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4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43화(143/173)
“어떤 ‘작업’을 할 때 입고 가 봤어. 정말 도움이 되는지. 그뿐이야.”
“…….”
“생각보다 쓸모가 있더라고. 지금은 조커 단원들이 전원 착용하고 있어.”
이안이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작업’이란 단어가 나온 순간, 나는 모든 걸 이해했기에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방탄복이 도움이 된다는 걸 자기 몸으로 인증했다면…… 응. 모두 입고 싶어 하겠네.
여태 이안이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히 살아 있는 게 방탄복의 쓸모를 증명하는 셈일 테니까 말이야.
“명칭은 방탄복이지만 검이나 날카로운 이빨에 물리는 것도 어느 정도 막아줘. 치명상을 피하는 데 목적이 있는 거야.”
“굉장히 쓸모 있는 옷인 것 같아.”
“그렇지?”
“게다가 이 공장, 굉장히 깨끗해.”
곳곳에 정리도 잘 되어 있고 먼지가 쌓여 있지도 않다.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쪼들려 보이지 않았고.
넉넉한 월급을 받고 있는 이들의 표정이랄까?
“사람들 얼굴이 좋지?”
“응, 다들 힘찬 표정이야.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네. 일하는 게 즐거운가 봐.”
이안은 유리창에 기대어 서더니 나를 바라보며 눈을 휘었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달콤하게 내 입가를 매만졌다.
“별것 아니긴 해도 구내식당도 있거든. 노동자에게 아침과 점심을 무료로 제공해 줘. 물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마을 아낙들이고.”
“보수는 이안이 주는 거야?”
“맞아. 아까 봤듯이 성인이 아닌 애들은 농사일을 해. 만약 공부를 하고 싶었다면 고아원에 남아 있었을 테지만 내가 데려온 애들은 다들 몸 쓰는 일을 좋아하거든.”
“그러다 공부가 하고 싶어지면……?”
“그것도 방법이 있지.”
이안의 엄지가 내 입술을 가만가만 쓸어냈다. 심장이 또다시 요란하게 굴어서 나는 뺨을 붉히며 눈길을 살짝 피했다.
“참, 이 마을…… 말고 다른 마을에는 무슨 공장이 있어?”
“제지 공장. 종이를 만들어. 개중엔 조커에서 쓸 만한 특수한 종이도 있는데…… 그건 귀족들에게 암암리에 판매 중이야. 비싼 값을 받고.”
내 입술에서 아쉬운 듯 느리게 손을 뗀 이안이 재킷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냈다.
그건 보통의 종이와는 달리 새카만 색이었다.
“여기에 까만 잉크로 글을 쓰면 하나도 안 보이겠다.”
“응, 그게 목적이야.”
이안이 쿡쿡 웃고는 종이를 다시 집어넣었다.
“이래저래 판매한 것들이 쌓여서 돈이 좀 모였어. 그걸로 마을마다 학교를 세울 거야.”
“아, 아까 말한 방법이……?”
“학교 세울 돈, 거기에 자재를 넣을 돈, 괜찮은 선생을 불러와 마을에서 살게 할 돈. 다 내 개인 사비로 해야 하니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
단테였다면 가문에 말하자마자 돈이 주어졌겠지.
하지만 이안은 아니다. 뭘 하나를 하려 해도 까다로워진다는 걸 알기에 그냥 말을 꺼내지 않은 거였다.
더불어 공장에서 뭘 생산하고 있는지 들키고 싶지도 않았겠지.
이건 이안의 비장의 수니까.
나는 이안의 마음에 손에 잡히는 것 같아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안에게…… 좀 더 많은 권력과 자본이 주어진다면…….’
그걸로 이안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지원이 거의 없을 때도 이렇게 만들어서 뭔가를 해냈는데.
“어라, 나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거야?”
“……응.”
나는 이안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머리로 생각을 하고 한 행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인 거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안이지만 그래도 대견하고 기특해서. 멋있어서.
“……이런 것도 좋지만 그보단 다른 상이 더 좋은데.”
피식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던 이안이 내 손을 부드럽게 쥐어 끌어당겼다. 그러더니 손가락 마디마다 일부러 쪽 하는 소리를 내며 입맞춤을 하는 게 아닌가.
무슨 의도인지 모를 수가 없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응? 애기야. 어른은 어른의 칭찬을 받아야지.”
이안이 사근사근하게 나를 채근했다.
망설임 따위 날려 보내라는 듯 유혹적으로 굴었다.
이런 면이 너무 어른 같아서 나는 번번이 휘말리게 됐다.
‘그게 싫지 않은 것도 제일 문제고…….’
머뭇대던 난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발을 살짝 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정말 천천히…… 이안의 뺨에 입을 맞췄다.
아직 입술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볼 뽀뽀도 설레서 죽을 것 같았기에 나는 곧바로 이안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감탄사인지 탄식인지 모를 것을 뱉던 이안은 입가를 가리며 도망치는 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애기. 언제 다 클까 모르겠네.”
“나, 나도 다 컸거든?”
