 싶어. 골치 아프지 않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 주었으면.
“조금 떨어진 곳에 마차가 있어. 업혀 볼래?”
“이렇게……?”
“옳지.”
이안이 등을 내밀며 내 앞에 몸을 숙였다.
아주 어색했지만 나는 일단 이안의 등에 매달려 보았다.
사실 담비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가장 편할 텐데 사람 모습을 유지한 건…… 그냥 욕심이었다.
낭만적이잖아.
이안은 조금도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를 업고도 나뭇가지 위를 휙휙 뛰어넘었다.
한 사람분의 무게가 얹어져 있으니 분명 평소보다 몸이 무거울 텐데 여전히 발소리 하나 나지 않는 게 신기했다.
드리블랴네를 지키는 병사들 중 누구도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우리가 바로 머리 위에 있는데도 말이다.
“소리 내지 않고 움직이는 거, 화이란한테 배운 거야?”
“스승님이 그 방면으로는 최고긴 하지.”
이윽고 우리는 어느 골목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전체가 다 새카만 색으로 칠해진 마차 한 대가 있었는데, 분명 겉모습은 고급 마차였으나 가문의 문장은 붙어 있지 않았고 고작 한두 사람 정도 탈 수 있을 만큼 작았다.
“내가 말을 몰 거야. 안에 담요와 책을 구비해 뒀어.”
“얼마나 가야 해?”
“오늘 밤만 이 마차로 이동하고 내 마을에 도착하면 다른 것으로 갈아탈 거야.”
이안이 점잖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이안이 ‘내 마을’이라고 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내 마을이라니. 영지 하나를 받은 걸까? 그런 기록은 없던데. 차명으로 받은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 의문을 가슴속에 묻어 두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답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대신 나는 제법 아늑한 마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책은 모두 세 권이 있었는데 철학서가 한 권, 연애 소설이 두 권이었다.
‘마차가 별로 흔들리지 않네. 진짜 고급 마차인가 봐.’
책을 읽어도 될 정도다. 아니, 아주 미세한 이 진동은 책을 읽다 자도 될 정도였다.
잘 시간이긴 하니까.
‘이안은 안 피곤한가…….’
연애 소설을 집어 든 나는 그걸 펼치기 전, 문득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탑에서 만들어 낸 주홍색 불빛들이 거리를 비추었다. 그 아래엔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잠시 떠났다가 돌아올게.’
만약 내가 단테를 선택하게 된다면 이건 이안과 함께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다.
언젠가 단테가 그랬던가. 이 기억 하나로 평생을 살겠다고.
어쩌면 나도…… 다시 꺼내볼 수 없는 이 추억 하나가 군불처럼 지펴져 평생 나를 행복하게 할지도 몰랐다.
* * *
책을 읽다 까무룩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마침 마차 역시 멈추었기에 때가 좋았다고 할 만했다.
“일어났어?”
“응! 그런데 여긴 어디야?”
밤새 마차를 타고 있었기에 몸이 조금 찌뿌둥했다.
기지개를 켜며 묻자 이안이 손을 내밀며 대답을 해주었다.
“여관. 여기서 하루를 머물고 내일 아침에 이동할 거야. 공장을 구경시켜 줄게.”
“공장?”
“대신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이안은 대체 무얼 준비해 둔 걸까.
평상시와 달리 이안의 말투에서 신남이 묻어나는 게 느껴져 나까지 조금 들뜨게 됐다.
“어서 옵쇼! 방 드릴 깝쇼, 밥 드릴 깝쇼.”
“침대가 두 개 들어가 있는 방으로 하나. 식사는 주인 추천 메뉴로 둘.”
“예이! 오늘 추천 메뉴는 완두콩을 넣고 찐 가자미 요리에 고기 감자 스튜입니다요.”
아무리 침대가 둘이라지만 하나의 방이잖아!
그런데 이안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내겐 놀랄 틈조차 없었다. 이런 여관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나의 방에 두 개의 침실이 있는 구조를 기대할 순 없을 터였다.
분명 하나의 방에 두 개의 침대 정도겠지. 그 침대의 거리는 몹시 가까울 테고.
‘자다가 내가 코를 골면 어째?’
