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5)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5화(15/173)
“호오. 아푸디 마아, 아푸디 마아.”
가주 할아버님의 어깨 위로 올라간 나는 가슴께를 토독토독 두드리며 입김을 불었다.
그에 단단하게 물려 있던 입매가 느슨히 풀어지는 게 보였다.
“아아, 옷깃에 묻은 피를 본 게냐.”
“아푸면 안 대요. 가주밈이 아푸면…… 드리블랴네가 아파요.”
“기특한 녀석. 이건 내 피가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
당연히 가주의 피일 리가 없겠지. 하지만 원래 말이라는 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법 아니던가.
그런데 마침 그 순간, 가만히 있어야 할 자리를 알지 못하는 놈 하나가 온 얼굴에 심술을 덕지덕지 붙이고 끼어들었다.
“저게 어디서 수작이야? 가주님! 저건 야만족이에요! 저한테 한 짓을 보세요!”
봄볕을 받은 동토가 녹아내리는 것과 같이 풀려가던 가주 할아버님의 표정이 한순간 다시 얼어붙었다.
이번엔 확실한 노여움을 띤 흑안이 게르드를 향했다. 그에 게르드는 흠칫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너는 네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후계자 관에서 나올 수 없다.”
“예? 다쳤다니까요? 안 보이세요? 제가 다친 걸 알면 국왕이신 아버지가 가만히 계시지 않을……!”
“만약 이 명을 무시하거든 내 권한으로 후계자 자격을 박탈하고 그리 좋아하는 네 나라로 돌려보낼 줄 알아라.”
와아, 끝장났네!
어쩜 저렇게 다채롭게 멍청할까.
‘감히 가주 할아버님 앞에서 국왕을 들먹이며 따지다니!’
게르드는 느그 집에나 가라!
“그럼 저는 놀랐을 아이를 데리고 가보겠습니다.”
“그래. 오늘부터 시작하려 했던 라피렌의 수업은 내일로 미루는 게 낫겠구나.”
“예, 아버지. 그럼 이만.”
키락서스가 내 등을 토닥이며 이동 마법을 쓰려 했다.
그에 난 후다닥 가주 할아버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가주밈, 안녕.”
다음 순간, 눈앞이 부예지더니 장소가 바뀌었다. 내 침실이었다.
* * *
나를 침대에 앉힌 키락서스는 누구도 들어오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런 뒤 그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꼬리 부분을 찬찬히 살폈다.
“많이 아프니.”
“죠금 욱씬해요. 구치만 갠타냐요. 게르드, 벌 받았으니까.”
“그래, 벌을 받았지. 더 큰 벌을 받았어야 했는데.”
나직이 중얼거리던 키락서스가 이를 갈았다.
‘왜 저렇게…… 안 어울리게 자상하게 대해주는 거지?’
내가 생각보다 좀 더 쓸모가 있어서?
‘근데 그런 것 치고는 나를 보러 엄청 오랜만에 왔는데.’
키락서스의 반응이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좋기도 한데, 그보다 어색한 게 제일 크다.
이제 소가주님이 되었고, 나중에 19대 가주님이 될 거니까 공식적으로 내 시아버님이 맞긴 한데…… 뭐, 그렇다고 아빠도 아니고.
‘뭘 이리 걱정하고 그런대?’
나는 그런 악당의 이마에 몰랑한 앞발을 찰싹 붙였다.
“지짜 갠타나요. 겨론 안 하면 되니까요!”
“……널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존은 근신 처분을 받을 거다.”
“아니, 아니! 안대! 존은 잘못 앙 해써.”
“안주인을 똑바로 지키지 못한 게 죄지, 무엇이 죄란 말이냐.”
“그…… 아니.”
아오, 답답해!
나는 여전히 내 옆을 맴돌고 있는 폼폼을 두 번 거세게 두드렸다.
“권력! 몬 이겨!”
– 고작 호위 기사에 불과한 존이 드리블랴네의 후계자에게 어떻게 진심으로 대항하냐고요.
“칼, 이미 만이 나가꼬요!”
– 칼 빼든 것만 해도 솔직히 중징계 감인데!
“나를 몬 지킨 게 아니라, 그만한 권한이 업어떠.”
– 존이 그 이상의 대응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잖아요. 근데 존 탓을 하면 안 되지! 애초에 권한이나 주고 그러던가!
키락서스는 씩씩거리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며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것도 귀엽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아니, 지금 내가 귀여운 게 중요하냐고!
“나눈 맨날 귀여어! 지굼! 존! 얘기!”
– 나는 맨날 귀엽거든요? 지금 중요한 대화 주제는 그게 아니라 존이잖아요! 집중 안 해요?!
아, 속 시원해.
폼폼이 제대로 해석을 해줘서 그나마 체기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내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려 하면 넌 언제나 그렇게 화를 냈지.”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래?
자꾸 헛소리를 하기에 눈을 흘겨줬더니 키락서스가 어쩐지 후련한 얼굴로 일어섰다.
“그래, 존을 처벌하지는 않으마.”
“웅.”