“그럼 입술에 해줘야지, 칭찬은.”
“그건…… 그건…….”
이안의 금색 눈동자가 저렇게까지 가라앉았던 적이 있던가.
이안을 마주 볼 수 없었던 일은 자주 있었지만 그중 지금이 최고였다.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몸을 꼬는 나를 보던 이안은 이내 입가를 가리며 반쯤 쓰러졌다.
창틀을 쥔 왼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지금 엄청 웃긴 걸 억지로 참는 것 같은데…….
“내, 내가 웃겨?!”
괜히 긴장한 게 바보 같아 그렇게 버럭 소리치자 이안이 누가 봐도 이를 꽉 깨물고 웃음을 참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됐어! 나 이안이랑 말 안 해!”
너무해. 사람을 이렇게 막 놀리고.
씩씩거리며 몸을 돌리자 이안이 내 소매 끝을 살짝 잡아 왔다. 나는 또 그걸 뿌리치지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고.
이상하게 뱃속이 저리다.
발끝이 곱아드는 느낌에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게 다야. 이제 재미있는 거 하러 갈까?”
“재미있는 거, 뭐…….”
“바다 보러 가자, 플로린.”
아, 나는 어떻게 해도 이안을 이길 수 없구나.
이안이 혼자 여유로워 보여서 괜히 뾰로통해졌지만, 그 느긋함에 기대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 이안이 여행을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난 내가 있는 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을 거야.’
이따금 사람은 괴로운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경을 바꾸면 모든 걱정거리가 갑자기 작아 보이잖아.
하지만 이미 괴로움 속에 한껏 빠져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발로 벗어나기가 어렵다.
누군가 손을 잡고 끌어주지 않으면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홀로 끙끙대다 더 얽혀버리지.
나는 어느새 손깍지를 끼고 나를 이끄는 이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안이 나를 데려가는 곳에 빛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벌써부터 바다의 짠내와 그 넓고 푸른 물이 어른거렸다.
‘기대가 돼.’
가주가 된 이안은 어떤 모습일지.
‘그러니까…….’
그가 계획하고 숨기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이 여행에서 샅샅이 알아낼 생각이었다.
* * *
다음 날, 놀랍게도 나는 해가 지기 전에 바닷가에 도착했다.
‘사실 이안이 바닷가에 가자고 했을 때 가는 데만 한참 걸리겠구나, 그렇게 예상했는데.’
그런데 막상 도착했다고 해서 나와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그 말은 여기가 수도 근처라는 뜻인데…… 수도 가까이에 이런 바다가 있었다니!
“수도 근처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을 줄은 몰랐어!”
“마음에 들어?”
“응, 엄청!”
이곳의 바다는 굉장히 잔잔했다.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바다를 구경하면 정말 좋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해변의 모래는 하얗진 않았고 군데군데 해초도 많이 떠밀려 와 있었지만, 그래도 바다는 바다다.
수도 근처이니 귀족 중 누군가는 여기에 별장을 세울 생각을 했을 텐데…… 왜 이렇게 해변가에 아무것도 없을까?
“사실 여기도 내 마을이야, 플로린. 원래는 각종 쓰레기가 밀려와서 쓰레기 산을 이뤘던 곳이었어.”
“이 깨끗한 해변에 쓰레기가 그렇게 많았다고?!”
“응. 그래서 바닷가지만 아무도 여기로 휴양을 오진 않았지. 지도로 따지면…… 여기야.”
이안이 내 눈앞에 휴대용 지도를 펼쳐 위치를 콕 짚어주었다.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뭍 쪽으로 움푹 들어와 있는 지형이 보였다.
쓰레기 같은 게 떠밀려 오기 딱 좋은 그런 지형이긴 한데…….
“위치가 좋은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건 쓰레기를 치울 엄두가 안 나서였나 보구나.”
“맞아. 여긴 이례적으로 가문에서 받은 게 아니라 내가 산 거야. 기존에는 어느 백작 소유였는데 사업을 하다 진 빚으로 골치 아파 하기에 싼값에 사들였지.”
지금 내 눈앞엔 깨끗한 바다만 펼쳐져 있으니 이전의 모습이 어땠을지는 상상할 수만 있었다.
그렇지만 분명 쉽지 않았을 거야.
무엇이든 쉽게 가질 수 없는 이안다웠다.
남들이 손대지 않는 지역만 골라서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는 건 틀림없이 재능일 테지.
“이 안쪽에 집이 있어. 여길 이렇게 돌면…….”
이안이 마차 안에 굽이 낮은 신발을 준비해 둬서 다행이었다.
아무리 이안이 잡아준다고 해도 바위를 걷는 건 안 해본 거라 균형을 잡기가 좀 힘들거든.
“자, 여기야.”
잠시 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이안이 가리키는 끝에는 툭 튀어나온 지형인 곶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새하얀 조가비처럼 작고 예쁜 집 한 채가 지어져 있었다.
“우와, 여긴 뭐야?”
“그냥, 여기서 지내보고 싶었어. 단 하루라도 좋으니까…….”
“…….”
“평범한 부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