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4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48화(148/173)
저택에 머물고 있던 손님들은 모두 어제까지 나가야 했고, 동시에 모든 방의 창문이 꽉 닫혔다.
어떤 소리도 새어 나가지 못하고 그 누구도 훔쳐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고용인들은 모두 깨끗한 새 제복을 갖추어 입었으며 정원사의 가위질조차 들리지 않았다.
후계자들은 어젯밤, 전원 저택에 들어왔고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고.
“드디어 그 시간이구나.”
“그간 마음고생 많았겠지. 수고했다. 조금만 더 힘내다오.”
이난나 님과 가주 할아버님이 각기 내 어깨를 짚으며 감사를 표했다.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이 원하시는 후보는 아닌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모두가 이안이 만들려는 미래더러 미쳤다고 해도 나만큼은 그의 곁에 서 있어 줄 거니까.
나는 그가 꿈꾸는 미래를 먼저 보았다.
이안은 시대를 앞서는 선구자가 되려 했고, 그건 손가락질받기 딱 좋은 길이므로 나라도 지지를 해주고 싶었다.
마도 공학이 있으면 기차든 뭐든 훨씬 쉽게 만들 수 있을 텐데 해 보지도 않고 그 꿈이 밟히게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나도…… 이안이 좋고.’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이 뭉게뭉게 떠오르자 뺨에 옅은 열기가 어렸다.
나는 진정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두 눈을 꾹 눌러 감았다. 그러고는 몇 초 뒤, 스르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전신 거울 속에 오늘의 내가 비친다.
끝만 시럽에 담갔다 뺀 듯한 은발과 동그란 눈. 동그란 코와 동그란 얼굴형.
어디 하나 모난 구석이 없는 내가 거기에 있었다.
군수업체로 유명했던 이 뾰족한 가문을 내 시대에는 둥글게 굴려야지.
그게 안주인으로서 내 목표고, 다짐이었다.
“따님. 안내하겠습니다.”
내 뺨을 스스로 찹찹 두드리며 기합을 넣고 있는데 양어머니가 오셨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어머니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선택의 시간은 저택의 지하에 있는 ‘의식의 방’에서 치러진다고 한다.
평소에는 거대한 돌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곳은 방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광활했다. 연회장이라 해야 할 만큼 넓은걸.
물론 지금은 이 넓은 공간이 빠듯해 보일 만큼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첫 줄은 이 가문을 떠받치고 있는 실세들. 그 뒷줄은 가신들. 유리가 황태자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황궁에서 나온 이들도 몇 보였다.
그들이 만든 원 안으로 한 발 들이자 내 어깨 위로 무거운 시선과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옆 사람과 속닥대는 둥의 경거망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되는 자리.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두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자신이 줄을 댄 쪽인지, 아닌지도 알고 싶겠지.
한데 내가 이 분위기에 적응을 하기도 전, 이번에는 반대편에 있는 문이 활짝 열렸다.
“……!”
이번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간간이 탄성이나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터졌다.
나 역시 놀라서 토끼 눈이 되었는데, 이유는 가주 할아버님이 데려오신 세 명 모두……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꿇도록 해라.”
찬란한 금발을 뽐내는 황태자, 유리.
거대한 상록수를 연상시키는 단테.
햇볕 아래가 아니라 그런지 오늘따라 어두워 보이는 이안까지.
셋의 자리를 지정해 주신 가주 할아버님이 손뼉을 치자 모두 말없이 무릎을 꿇었다.
“플로린. 이리 오거라.”
“네.”
나는 가주 할아버님이 서 계신 바로 그곳에 섰다.
이러자 내가 셋을 내려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모두 들으시오.”
그때, 가주 할아버님이 우렁찬 음성으로 입을 열어 모두를 주목시켰다.
“내 시대는 오늘로 끝이요. 새로운 시대를 이 젊은이들이 열어갈 테니 늙은이는 빠져야 할 때지.”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가주 할아버님은 짤막하게 혀를 차더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우리 드리블랴네는 도약을 해야 할 때이나 늙은 나는 힘이 없지. 이제 젊은이들이 그 도약을 해줄 것이라 믿네.”
군더더기 없는 연설이었다.
그렇게 가주 할아버님이 세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나만 남겨 두고.
그러나 잠시 뒤, 할아버님이 서 계시던 바로 그 자리에 황금빛 기운이 일렁였다.
‘아버님!’
나는 저 마법을 알고 있다.
아버님 특유의 공간 연결 마법이자 홀로그램 마법이었다.
“아, 내가 늦었나?”
19대 가주, 키락서스가 이곳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경탄이 일었다.
마탑주라는 걸 알지만 듣기만 할 때와 직접 보는 건 그 위용이 다를 테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님의 홀로그램은 진짜처럼 정교했거든. 목소리에 잡음도 거의 없다.
