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4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46화(146/173)
“거, 겁먹은 거 아냐.”
그냥 극도로 긴장했을 뿐이다.
이안의 표정이 딱딱해서, 늘 보던 웃음기 어린 얼굴이 아니라서…… 그래서 놀란 것도 있고.
생각해 보니 이안은 내게 늘 웃는 얼굴이었다.
단 한 번도 정색한 적이 없단 말이야.
“음…… 내가 이렇게 눈을 가리고 뒤돌아서 서 있을게. 옷을 입을래?”
“으응.”
“옳지. 착하다.”
이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곤 황급히 옷을 찾아 욕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래도 아주 잠깐, 스쳐 지나면서 본 이안의 귓불이…… 내 얼굴만큼이나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것 같았다.
* * *
잠깐의 해프닝이 지나고 잠을 자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나는 파자마 차림으로 침대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따뜻한 우유를 타주겠다며 아래층으로 내려간 이안이 아직까지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침대가 하나뿐인데 먼저 누우면 얌체 같잖아.
“플로린. 왜 안 눕고.”
“기다렸어.”
“그랬어? 여기 우유. 마시면 잠이 잘 올 거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머그잔을 받아 든 나는 매트리스에 엉덩이 끝을 살짝 붙였다. 이안은 제 몫의 잔을 든 채로 침대 옆에 기대어 섰고.
갑자기 또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빨리 뛰어 대서, 나는 남몰래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같이 자나? 따로? 어떻게 할 거지? 이안은 무슨 생각일까? 왜 아무 말도 안 해? 침대가 하나밖에 없잖아!
여기 오기 전까지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을 잔뜩 고민했었던 것 같은데……. 이젠 고작 침대에 집중을 하는 상황이 조금은 우스웠다.
하지만 동시에, 내게 필요했던 게 바로 이런 거라는 깨달음도 찾아왔다.
아주 다른 것에 몰두하는 시간 말이야.
그런 의미로 이안이 내게 준 이 작은 일탈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였다.
나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이란 보통 문제가 하나 있으면 거기에 몰두하게 되잖아.
다른 곳으로 시야를 넓히고 고개를 돌리는 건 누군가가 곁에서 그럴 기회를 줘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있잖아, 이안.”
“응.”
“고마워.”
내 감사 인사에 이안이 차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 고맙다고. 이안 덕분에……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수 있게 됐어.”
“내가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야.”
이안의 입매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나는 내가 그의 미소를 참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항상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처럼 그렇게 여유롭게 웃거든.
“나는 언제나 네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
이안이 들고 있기만 하고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나도, 이안도 그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지금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벅찼기 때문이리라.
이안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두 눈 가득히 이안만 들어와.
그를 선택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려서 그런 걸까.
“넌 어린 날, 내게 구원이었거든.”
“내가?”
“죽으려고 했던 나를 살렸잖아. 나는 그 불길 속에서 생을 마감해도 아무 상관 없다고 여겼는데…… 네가 살아갈 이유를 주었어.”
그의 어조는 꼭 봄바람에 스쳐 살랑대는 이파리 같았다. 혹은 맑은 샘에 똑 하고 떨어지는 풀잎 끝의 이슬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떨 땐 콧잔등이 시큰해질 만큼 다정하게 들리는데, 그런 모든 이유가 내가 이안의 살아갈 이유여서일까.
그래서 내게 이렇게 잘해주는 건가 봐.
“네 남편이 되라고 했지. 그 조그마한 담비의 어디에 그렇게 샘솟을 눈물이 있었던 건지. 아직도 신기해.”
“내가 그 날 그렇게 많이 울었어?”
“응. 탈수 증상이 올까 봐 걱정했던 건 넌 모르겠지.”
이안이 손을 뻗어 내 콧등을 톡 건드렸다. 그러다 그 손길은 천천히 내 뺨을 지나…… 눈가를 문지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난 그 날부터 지금까지 네 남편이 되는 것만이 꿈이었어. 너를 사랑하고, 네게 사랑받는 것보다 더 큰 목표는 없었고…… 지금도 그래.”
“!”
“그러니까…… 내가 널 욕심낼 수 있게 해줘.”
아, 이안은 단테와 다르구나.
단테는 은연중 자신이 선택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안은 아냐.
이안의 세상에는 자신이 선택받지 못한 이후의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이안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거야.’
등골이 찌릿하다. 뱃속이 간지러웠고 발가락 끝이 아릿해 왔다.
결국 나는 들고 있던 잔을 협탁에 쾅 내려놓았다.
사실 살짝 놓으려 했는데 이안의 잔과 부딪쳐서 너무 큰 소리가 났다.
속으로 화들짝 놀랐지만 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발끝에 힘을 주어 섰다. 그렇게 해야만 겨우 키가 맞아서.
