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4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42화(142/173)
“아저씨, 저 왔어요!”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소년이 아침 공기와 함께 힘차게 들어왔다. 품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감자가 담긴 자루를 안은 채였다.
“주문하신 감자 한 자루요!”
“무거우니 거기 입구에 둬라.”
“예!”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은 힘차게 대답하며 자루를 풀썩 내려놓았다. 그런데 실한 감자가 어찌나 한가득 들어 있던지, 결국 몇 알이 굴러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으아, 죄송합니다!”
화들짝 놀란 소년이 부리나케 감자를 주웠다.
마지막 한 알은 나와 이안이 앉은 테이블 근처까지 굴러왔는데, 그것까지 주워 든 소년은 고개를 들다 ‘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폴, 이 녀석! 손님들 귀찮게 하지 말아라!”
“그…… 아저씨! 아저씨, 잠시만요!”
소년의 시선은 이안에게 꽂혀 있었다.
휘둥그레진 눈을 보니 뭔가 아주 놀란 것 같은데.
궁금해진 나는 다음에 일어날 일을 숨죽이며 기다렸다.
“형!”
형……?
“형 맞죠? 저를 이 마을에 데려와 주신 분이요!”
소년의 외침에 이안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무언의 긍정인 것이다.
“아저씨! 이 형이에요. 저를 살려주고 지낼 곳도 마련해 준 사람이요!”
“뭣이라!”
막 주방을 나와 뭔가를 가져오던 주인장이 천둥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러는 사이 소년은 이안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소작농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빌려주신 밭에 열심히 감자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래 보이는구나.”
“제, 제가 드릴 건 없지만 이거라도……. 지, 진짜 씨알 굵고 좋은 감자예요.”
소년이 제 품에 있던 감자를 양손 가득 쥐고 불쑥 내밀었다.
낮게 웃음을 흘리던 이안은 기꺼이 그걸 받아 들었다.
“고마워. 그런데 이걸 어떻게 먹을 길이 없으니 다시 네게 돌려줘도 되겠니?”
“아, 아! 그, 그러네요. 요, 요리를 해서 드려야 하는데……!”
이안의 다정한 말에 소년이 허둥대며 다시 감자를 받아 들었다.
테이블엔 주인장의 서비스 요리인 먹음직스런 미트 파이가 놓였고, 나는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접시를 보며 한 조각도 다 먹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생선을 다 먹었는데 거기에 저걸 더 먹었다간 배가 터져 버릴 거야. 그러니까-
“같이 식사하겠니? 아직 식사 전이지?”
“제가요? 저, 저 같은 것과 같이…….”
“상관없어. 여기 앉을래? 아주 맛있어 보이는 파이야.”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이안이 어떤 의미로 ‘내 마을’이라고 한 건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 * *
폴은 처음엔 쭈뼛거렸지만 자상하게 대해주자 금세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거렸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4년쯤 전, 이안은 가문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변두리 땅 몇 군데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건 주로 큰 영지와 중간 영지 사이에 끼여 있는 길목의 땅으로, 이따금 지나가는 여행자를 위한 여관 하나 외엔 별 볼 일 없는 그런 마을들이었다.
특색도 없고 풍족하지도 않고 봄이 와도 반쯤은 굶주리며 사는 게 당연한 그런 사람들이 지내는 마을.
이안은 제일 먼저 그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작물을 제공했다. 그다음에는 고급 비료를 가져와 땅에 영양분을 공급했고.
그런 뒤에 이안은 빈집들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작은 마을이라고 해서 전쟁의 여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 사람이 병사로 차출되어 나갔으니까.
그러고는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
그런 사람들이 남긴 집은 거의 흉가나 다를 바 없었지만 보수 공사를 하니 살 만한 형태로 바뀌었다.
처음엔 불안한 눈으로 바뀌는 마을을 보던 주민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활기를 찾았다.
농사지을 땅이 살아나니 먹을 것도 많아졌고 배가 부르니 전보다 여유로워졌던 것이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1년이었어.”
“대단해.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했구나.”
“응. 그리고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지.”
폴이란 소년은 전쟁고아였다.
고아원에 인도되긴 했지만 마음의 상처가 커서 사나워졌고, 서너 번이나 탈출해서 떠돌다가 다시 잡혀가기를 반복한 아이였다.
이안은 제도 바깥으로 튕겨 나가려는 폴 같은 아이들을 모아 직접 마을로 데려왔다고 했다.
“엄청 멋있고, 대단해요. 이안 형은요. 저도 나중에 크면 이안 형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폴이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반짝였다. 계속 ‘형’이라고 호칭하는 걸 보아하니 이안의 신분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
이안은 폴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내 귓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신분은 말 안 했어. 굳이 알릴 필요는 없으니까. 마을을 고칠 때도 내가 직접 움직이진 않았고.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내가 이 마을의 주인인 건 몰라. 어느 높으신 분이 주인이겠거니 할 뿐이지.”
“아하…….”
“신분을 밝히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나를 편하게 대하거든. 그것도 마음에 들고.”