맙소사.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밤새 불편한 자세로 있느라 속이 좋지 못할 텐데, 부드러운 생선찜을 먹자.”
“으, 으응.”
유리와 함께 있으면 녹초가 되어버렸다. 항상 바짝 신경을 써야 하니까.
반대로 단테와 함께 있을 땐 그냥 가족처럼 편했다.
‘그런데 이안과 있으면 왜 이렇게 매번 토끼처럼 놀라는 걸까.’
난 간이 큰 담비인데 말이야.
일단 아무 자리에나 앉아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장이 요리를 내어왔다.
“커흠, 거…… 행색을 보아하니 귀족 님네 같은데. 이런 게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수.”
아무리 화려한 파티 드레스 차림이 아니라지만 내 기준에 평범한 옷도 평민 입장에선 눈 튀어나오게 비싼 가격이다.
원단의 광택이나 장식 하나하나가 평민들이 입는 것과는 전혀 다르니 귀족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특이한 건, 귀족임을 알았는데도 굽실거리거나 더럭 겁을 먹지 않는 주인장의 태도였다.
“여기서 내 부하들이 몇 번 먹은 적 있다던데. 세계 최고의 가자미 요리라고 극찬하더군.”
“흐허험, 그,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커허험!”
하지만 주인장은 칭찬에 꽤나 약한 편인 듯했다.
이안이 넉살 좋게 던진 한마디에 분위기가 갑자기 부드럽게 풀렸다.
“자, 먹어봐.”
이안이 내게 생선의 몸통 부분을 잘라 내밀었다. 가장 살이 많고 통통한 부위였다.
주인장이 칭찬을 기대하는 눈빛을 쏘아내며 내가 먹는 걸 지켜보는 건 아주 부담스러웠지만 어쨌거나 배가 너무나 고팠으므로 난 얼른 한 입을 씹었다.
‘어……?’
그러게. 이거 꽤 맛있는데……?
“어때?”
“맛있어.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아.”
“그렇다는군. 숙녀분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수 있었어. 덕분이네.”
이안은 기분 좋은 듯 입꼬리를 매끄럽게 끌어 올리며 주인장에게 금화를 내밀었다.
숙박비와 식사값을 다 합쳐도 은화 몇 개를 넘지 않을 텐데, 금화라면 팁을 굉장히 많이 준 셈이었다.
주인장은 신이 나는지 서비스를 드리겠다며 주방으로 쑥 사라졌고, 이제 식당에는 나와 이안만 남았다. 누구도 이렇게 이른 아침에 식사를 하러 내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참, 조금 있으면 성녀 라흰이 이 나라에 오게 될 거야.”
먹다 보니 입맛이 돌아 스튜까지 야무지게 먹고 있는데, 이안이 가볍게 한 마디를 꺼냈다.
눈을 깜빡이던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라흰이 온다고? 이 나라에?
“매번 널 잡아가려 하는데, 그럴 게 아니라 그쪽에서 오면 되는 거잖아.”
“!”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네가 그들을 만나야 할 이유는 없어. 난 놈들을 헛걸음치게 만들고 싶거든.”
그러니까 말을 들어보면 라흰이 마도제국에 오게 되는 건 이안이 유도한 결과인 듯했다.
내가 감자를 우물거리느라 궁금한 걸 바로 내뱉을 수 없어 그저 눈으로 질문하자 이안이 웃으며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유리가 널 수조에 가둔 걸 보고 황제와 거래를 했어. 황제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대가로 널 당장 풀어달라고 했지.”
“아, 그래서…… 황제가 움직인 거구나.”
유리가 별수 없이 나를 내어놓았던 건 이안 덕분이었다.
줄곧 의문이었던 부분이 풀리자 이안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깊어졌다.
“내겐 널 납치하려 했던 신관들의 치부가 담긴 정보가 있었거든.”
이안이 냅킨으로 내 입가를 닦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같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은 여태 누리던 걸 잃게 될 거야. 그러면 언젠가는 깨닫게 되겠지. 널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지켜주겠다는 말을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거구나.
이안이 가진 자신감은 꼭 아버님을 닮았다. 절대적인 것 같고, 내가 무조건적으로 믿고 기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인지 라흰이 진짜 내 앞에 나타나게 된다는데도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