“있잖아, 이안…….”
그러긴 했는데 이 다음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머뭇거리며 입을 여는데 이안이 내 허리를 낚아채듯 끌어당겨 안았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그의 금색 눈동자가 어둑했다. 위험하게 가라앉아 일렁거리는 눈빛은 유리의 것과 얼핏 닮아 있었다.
“애기야.”
“으, 으응.”
“지금부터…… 내가 나쁜 짓을 할 생각인데.”
이안의 목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낮았다. 마른침을 삼킨 나는 이제 뒷걸음질을 치고 싶어졌다.
아까 벌떡 일어나서 이안에게 돌진한 그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났던 걸까?
“만약 싫으면 언제든 뺨을 후려쳐. 내가 정신이 들 수 있게.”
이안이 내 머리칼을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겼다. 동시에 느른히 귓바퀴를 스치는 손길에 나는 움찔하고 떨었다.
숨을 쉬기가 어렵다.
폐부가 조여드는 느낌에 할딱이며 입을 살짝 벌린 그 순간-
고개를 비튼 이안이 내 아랫입술을 베어 물었다.
“!”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알았지만 정말로 키스를 하게 되자 나는 얼어붙어 버렸다.
이안이 너무나 가까웠다. 이렇게까지 가까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눈, 감아야지.”
그가 나를 보더니 그렇게 다정히 속삭였다. 나는 짧은 호흡을 들이마시며 그대로 눈을 눌러 감았다.
이안은 애가 탈 정도로 느리게 입술을 훑었다. 아랫입술을 빨아 당기다가 부드럽게 놓기를 몇 번.
엄지로 턱 아래를 누른 그는 이내 벌어진 틈새로 침입해 왔다.
‘어떡해. 어떡해!’
심장이 쿵쿵거렸다.
뜨겁고 말캉한 것이 입천장을 간질였다. 치열을 고루 훑은 그는 이내 숨어 있는 혀를 찾아 뿌리부터 살살 얽어 올렸다.
거칠지도, 그렇다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았다.
조급하게 안달을 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여유가 넘치고 능숙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느덧 이안의 목에 팔을 두르고 숨을 할딱였다.
이안은 내가 더는 못 참겠다 싶을 때면 입술을 살짝 떼서 숨을 쉬게 해주었다.
그러곤 또다시 금세 잡아먹었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해.’
첫 키스의 순간이 어떨지는 누구나 꿈을 꿔보잖아.
그런데 지금 이건…… 내가 상상한 그 무엇과도 달랐다.
이 세상에 오직 나와 이안만 존재하는 것 같은 감각.
수많은 고민으로 젖어 있던 땅이 단숨에 말라버리고 단 한 사람이 내 안에 태양처럼 떠올랐다.
“사실 난 너만 있으면 돼.”
긴 입맞춤이 끝나고 나는 어느덧 이안의 위에 올라탄 자세로 가슴에 기대 있었다.
대체 어쩌다가 자세가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건 이런 채로 내가 이안을 덮치듯…… 흠흠.
좀 길게 키스했다는 것뿐……인데, 정신을 차리니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이안이 방금 한 말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입을 열질 못했다.
“내가 가진 건 모두 네가 준 거니까. 너를 빼고 다른 모든 건 다 버릴 수 있어.”
이안이 내 머리칼을 가만가만 매만졌다.
나는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는 이안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하지만 네게 어울리는 남자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이가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네가 준 것을 꽉 붙들고 줄곧 노력해 왔어.”
“……응.”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우리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것만큼 로맨틱한 일도 없겠다고.”
잠겨서 탁해진 음성인데도 왜 이렇게 듣기 좋을까.
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이안의 뺨을 부드럽게 만져보았다. 이안은 그런 내 손을 잡고 손바닥에 입을 맞췄고.
“이안.”
“응, 플로린.”
“있지…… 나……. 사실 첫 키스였다?”
순간, 이안이 미동도 없이 멈추었다.
석상처럼 굳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뭐야아. 첫 키스가 아닐 줄 알았어?”
하긴, 이안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키스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 건 이안이 유일한걸.
나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가슴을 짚고 상체를 세웠다.
“이안은? 이안은 처음이었어?”
아니라고 하면 조금 속상할지도 몰라. 그렇게 긴장해서 쳐다보자 이안이 목이 멘 듯한 소리를 냈다.
“당연히…… 처음이었지. 너 아닌 누구와 입을 맞추겠어.”
“다행이다. 우리, 서로의 처음을 가진 거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파도 소리가 쏴아아 밀려든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짝 긴장한 탓에 파도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기뻐서 그렇게 웃고 있노라니 이안이 내 허리께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애기야. 나쁜 짓, 아직 안 끝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