“아까 라피렌이 널 제일 먼저 발견한 건, 오늘부터 간단한 수업을 그가 맡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며느리 수업이요?”
“그래. 라피렌이 드리블랴네에 대해 가르칠 거다. 그리고 네 실력을 적당히 파악한 다음 수준에 맞는 교사를 찾아 붙여줄 거다.”
오, 공부를 할 수 있구나!
보통 아이라면 공부를 끔찍이 싫어하겠지만 난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열심히 배워서 며느리 자리를 유지해야지!’
사실 사람이 살아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즐겁다. 이번에 죽으면 다음엔 뭐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도 만약 수인이 된다면 이 생에 배운 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아, 그리고 네 신분 문제 말인데.”
움찔.
갑자기 던져진 ‘신분’이란 단어에 내 동글 귀가 경계심을 안고 까딱였다.
키락서스는 나를 흘긋 보더니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전혀 귀족답지 못한 자세였지만 불량스러운 모습도 키락서스에게는 잘 어울렸다.
“해결 중에 있다. 네 양어머니가 될 만한 사람이 있긴 한데 지금 상황이 좀 골치 아파서.”
“양……어머니요?”
가족? 이런 나를 누가 받아줘?
아니, 자기 비하가 아니라 이건 아주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알비노에,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도 모르겠고, 인간화도 못하는데?
물론 이젠 성녀라는 가짜 명성도 있긴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데 지금 얀테로사 산맥에서 칩거 중인지라 내가 가서 찾아야 한다.”
“얀테로사……?”
설마 그 얀테로사?!
분명 원작에서 라흰이 눈사태를 만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분명 산장에 남자주인공 중 하나와 꼼짝없이 갇히게 되는 이벤트가 열렸던 걸로 기억한다.
얀테로사 산맥은 전설에 의하면 그 험악한 봉우리 전체가 드래곤의 본체가 굳어져서 생긴 거라고 했는데…….
그래서 외부에서 마법으로 그 산맥을 들여다볼 수 없고, 자연적인 마나 방어막이 생성되어 있어 마법 공격 또한 어렵다고 했다. 누군가 숨어야 한다면 완벽한 장소라는 것이다.
“너무 걱정 말고 기다리거라.”
내가 염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키락서스가 내 머리를 푹 눌러 쓰담쓰담했다. 그런 그의 얼굴이…… 한순간 너무 자애로워서,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 왜 이러케 잘해조요?”
그래서일까. 내내 굳이 들쑤시지 말자고 꼭꼭 눌러온 질문이 터져 나온 것은.
“성녀라고 그짓말두 하구…… 내 편두 들어주구, 폼폼도 주구.”
키락서스가 내게 잘해준 것들을 하나하나 꼽아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문제는, 그는 그렇게 나를 대해줄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방금 상황을 봐. 누가 봐도 키락서스가 내 편 든 거 맞잖아.
게다가 이젠 첩자였던 내게 제대로 된 신분을 주겠다고?
왜?
“나는 본래 내 수집품을 아낀다.”
“……나눈 수집품 아닌데.”
“결혼은 하기 싫었지만 늘 딸이 갖고 싶기도 했고.”
“……난 따두 아닌데. 며느린데……(난 딸도 아닌데……).”
대가 없는 다정함은 두렵다. 그것이 나를 침식할까 봐.
내가 값을 지불한 다음에 받는 것이라면 마음이 편할 텐데, 나는 그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해봐야 아무도 모르고 있을 드리블랴네의 몰락을 막는 거?
‘하지만 드리블랴네가 없어져도 키락서스에겐 마탑이 있으니까.’
그러니 뭔가를 받을 때마다 빚만 자꾸 쌓이는 기분이야.
“그러니까 넌 내가 왜 네 정체를 밝히고 당장 여기서 내쫓아버리지 않는지 궁금한 거구나.”
키락서스의 표정이 어쩐지 아파 보인다면 이상한 일일까.
하지만 이내 눈을 휘며 표정을 감춘 그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는 내가 인간성을 가졌다는 마지막 증거다.”
“응……?”
이제 제대로 된 답을 줄 거라고 여겼는데…… 그가 내놓은 대답이 너무 황당해서 난 도리어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원작이 신성 제국 시점이어서, 원작에서 말하는 ‘악당’이 꼭 진짜 악당이 아닐 수 있다는 건 알긴 알지만…….
그래도 지금 내게 보이는 키락서스의 모습은, 뭐랄까. 정말이지 따스했다.
나를 마음으로 낳은 딸처럼 대하는 느낌?
‘하지만 우리 사이에 그럴 만한 계기 같은 건 전혀 없었는데.’
고작 일주일 전에 만난 사이인걸.
“대대로 마탑의 주인들은 압도적인 힘 앞에 인간성을 잃어왔지.”
“…….”
“나는 너를 볼 때마다 내 안에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 있음을 깨닫곤 한다.”
어…… 그러니까…….
“악당 양심 수호쟈……? 인간 양심 부적……?”
헙, 속으로 생각해야 할 말이 튀어나왔다.
입을 틀어막고 눈치를 보자 그가 키득 웃었다.
“그런 셈으로 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