‘아무래도 저 먼 하늘 위에 마법을 구현하는 것과 같은 땅에 구현하는 건 다를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아빠가 보고 싶었다.
마음 약한 우리 아빠.
화이란에게 오늘이 내가 그토록 기다려 왔던 중요한 날이라는 건 이미 전해 들었겠지.
아빠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걸 잘 알았다.
내 인생에 얹어진 가장 큰 무게추를 내려놓을 수 있는 날.
“그날이…… 지나고, 나서 보러 가마.”
아빠가 눈가를 촉촉하게 적신 채 훌쩍거리던 게 떠오른다.
“그딴 놈팡이들에게 시집보내는 게 싫지만…… 그렇지만…… 네가 그건 꼭 하겠다고 하니까.”
“어휴, 뚝! 그만 울어. 아빠!”
“방해하고 싶구나. 따라가서 훼방을 놓으면 싫어할 테지……?”
아빠가 손수건을 깨물며 내 눈치를 흘끔 보았다.
나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듯 도끼눈을 홱 떴고.
그러자 위엄 있는, 무려 살아 있는 전설이자 아르칼리크의 신화인 우리 아빠는…… 시무룩해졌다.
그랬다.
내가 아르칼리크에서 내려온 뒤로 지금까지 아빠에게서 직접적인 연락이 없었던 건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내가 상처받는 걸 바라지 않아서. 그래서 아빠는 나를 ‘아르칼리크’라는 온실에 꼭꼭 감춰두고 싶어 했다.
거기다 아르칼리크가 아니라 이곳에 발을 붙이고 산다는 걸 너무나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부정적으로 보고 훼방을 놓고자 하셨고.
내 소식을 전하고 대화를 나누면 분명 과보호가 더 심해질 테니 차라리 연락을 안 하는 게 더 나았다.
만약 아빠와 정기적으로 연락을 했으면 이안이랑 여행 가는 건 꿈도 못 꿨을걸?
‘그래도 내일은 내가 먼저 화이란을 불러서 아빠한테 보고 싶다고 한 번 내려오시라고 전해 달라 그래야지.’
아빠는 지금도 저 하늘 위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내가 잘 하고 있는지 걱정하실 거다.
워낙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지 나를 아주 응애응애 하는 아기처럼 생각하시니까 말이야.
‘앗, 이렇게 생각하니 긴장이 좀 풀리네.’
그제야 아버님의 나직한 음성이 귀를 울렸다.
“너희는 선택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경쟁해 왔다.”
마른침을 삼킨 나는 손가락을 부러트릴 듯 힘을 주었다.
대기가 달아올랐다. 극도로 흥분한 알파의 페로몬이 온 사방에서 날뛰고 있었다.
멀미가 좀 나지만 그래도 나도 이쯤은 이제 버틸 수 있단 말씀.
“차기 가주가 되는 건 내정된 안주인의 선택을 받은 자. 너희 중 가장 뛰어난 수컷만이 선택받을 자격이 있지.”
세 명의 미청년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유리와 이안의 입가는 부드럽게 말려 올라가 있고, 단테는 딱딱하게 굳어 있다.
저것만 봐도 세 명의 성격이 다르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힘들겠지만 짐승의 피가 짙은 우리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이윽고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아버님이 조용히 선언하셨다.
“자, 플로린. 남편을 선택할 시간이다.”
쿵.
호흡을 내뱉음과 동시에 괜스레 가슴이 내려앉았다.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졌다.
아, 내가 기다려 왔던 순간이야.
“아버님, 혹 제 선택이 옳지 않았다면요?”
“드리블랴네는 망하게 되겠지. 걱정 말거라.”
아버님의 농담에 나는 쿡쿡 웃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아버님, 저는요…….”
부푼 가슴을 안고 떨리는 입술을 벌렸다. 모두가 내 선택을 기다리는 중압감이 이 한 마디로 끝이 나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역겨운 유황 냄새가 나를 그물처럼 덮쳐 왔다.
내 눈으로, 코로, 귀를 통해 눈 깜짝할 사이 들어온 그것은 이내 내 안을 잠식하여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건, 이건 뭐지? 아버님! 살려 주세요……!’
시야가 깜빡거렸다. 너무나 이상했다. 내게는 너무나 긴 시간인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꼭 1초를 다시 수천의 단위로 쪼개고 늘려 나만이 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아하하! 어서 바꿔 줘!”
저 멀리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즐겁다는 듯,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광소를 터트리던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친 바로 그때-
나는 내 안에서 어떤 ‘정보’가 빗장이 풀린 듯 터져 나오는 걸 느끼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모든 게 끝난 뒤였다.
나는 나였지만 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