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5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51화(151/173)
* * *
한편, 마도 제국.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라흰은 제 방을 엉망으로 만들며 뒤엎고 있었다.
‘아, 뭐야. 얘 왜 이렇게 가진 게 없어?’
이윽고 라흰은 입을 비죽거리며 제 손아귀에 움켜쥔 보석들을 다시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얘는 방 하나를 통째로 보석함으로 만들어달라고 하지도 않고 여태껏 뭘 한 거야?’
입을 비죽대던 라흰은 카펫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귀한 몸이라면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테지만 사실 라흰은 예법에 대해 전혀 몰랐다. 빙의한 뒤로 단 한 번도 배우려고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첫 번째 소원으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할 걸 그랬어. 괜히 판타지 뽕이나 차서는…….’
그랬다. 라흰은 여태 읽어온 많은 소설로 인해 성녀가 되면 황태자와 결혼하고 이세계 영부인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소원을 빌겠느냐는 신의 물음에 냉큼 고개를 끄덕인 거였고.
어차피 라흰은 내세 따위는 믿지 않았기에 죽고 나서 무슨 일이 있든 알 바 아니었다.
아무튼 그래서 첫 번째 소원으로 성녀라는 지위를 얻었지만 그게 흥청망청 살 수 있는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라흰이 키락서스에게 반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잘생겼고, 부유했고, 자유로웠으며 무엇보다도 빌어먹을 신성제국 인간이 아니었다.
소원을 더 쓰기는 아까우니 그와 결혼해서 마도 제국으로 떠나는 게 라흰이 그렸던 빅픽쳐였다.
만 번 찍어도 넘어오지 않는 남자에게 열 받아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에 욱해서 소원 하나를 오히려 낭비하게 된 건 지금 생각해도 뼈아픈 실책이었다.
각설하고. 세 번째 소원은 그래서 나름대로 신중하게 생각했다.
라흰은 더는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제멋대로 사치하며 살고 싶었다.
‘돈을 펑펑 쓰고 들어왔는데 모두 박수 치면서 너무 잘했다고 하는 그런 삶 있잖아.’
그녀가 미간만 찌푸려도 누가 우리 딸 기분을 나쁘게 했느냐며 그 가문의 뿌리까지 뽑아서 망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남자도 빼먹을 수 없지. 세상의 모든 미남이 그녀의 발치에 꿇었으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고 오직 누리기만 하고 싶은데, 라흰이 보기에는 제 숙적이라는 플로린이 자신이 바라는 걸 다 가진 것 같았다.
황제는 귀찮고, 황녀는 언제 정략혼 상대로 팔려가게 될지 모르고.
이 애의 인생 정도면 그간 받은 보석도 많이 있을 테니 딱이다 싶었는데! 그랬는데!
“근데 이게 뭐야? 이건 그냥 거지잖아!!!”
물론 객관적으로 플로린의 소유품은 굉장히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뿐이었다.
보석이 많이 달려 있다 해서 그 물건이 비싼 것이냐고 하면, 아니다. 사교계 내에서도 최상류층은 오히려 장식이 적은 것을 선호했다.
또한, 한눈에 이게 어느 브랜드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도 기피했다.
최상류층이 누리는 문화는 은밀했고 격조 높았기에 라흰의 안목으로는 플로린의 장신구가 가진 가치를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물건마다 보석이 몇 개 달렸는지만 세고 있으니 당연하겠지.
‘이 볼품없는 반지는 또 뭐야?’
라흰은 붉은색 보석이 박힌 반지를 들여다보다 그걸 홱 집어 던졌다.
짜증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발을 쾅쾅 구르면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금화는 어디 있냐고! 돈! 돈이 있어야 쇼핑을 하지. 이깟 거 돈으로 바꿔봤자 얼마 한다고!’
씩씩대던 라흰은 문득 반지가 도르르 굴러간 침대 밑에 시선을 주었다. 바닥과 침대 사이엔 약간의 틈이 있다.
뭔가를 숨기기 좋을 만한 그런……?
“헉, 똑똑한 나!”
라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어쩐지 저 안에 대단한 게 숨어 있을 거란 직감이 삐릭 하고 왔던 것이다.
엉금엉금 기어 침대 밑을 뒤진 라흰은 이내 콜록거리며 상자 하나를 끄집어냈다. 척 봐도 오랫동안 열지 않은 티가 나는 보물 상자였다.
“아, 왜 안 열려.”
철컥철컥. 잠금쇠를 몇 번 당겨봤지만 쉽지가 않다.
인상을 찌푸리던 라흰은 보물 상자를 들고 그대로 벽에 내던졌다.