이안이 다정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면서 검지를 들어 입술 위를 누르는데 그게 왜 그렇게 섹시해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 마을들은 자급자족이 가능해. 모두가 다 같이 아이들을 보살피고, 아이들 역시 서로에게 기대서 살고 있어.”
폴에게 감자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친 건 이 마을에 남아 있었던 몇 안 되는 어른들이었다.
그 어른들은 이안이 데려온 아이들을 한마음으로 보살폈다.
가족은 아니지만, 이곳은 일명 ‘공동체’였다.
“한 번씩 부하들을 보내 마을 분위기를 살피게 하는데 모두 처지가 같으니 누군가를 따돌리려 들지도 않는 것 같더라고.”
“그렇구나. 다행이야.”
이윽고 우리는 폴의 집 앞에 함께 서 있었다. 폴만 사는 건 아니고, 다른 소년 다섯 명이 여기에 함께 산다고 했다.
“이쪽은 남자애들이 살고요, 저기 다리 밑에 있는 집에는 여자애들이 살아요.”
폴은 신이 나선 우리에게 집을 구경시켜 주었다. 솔직히 엉망이긴 했지만 사춘기 남자애들이 모여 사는 숙소치고는 깨끗한 편이었다.
“저는 농사부 소속이고요, 다른 형들은 전부 공장에 다녀요!”
“공장?”
“네. 공장에 나가면 돈도 벌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빨리 공장에 가고 싶은데, 어른이 돼야 갈 수 있대요.”
무슨 공장이지?
이안은 아주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더니 상체를 살짝 숙여 내 귀에 대고 짤막하게 속삭였다.
“공장도 구경시켜 줄게. 가볼래?”
“으응. 궁금해.”
“각 마을마다 공장을 세워뒀는데 생산하는 건 제각기 달라.”
뭘 생산하고 있는 거지?
이안이 준비한 건 내가 예상했던 것을 훨씬 웃돌았다.
단테가 아이들에게 평범하고 안전한 테두리를 만들어주려고 했다면 이안은 이번에도 역시나, 그 안에 끼지 못하는 존재를 위해 있을 곳을 만들었다.
둘 다 의도는 같았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일단 이 건에 대해서는 둘 다에게 같은 점수를 주었다.
‘근데 이거 말고 또 있어?’
공장의 위치는 마을의 중심이었다. 여행자들이 마을을 지나가더라도 여관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여기까지 올 일은 없었다.
“그쪽 입구 말고, 저기로 들어가면 바로 관리실로 통해.”
“앗. 열쇠네!”
“나만 갖고 있어. 이 열쇠는.”
이안이 재킷 주머니에서 놋쇠 열쇠를 꺼내 찰랑 흔들었다. 그러고 우리는 공장의 뒤쪽으로 돌아갔는데, 거기엔 잔뜩 녹이 슨 데다 군데군데 발판이 빠져 있는 계단이 하나 있었다.
“이런 곳을 네가 밟게 할 순 없지.”
“꺅!”
이안은 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높은 곳에 달린 문 앞에 섰다.
이안은 이내 손도 대기 싫게 생긴 자물쇠를 풀더니 문을 열고 나를 향해 우아하게 팔을 펼쳐 보였다.
“언젠가 널 데려와서 보여줄 생각으로 안은 멀쩡하게 꾸며놨어.”
“와. 이 마을 사람들은 관리실엔 못 들어오는 거지?”
“당연하지. 뭐, 몇몇 악동들이 시도를 하려는 것 같긴 하지만…… 보다시피 계단이 엉망이라.”
이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이안에게서 시선을 미끄러트려 안을 구경했는데, 우리 집 응접실과 크게 다르지 않게 고급스러웠다. 다만 응접실과 아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저 유리창이겠지.
“공장 안이 다 내려다보이네, 여기서는.”
“맞아. 그런데 저기선 이 위가 안 보여. 저쪽 기준에선 불투명 유리거든.”
그것도 신기하네.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유리가 나를 가둬놨던 수조가 떠올라 부르르 떨었다.
“다들 뭘 만들고 있는 거야? 옷인가? 조끼?”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는 옷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좀 더 바짝 집중했다. 그러자 이안이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방탄복.”
“방탄……? 총알을 막아내는 옷이라는 거야?”
“맞아. 내가 자체적으로 개발했고 암암리에 판매 중이야.”
“!”
“보다시피 수량을 많이 만들 수는 없지만…….”
대단해!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유리창에 거의 코를 갖다 누르며 구경했다.
“그럼 드리블랴네에서 총도 만들고 방탄복도 만드는 셈이네!”
“그렇게 되는 거지. 포괄적으로 보자면.”
그럼 만약 이안이 가주가 되면 드리블랴네에서 공식적으로 방어구도 판매하게 되겠구나!
최고의 창과 방패를 모두 거머쥐겠다니. 대단한 전략이다. 특히 지금까지 방탄복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잖아.
“총알은 얼마나 막을 수 있어?”
“아직까지는 세 발까지만. 네 발째부터는 방탄복에 손상이 심하게 가.”
“실험도 다 해본 거야?”
“응. 내가 직접 입고.”
“……뭐어어?!”
기겁할 듯 놀라는 바람에 나는 이안을 홱 돌아보았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야? 스스로 실험체가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