쾅!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꽉 다물려 있던 상자의 뚜껑이 확 열리며 그 안에 든 것이 팔랑팔랑 떨어져 내렸다. 금화를 기대한 입장에선 맥 빠지는 일이었다.
‘이건 또 뭐야. 통장?’
아무 기대 없이 통장을 펼친 라흰은 여기에 얼마가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내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마차 불러놔.”
“저어, 어디 나가시나요?”
“그건 네가 알아서 뭐 하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문을 열자 복도에 하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다.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하녀의 얼굴 따위에 쓸 신경은 없었다.
“마차나 불러! 빨리!”
쌀쌀맞게 지시한 라흰은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제일 앞에 있는 하녀를 가리켰다.
“너. 옷 시중 들어.”
“네, 네에. 라흰 님.”
하녀들은 진심으로 놀랐지만 애써 그런 기색을 감추었다.
평소에 저런 분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고압적으로 태도가 바뀌셨다. 그러니 다들 걱정일 수밖에는 없었다.
심경에 큰 변화가 있으신 건가? 아니면 어디 아프신가? 괜찮으신 걸까?
하녀들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지 않았다. 그들은 어찌 되었든 라흰 님의 편이었던 것이다.
하녀의 미덕이란 주인의 허물을 지껄이는 게 아니라 입을 닫는 것.
하녀들은 라흰의 이상한 상태가 바깥에 새어 나가지 않게끔 조심하기로 하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하녀들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외출한 라흰은 만취한 상태로 저택에 기어 들어왔다.
* * *
라흰의 기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숙취로 죽어가던 라흰은 오후가 되자 또 외출을 했다.
이번에는 마차 한 대로는 다 실을 수도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을 사들인 채 돌아왔고.
거기다 어제와는 달리 몹시 기분이 좋은지 라흰은 생글생글 웃기까지 했다.
“조금 스트레스를 받으셨나 봐.”
“맞아. 가주가 될 분을 선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우리는 모르는 고충이 있으셨을 거야.”
하녀들은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동안 새 물건을 거의 사들이지 않기도 하셨으니까 이 정도 쇼핑은 충분히 기분 전환이라 할 만했다.
“따님. 오늘 별일 없었나요?”
마차에서 내린 라흰에게 다가온 건 살로네스 아이다호였다.
선택의 날에 모두의 앞에서 쓰러진 뒤, 라흰은 그 누구도 찾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이틀을 보냈다.
오늘쯤에는 회복해서 선택의 날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들어보니 쇼핑을 나갔다고 했다.
사실 쇼핑을 간 것 자체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다만 살로네스가 아는 라흰은 중요한 일을 회피할 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직접 마중을 나온 것이다.
“꺄, 엄마!”
한데 라흰이 지금껏 한 번도 부른 적 없던 호칭으로 그녀를 불러왔다.
그에 크게 놀란 살로네스는 딱딱하게 굳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도 잊고 말았다.
“나 걱정돼서 온 거야? 아이참.”
살갑게 웃으며 포옹을 해 오는 이 아이는…… 누구지?
순간, 오싹한 느낌에 살로네스는 저도 모르게 라흰을 쳐내고 말았다.
“아야!”
기사의 힘이 오죽 강하겠는가. 라흰은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세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라흰 님!”
“세상에, 라흰 님!”
주변에 서 있던 하녀며 하인들이 사색이 되어 라흰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살로네스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가만히 있었다.
‘내가 왜 그랬지?’
이유를 모르겠다.
사랑하고 아끼는 양딸 아닌가.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나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걸까.
“라흰!!!”
그때였다. 저만치 멀리서 한 사내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더니 순식간에 살로네스의 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사내는 다름 아닌 단테였다.
복잡한 마음으로 훈련을 마치고 잠시 산책을 하던 단테는 라흰이 마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작금의 상황까지 모든 것을 목격했다.
그래, 라흰이 그 가녀린 몸으로 넘어지는 것까지 말이다.
그건 단테가 이성의 끈을 놓을 만한 요소였다.
“모두 비켜라! 내가 데리고 가겠다.”
단테는 주변의 모두를 노려보며 라흰을 번쩍 안아 들었다.
라흰은 훌쩍거리며 단테의 품에 고개를 묻었는데, 사실 그녀는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아, 뭐야. 완전 잘 됐네. 엉덩이는 좀 아프긴 하지만.’
저를 향해 딸이라고 하기에 기껏 애교를 부렸건만 떠밀린 건 몹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결과가 이렇다면야.
실컷 쇼핑을 한 라흰은 굉장히 너그러운 상태였다.
게다가 이제 슬슬 제게 주어진 남자 쪽으로 눈을 돌리려던 차였는데…… 셋 중 하나가 등장한 것이다.
흑발에 청록색 눈인 걸 보니…… 이게 단테겠구나.